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색다른 진보 2.] 한국 사회의 보수화 경향, 이대남의 불만을 극우 취급하면 답이 없다… 완전 고용과 임금 격차 완화, 지위 불안 해소가 관건.
진영 논리가 판치는 시대, ‘논쟁’이 어렵다. 말, 글로 논하여 다투기보다 SNS에 서로 조롱하고 비아냥대기 바쁘다. 이미 각 부족 입맛에 맞게 답을 정해 놓은 좌우파 지식인은 한 치 이견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토론은 물러나면 죽는 전장일 뿐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 차분한 논쟁이 필요하다. 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에 의해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어떤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토론 테이블에 꺼내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성역화도, 언더도그마도 타파 대상이다.
색다른 관점을 가진 철학자를 소개한다. 독립 연구자 이완(31)이다. 그의 철학과 생각이 정치·사회 논쟁에 작은 불쏘시개가 되길 바란다. 그와 나눈 두 번째 인터뷰 주제는 ‘20대 남성의 극우화’다.
이게 왜 중요한가.
- 극우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우파 가운데 극단적 위치에 있는 이들을 뜻한다. 하지만 기준은 모호하다.
- 일례로 지난 대선 직후 시사IN이 실시한 조사 데이터를 놓고 김창환(미 캔자스 대학 사회학과 교수)은 “2030 남성의 극우화는 실제 존재하며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고, 반면 국승민(미 미시간 주립대학 정치학과 교수)은 20대 남성이 보수적인 건 맞지만 극우화됐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고 했다. 같은 데이터를 두고 다른 결론이 나왔다. ‘극우’의 정의가 달랐기 때문이다.
- 20대 남성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은 ‘반(反) 민주당’ 성향이다. 여권 지지층에서 ‘이대남은 극우’라는 프레임이 강고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시민·이동형 등 여권의 유력 인플루언서들은 노골적으로 이대남을 비난하거나 공격한다.
- ‘20대 남성 극우화’는 실재하는 현상인가. 젊은 극우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완과 이야기했다.

서부지법 폭동은 ‘맥주홀 반란’의 시작?
— ‘20대 남자 극우화’가 이야기 주제다. 올 1월 당시 대통령 윤석열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그 지지자들이 서부지법을 때려부쉈다. ‘서부지법 난동범 86명 중 남성이 77명이고, 그 가운데 52%는 2030세대’라는 보도도 있었다. 서부지법 폭동은 ‘이대남 극우화’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꼽힌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은 서부지법 폭동을 보며 독일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1923년 11월 밤 뮌헨의 한 맥주홀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천장을 향해 권총을 쐈다. 맥주홀 안팎에서는 돌격대(SA)가 소총과 기관총을 들고 군중을 위협했다. 그 자리엔 바이에른 주지사와 지역 경찰 관료 등 바이에른 주의 유력자도 있었다. 연단을 차지한 히틀러는 민족 혁명을 선언하고, 유력자들에게도 협력을 강요했다. 흔히 말하는 ‘맥주홀 반란’의 시작이다.
맥주홀 반란은 하루 만에 와해됐다. 주지사와 몇몇 유력자가 맥주홀을 탈출해 군과 경찰을 움직인 결과였다. 히틀러 지지자 십수 명이 사망했고, 히틀러는 수감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무명의 히틀러는 강경 우파의 지도자급 인물로 떠올랐다. 이때 히틀러 나이는 겨우 34세였다. 초기 당원인 그레고르 슈트라서(Gregor Strasser), 반란 이후 입당한 요제프 괴벨스 등 1920년대 주요 나치당 활동가도 20~30대 청년이었다. 나치당은 청년 극우가 이끄는 정당이었던 셈이다.
2025년 1월 19일 새벽 친윤 폭도들은 윤석열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창문에 소화기를 던지고, 정문을 부쉈다. 법원을 점거한 폭도들은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잡으려 했다. 오전 6시 즈음 경찰이 폭동을 진압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유튜버 몇 명이 한남동 시위대를 따라다니며 법원 습격 장면을 생중계했다. 그 장면에서 폭력적 행동을 보인 것은 주로 젊은 남성이었다. 집회가 한창일 때 한남동에 모인 사람 중에서도 20~30대 남성이 17% 정도 차지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 사실을 두고, 여러 진보 논객이 ‘청년 남성 극우화’를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12·3 반란 전에도 청년 남성 극우화를 걱정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여러 청년 남성이 극우 집회에 참여하며 폭동까지 일으킨 것은 서부지법 사건이 처음이었다.
‘30대 초반 히틀러와 동지들이 맥주홀을 습격한 것처럼 한국 청년 남성이 극우화되어 체제를 흔든다.’ 진지하게 이렇게 믿는 사람이 많다. 적지 않은 청년 남성이 친윤, 반중 집회에 자주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 집권기부터 청년 남성이 우파 후보의 주 지지층처럼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모든 사건이 청년 남성 극우화를 지지하는 증거일까. 한국 청년 남성은 다른 세대에 비해 특별히 우경화됐을까. 청년 남성 극우는 분명 있다.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진지하게 믿는 청년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청년 남성 전반이 극우화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극우라는 말이 너무 남용되고 있다.”
“‘극우’ 용어, 상대 배제하기 위한 낙인으로 사용.”
— ‘극우’ 단어가 너무 쉽게 나오는 것도 문제다. 극우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
“극단적인 우파라는 평가 자체가 합리성, 도덕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어감을 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극우라고 부를 때는 신중해야 한다. 정치적 대화에서 아무나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여러 좌파가 상대를 문제의 원인으로 묘사하기 위해 극우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불법 점거를 비판하면 극우이고, 사회 통합을 위해 이민자 수 조절을 주장하면 극우라는 식이다. 극우는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한 낙인으로 사용되고 있다.
누가 극우인지 따지려면 먼저 좌파와 우파부터 나눠야 한다. 좌파가 없으면 우파도 없고, 우파가 없으면 극우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쉽지 않다.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능에 익숙한 나라라서 그런지, 적지 않은 사람이 ‘좌파는 평등, 우파는 자유’ 같은 하나의 정답을 기대한다. 하지만 말의 의미는 시간과 장소, 사용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 중 어느 하나만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정치 사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정치 사상을 다룬 책을 읽다 보면 하나의 정의를 찾지 못했다는 고백을 반드시 접할 수 있다.
‘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내용이 엄청나게 달라지는 보수주의라는 이 복잡한 현상을, 단일하고 만족스럽게 규정할 수 있는 포괄적인 정의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보수주의는 선천적으로 엄밀한 정의를 거부한다는 말은 사실일지 모른다.’(조지 H. 내쉬, 하버드대학교 역사학자)⑴
‘이론적 논의에서 사회민주주의의 개념은 다양하게 사용된다. 하나로 통일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사회민주주의의 기초)⑵
좌파와 우파도 그렇다. 누군가를 좌파나 우파로 부르는 것은 한국인을 아시아인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분명 아시아인은 북유럽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과 많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인과 아랍인, 인도인과 일본인을 한 집단으로 묶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좌파와 우파 사이에 차이가 없지는 않지만, 두 단어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 공존하던 생각을 느슨하게 묶어주는 말에 가깝다. 실제로 히틀러가 유명해지기 전, 독일에서는 사회민주주의자가 공산주의 혁명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자가 아나키스트를 학살했다. 좌파라고 해서 한 덩어리가 아닌 셈이다.”
하나의 잣대로 좌파 우파? “현실 담아낼 수 없어.”
— 극우를 정의하기 위해선 결국 좌우 개념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것인데, 좌우를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은 있을 것 같다.
“좌우 개념을 다룰 때 자주 인용되는 이탈리아 정치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좌파와 우파에 불변하는 본질은 없다고 봤다. 보비오는 좌우가 주로 ‘평등에 대한 상대적 태도’에 따라 나뉘는 스펙트럼이며, 이것이 역사 속에서 관찰되는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강조했다.⑶
이런 보비오의 이론조차 복잡한 현실을 담아내기엔 너무 단순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우선 무엇의 평등인가에 따라 사람들 생각이 너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국유화와 재분배를 바라지만 전통 문화와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는 사람, 소득 불평등을 옹호하는 동시에 국경 개방과 동성혼을 지지하는 사람 등등…. 평등에 대한 태도만으로 구분할 수 없는 사례가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독일 우파 상징과도 같은 인물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 수상은 민주화와 자유화로부터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권위주의 질서와 독일의 개신교 문화를 지키는 데 목숨을 걸었지만, 이를 위해서는 제국이 더 많은 사회주의 정책으로 노동자의 충성심을 높여야 한다고 믿었다. 비스마르크가 ‘실제로’ 구상한 복지 제도는 노동자에게 많은 보험료를 걷으며 기여한 만큼 보장하는 복지 체계가 아니었다. 국가는 사적 보험을 배제하고, 무상에 가깝게 공적 연금과 재해 보험을 권리로 제공해야 했다. 그 비용은 국가와 자본가가 분담하게 할 계획이었다.⑷
반대로 서구 좌파 중에는 민족주의를 앞세우거나, 국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민 억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값싼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가 자유롭게 들어오게 놔두면, 자본가에게만 이득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원래 최저임금도 미국과 영국에서 값싼 노동력을 배제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였다.⑸ 다시 말해, 좌파 중에는 자국민 간의 평등을 적극 옹호하면서도, 외국인에 대해서는 모호하거나 적대적인 경우가 많았다.
‘인류 형제애의 원칙도, 사회적 평등의 원칙도 형제 민족이나 형제 인간이 우리의 환대를 악용하고, 우리의 제도를 전복하거나 우리의 관습을 위반할 정도로 많은 수로 우리에게 몰려들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브루스 글레지어, 영국 독립노동당 의장, 1904년.)⑹
시대와 국가에 따라 좌파와 우파의 구체적 내용은 달라진다.”
—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는 개념이래도 우리는 끊임없이 좌우를 구분하여 생활하고 있다.
“좌파와 우파 개념을 버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산과 언덕의 경계, 영해와 공해의 경계에도 변하지 않는 정답 따위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둘을 잘 구분하며 산다. 하나의 정답 같은 의미가 없더라도, 당장 유용한 의미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말의 의미는 그 말이 특정 맥락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달렸다. 이 점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서로 너무 다른 사람들을 단순히 극우로 묶어서 배제하려는 시도다.
‘어떤 정치적 명칭의 궁극적인 의미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 명칭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사용되고 활동가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다.’(케빈 페스모어)⑺
보비오의 평등-불평등 스펙트럼만 활용할 수는 없다. 줄 하나 위에 모두를 올려놓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최소한 경제 영역과 문화 영역은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경제에서는 좌파, 문화에서는 우파, 또는 그 반대도 가능하다. 실제로 진보적 우파, 보수적 좌파라는 개념도 오래 전부터 있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잣대만으로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하지 않다.
경제 영역에서 좌파는 소득 분배 문제에 더 엄격하고 더 많은 정부 개입을 지지한다. 일반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좌파라고 불린다. 반면 상대적으로 더 큰 소득 격차도 받아들일 수 있고 더 적은 정부 개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흔히 우파로 분류된다. 이분법이 아니다. 스펙트럼이다.”

경제적 우경화는 모든 세대에서 관찰된다.
— 그래서 한국 청년 남성은 좌파인가? 우파인가? 그 이야기를 해보자.
“직접 여론을 조사하지는 못해서, 구체적 좌우 비중을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간접적 단서는 몇 가지 찾았다. 가난의 원인으로 환경보다 개인을 지목하는 사람은 좌파의 경제 정책에 찬성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⑻ 한국 갤럽에 따르면, 2014년에는 20대 43%가 가난의 원인으로 환경을 지목했고, 32%가 개인의 노력을 지목했다. 그런데 2023년에는 20대 32% 환경을, 36%가 개인의 노력을 가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30대 흐름도 비슷하다.⑼ 청년들이 경제 영역에서 다소 오른쪽으로 움직인 듯하다. (여론조사 표본에서 남녀 비중은 5대 5에 가까웠다.)
하지만 청년만 그런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세대에서 개인의 노력을 지목하는 비중이 늘었다. 따라서 청년만 우경화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경제적 우경화는 모든 세대에서 관찰된다. 그러니 이재명 정부도 금융투자소득세를 포기하고 상속세 완화까지 꺼내든 것 아닐까. 장애인이나 극빈층을 위한 재분배에는 찬성하더라도, 그 이상을 위한 경제 개입에는 머뭇거리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문화 영역에서는 이민자 문제가 핵심 쟁점이다. 과거에는 자국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좌파가 이민을 규제하고, 값싼 노동력을 원하는 우파가 이민자를 반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는 ‘국경 문턱을 낮추자’고 하면 좌파, ‘장벽을 높이자’고 하면 우파로 통한다.
2024년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20대와 30대 청년은 60대 이상 노년층에 비해 이민 수용에 더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성별까지 따지면 복잡해진다. 아쉽게도 청년 남성과 노년 남성을 직접 비교한 세부 수치는 없었지만, 전체 연령대를 통틀어 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이민에 대해 더 개방적 태도를 보였다.⑽ 청년 세대가 비교적 우파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리서치 자료만으로는 정확히 청년 남성이 우파적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2030 남성은 정말 ‘성차별적 안티 페미니스트’인가.
— 2030 남성의 정치적 성향을 이야기할 때 이제 더 이상 페미니즘을 빼놓을 수는 없다.
“여성 문제도 빠질 수 없다. 페미니즘과 안티 페미니즘 갈등은 우리나라 정치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중요했다. 그리고 2030 남성은 ‘성차별적인 안티 페미니스트’로 일반화돼 왔다. 하지만 2022년에 이뤄진 한 연구에 따르면, 2030 남성은 다른 세대에 비해 특별히 더 성차별적이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는 중년과 노년 남성이 청년 남성보다 더 성차별적이었다.⑾ 인터넷에서는 사람 수가 아니라 클릭 수가 여론을 주도하는 만큼, 소수의 안티 페미니스트가 과다 대표됐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12·3 반란에 대해서도 청년 다수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남성 76%와 여성 75%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고, 20대 86%, 30대 82%도 그랬다. 탄핵에 가장 적극 반대한 것은 노년층이었다.⑿ 흔히 극단주의자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은 법치주의와 의회주의에 반대하고 폭력을 문제 해결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 폭력은 대중의 직접 행동일 수도 있고, 하나의 정당이나 지도자에게 집중된 권력일 수도 있다. 따라서 12·3 반란에 대한 태도는 극우의 기준이 될 법한데, 청년 남성이 특별히 반란을 환영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 청년 세대 우경화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경향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청년 세대만 우경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리하자면 청년 남성 상당수는 경제와 문화 양쪽에서 상대적 우파다. 그러나 청년 남성만 유독 우경화됐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른 세대 남성도 딱히 다르지 않다. 인터넷과 언론은 모든 청년이 아니라 극히 일부 청년만 보여주는 만큼, 젊은 남성이 법원 창문에 소화기를 던지는 장면이나 온라인 댓글을 청년 남성 극우화 증거로 쓸 수는 없는 것 같다.
동덕여대 남녀공학 논란이 한창일 때 수많은 동덕여대 학생들이 학생 자치와 여성 안전을 외치며 학교 곳곳을 훼손하고 교수를 모욕했다. 그 모습을 보고 2030 여성의 극좌화를 걱정하지는 않는다. 혜화역 페미니스트 시위에서도 청년 여성 다수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시위 구호를 외치며 과격하게 행동했지만, 청년 여성 좌경화를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청년 남성 극우화는 다소 편향된 걱정일 수도 있는 셈이다.
물론 2030 남성이 여성 할당제 등 여성 권리를 위한 정책에 더 많이 반대하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2030 남성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도 적극 반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경제 영역에서 2030 남성이 특별히 우파적인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중년 남성에게 복지 강화를 위해 근로소득세를 인상하자고 하면 과연 얼마나 찬성할까. 어떤 통계를 봐도 우리나라 근로소득세는 매우 낮은 편이지만 어느 정권도 고소득층이 아닌 중위소득층의 근로소득세를 인상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일자리를 가진 중년과 일자리도 없는 청년은 다른 방향으로 우파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여성과 중년층으로부터 압도적으로 지지 받는 민주당은 왜 금융투자소득세를 포기했을까. 정말 2030 남성이 조세 개혁을 꺾은 주범일까.”

‘잠재적 가해자’ 낙인, 청년 배제한 민주당.
— 청년 남성이 특별히 우파적이지 않다고 했는데, 투표에서는 다른 세대에 비해 ‘반(反) 민주당’ 성향이 도드라진다. 이를 이유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대남’을 극우라고 공격하기도 하는데?
“민주당이 먼저 청년 남성을 정치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이다. 청년 세대는 남녀 가릴 것 없이 침몰하는 배에 올라타 있는 상황이다. 여성이 조금 더 불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지만, 남성이라고 해서 눈에 띄게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높은 사교육비, 통계에 다 드러나지도 않는 건강 격차, 어릴 때부터 겪은 폭력과 빈곤감은 물려받을 것 없는 청년 남녀 모두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청년의 정신질환, 자살이 많은 것은 그 증상이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과 좌파 정당은 여성을 너무 강조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산점을 주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낮은 합격 기준을 적용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할당해 줬다. 심지어 성폭력 무고 사건이 일어나도 여성만 보호하기에 바빴다. 무고 탓에 일자리를 잃거나 자살하는 경우가 나타나도 누구도 챙기지 않았다. 한 공공기관은 남성에게 잠재적 가해자라는 시선을 시민적 의무감으로 견딜 것을 요구했다. 사실상 남성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보호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 없었다.
상황이 어려울 때는 값싸고 즉각적인 쾌락이라도 즐기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 민주당과 좌파 정당은 정치적 올바름을 앞세워서 게임과 성인물을 규제하려 했다. 물론 징집병의 기본권을 개선하기는 했지만 이미 병역 의무를 다하다가 상처 받은 청년 남성에게는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 기회는 불평등했다. 과정은 불공정했다. 결과는 불의했다. 민주당과 좌파 정당은 박탈감과 빈곤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부당한 인내까지 강요했다.
그런 정당을, 청년 남성이 대체 왜 지지해야 할까. 물론 그럼에도 민주당과 좌파 정당을 지지하는 청년 남성이 적지 않지만, 청년 남성 다수가 우파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원망할 자격은 없어 보인다.”
— 정치적으로 배제된 청년층이 앞서 언급한 ‘맥주홀 반란’의 주역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서부지법 폭동 같은 사태는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진짜 극우화’를 막으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이미 청년 극우가 없지는 않다. 의회주의와 법치주의를 가볍게 여기고 폭력으로 상대를 절멸시키고 싶어하는 청년이 없을 수 없다. 지금 특정 성별과 세대 ‘전반’이 극우화됐다고 말하기 어려울 뿐, 앞으로 맥주홀 반란 같은 정말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나치당 지도자들이 주로 젊은 남성이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청년 남성 사이에 극우가 확산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지위에 민감하다. 남성은 좀 더 민감할 수 있다. 만약 지위가 낮아졌다고 느끼면, 사람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회적 동물에게 낮은 지위란 갑질과 사회적 배제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핵심 신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제 지위는 중요하지 않다. 지위 경쟁은 언제나 상대평가다. 내 주변 사람, 현실에서든 인터넷에서든 자주 마주치는 사람에 비해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하다.⒀
그래서 강남에 자가를 가진 사람도 지위 불안을 느끼며 살 수 있다. 최소 10억을 가진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지역에서는 10억을 가진 사람이 제일 가난하기 때문이다. 지위 불안은 과소비나 폭력적 행동, 갑질의 원인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자기 지위가 낮다고 느끼는 사람은 지위를 부풀리려 하는데, 가장 흔한 방법이 무리해서라도 명품으로 꾸미고 주변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위 경쟁 자체를 없애고 완전히 평탄한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어디에서도 성공한 적 없고, 성공하리라고 볼 이유도 없다. 다만 과열된 경쟁을 식히고 보다 질서 있게 다시 조직할 수는 있어 보인다. 사람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자기 지위를 지키고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지위 경쟁 자체는 생물학 단계의 욕구다. 하지만 지위를 겨루는 방법은 문화적 문제, 다시 말해 사회적 조건에 달린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기회의 재분배’ 위해, 교육비 극적으로 낮춰야.
— 청년 남성들의 지위 불안, 상대적 박탈감이 확산되면, 더 폭력적으로 극단주의가 확산될 것이라 보는가?
“스트레스 연구의 권위자 로버트 새폴스키에 따르면, 테스토스테론은 흔히 말하는 남성성이 아니라 지위 상승을 촉진하는 호르몬이다.⒁ 만약 사회가 자비로움에 비례해 지위를 나눈다면,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나오는 사람은 더더욱 자비로워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기존 남성성을 자연스러운 것, 좋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조직 폭력배를 주인공으로 삼거나 미화하는 콘텐츠는 극장가를 떠난 적이 없다. 온라인에서는 테토남(테스토스테론이 많아 보이는 남자)을 멋있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 남성 사이에 지위 불안, 상대적 박탈감이 더 확산한다면, 테스토스테론은 지위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고를 것이다. 묻지마 폭행과 살인의 범인이 주로 남성인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관대하지 않다. 부장은 대리에게, 대리는 인턴에게, 대기업 직원은 하청 직원에게, 하청 직원은 카페 알바에게 갑질을 한다. 상대적 지위에 따라 기회나 안전, 심지어 법적인 보호까지 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청년 상당수가 지위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부유한 부모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일자리를 잃거나 얻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는 질문에 대해, 한국 청년은 미국이나 독일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그렇다’고 답했다.⒂
여기가 극단주의가 자라는 곳이다. 갑질을 더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은 물론, 훨씬 더 엄격하게 기회를 재분배해야 한다. 산모와 아동이 빈곤감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하고, 청소년이 무상으로 정신 건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하고,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극적으로 낮춰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완전 고용과 임금 격차 완화다. 무시 당하지 않으며 먹고살 기회가 있어야 사교육 경쟁도 지위 불안도 누그러질 것이다.
극우를 예방하고 싶다면, 아직 완전히 돌아서지 않은 사람들까지 극우로 묶어서 비난하기 전에 개혁부터 이뤄내야 한다. 무분별한 극우 개념 남용은 개혁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우리가 국민에게 개혁을 주지 않으면, 국민이 우리에게 혁명을 줄 것이다.’(퀀틴 호그, 영국 보수당 정치인.)”
- 조지 H. 내쉬, 1945년 이후 미국 보수주의의 지적 운동, 서세동 옮김, 회화나무, 2022.
- 토비아스 곰베르트 등, 사회민주주의의 기초, 한상익 옮김, 한울아카데미, 2012.
- 노르베르토 보비오, 제3의 길은 가능한가, 박순열 옮김, 새물결,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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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은 누구.
- 1994년 8월 출생.
- 다이소 등 서비스업에서 5년 동안 일했다.
- 자살 예방과 기회 균등, 정치철학을 연구한다.
- 한국 진보, 보수를 분석한 책 ‘좌업좌득’, ‘함께 자유로운 나라’를 썼다.
-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위기 앞에 혼자 되지 않는 나라를 꿈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