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색다른 진보 3.] 이준석의 능력주의는 무엇이 문제인가. 진짜 능력주의? ‘재능+공적 헌신’ 필요…돈 아끼는 정부로는 능력주의 충분히 실현할 수 없어…능력주의는 경제적 지대와 공존할 수 없다. 경제적 지대 사회화, 불평등에 적극 개입하는 정부가 필요하다. (⏰22분)
진영 논리가 판치는 시대, ‘논쟁’이 어렵다. 말, 글로 논하여 다투기보다 SNS에 서로 조롱하고 비아냥대기 바쁘다. 이미 각 부족 입맛에 맞게 답을 정해 놓은 좌우파 지식인은 한 치 이견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토론은 물러나면 죽는 전장일 뿐이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 차분한 논쟁이 필요하다. 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에 의해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 어떤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토론 테이블에 꺼내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성역화도, 언더도그마도 타파 대상이다.
색다른 관점을 가진 철학자를 소개한다. 독립 연구자 이완(31)이다. 그의 철학과 생각이 정치·사회 논쟁에 작은 불쏘시개가 되길 바란다. 그와 나눈 세 번째 인터뷰 주제는 ‘능력주의’(메리토크라시, Meritocracy)다.
🍀 이완의 색다른 진보
1. 위험하니까 새벽배송 없애자? 진보는 위험을 통제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2. ‘이대남 극우화’보다 먼저 걱정해야 할 것, 정치적 배제.

이게 왜 중요한가.
- 한국 진보파는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재생산한다’고 비판한다. 능력주의를 엘리트 독점 이데올로기로 해석한다. 이들에게 능력주의는 해로운 것이다.
- 반면, 보수파는 공정한 경쟁과 계층 이동 원리로 파악한다. 능력주의를 기치로 걸고 체급을 높여온 이준석(개혁신당 대표)은 학창 시절 “오직 공부로 서열이 매겨진 무한 경쟁”을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고 회고할 정도로 시험 점수와 성적을 강조한다.
- 이완은 메리트(Merit, 능력과 노력으로 입증된 업적)의 본래 뜻은 ‘도덕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자격’이라고 했다. 그래서 초기 능력주의자들은 출생과 신분을 뛰어넘어 공익에 헌신할 탁월한 인물을 발견해야 한다고 믿었고, 사람 재능과 덕성을 발견하거나 육성하기 위해 ‘교육’에 굉장한 관심을 기울였다.
- 이완은 “시험 특권주의는 과도한 지위 격차, 부러진 사다리, 요원한 기회 균등이 불러온 사회적 염증”이라며 “우리에게는 더 강한 능력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래적 의미의 능력주의를 회복할 국가적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존 진보파에선 찾을 수 없는 새로운 관점이다. 이완 생각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이준석의 능력주의, 닭고기 없는 닭강정.”
— 이준석의 ‘능력주의’는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이준석 대표의 능력주의는 진짜 닭고기가 10%도 들어있지 않은 닭강정이다. 이 대표는 항상 공정한 경쟁과 능력에 따른 분배를 강조해 왔다. 그런데 내용을 뜯어보면 학교에서 수학을 더 많이 가르치고 청년에게 저이자로 대출해 주는 등 소극적 정책만 제안하고 있다.
고작 그런 정책이 낮은 사회적 이동성과 기회 불균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돈을 아끼는 정부는 능력주의를 충분히 실현할 수 없다.
물론 단어를 독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으니 그 정도 기조를 능력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말릴 수는 없다. 역사 속 능력주의자들도 서로 생각이 많이 달랐고, 미국와 유럽의 보수 정치인도 시험으로 머리 좋은 사람을 가려내고 할당제를 폐지하는 것 정도를 능력주의라고 부른다.
다만 그런 능력주의는 수많은 능력주의자들이 서 있는 스펙트럼에서 매우 약한 쪽에 속한다. 능력주의 기본은 출생이나 부모 재산 수준이 아니라 각자 자격에 따라 자리와 소득을 나누는 것이다. 이준석식 능력주의는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더 강한 능력주의가 필요하다.”

— 이준석이 정당서 구현한 능력주의 대표 사례로 ‘대변인 선발 위한 토론 배틀’,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 등을 들 수 있다. 신선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런 경쟁은 필요한 면이 있지 않은가?
“선출 정치인의 토론 실력을 검증하는 자리는 필요하다.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의원과 정당 대변인도 논리적으로 말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주의는 칼이 아니라 말로 다투는 정치 질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당 정치가 당 내 평판이나 활동 기록을 외면하고 인맥, 인지도 위주로 후보를 물색해 왔으니 이준석의 오디션 정치, 토론 배틀이 새로워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엄격한 능력주의자 관점에서 토론 배틀만으로 능력주의를 도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토론 배틀은 그 사람의 지식 수준이나 도덕성을 다 보여주지 못한다. 공공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아니라 멀끔한 외모에 목소리 좋고, 사기꾼처럼 말을 잘 꾸미는 사람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짝짓기 예능이 학교 폭력 주동자 같은 범죄자를 걸러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장 그 토론 배틀에서 1, 2위를 한 사람 중 지금까지 대중적으로 사랑받으며 나라를 좋은 방향으로 이끈 사례가 있는지 모르겠다. 지식 수준과 도덕성을 모두 의심받는 사례가 더 많지 않았던가.
근본적으로 토론 배틀은 아무리 잘 설계해 봐야 참가할 자격과 평가 잣대만 공정하게 맞출 수 있을 뿐이다. 보다 엄격한 의미의 기회 균등, 즉 능력을 기를 기회까지 균등하게 보장하지는 않는다. 참가 자격은 모두에게 똑같이 열어주더라도 참가 준비까지 돕지는 않는 셈이다. 출발선 차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경쟁은 딱히 능력주의적이지 않다.
능력주의는 공개 경쟁, 그 이상을 요구한다. 물론 정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토론 배틀이나 *PPAT*라도 도입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대표의 총선, 대선 공약을 살펴보면, 과연 공개 경쟁 이상의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 PPAT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People Power Aptitude Test). 이준석 대표 시절 국민의힘이 도입한 공천 개혁 제도. 당헌, 당규, 공직선거법, 정책 현안 등을 시험 평가로 만들어 후보자 기본 자질을 검증하는 데 목적이 있다.

고대 철학자들 “유능+유덕한 사람이 관직 맡아야.”
— ‘능력주의’의 원래 의미가 궁금하다.
“사실 능력주의는 혼란스러운 단어다. 자유주의나 보수주의, 사회주의도 그렇지만, 하나의 생각이 아니라 여러 생각이 포함된 스펙트럼에 가깝다. 게다가 능력주의의 경우 오래된 생각에 붙은 새로운 이름인 데다가 다소 오해를 부르는 번역어라는 점에서 더 혼란스럽다.
능력주의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의 번역어다. 메리토크라시 단어 자체는 1950년대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⑴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은 노동당이 이끌고 있었다. 노동당의 주요 싱크탱크였던 페이비언 협회는 평준화가 아니라 메리트에 따른 지위 배분을 핵심 가치로 여겼다. 부모 지위나 재산 수준이 아니라 각자 재능과 공적 헌신에 따라 지위를 나눠 정부 기구의 효율성과 공공 이익을 극대화하는 나라, 그런 능력주의적 전문가 통치를 실현하는 것이 영국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의 오랜 목표였다.⑵

실제 영국 노동당은 엘리트 육성 교육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보수당과 노동당이 연립 정부를 꾸리고 있을 때 영국에서는 11세 아이들에게 여러 시험을 보게 해서 그 결과에 따라 일반 학교, 기술 학교, 문법 학교(엘리트 학교)로 나눠 진학하게 하는 정책이 자리잡았다. 종전 후에 단독 집권한 노동당 정부는 이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 안에서는 지지하는 분위기도 있었다.⑶
소수 당원들은 사회 통합을 위해 모든 아이를 성적과 상관 없이 같은 학교에 보낼 것을 요구했지만 노동당 내각과 주요 정치인은 교육 지원을 확대해서 가난한 집 아이도 명문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하는 데 집중했다.
일부 노동당 지식인은 이런 시스템이 초래할 나쁜 결과를 경고하려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다. 마이클 영은 당시 유행하던 ‘능력에 따른 선발’이 유능한 자들에 의해 지배 받는, 또 다른 계급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계급 사회를 지칭하는 말로 메리토크라시(능력에 의한 지배)를 고른 것이다.⑷
다시 말해 메리트(Merit)에 따른 선발 원칙 자체는 메리토크라시라는 단어보다 먼저 있었고, 메리토크라시는 그 원칙이 초래할 디스토피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영의 의도와 다르게 메리토크라시는 메리트에 따른 분배 원칙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엘리트가 지배하는 미래를 경고하려던 의도는 사라지고, 세습 특권에 맞서서 메리트에 따른 분배를 실현하자는 생각을 가리키는, 긍정적 표현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렇게 우리나라까지 흘러 들어와 ‘능력주의’가 된 것이다.”
— 능력과 노력으로 입증된 업적을 뜻하는 ‘메리트’(Merit)가 도덕·윤리 의미를 담고 있다고 들었다. 도덕적 유능함을 뜻했다는데?
“그렇다. ‘능력주의’라는 번역어 때문에 혼동한다. 우리 일상에서 ‘능력’이라는 말은 시험 점수를 잘 받거나 돈을 잘 버는 등 단순히 무언가를 잘하는 힘, 아니면 타고난 재능을 가리킬 때가 많다.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옳은 것을 선택한 사람에게 ‘너 능력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반면 타인의 고통이나 공공 이익에 무관심하더라도 서울대에 입학해 좋은 기업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능력 있다고 말해 준다. 즉, 우리말 ‘능력’은 도덕성이나 공공 이익과 무관할 때가 많다.
그래서 ‘능력주의’라고 하면 도덕성과 상관 없이 오직 시험이나 시장경제에서 얻은 실적만 따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 시험 잘 본 사람에게 좋은 학위와 좋은 일자리를 주는 것이 능력주의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 마이클 영이 메리트를 ‘지능(IQ)+노력’으로만 정의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⑸
원래 메리트는 좋은 머리만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메리트(Merit)라는 단어 자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공적이나 가치, 마땅히 보상받을 만한 자격(Desert)을 가리키는 폭넓은 말이기 때문에, 맥락에 따라서 굉장히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 합의된 의미는 없다.⑹ 다만 역사 속 능력주의자, 다시 말해 세습 특권을 비판하고 더 나은 사람에게 높은 지위와 많은 권력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메리트를 도덕성과 분리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 체제(정체)를, 한 공동체 안에서 어떤 사람이 무엇을 위해 통치하는가를 규정하는 질서로 정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이라는 목적에 맞는 정치 체제를 구상했고, 그 핵심에는 악시아(Axia, 가치·자격)에 따라 관직과 명예를 분배하는 원칙이 있었다. 이 악시아가 메리트와 유사한 말이다. 이때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정당한 악시아 기준은 실천적 지혜와 도덕성이 결합한 정치적 덕(virtue)이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순히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 유능한 동시에 유덕한 사람에게 높은 관직을 맡겨야 한다고 여겼다.⑺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플라톤은 사유 재산과 가족에 대한 사랑까지 포기하는 것을 통치자의 핵심 자질로 판단했다. 플라톤식 ‘메리트에 따른 지위 배분’에서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사심 없이 탁월함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⑻ 플라톤은 그런 뛰어난 사람을 찾기 위해 평민과 여성을 포함한 모든 시민에게 교육받을 기회를 열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누가 얼마나 탁월한지 한 눈에 알아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훗날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도 플라톤을 인용하며 나라를 이끌 이상적인 전문가 집단을 묘사했다.”

美 국부들이 ‘장자상속제’를 구습이라 비판한 이유.
— 능력을 이야기할 때 재능뿐 아니라 ‘덕성’을 빠뜨리지 않았다는 것인데, 고대에만 그런 것인가?
“고대 그리스–로마 전통에 깊게 영향받은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도 혈통, 출생 같은 우연한 요소가 아니라 메리트에 따라 지위와 관직을 나누는 공화국을 창조하려 했다. 이때 미국 건국 아버지들이 생각한 ‘메리트 있는 사람’이란 시험 문제만 잘 푸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재능과 덕성’(talents and virtues)을 모두 갖춘 사람을 의미했다. 미국과 영향을 주고받은 프랑스도 구체제가 무너진 뒤로 ‘재능과 덕성’이라는 문구를 즐겨 사용했다. 여기서 덕성은 공공 이익을 생각하는 마음과 예의바름 등을 가리켰고, 재능은 공부하는 머리뿐만 아니라 우아하게 걷는 자세 등 당시에 타고나는 것으로 간주되던 다양한 능력을 가리켰다.⑼
모든 시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므로, 그 법의 관점에서 동등하게 모든 공직, 직위, 그리고 공적 직무에 임용될 수 있으며, 그 기준은 각자의 능력에 따르되 덕성과 재능 외의 다른 구별은 두지 않는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1789.

— 현대에도 메리트와 도덕을 연결시키는 학자들이 있나?
“2023년 스페인 철학자 세르히오 클라베로 가르시아는 메리트를 이렇게 정의했다. 메리트 있는 행동이란 개인이 스스로 선택했고, 달성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선(Good)을 지향하는 행동이다. 다시 말해 남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거나, 편한 일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메리트가 없다. 클라베로 가르시아가 말하는 메리트란 단순한 성취나 재능과 엄격히 구분되는, 사회적으로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가리킨다.⑽
능력주의를 적극 지지하는 미국 철학자 토마스 멀리건도 다른 맥락에서 능력주의와 도덕성을 강하게 연관 지어 설명한다. 멀리건 교수 비유를 빌리자면 이렇다. 어떤 화가가 뛰어난 그림 실력을 자랑하는데 하필 히틀러다. 그렇다면 능력주의 사회는 그 화가에게 일자리를 줘서는 안 된다. 여기서 멀리건 교수는 메리트와 디저트(Desert 응분, 마땅함)를 구분한다.
멀리건 교수는 메리트 개념을 뛰어난 능력으로 한정한다. 멀리건에 따르면, 능력주의는 각자에게 마땅한(Deserve) 것을 주는, 가장 기본적인 정의(Justice)에 기반하고 있다. 메리트는 마땅히 받아야 할 자격의 주요 근거다. 하지만 유일한 근거는 아니다. 능력주의는 엄연히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고, 그래서 히틀러처럼 지나치게 비도덕적 사람은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려도 미술 교사가 될 자격이 없다.⑾”
— 정리해 보면, 메리트는 지능을 넘어 도덕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자격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머리만 좋은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을 주자는 능력주의는 본래 뜻을 왜곡하고 있는 셈이다.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초기 능력주의자가 말하는 메리트란 ‘재능+공적인 헌신’이었다. 즉, 공공 이익에 무관심한 명문대 출신 관료나 무책임한 기업가는 메리트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능력’주의라는 번역어는 ‘메리트’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메리트에 따른 분배’가 도덕성과 분리되지 않은 것은 그저 소수 재능 있는 사람에게 부귀영화를 몰아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는 그저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보다 효율적이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 더 강하고 번영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초기 능력주의의 진짜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서 능력주의자는 출생과 신분을 뛰어넘어서 공익에 헌신할 탁월한 인물을 발견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미국 국부와 유럽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사람의 재능과 덕성을 발견하거나 육성하기 위해 교육에 굉장한 관심을 기울였다. 기초·중등 교육을 모든 국민에게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은 18~19세기 이미 논의되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일부 능력주의 사상가들은 메리트 원칙을 잣대로 세습 특권 전반을 비판했다. 예를 들어 토마스 제퍼슨 등 여러 미국 국부들은 첫째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는 장자상속제를 봉건적 구습이라고 비판했다. 대신, 모든 자녀에게 똑같이 상속하는 균등상속제를 지지했다. 그런 관점을 공유하는 분위기가 있던 탓에 뉴잉글랜드 등 일부 주에서는 미국 건국 전부터 균등상속제를 도입하고 있었고, 미국 건국 후에도 여러 지역에서 장자상속제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⑿
물론 균등상속제는 연방 단위 제도로 자리잡지 못했다. 자리잡은 주에서도 균등상속보다 유언의 자유에 더 무게를 실은 탓에 원래 의도를 실현하기엔 부족했다. 대신 재능과 덕성을 함께 외치던 프랑스 혁명가들이 유언과 상관 없이 균등하게 상속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훗날 앙리 드 생시몽과 그 제자들은 메리트를 근거로 상속제와 지대 추구 자체를 비판하는 데까지 나아갔고, 앞에서 이야기한 미국 철학자 토마스 멀리건과 여러 능력주의자가 비슷한 결론을 공유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지대를 누릴 자격이 없으며, 정의는 그것을 몰수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토마스 멀리건, 미국 능력주의 철학자.⒀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부의 상속이 거의 또는 전혀 없다. (…) 상속된 부는 또한 기여와 소득 사이의 결정적인 연결을 단절시킨다. 만약 어떤 부를 받을 자격이 없다면—상속받았다면 자격이 없다—그것이 생산하는 투자 소득도 받을 자격이 없다.
Meritocrac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마이클 영의 글은 1950년대 시험과 영재 교육에 대한 맹신을 풍자하는 데 유용했을 뿐 모든 능력주의 사상을 제대로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다양한 능력주의들을 모조리 비판하기 위해 마이클 영의 풍자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면 허수아비 때리기가 될 수밖에 없다.
정리하자면, 능력주의는 최소한 세 가지 의미로 나뉜다.
- 첫째는 마이클 영이 원래 의도한, ‘재능 있는 자들의 세습 독재 사회’다.
- 둘째는 단순히 시험 공부 열심히 해서 높은 성적을 받는 사람이 좋은 학위와 일자리를 얻는 사회, 즉 통속적인 ‘실력지상주의’다.
- 셋째는 메리트를 도덕성과 분리하지 않고, 기회 균등을 적극 지지하고, 나아가 경제적 부(wealth)도 메리트에 따라 분배되기를 바라는, ‘근본 있는 능력주의’다.”

MZ식 공정 담론? “공정 중요하지만, 유일 잣대일 순 없다.”
— 문재인 정부 시절 ‘인국공 사태’*, ‘남북 단일팀 논란’* 등 공정 담론이 뜨거운 감자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젊은 세대의 공정에 대한 생각이 우리하고는 참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 계기”라고도 했다. MZ 세대는 시험 성적에 따라 나뉘는 보상 차이를 긍정하는 모습이다. 이들은 이준석의 능력주의에 공감하며, 유독 공정 이슈에 민감하다. 어떻게 바라보나?
“사실 공정함은 세대를 초월하는 가치다. 불공정한 대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야근과 주말 출근까지 참아가며 열심히 일했는데 낙하산 인사에게 승진 기회를 뺏긴다면, 청년이든 중년이든 모두가 분노할 것이다. 실제로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에 따르면, 어린 아이들도 각자 기여에 비례한 보상을 더 선호한다.⒁ 공정함 역시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의미든 공정함은 협력을 끈끈하게 하는 접착제다.
하지만 모두가 매 순간 공정함을 최우선 가치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모든 상황에서 한 가지 가치만 앞세우면 어떻게 되는지는 공정함의 자리에 평등함을 넣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에게는 공정함뿐 아니라 자유나 연대 등 여러 가치가 있고, 그 우선순위는 상황에 따라서 다르기 마련이다.
다른 가치가 더 시급한 상황에서는 불공정을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부모는 갓난아기를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이지만, 그렇다고 갓난아기에게 엄격한 호혜주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자녀는 늙은 부모에게 시장 가격에 맞는 돌봄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 엄격하게 따지고 들면 불공정하지만 공정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에서 한 가지 가치만 잣대로 삼는 것은 ‘종교 근본주의’나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남북 단일팀이 문제가 된 것은 가치의 우선순위가 달라졌기 때문인 듯하다. 남북 통일은 더 이상 중요한 가치로 간주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을 적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통일 자체를 불필요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만약 사람들이 남북을 여전히 한 민족, 한 국가처럼 생각했다면 단일팀도 그렇게까지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 같다.
다시 말해, 남북 단일팀 문제는 젊은 세대가 특별히 공정성에 민감해서 생긴 문제라기보다 세대나 정치 성향별로 북한을 바라보는 태도가 너무 달라져서 생긴 문제일 수 있다.”
📌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 남북 단일팀 논란
💦 인국공 사태: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인 인천공항공사 협력업체 소속 보안검색원 19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기존 정규직과 취업 준비생들이 거세게 반발했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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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뛰어들 기회조차 불균등… 능력주의 불가능.”
— 과거 인국공 사태와 관련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움직임에 “정규직하고 싶으면 공채 시험을 보면 될 것 아니냐”, “그동안 시험 준비한 게 억울하다” 등 반응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한국에서 ‘시험’은 매우 중요한 관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국공 사태 때는 나도 정규직화에 반대했다. 나는 정규직화가 고용 불안정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비정규직이 많더라도, 실업 대책과 소득 재분배 장치가 튼튼하다면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핵심은 안정된 생활이지, 한 곳에서 오래 일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의 정규직화 자체가 불공정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협력사가 법적 요구 사항에 맞게 보안검색요원을 채용했고, 교육했고, 파견했다면, 그 사람은 업무에 필요한 메리트를 상당히 검증받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보안검색요원의 채용 과정이 불투명하고 인맥 위주로 이뤄질 뿐만 아니라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데 부족하다고 밝혀졌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보안검색요원에게 고용 안정을 보장하겠다는 생각 자체는 불공정하지 않다.
한쪽에서는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이 본사 정규직보다 쉬운 채용 절차를 거쳤다는 점을 문제 삼지만, 이는 시험 난이도와 업무 수행 자격을 혼동하는 것이다.
어떤 시험이든 그 난이도는 예상 경쟁률에 따라 조정돼 왔고, 그래서 수능도 불수능과 물수능으로 나뉘어 왔다. 물수능으로 서울대에 들어갔다고 해서, 수업을 들을 능력을 입증 못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공무원 시험이 지금보다 쉬웠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수십 년 전 공시에 합격해서 지금까지 성실하게 일한 사람들은 공무원으로 일할 자격을 검증받지 못한 걸까.
경쟁률이 높은 상황에서 시험은 업무에 필요한 능력만 검증하지 않는다. 사람을 걸러내기 위해, 일에 필요한 능력 이상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협력사의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의 채용 절차가 인국공 본사 채용 시험보다 쉽다는 점을 문제삼을 수는 없다. 보안검색요원 자격을 평가하는 방식도 나름 엄격하다. 단지 업무가 힘든데 생각보다 저소득이라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을 뿐이다.
애초에 한 공간에서 치뤄지는 시험은 자격을 검증하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다. 능력주의는 모든 영역에서 한 가지 시험 성적만으로 그 사람의 메리트를 평가하지 않는다. 능력주의는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것이지, 오버 스펙인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우리나라는 기회 균등을 달성한 곳이 아니라서, 시험 난이도 만으로 능력주의적인지 아닌지 따지기 어렵다.
그럼에도 당시 보안검색요원 정규직화에 대한 반발이 심했던 데는 나름 이유가 있어 보인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모든 보안검색요원들을 인천국제공항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고, 일부를 본사의 청원 경찰 형태로 재고용했다. 그것도 일정 기간 안에 입사한 사람만 곧바로 정규직화했고, 그 뒤에 입사한 사람들에게는 시험을 보게 했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있는 듯하다. 정규직화 과정에서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차별이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가 희소한 자원을 놓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다. 좋은 일자리가 점점 희소해지는 시대에, ‘공기업 본사 정규직’은 그야말로 꿈의 직장이다. 그 직장을 얻기 위해 수많은 취준생이 많은 비용을 들이며 오버스펙을 쌓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절차 하자를 남겼으니 정부가 반발을 자초한 것과 다름 없다.
능력주의자 관점에서 볼 때, 청년 세대는 능력주의보다는 공개 경쟁 같은 절차의 공정성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는 것 같다. 절차의 공정성 역시 능력주의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지만 그것만으로 능력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교육비는 높고, 취업에 필요한 정보는 귀하고, 운 좋은 소수는 많은 돈을 상속받으며 인생을 시작한다. 이렇게 경쟁에 뛰어들 기회가 철저히 불균등한 곳은 능력주의적일 수 없다. 하지만 2030 청년 중 이런 불공정을 모두 바로잡자고 주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 보인다.
청년 세대가 능력주의 사상에 충성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청년 세대라고 해서 특별히 더 공정하게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 꼰대, 청년의 갑질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공정함은 모두에게 소중하지만, 동시에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그에 따른 우선순위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시험 특권주의는 요원한 기회 균등이 불러온 사회적 염증.”
— 우리사회에서는 왜 능력주의가 ‘시험 특권주의’로 변질됐을까?
“그나마 공정한 절차가 시험 밖에 없어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새로운 사업은 큰 자본을 요구할 뿐 아니라 그걸 다 잃을 각오까지 요구한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아무에게나 자리를 알선해 줄 리도 없다. 각자의 지적, 신체적 능력으로 시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절차 면에서 투명한 경쟁 방식이 무엇인지 물으면 시험 밖에 안 떠오른다. 물론 메리트를 평가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지만 공개 시험이 가장 논란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보장하는 시험은 그리 많지 않다. 수학능력시험, 공무원채용시험, 대기업 인적성 검사 정도가 아닐까. 이 몇 가지 시험 절차에 수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다. 그 탓에 우리가 흔히 아는 시험들은 정말 업무에 필요한 능력만 검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수많은 경쟁자를 어떻게든 걸러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원어민 교수도 이해하기 힘든 영어 지문이 수능에 출시되는 촌극이 빚어진다. 각종 시험에서 따지는 변별력이란 업무에 최적화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버 스펙이더라도 최후 1인을 찾는 것에 가깝다. 병목 현상이다.
여기서 더 결정적 문제가 발생한다. 병목 현상 때문에 시험에 거품이 낀다. 거품을 헤집고 들어가려면 끝없이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시장 경제는 생수에도 가격표를 붙여서 파는 곳이다. 학업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공부하는 데 드는 비용, 특히 사교육비가 치솟는다. 사람들이 몇 가지 시험에 몰린 결과, 합격 난이도와 준비 비용이 함께 상승하고 있다. 덕분에 지주가 개발 이득을 얻듯이 사교육 업계도 상당한 초과 이익을 누리고 있다.
큰 돈과 시간을 들인 만큼 본전을 찾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시험만이 안정된 일자리, 경제적 성공을 노릴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수많은 수험생과 가족이 시험 합격만 바라며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점수와 합격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한다. 시험 특권주의는 단순히 사리사욕이 초래한 특권 의식이 아니다. 과도한 지위 격차, 부러진 사다리, 요원한 기회 균등이 불러온 사회적 염증이다.”

“‘진짜 능력주의’ 위해 경제적 지대를 사회화하라.”
— 본래적 의미의 능력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나? 특히 ‘능력을 키울 기회’를 뒷받침할 제도가 있다면?
“우선 경제적 지대를 가능한 한 사회화해야 한다. 물론 능력주의자마다 지대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능력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생시몽주의자와 페이비언 사회주의자처럼, 나는 능력주의가 경제적 지대와 공존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토지초과이득세, 금융투자소득세, 초과이윤세를 적극 지지한다. 상속이 초래하는 불평등에도 개입해야 한다. 부동산에는 높은 상속세를 유지하되 금융자산에는 금투세를 부과하거나, 한 사람이 타인에게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현금과 재산에 한도선을 정해두고, 한도선을 초과하는 부분에 취득세를 부과하는 것도 방법이다. 상속 재산은 반론의 여지 없는 불로소득이지만 유산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보편적 욕구인 만큼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타협안이 필요한 것 같다.
이렇게 불로소득을 최대한 환수하는 대신 노동자와 기업이 부담하는 사회보험료를 낮추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지대로 확보한 세수가 충분하다면 근로소득세와 사업소득세의 최고세율을 낮추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모든 지대가 공동체의 필요를 위해 세금으로 징수될 때, 그때 자연이 명령한 평등이 달성될 것이다. 어떤 시민도 그의 근면, 기술, 지능에 의해 주어지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시민보다 우위를 갖지 않을 것이며, 각자는 자신이 공정하게 벌어들인 것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노동은 완전한 보상을 받고, 자본은 자연스러운 수익을 얻을 것이다.”
헨리 조지⒂

무엇보다 기회 균등을 엄격하게 실현해야 한다. 최소한 전문대까지는 무상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할 때처럼 정부와 학원 대표, 소비자 대표가 모여 사교육비 인상률을 결정하는 기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무슨 수를 쓰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가능한 한 낮은 비용으로 지식과 기술을 배울 수 있게 해야 한다.
특히 아동, 청소년 정신 건강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어린 시절에 겪은 고통은 성인기가 돼서도 낫지 않을 수 있다. ADHD 같은 정신질환도 어린 시절에 미리 발견하고 치료해야 그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한 번, 중학교에 입학 할 때 한 번,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한 번, 이런 식으로 정기적으로 정신 건강 진단을 받게 하는 것은 어떨까.
재정이 허락한다면 만 7세부터 24세까지 어떤 식으로든 교육을 듣는 청소년에게 매달 교육 수당을 지급하면 좋을 것 같다. 그 시기에 겪는 상대적 빈곤감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서다. 상대적 빈곤감이 누군가에게는 동기부여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성인기에도 발목을 잡는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이때, 상속받은 것이 많은 청소년에게는 지급한 교육 수당을 고스란히 세금으로 돌려받는다면, 기회 재분배에 드는 비용을 조금은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빈곤층 자녀에게 교육, 의료 및 기타 형태의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상당한 경제적 재분배가 필요하다. (…) 능력주의자는 다음과 같이 공정한 기회균등을 주장한다. ⑴정의로운 사회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준다. ⑵경제적 응분은 공정한 기회균등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⑶사회는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을 확립해야 한다.
토마스 멀리건.⒃
우리나라는 단 한 번도 능력주의를 시도해 본 적 없다. 사회 이동성은 정체 상태고, 건강 격차는 측정조차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회는 거대한 분업 체계고, 각 자리에 최적화한 사람을 앉히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이다. 이를 위해서는 더 엄격한 기회 균등과 공정한 경쟁, 불로소득 환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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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은 누구.
- 1994년 8월 출생.
- 다이소 등 서비스업에서 5년 동안 일했다.
- 자살 예방과 기회 균등, 정치철학을 연구한다.
- 한국 진보, 보수를 분석한 책 ‘좌업좌득’, ‘함께 자유로운 나라’를 썼다.
-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위기 앞에 혼자 되지 않는 나라를 꿈꾼다.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요원들의 정규직화 과정에는 직무능력평가 NCS를 포함한 경쟁채용을 기조로 합의서에 서명하였습니다. 이에 일부 보안검색요원들이 채용 과정에서 탈락을 우려하여 자회사 전환에 합의하여 노노갈등이 심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시험 특권주의로 변질”이라는 부분 매우 인상깊게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