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색다른 진보 5.] 이민은 일자리와 집, 복지가 얽힌 현실의 문제. ‘보수 좌파’를 주목하라…덴마크는 왜 이민자를 ‘덴마크인’으로 만드는가. 정치인들이 내국인 고용 확대를 공약하는 이유. (⏰17분)
진영 논리가 판치는 시대, ‘논쟁’이 어렵다. 말, 글로 논하여 다투기보다 SNS에 서로 조롱하고 비아냥대기 바쁘다. 이미 각 부족 입맛에 맞게 답을 정해 놓은 좌우파 지식인은 한 치 이견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토론은 물러나면 죽는 전장일 뿐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 차분한 논쟁이 필요하다. 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에 의해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어떤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토론 테이블에 꺼내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성역화도, 언더도그마도 타파 대상이다.
색다른 관점을 가진 철학자를 소개한다. 독립 연구자 이완(31)이다. 그의 철학과 생각이 정치·사회 논쟁에 작은 불쏘시개가 되길 바란다. 이번에 그와 나눈 인터뷰 주제는 ‘이민자 정책과 정치’다.
무슬림 기도 시간을 근무시간에 포함해야 하는가.
— 한국은 인구 절벽 앞에 서 있다. 최근 출산율이 반등했다고 하지만 인구 감소를 뒤집기에는 부족하다. 정부는 이민자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민 개방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민 개방은 필요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국경 통제력이다. 정부가 국경을 잘 통제하고 있고, 외지인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에게 분명하게 보여 줘야 한다. 동시에 다문화주의를 맹목적으로 추구하지 않아야 하고, 내국인의 고용률과 생활 수준에도 신경써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갈등과 정치 양극화를 피하면서 이민자를 환영할 수 있다.
—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에 진입하지 않았나?
전체 인구에서 이주민 비율이 5%를 넘은 곳은 다문화 사회라는 이야기가 퍼져 있다. OECD 기준이라고 하는데 근거 없는 이야기다. OECD는 그런 기준을 마련한 적 없다.⑴
애초에 이주민 비율만 보고 ‘다문화’ 사회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도네시아 인구에서 이주민 비율은 1%도 안 된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는 수백 개 민족이 수백 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지만, 기독교, 불교 인구도 상당하다.
이주민 비율로 다문화 사회 기준을 만들면, 오랫동안 다문화 사회였는데 이민자가 적을 뿐인 인도네시아가 탈락해 버린다. 인도와 아프가니스탄도 그렇다.
우리나라 이주민 비중은 2024년에 겨우 5%를 넘겼다. 기본적으로 10%에서 15%를 넘는 유럽 국가에 비하면 한참 적은 수준이다. 전체 숫자만 따지면 이주민 과반이 수도권에서 살고 있지만, 인구 대비 이주민 비율은 수도권 밖으로 갈수록 더 커진다. 지방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국제결혼을 한 부부의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다문화 학생’으로 분류한다.⑵ 실제 얼마나 다른 문화를 갖고 사는지는 전혀 따지지 않는다. 외모 빼고는 일반적인 한국인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해도 부모가 누구인가에 따라 다문화라는 이름표가 붙는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다양한 문화를 품고 있는지 간접적으로라도 보여주는 통계는 이주민을 국적별로 나눈 것 정도다.
나는 한국이 다문화를 겪어 본 적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크교도 군인을 위해 전용 터번 제복을 마련해야 하는지 논의해 본 적 없다. 무슬림을 위해 기도 시간을 근무 시간에 포함해야 하는지도 따져 본 적 없다. 채식주의자를 위해 모든 학교 급식에서 고기를 빼야 하는지도 충분히 대화한 적 없다. 몇몇 학자와 시민단체는 관련 주제로 토론했을지 몰라도, 국가 단위로 충분히 논의한 적은 없다.

어떤 곳이 다문화 사회인지 합의되지 않았지만, 고작 인도, 태국, 중동 음식점이 늘어나고 외국인 유학생과 노동자가 늘어난 것 정도로 다문화 사회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미국은 여전히 다인종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 흔히 미국이 다양한 이민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강해졌다고 이야기한다. 일명 ‘샐러드 볼’, 다문화주의 성공 사례로 미국을 꼽는다.
미국에서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건국 이후부터 1950년대까지 미국은 백인 중심의 엄격한 동화(Assimilation) 정책을 유지했다.⑶
예를 들어 1790년 귀화법은 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백인으로 제한했다. 1924년 이민법은 연간 전체 이민자를 15만 명 정도로 제한하고 국적별로 할당량을 정해뒀다.⑷ 인종, 문화 면에서 유사한 이민자를 받기 위해서였다. 주로 서유럽, 북유럽 사람에게 관대했고, 아시아인과 동유럽인에게 매우 엄격했다. 특히 흑인 유입을 막기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에는 각각 100명 정도만 할당했다.
아시아계 이주민이 시민권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1952년 일이다. 국적별 할당제가 폐지된 것은 1965년에 ‘하트-셀러 법’이 통과된 다음 일이다. 이때도 미국 안에 시민권자 가족이 있거나 기술자, 예술가 위주로 이민을 받았다. 미국이라고 해서 항상 누구에게나 열린 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19~20세기 미국에는 독일인, 폴란드인, 이탈리아인 등 다양한 이민자가 몰려들었는데, 이때 미국의 여러 주는 이민자들을 학교라는 용광로에 녹여버린 다음 미국인으로 주조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예를 들어 이민자 자녀가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애국심과 미국적 가치를 배우도록 의무화했고, 오직 영어로만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했다.⑸
일부 주는 사립학교에도 같은 규제를 적용했다. 이민자들이 사립학교를 세워서 독자적 문화를 유지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이 규제는 연방대법원으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았지만, 당시 미국인의 강경한 동화주의 원칙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이런 동화주의 정책을 보수주의자들만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진보주의 운동이 활발했다. 노동자를 위한 복지 정책, 기회균등을 위한 교육 정책, 국민 건강을 위한 공중보건 정책이 논의되고 자리 잡았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 시기를 ‘진보주의 시대(Progressive Era)’라고도 부른다.

당시 미국 진보주의 핵심 가치는 평등과 다양성이 아니었다. 옛 진보주의자들은 애국심, 사회적 결속, 능력주의 체제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산업화가 초래한 문제에 집단적이고 과학적으로 대응해서, 결속되고 효율적인 미국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들의 ‘미국화(Americanization) 운동’도 과학적 관리를 통한 사회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등장했다.
최근 ‘기독교 내셔널리즘’이 마치 새로운 현상인 것처럼 주목받고 있지만, 미국은 독립 혁명 때부터 백인, 기독교 중심의 내셔널리즘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다. 미국 초대 대법원장 존 제이는 미국인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들은 같은 조상의 후손이며,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종교를 믿으며, 같은 통치 원리를 따르고, 예절과 관습도 아주 비슷하다. (…) 오직 보편적 목표를 위해 우리는 한결같이 하나의 인민으로 존재해 왔다.”
존 제이, 연방주의자 2번⑹

미국 국부들은 미국을 샐러드 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후배 지도자들은 자유롭고 강한 미국을 만들기 위해 다소 강압적인 수단도 서슴지 않았다. 미국인이 이해한 ‘자유’란 어디까지나 도덕, 공공이익 굴레 안에 있는 자유였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결속된 공동체는 결코 모순이 아니었다. 오히려 결속된 공동체는 자유와 진보의 기반으로 통했다.
미국 역사에서 동화주의와 다문화주의 비중을 따지면, 동화주의가 압도적으로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동화주의를 연방정부 혼자 주도한 것도 아니었다. 주 정부, 심지어 헨리 포드 같은 기업인까지, 위아래가 함께 ‘미국인 만들기’에 동참했다.⑺ ‘다문화’라는 단어가 주목받은 것도 어디까지나 1960년대 이후, 베트남 전쟁 등으로 미국적 가치가 의심받기 시작한 시기부터다.
분명 미국의 동화 정책은 인종주의적이었고 지금 관점에서 보면 비과학적 방식이었다. 고스란히 반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엄연히 미국의 실제 모습이었다. ‘샐러드 볼 미국’은 미국사의 마지막 한 챕터를 미국의 원래 모습인 것처럼 확대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여전히 다문화, 다인종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숱하게 일어나는 인종 갈등과 문화 전쟁이 그 증거다. 트럼프와 MAGA는 맥락 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다.
— 유럽에서도 반이민을 내세우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가?
이변이 없다면, 2029년 영국 총선에서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개혁 영국(Reform UK; 혹은 ‘영국 개혁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할 듯하다. 개혁 영국 혼자 지지율 20% 후반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동안 영국 정치를 양분해 온 보수당과 노동당은 각각 10% 중반대로 추락했다.⑻



최근 ‘독일을 위한 대안(AfD)’도 기독교민주연합과 지지율 1위를 다투고 있다.⑼ 여론조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잠시 지지율 1위를 달성한 적도 있다. 특히 옛 동독 지역이 독일을 위한 대안을 전폭 지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급진 우파 정당인 ‘자유당(FPÖ)’이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중도우파 국민당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은 하락세다.
스웨덴에서도 우파 포퓰리즘 정당인 ‘민주당’이 2022년 총선에서 원내 제2당으로 성장했다. 제1당은 여전히 사회민주노동당이지만, 좌파 진영 전반의 의석이 부족해서 우파 진영이 연립 내각을 꾸리게 됐다. 민주당은 내각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지만, 전통적인 우파 정당인 온건당 내각을 지원하면서 지지율 2위를 유지하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우파 포퓰리즘 정부가 진작 집권하고 있었고, 이탈리아도 여기에 합류했다. 프랑스에서는 우파 포퓰리즘과 좌파, 중도 세력이 여론을 3등분하고 있다. 이제 반이민 우파 포퓰리즘은 유럽 정치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너무 많은 사람을 들이면 대가를 치를 것이다.”
— 어떤 사람들이 우파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하는가?
올해 1월, 영국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YouGov)가 사회경제적 지위별 정당 지지율을 발표했다. 여기서 ‘개혁 영국’을 가장 적극 지지한 계층은 저숙련 노동자와 소규모 자영업자였다. 특히 저숙련 노동자의 43%가 개혁 영국을 지지했다. 이름부터 노동자의 정당인 노동당을 지지하는 저숙련 노동자는 13%에 불과했다. 보수당보다 낮은 수치다. 반면 고위 전문직이나 고용주 계층으로 올라가면 개혁 영국 지지율이 20% 미만으로 떨어진다.⑽
유고브 여론조사는 우파 포퓰리스트가 누구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간혹 우파 포퓰리즘을 자본의 분할 통치 전략이나 강자들의 반동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파 포퓰리스트 상당수는 저소득, 저숙련 노동자다. 그중에서도 중노년층 비중이 크다. 남성만 우파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유고브 조사에 따르면, 50대 이후 여성이 가장 많이 지지하는 정당도 개혁 영국이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향수적 박탈감(Nostalgic Deprivation)’이다. 여기서 향수적 박탈감이란, 자신 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의 지위가 과거보다 낮아졌다는 주관적 인식을 말한다. 단순히 지금 내 처지가 나쁘다는 인식이 아니라, ‘과거보다’ 나빠졌다는 인식이 핵심이다. 나,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우리나라가 예전 같지 않아 보일 때 그 사람은 향수적 박탈감을 느낀다.


미국 다트머스 대학의 정치학 부교수, 제레미 퍼워다(Jeremy Ferwerda)와 연구진은 유럽 19개 국가, 약 2만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향수적 박탈감이 포퓰리즘과 어떤 관계인지 분석했다.⑾ 그 결과 좌우 포퓰리즘 지지자 상당수가 향수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점을 발견했다. 향수적 박탈감이 포퓰리즘 성장의 원인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포퓰리스트들이 향수적 박탈감을 공유한다는 점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때 자신의 존재 의미, 사회적 가치가 예전보다 하락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좌파 포퓰리즘을, 경제적 지위와 정치적 영향력을 잃었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우파 포퓰리즘을 지지했다. 실제 영국의 저소득 중노년층과 옛 동독 지역 주민들이 우파 포퓰리스트 정치인을 당선시키는 것을 보면, 상당히 설득력 있는 분석으로 보인다.
과거 유럽 백인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나라의 중심이라고 여길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산업이 옛 산업을 밀어냈고, 경제 전반이 긴 시간 침체됐다. 그런 와중에 이민자와 다문화주의가 확산하면서 익숙한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조차 다른 종교인과 무신론자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그냥 ‘휴일’이라고 불러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상황을 보며, 적지 않은 유럽 백인이 익숙한 세상을 잃었다고 느끼고 있다.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은 그 박탈감을 공략하며 지지율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과거에 좌파 정당을 지지하던 사람들마저 우파 포퓰리스트가 되고 있다. 경제 분야의 좌파 정책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세상을 지키기 위해 우파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수 좌파(Conservative left)’라고 부른다.

— ‘보수 좌파’는 모순된 표현 아닌가?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라는 이분법에서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정치사상에서는 그렇지 않다. 지난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보수주의는 명확한 사상이 아니라 변화를 보는 관점, 특히 익숙한 것을 지키려는 심리를 가리키는 말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을 익숙한 것으로 여기는지, 익숙한 것을 어떻게 지키려 하는지 보수주의자마다 다르다.
정치 성향을 구분할 때 쓰는 ‘보수’는 시장 자유나 전통 수호 같은 의미를 갖고 있을 수 있지만, 정치 사상에서 ‘보수’는 사람이나 정당마다 의미가 다르다. 무엇을 지키는가에 따라, 보수적 자유주의, 보수적 사회주의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 노동당에는 ‘푸른 노동당(Blue Labour)’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⑿ 노동당의 한 계파다. 푸른 노동당은 신자유주의와 중앙집권적 복지국가에 모두 비판적이다. 대신 ‘가족, 신앙, 조국’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노동자가 원하는 것은 시장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지역 단위의 끈끈한 공동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푸른 노동당은 동성혼과 이민 개방, 다문화주의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일종의 보수적 사회주의인 셈이다.
독일에는 ‘사회 정의와 경제적 합리성을 위한 동맹(BSW)’이라는 정당이 있다. 2024년 자라 바겐크네히트 의원이 좌파당 탈당파를 이끌고 조직한 신생 정당이다. 원래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이었는데, 자라 바겐크네히트 의원의 개인 정당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
BSW는 경제 분야에서 사회민주당보다 좌파적이다. 대기업을 더 규제하고, 더 사회주의적 경제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동시에, 성소수자 운동이나 다문화주의에 비판적이다. 이런 정책이 엘리트들만의 관심사이고 노동자를 분열시킨다는 것이다. 푸른 노동당이 그런 것처럼, BSW도 가족과 조국을 굉장히 강조한다. 특히 이민 문제에서는 독일을 위한 대안과 생각이 비슷하다고 평가받는다.⒀
최근에는 유럽의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도 이민 개방만큼은 신중한 태도로 돌아서고 있다. 특히 1871년 조직돼 지금까지 정국을 주도하는 ‘덴마크 사회민주당’은 기존의 통합 정책을 유지하거나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덴마크 이민자는 덴마크인이 많은 유치원에 의무적으로 다녀야 하고, 덴마크어 시험을 반드시 치러야 한다. 공공장소에서는 히잡(Hijab)도 쓸 수 없다. 덴마크는 이민자를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덴마크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자처럼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을 모두 받아줄 수 없다. (…) 너무 많은 사람을 들여보낸 사회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사회민주당 소속⒁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학자들은 과거 이분법만으로는 정치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⒂ 경제 분야에서 좌파적인 사람이 문화 분야에서 보수적인 경우도 관찰되고, 경제 분야에서 우파적인 사람이 문화 분야에서 동성혼 법제화나 이민 개방을 지지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민 통제가 보수적이라는 관점도 지극히 지금 시점에서 본 것이다. 1950년대까지 미국 진보주의자들이 그랬듯, 과거 유럽과 호주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도 이민을 적극 통제하려 했다. 다른 인종을 배제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기업인들이 값싼 해외 노동자를 들여와서 노동권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예를 들어 1940년대까지 호주 노동당은 ‘백호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라 적극 가담하는 입장이었다.⒃
그런 점에서 ‘보수 좌파’ 그 자체는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원래 있었지만 정치 상황이 변하면서 새로운 이름을 받은 것이다.
혐중? 위협적 중국의 패권은 현실이다.
— 주로 진보적인 사람들은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가 이민자 혐오를 키운다고 지적한다.
그런 사람들은 이민자 혐오를 막연한 불안감으로 단정 짓지만 정작 본인들도 허위 정보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보여주고 있다. 같은 사고방식에 다른 재료가 들어가서 다른 결과물이 나왔을 뿐이랄까. 어쩌면, 내 편이 아닌 사람들의 지적 능력을 하찮게 보는 관점이 드러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한국에서도 노골적인 중국 혐오가 확산하고 있다. 중국이 부정 선거나 정보 공작으로 한국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고, 이재명 대통령 등 여러 정치인이 거기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혐중 세력 이야기를 들어보면 근거나 정합성이 부족한 것이 많다.
그런데, 그런 황당한 정보들이 평범한 사람을 혐중 세력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에도 근거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역으로, 이미 중국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혐중 콘텐츠를 쉽게 받아들일 뿐일지도 모른다.

요즘 간혹 꼴 같지 않게 미러링 질 한다고 깝치는 넘들 보이는데, 자본주의보다 더 자원과 인간을 착취하는 중공이 붕괴하지 않을 방법이 없을 거임.
중국 증시 몇조가 증발했다더라? ㅋ” – 00,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갤러리. 2024.02.14에서 인용.
지금은 취리히 대학교에 있는 사샤 알타이 박사는 옥스퍼드 대학교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의 박사후연구원이었다. 주로 허위 정보와 미디어를 연구하는 실험심리학자다. 2023년 사샤 알타이 박사와 동료 연구자들은 ‘허위 정보에 대한 허위 정보’가 퍼져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⒄ 그 가운데 3가지 허위 정보에 대한 허위 정보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첫째, ‘SNS가 정치와 관련한 허위 정보를 실어 나르는 주범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SNS에는 정치와 무관한 정보가 압도적으로 많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기성 언론이 트럼프의 트위터 게시글을 보여주는 경로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SNS가 주목받은 이유는 연구하기 편리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금방 검색할 수 있고 집계할 수 있으니까.
둘째, ‘허위 정보를 믿는 사람이 아주 많다.’
연구자들 조사에 따르면, 허위 정보 확산의 근거로 제시되는 여론조사 상당수에 ‘모르겠음’ 같은 중립적인 선택지가 없거나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이 포함돼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여론조사는 정파적 이익을 위해 일부러 틀린 정보를 고르는 경우를 걸러낼 수 없다.
셋째, ‘허위 정보가 사람들을 움직인다.’
많은 사람이 정보의 양과 그 정보를 믿는 사람의 수를 혼동한다. 정보가 확산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정보를 다 믿는다고 볼 수는 없다. 공유 수는 믿는 사람 수가 아니다. 사람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정보를 흡수하기만 하지 않는다. 일단 의심하고 보는 사람도 많고, 나름 교차 검증을 거치는 사람도 많다.
게다가 사람들은 새 정보를 듣고 판단을 바꾸기보다 이미 판단을 내려놓고 입맛에 맞는 정보를 고르는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해 ‘이재명은 중국 간첩이다’라는 허위 정보는 이재명 대통령을 이미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로 소비된다. 대다수 사람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 게시글을 선뜻 믿지 않는다.

혐중 세력이 100% 거짓말만 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은 상당히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고집하고 있고, 실제 영국에서는 국회의원의 배우자 세 명이 중국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그중에는 여당인 노동당 소속 의원의 배우자도 있었다.⒅ 또 중국은 값싼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해서 외국의 제조업 기반을 흡수해 왔다. 이런 중국의 위협은 해외 주류 언론에서도 다루는 사실이다.
중국처럼 거대하고 역사적 분노로 가득한 나라가 세계 각국의 공존공영을 진심으로 바란다고 믿는 쪽이 더 비합리적이지 않을까.
특정 정치인이 중국 간첩이고 부정선거로 당선됐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한참 부족하지만, 중국이 위협적이라는 이야기는 근거가 차고 넘친다. 혐오를 막겠다면서 그 속에 있는 사실마저 부정해 버리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둘 다 똑같은 거짓말쟁이’로 여길 것이다.
사실 확인에 취약한 것은 정보 홍수와 정치 성향에 빠진 사람의 보편적 특성이지, 우파 포퓰리스트만의 특성이 아니다.
이민자에게 내국인처럼 될 것을 요구하는 이유.
— 앞으로 한국은 어떤 이민 정책을 채택해야 할까?
미국과 유럽이 보여준 것처럼, 무분별한 개방은 혼란을 일으킨다. 외지인에 대한 편견의 배후에는 가짜 정보가 아니라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처럼 개개인이 마음대로 바꾸기 힘든 사고방식이 있다. 외국인 범죄율이 내국인의 절반에 불과하고, 외국인 유입이 결국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정보’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진정시켜 주지 않는다. 원래 불안이라는 감정은 통계를 따르지 않는다.
이민자에 우호적인 정보가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 유입은 고소득층 소득을 높이지만, 저소득층 소득에는 다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⒆ 이민자 덕에 나라의 평균 소득은 증가할 수 있어도, 실제 혜택은 고소득층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낙수 효과와 시장만능주의를 믿는 것이 아니라면, 이민자 유입이 곧바로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애써 이민자에 우호적인 정보만 골라서 편견을 교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단지 자신이 속한 부족을 더 아끼는 부족주의자일 뿐이다.

이민자 혐오를 진정시키면서 이민자를 받으려면, 앞서 이야기한 덴마크식 통합 정책을 응용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강한 통합 정책을 도입해도 지금보다는 이민자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덴마크의 이민자 비율은 한국의 두 배 정도다.
내국인에게 이민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기보다 이민자에게 내국인처럼 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실제로 이민을 받는 절차가 까다로우면, 사람들이 외지인을 더 잘 받아들인다는 연구가 있다.⒇ 국경이 잘 통제된다는 믿음이 외지인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는 이야기다.
간혹 누구나 자신이 살고 싶은 나라를 고를 ‘권리’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권리는 어디에도 없고, 어느 나라도 보장해 줄 수 없다. 남의 집에 마음대로 들어가서 살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민 문제를 실제 효과가 아니라 인권 영역으로 옮겨버리면, 논쟁은 인권 수호자와 침해자의 제로섬 갈등으로 번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발언권을 억압당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민자 혐오만 확산할 것이다.
2025년 거제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들은 하나같이 외국인 쿼터 조정이나 내국인 고용 확대를 공약했다.(21) 민주국가의 정치인이 민심에 민감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미 지방에서는 외국인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민은 일자리와 집, 복지 재정이 얽힌 지극히 현실의 문제다. 모든 차별과 혐오를 없애고 세계시민주의적 평등 사회를 만들겠다는 무모한 이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이 저지른 실수를 우리가 반복해야 할 이유는 없다.
📔 참고문헌
1. 설동훈 전 이민학회장이 말하는 ‘다문화·다인종국가’, 주간조선
2. [단독] 교실 절반이 ‘김빅○○아’…56개 시군구 다문화 초등생 10%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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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Yoosun Park & Michael Reisch, To ‘Elevate, Humanize, Christianize, Americanize’: Social Work, White Supremacy, and the Americanization Movement, 1880–1930, Social Service Review Vol. 96 No. 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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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변광용 후보, 외국인 노동자 확대 중단 및 내국인 채용 확대 공약 발표, 거제뉴스광장
이완은 누구.
-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위기 앞에 혼자 되지 않는 나라를 꿈꾼다.
- 1994년 8월 출생.
- 다이소 등 서비스업에서 5년 동안 일했다.
- 자살 예방과 기회균등, 정치철학을 연구한다.
- 한국 진보, 보수를 분석한 책 ‘좌업좌득’, ‘함께 자유로운 나라’를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