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꺾정66화] 어느새 탄핵 1년, 진정한 국민 주권을 위한 새로운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강우진/경북대 교수) (⏳3분)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 중꺾정 필자의 견해는 참여연대 공식입장이 아니며 다를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4일은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 인용이 선고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탄핵 1년
현직 대통령이 시도한 친위 쿠데타로 촉발된 내란에 맞서 시민들은 목숨을 건 저항으로 1차 저지선을 구축했고, 국회는 약 155분 만에 만장일치로 계엄 해제를 결의했다. 이어 국회는 1차 투표 부결 이후, 내란 발생 12일 만인 12월 14일 내란 주범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그로부터 111일 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현직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 궐위 대선인 제21대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며 민주화 이후 다섯 번째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12·3 내란 이후 지금까지 한국 민주주의는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던 결정적 위기 속에서도 시민의 저항, 법적 판단, 정치적 심판을 거치며 회복의 경로를 밟아왔다. 이에 따라 국제 민주주의 평가 기관(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들 역시 한국을 더 이상 ‘독재화가 진행 중인 국가’가 아니라, 실패한 계엄 시도 이후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회복해 낸 국가로 평가하며 다시 자유민주주의 범주로 분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빛의 혁명 1주년 기념 메시지에서 내란을 저지한 시민의 저항을 ‘빛의 혁명’으로 명명하며, 민주주의의 위기를 평화적으로 극복해 세계 민주주의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는 한국 국민은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민의 저항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막아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진 촛불집회에서 약 1,700만 명의 시민은 평화적인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이 촛불 시민들은 에버트 재단 인권상을 수상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제적 찬사를 받아왔던 한국 민주주의가 왜 민주주의 붕괴를 우려할 정도의 근본적 위기에 직면했는지, 또 정권 교체와 국민주권 정부의 출범을 통해 그러한 위기에서 과연 충분히 회복되었는지를 묻고 적절한 처방을 마련하는 일이다.

투표장에서 멈춘 민주주의
잘 알려져 있듯 한국에서는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이 민주화를 추동했지만,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권위주의 여당과 민주화를 이끌었던 야당 사이의 협약을 통해 급속히 이루어졌다. 학자들은 이러한 협약에 의한 민주주의 이행이 민주주의 안정성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해 왔고, 한국은 그 대표적 사례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12·3 내란은 이러한 기존 평가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공정하고 경쟁적인 선거 체제를 제도화하는 일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그 자체로만 민주주의의 역동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선거 체제가 역동성과 개방성을 유지하려면 시민의 요구가 지속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한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민주주의는 여야 간 카르텔 체제로 퇴행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민주당 계열과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정치적 카르텔로 고착되어 왔다. 대통령직을 둘러싼 정치적 보상이 큰 체제에서 양당 내부의 경쟁은 치열했지만,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입은 극히 어려웠다. 그 결과 대표체계는 편향되었고, 청년·여성·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 등 정치적 소수자의 대표성은 충분히 보장되지 못했다.

존재 자체의 민주주의
한국은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시작하던 시기에는 비교적 평등한 사회였지만, 오늘날에는 소득·자산·주거 격차가 중층적으로 누적된 ‘다중격차 사회’로 변모했다. 경제적 성취가 양적으로 확대되었음에도 시민이 체감하는 행복은 낮으며, 특히 청소년 세대의 삶의 만족도는 국제 비교에서 최하위권에 머문다.
이러한 결과에는 다양한 요인이 기여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삶의 전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도록 강요하는 사회 구조에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성적과 스펙, 직업과 자산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 결과 헌법 제10조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인간의 존엄은 존재 자체에서 비롯되는 권리가 아니라 경쟁 속에서 계속 갱신해야만 유지되는 조건부 자격증처럼 취급된다.
국민주권 정부에서는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는가?
이러한 현실의 근본에는 시민의 구체적인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1단계 민주주의’의 결손이 놓여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저항하고 권력을 심판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시민의 요구를 제도 속에 담아 삶을 바꾸는 단계까지는 충분히 나아가지 못했다. 이러한 ‘투표장에서 멈춘 민주주의’는 시민을 진정한 주권자가 아니라, 결정적 위기 국면에서만 분노가 폭발하는 청중으로 남겨두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대통령이 세계정치학회 연설에서 강조했듯,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승리하는 방법은 오직 더 많은 민주주의뿐”이라는 원칙을 실천하는 일이다. 존재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국민이 진정한 주권을 갖는 민주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