[이완의 색다른 진보 8.] 인터넷이 청소년 극우화시키고 있다는 주장? 근거가 부족하다. 어디까지가 자유를 허락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혐오 표현인가? 과거 워마드엔 침묵, 정파적으로 활용되는 ‘혐오 표현’ 규정… 우리에겐 ‘부족 연합의 지혜’가 필요하다. (⏰15분)
진영 논리가 판치는 시대, ‘논쟁’이 어렵다. 말, 글로 논하여 다투기보다 SNS에 서로 조롱하고 비아냥대기 바쁘다. 이미 각 부족 입맛에 맞게 답을 정해 놓은 좌우파 지식인은 한 치 이견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토론은 물러나면 죽는 전장일 뿐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 차분한 논쟁이 필요하다. 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에 의해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어떤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토론 테이블에 꺼내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성역화도, 언더도그마도 타파 대상이다.
색다른 관점을 가진 철학자를 소개한다. 독립 연구자 이완(31)이다. 그의 철학과 생각이 정치·사회 논쟁에 작은 불쏘시개가 되길 바란다. 이번에 그와 나눈 인터뷰 주제는 ‘일베 폐쇄와 혐오 표현 규제의 정파성’이다.
🎠 이완의 색다른 진보
6. ‘다주택자 때리기’보다 ‘공공주택 확대’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7. ‘군국주의’라는 편리하고 과장된 수사에 대하여.
8. 일베는 NO, 워마드는 YES? ‘혐오 표현’ 규제가 공정할 수 있을까.
‘극우’에 대한 적절한 정의가 중요한 이유.
— 이재명 대통령이 일간베스트 폐쇄와 처벌을 다시 공론화했다. “일베가 조롱과 모욕으로 우리 사회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계기로 극우화를 막기 위해 인터넷에서 혐오 표현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다.
일베가 새삼 문제가 된 계기는 한 사진이다. 일베 회원으로 추정되는 청소년들이 노무현 대통령 동상 옆에서 일베를 상징하는 손가락 포즈를 취했는데, 이 사진을 노무현 재단이 공유하고 비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여기에 반응하면서 진보층이 공분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스타벅스 코리아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큰 논란을 일으킨 상황이라 분노가 더 빠르게 퍼진 것 같다.

일베 회원들은 오랫동안 도덕적 혐오감을 자극할 만한 일을 저질러 왔다. 세월호 사건 이후 노란 리본에 일베의 상징이나 노무현 대통령 모욕을 뒤섞은 ‘일베 노란 리본’을 공유한 적도 있고, 세월호 유가족이 단식 투쟁을 벌일 때 그 앞에서 파티를 벌인 적도 있다.🔖⒈ 이런 무분별하고 반사회적 행위 탓에, ‘일베 용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사람이 사회적으로 비난받았다.🔖⒉
일베는 진보층뿐 아니라 정치에 깊게 관여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멸시의 대상이다. 그럴 만하다.
그런데 최근 청소년 사이에서 일베 상징이나 용어가 다시 유행한다고 한다.🔖⒊ 인터넷 커뮤니티뿐 아니라 유튜브 쇼츠, SNS 등이 일베 용어나 혐오 표현을 교실에 퍼뜨리고 있다는 이야기다.🔖⒋ 노무현 대통령 동상 옆에서 일베 포즈를 취한 청소년들의 사진과 이에 대한 대통령 반응을 보고, 여러 진보층이 일베 부활과 청소년 극우화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극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적절하게 정의하고 논의를 시작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마치 일부 보수층이 역사적 사실도 무시하며 정치적 걱정거리를 죄다 공산주의라고 부르는 것처럼, 진보층은 여러 문제 행동을 일베나 극우의 징표처럼 여기고 있다. 측정 대상이 무엇인지 정의하지도 않고 일단 나쁜 무언가가 늘어나고 있다는 식이다.
이런 식의 논의는 문제 해결에 도움되지 않는다.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도 방해한다.
— 많은 사람이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를 극단주의 확산의 원인과 통로로 여기는데, 이런 통념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인가?
2021년 유니세프는 여론조사 기관 갤럽(Gallup)과 협업해 21개국 약 2만1,000명을 대상으로 소셜 미디어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조사했다.🔖⒌ 조사 대상에는 15~24세 청소년과 40세 이상 성인이 포함돼 있었다. 유니세프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 응답자 중에서 소셜 미디어를 많이(a lot) 신뢰한다고 답한 사람은 17%에 불과했다. 40세 이상 성인 중에서는 12%가 소셜 미디어를 많이 신뢰했다.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청소년 과반이 신뢰하는 정보 출처는 소셜 미디어가 아니라 의사나 과학자 같은 전문가였다.
이 외에도 여러 학자가 인터넷의 악영향이 다소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2021년 미국 정치학회지의 한 논문은 온라인에서 대다수 미국인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매체가 아니라 온건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서로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같은 매체를 통해 정보를 접하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었다. 편향된 매체의 조회수를 올려주는 것은 주로 소수 강성 지지층이었다. 같은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끼리만 접하면서 서로 편향을 키우는 ‘에코 체임버’ 현상 역시 소수 강성 지지층에게서 나타났다.🔖⒍

2017년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올라온 한 논문은 온라인 매체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청소년, 청년층보다, 온라인을 적게 이용하는 노년층 사이에서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고 보고했다. 이를 근거로, 저자들은 인터넷이 양극화의 일부만 설명해 준다고 결론지었다.🔖⒎ 2021년 같은 회보에 올라온 논문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좌파 또는 우파 성향의 뉴스를 더 많이 보여주면서, 뉴스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결과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편향된 뉴스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꾼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주류 언론에 대한 신뢰도를 눈에 띄게 낮출 뿐이었다.🔖⒏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 자체는 정치 양극화와 별로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 양극화한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 이용 시간을 늘리는 것으로 보인다.🔖⒐ 일반적인 사람들,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일베 같은 정치적으로 편향된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용하지 않고, 굳이 유튜브에 공격적 댓글을 남기지 않고, 극단적 생각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 않는다.🔖⒑ 그 탓에 인터넷 세상에서는 실제 다수 의견이 아니라 오랜 시간 활발히 활동하는 소수 극단적 집단이 과다대표되기 마련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까이에 있는 것을 인과 관계로 연결짓고 싶어한다. 청소년들이 쇼츠를 즐기고 있다. 동시에 극단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쇼츠와 극단화가 서로 인과 관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극단화하고 있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서로 가까워 보인다고 해서 꼭 인과 관계라는 법은 없다. 내가 밖에 나갈 때마다 비가 오는 것 같다고 해서 자신을 비의 원인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과 청소년 극우화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이 청소년을 극우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에는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 근거가 부족한 주장 때문에 정부가 인터넷을 검열할 수는 없다.
모호한 개념의 법제화? 반대파 억압 무기로 활용될 수도.
— 인터넷 검열에 반대하는 이유는 표현의 자유 보호에 있나?
단순히 표현의 자유 때문만은 아니다. 마땅한 근거가 있다면, 정부는 특정 표현을 금지시킬 수 있다. 자유주의를 기본 질서로 받아들이더라도 그렇다. 예를 들어 전쟁이 한창인데 누군가가 국내에 혼란을 초래한다고 하자. 표현의 자유를 앞세우는 보수주의자라도 이런 표현까지 허락하자고 선뜻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존 로크처럼 이야기하면, 비도덕적 행동을 금지하는 것은 어떠한 자유도 침해하지 않는다. 자유는 도덕의 굴레 안에 있고, 그 굴레 밖에는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로크가 말한 도덕은 당시의 기독교 윤리였지만, 자유가 도덕 아래에 있다는 생각 자체는 여러 사상가가 공유하고 있다.
이사야 벌린처럼 이야기하면, 공공이익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표현을 금지하는 것도 엄연히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침해는 정당하다. 자유는 유일하게 소중한 가치가 아니고, 무엇보다 자유는 사회 구성원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세계인권선언 역시 공공질서나 공공복리를 근거로 권리를 적절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쿠팡 배송 논란 때 이야기한 것처럼, 자유는 모든 논쟁을 끝낼 수 있는 만능 단어가 아니다. 자유주의 국가 역시 정당하게 행동이나 표현을 금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표현을 금지하는 이유와 그 효과다. 혐오 표현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초래하고 위험한 사상을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인데,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온라인을 통한 혐오 표현 확산이 곧바로 정치적 극단화를 초래한다고 볼 근거는 부족하다. 오히려 극단적 표현은 의심받기 쉽다. 막연한 공포를 이유로 정부가 표현을 금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 이완 작가가 우려하는 역효과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위성정당을 법으로 금지한다고 해보자. 정치 고관여층이라면 무엇이 위성정당인지 딱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은 직관이 아니라 말로 정리해야 하는 규칙이다. 대체 어떤 정당이 위성정당일까. 정당 지도부가 거대 양당 당원이었던 사람으로 구성되면 위성정당일까? 그렇다면 누가 어느 정당 소속이었는지 정부가 다 알 수 있어야 하는 데다가, 필요할 때 당을 나누거나 당적을 옮기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즉 정당 활동의 자유가 지나치게 침해될 수 있다.
일정 기준 이상 지역구에 의원을 내보내지 않고 비례 후보만 내보내는 정당이 위성정당인가? 그렇다면 그 기준은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이 기준이 너무 낮으면 위성정당을 금지하는 의미가 없을 것이고, 너무 높으면 소수 정당 활동을 억압하게 될 수 있다. 이처럼 특정 집단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당연한 것도 막상 법으로 규제하려고 하면 매우 곤란해진다.
혐오 표현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지 않으면서 공정하게 혐오 표현를 금지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자유를 허락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혐오 표현인가?
이렇게 모호한 개념을 법에 도입한다면, 필연적으로 경찰이나 대법원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여지를 남기게 된다.🔖⒒ 그렇게 되면 정권이나 대법관들의 정치 성향이 바뀔 때마다 처벌받는 표현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선거 결과마다 기준이 달라진다면, 혐오 표현 규제를 앞세워서 노골적으로 상대 정파를 억압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자리잡을 수도 있다. 민주당이 영원히 집권하지는 않을 테고, 이변이 없다면 군소 진보정당은 청와대 근처에도 가지 못할 텐데, 경찰과 법원에 그런 힘을 주는 것이 과연 사회를 진보시키는 데 도움이 될까.

‘노무현 조롱’은 모독, ‘박근혜 조롱’은 풍자?
— ‘혐오 표현’ 규정이 정파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인가?
“실제 우리나라에서 혐오 표현은 매우 정파적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래디컬 페미니즘이 한창 활개칠 때, 워마드와 메갈리아 등은 일베와 비슷한 수준의 표현을 퍼뜨렸다. 혜화역에서는 그런 표현이 시위 구호로도 등장했다. 하지만 당시 진보 정치인 상당수는 여성의 극좌화를 걱정하며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구호를 혐오 표현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정의당 등은 메갈리아를 적극 옹호했다가 큰 내분에 빠지기도 했다.🔖⒓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 것은 고인에 대한 모독이지만, 박정희·박근혜 대통령을 소재로 선정적 그림을 그리는 것은 권력자에 대한 풍자로 통한다. 심지어 박정희 부녀를 공격할 때는 사실로 드러나지 않은 정보까지 섞어도 비난받지 않는다. 진보는 가짜뉴스를 경계해야 한다면서도 성주 사드 논란이나 후쿠시마 정제수를 두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열심히 공유했다.
이렇게 정파에 따라 유사한 행동도 다르게 판단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혐오 표현 규제가 공정하게 집행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어떻게든 혐오 표현을 금지하고 그 창구를 폐쇄한다고 해서 극단주의가 약해진다고 볼 수 없다. 일베가 폐쇄되면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새로 만들면 그만이다. 게다가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며 더 과격해질 가능성도 있다. 혐오 표현 규제의 모호함 때문에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같이 극단주의 세력에 동조해 버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 유럽과 미국 일부 주는 우리보다 훨씬 먼저 혐오 표현 규제를 마련했지만 극우로 분류되는 정치 세력은 계속 강해지고 있다.



최근 독일에서는 ‘독일을 위한 대안’이 기독교민주연합을 제치고 지지율 1위를 달성했다.🔖⒔ 영국에서는 ‘개혁 영국’이 선거 때마다 노동당과 보수당의 자리를 흡수하며 세력을 불리고 있다. 올해 5월 7일 잉글랜드 일부 지역에서 열린 지방선거에서도, 개혁 영국이 지방의회 의석을 1,400여 개나 늘리면서 기록에 남을 만한 승리를 쟁취했다. 반면 노동당과 보수당은 그만큼 많은 의석을 잃었다.🔖⒕ 미국에서는 MAGA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적도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연방정부 차원의 차별금지 정책(행정명령 11246호)부터 폐지해 버렸다.🔖⒖
“만델라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표현을 압력솥의 안전 밸브에 비유했다: 만약 사람들이 평화롭게 불만을 목소리로 낼 수 없다면, 그들의 분노는 다른 방식으로 폭발할 것이다. 그의 통찰력은 단순하지만 심오했다: 정부가 평화로운 표현을 억압할 때, 민주주의에 전념하는 사람들조차 폭력을 유일하게 남은 선택지로 여길 수 있다.”
반극단주의 위원회, 영국 내무부🔖⒗
폭력 행위를 자극하는 선동에는 빠르게 대처해야 하지만, 지금 청소년 사이에서 그런 선동이 확산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소년 무리가 민주당 당사에 쳐들어가서 일을 방해하거나, 중국 대사관에 뛰어들어 반중 시위를 벌였다는 뉴스는 아직 듣지 못했다. 극좌 단체가 그랬다는 뉴스는 자주 접했다. 그럼에도 막연한 우려 때문에 섣불리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인터넷을 규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급한 불을 끄겠다고 아무거나 흩뿌렸는데 그게 휘발유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부족 연합의 지혜’ 조율, 공존, 타협이 필요하다.
—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규제 외에 다른 대안이 있는 건가?
가장 근본적 대안은 사회적 고립이나 소외, 빈곤에 대응해서 극단화에 빠지지 않을 법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개혁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미국 법학자 네이딘 스트로슨 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적극 옹호하는 학자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도 스트로슨 교수의 책이 몇 권 번역되어 있다. 스트로슨 교수가 제안하는 대응법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눈에는 눈, 표현에는 표현.’🔖⒘
스트로슨 교수가 제안한 방법을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누군가가 정부 지출을 모조리 공산주의로 규정하고 시장만능주의를 주장한다고 하자. 이런 과격한 표현을 법적으로 금지하거나 그저 조롱하는 것은 과격한 신념에 동조하는 사람을 더 늘릴 뿐이다. 대신, 미국과 영국 등도 19세기부터 정부 지출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거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처럼 권위 있는 경제학자들도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한다는 점을 공유할 수 있다.
또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인플루언서나 전문가가 직접 과격한 표현을 반박하는 것도 방법이다.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협박하는 대신, 과격한 표현이 왜 잘못됐는지 규탄하는 것이다. 개그우먼 이수지 씨가 부끄러운 줄 모르는 부유층이나 학부모, 환자를 풍자한 것처럼, 과격한 표현을 역으로 유머 소재로 삼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과격한 주장은 사회적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되고, 사회적 동물들의 결집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도 있다. 누구도 조롱받는 집단과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이런 ‘대항 표현’으로 극단적 주장의 허점을 드러내는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느 정도 효과 있는 방법인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개인 차원에서 열심히 반박하는 것보다, 시스템 차원에서, 즉 미디어 환경을 개선해서 대항 표현이 힘을 얻게 해야 한다. 최근 유럽에서도 알고리즘 추천 기능에 개입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⒙ 2025년 영국 내무부 반극단주의 위원회 보고서 역시 사람에 대한 처벌보다 대항 표현 지원을 권장하고 있다.
“표현이 위험하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폭력을 선동하지 않는 경우, 해결책은 금지가 아니라 더 많은 표현과 관여다. 정부는 대항 메시지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고, 교육을 지원하며, 지역사회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극단주의 선동을 반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반극단주의 위원회, 영국 내무부🔖⒚
물론 대항 표현도 만능은 아니다. 대항 표현은 아직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은 사람들이 극단으로 빠지지 않게 예방할 수 있지만, 이미 완전히 돌아서버린 사람까지 되돌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 심지어 이미 편향된 사람이 반대되는 의견을 자주 접하면,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더 편향될 수도 있다. 일부러 상대를 자극하기 위해 달려드는 극단주의자에게 화를 낸다면, 극단주의자는 더 즐거워할 수 있다.🔖⒛
그래서 나는 ‘부족 연합의 지혜’도 필요하다고 본다. 부족 연합은 서로 협력하지만 완전히 하나되지는 않은 집단이다. 이런 집단이 오래 살아남으려면, 서로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에는 여러 정치 부족이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있다. 이 정치 부족들이 서로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각 정치 부족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평화롭게 공존하고 번영하는 것에 초점을 둬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가 속한 정치 부족이 조금 더 많은 이익을 얻으면 좋겠지만, 상대가 분노할 만큼 과점하려 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괜한 감정 싸움을 일으킬 법한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 ‘절제’와, 상대의 체면이나 성향, 이익을 어느정도 챙겨주는 ‘타협’에 초점을 둔 정치 문화가 필요하다. 정부가 시민단체처럼 굴면서 역사 논쟁이나 동상의 주인공 논란으로 괜한 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자신의 주장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이 부분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단순다수결로 처벌 법을 도입해서 입부터 막으려는 정치 문화보다는 건설적일 것이라고 믿는다.
— 우리가 경계해야 할 극단주의자란 어떤 사람들이라 보는가?
여느 정치 개념이 그렇듯, 극단주의에도 하나의 정답 같은 의미는 없다.🔖㉑ 완벽한 평등을 바라든 가혹한 차별을 바라든 극단주의자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어떤 문제에서든 하나의 정답이 있다는 생각이 극단주의의 뿌리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정답이고 남들이 오답이라고 믿으면, 정답을 실현하기 위해 남들에게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결론으로 치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분법적 확신에 빠져서 평화로운 공존 자체를 포기하고 무분별하게 상대를 소외 또는 절멸시키려는 사람들을 잠재적인 극단주의자라고 여긴다. 이때 우파인지 좌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파 극단주의와 좌파 극단주의는 서로 다른 내용을 갖고 있지만, 사고 방식은 유사하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올바름을 실현하기 위해서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너를 몰아내겠다.’

프래그머티즘 철학자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세상은 근본적으로 불확실하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자명한 진리를 실현하는 입장이 아니다. 더 나은 생각을 계속 찾아야 하는 입장이다. 우리의 모든 결론은 언젠가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결론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우연, 운, 그리고 우발성이 실제로 존재하는 열린 우주이다. 우발성은 즐거움과 비극의 근원이며, 우리에게 기회와 도전을 제시한다.”
리처드 번스타인, 미국 프래그머티즘 철학자🔖㉒
이런 ‘오류가능주의’ 사고방식을 거부하고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항상 뚜렷하게 나뉜다고 믿는 것, 그리고 자신이 선과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향과 자라난 환경이 다르다. 그래서 사람마다 도덕 감각, 정치 성향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같은 사건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는 이성적 대화로 교정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어느 한 집단의 감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으면 어떻게 될까. 악을 설득할 수 없다면 배제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배제 대상이 된 사람들은 발언권을 지키기 위해 더 과격하게 저항하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서 철저한 배제를 유일한 또는 최선의 대응이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을 극단주의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경계해야 한다.

🔖 참고문헌
1.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노란리본 의미 짓밟는 ‘일베 노란리본’ < 사회 < 기사본문 – 시사위크
세월호 유가족, “‘폭식투쟁’은 모욕” 일베 회원 고소키로 | 중앙일보
2. 장현승, ‘일베’ 용어 사용 논란에 사과 “의미 충분히 몰랐다…경솔”
‘일베 논란’ 워크맨 측, 2차 사과문 “관리자·제작진 징계…불편 끼쳐 죄송” [전문]
3. ‘탱크데이’ 논란 속 청소년 역사 인식 ‘빨간 불’…”교실에 스며든 ‘영 일베’ 문제도”
4. [다큐 뉴스타파] 2026 10대 극우화 보고서, 소년 극우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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