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의 딸, 고캔디의 편지가 화제입니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그 편지의 전문을 번역해서 올렸습니다. 슬로우뉴스는 이 편지가 일방의 주장을 담은 점에서 번역 게재를 고민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
고승덕 후보의 딸, 고캔디의 편지는 단순히 한 가정의 비극을 담은 사생활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가정과 교육은 서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동의하리라 봅니다.
서울시 공교육을 책임지겠다는 사람이라면, 그 딸의 편지는 사생활의 폭로가 아닌 유권자에게 의미 있는 판단의 재료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습니다. 편지는 슬로우뉴스 필자이신 김성우 님께서 번역하셨습니다.
더불어 이 편지는 이상헌 박사의 글과 함께 읽어주시길 바라봅니다. (편집자)
[/box]
서울 시민들께
저는 서울 시민이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귀하가 살고 있는 도시 서울의 교육 시스템의 미래를 위하여 다급하고도 너무나 근심스런 마음에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 이름은 고캔디(Candy Koh)입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에 거주하는 동안 고희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박유아와 고승덕 사이에서 태어난 두 자녀 중 첫째 딸입니다. 고승덕 씨는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후보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그가 출마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양심상 그의 자녀로서 침묵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서울 시민들은 자신들을 대표하여 서울의 교육 시스템을 책임지게 될 사람으로 뽑게 될지도 모르는 인물에 대해 진실을 알 자격이 있습니다. 고승덕 씨는 자신의 자녀 교육에 결코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198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캐임브리지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제 어머니와 고승덕 씨는 아직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1991년에 뉴저지에서 남동생이 태어난 후 우리는 모두 한국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저의 기억으로는 고승덕 씨는 저나 동생 곁에서 뭔가를 가르쳐 준 적이 없습니다. 제가 충분히 기억을 가질만한 나이가 되어서도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뉴욕에 있는 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저와 남동생을 뉴욕으로 데리고 왔을 때 고승덕 씨는 한국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또, 저희와의 연락을 완전히 끊어버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고작 11살밖에 되지 않았던 저는 아빠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매년 아버지의 날은 그냥 넘어가야 했지요. 사람들이 아버지는 어디 있느냐 또는 뭘 하시느냐고 물을 때마다 기분이 상했고, 결국 모른다고 대답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제게 말해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전화와 인터넷이 있었지만, 고승덕 씨는 결코 저와 동생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은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생일을 맞았을 때 전화를 해달라거나 선물을 사달라고 하는 건 제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식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제적인 것을 포함하여 저희의 교육에 대해 어떤 지원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수한 성적으로 학부와 대학원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공직에 대한 관심을 더 잘 살리기 위해서 저는 가을에 메리트 장학금(Merit Scholarship)을 받고 법대에서 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저는 생물학적인 아버지 없이 이만큼의 성취를 이루어 냈다는 점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두 자식을 키운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또 제 평생 내내 아버지의 역할을 맡아 돌아가실 때까지 심리적인 도움을 주신 외할아버지가 없었더라면 이런 일을 해내진 못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자라는 동안 저는 한국 언론을 통해 고승덕 씨가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법과 “성공”하는 법을 강의하곤 한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또 그가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가장 잘 교육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처음 보았을 때 저는 화가 났습니다. 그는 자기 자식도 교육한 적이 없는, 아니 실상은 완전히 무시한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겨우 10대에 들어선 아이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그냥 조용히 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의 성취와 소위 똑똑함에 대해 많은 한국인으로부터 찬사를 받는 것을 보았지만 제 의견이 중요하다고 느끼지 않았기에 잠자코 있었습니다. 또한, 미국인이었고, 한국의 정치 상황에 관련된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제 일이 아니라고 느꼈던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고승덕 씨의 서울 교육감 선거 출마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선 일입니다. 제가 지금 침묵한다면 서울 시민들을 속이는 일이 될 것입니다.
고승덕 씨가 교육하기는커녕 거의 말도 걸어주지 않았던 자녀의 입장에서 저는 서울 시민들에게 그가 서울시 교육감을 맡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교육감의 역할이 서울의 교육정책과 시스템을 책임지는 일일진대, 그는 그런 역할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자기 혈육도 가르치지 않으려는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교육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교육은 당신의 도시와 국가, 그리고 세계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사람을 키워내는 일입니다. 그의 딸인 저는 그로부터 교육에 대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한때 서울시민이었고, 여전히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들이 있는 사람으로서, 여러분들이 서울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하셔서 교육감의 자리에 알맞은 후보에게 표를 던지시리라 믿습니다. 서울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 진정으로 애정을 가진 후보,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 즉 자신의 자녀들을 정성으로 보살피는 데에서 시작하는 후보 말입니다.
마음을 담아,
고캔디
[divide style=”2″]
To the Citizens of Seoul,
I am not a citizen of your city, but I write you today out of urgency and dire concern for the future of your city’s education system.
My name is Candy Koh, once known as Hee Kyung Koh (고희경) during my residence in South Korea from the year 1991 to 1998. I am the first of two children between Yooah Park and Seung Duk Koh, a candidate for Seoul’s Superintendent of Education in the current elections. When his candidacy came to my attention recently, I could not, in good conscience, stay silent as his child. Seoul’s citizens deserve know the truth about the person they may be choosing to represent and be in charge of Seoul’s education system: Seung Duk Koh never partook in the education of his own children.
I was born in Cambridge, Massachusetts in 1987 while my mother and Koh were still married. After my brother was born in New Jersey in 1991, we all moved to Korea. I have next to no memories of his being present to teach me or my brother anything, even when I was old enough to have such memories. When my mother brought me and my brother to the U.S. to send us to a school in New York, Koh stayed in Korea and also decided to stop contacting us altogether.
I was still only 11 years old when I had to get used to a life without a father. I missed out on Father’s Day every year. I hated it when people asked me where my father was or what he did and I eventually began to reply that I do not know, because he never told me. Despite the existence of a telephone and Internet, Koh never called me or my brother to ask how we were doing. Asking for a call or gifts on our birthday was not even in the scope of our imagination because he did not acknowledge his own children’s existence. Of course he never supported our education in any way, including financially.
Despite this, I was able to go through college and graduate school as one of the top students in my class. To better apply my interest in public service, I also plan to begin law school in the fall with a merit scholarship. I am proud that I have managed to achieve this much without my biological father. I could not have done it without my mother who single-handedly raised both her children or my maternal grandfather—my mother’s father—who provided me the psychological support of a father throughout my life until he passed.
Meanwhile as I grew up in the U.S., I saw through the Korean media that Koh would give lectures to children on how to study or how to “succeed.” I also saw that he spoke to parents on how best to educate their children. When I first saw the latter in the early 2000s, I became angry, as he did not educate his own children, but rather completely disregarded them. However, I was still a child, barely in my teens, and I was also living in the U.S. What could I do? I felt that I had no choice but to keep silent. Despite seeing the praises he received from many Koreans for his achievements and so-called brilliance, I kept silent because I didn’t think my voice mattered. I am also an American and perhaps felt I had no business engaging in dialogues particular to the Korean political scene. However, Seung Duk Koh’s running for the seat as Seoul’s Superintendent of Education is crossing the line. For me to keep silent here would be to deceive the citizens of Seoul.
As a child he neither educated nor rarely even spoke to, I must inform the citizens of Seoul that he does not qualify for this position. If the role of a superintendent of education is to look after the educational policies and systems of a city, Seung Duk Koh is a stranger to this role. How can he act as the leader of education for a city when he is unwilling to teach his own flesh and blood?
Education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in the world. It shapes people in whose hands the future lies—the future of your city, your nation, and the world. I, his own daughter, never received support from him for my own education. As a former citizen of Seoul still with many friends who reside there, I trust that you will make the right decision for the future of your city and choose a candidate better suited for the position: someone who truly cares about the Seoul’s education system and someone who begins by caring for those nearest to him, his own children.
Sincerely,
Candy Koh
글쎄요 저는 개인사로 봐야하는 게 맞지 않나 합니다
딸을 버린 비정한 아버지에게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자신이 진실의 입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sns를 통해 사실에 근거한 본인의 일방적 주장을 하면서
마녀 사냥을 하도록 조종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캔디 고씨의 경우는 좀 달리 보이긴 합니다만)
이런 개인사를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 미루어 짐작케 하는 근거가 되겠지만
그것 말고도 그의 삶의 궤적이 교육감으로 어울리는 도덕성을 지녔는가에 대한 충분한 의심을 준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에,
만약 고승덕이 이번에 떨어지면 자신이 선거 공작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하겠죠
나경원이 본인이 피부과 때문에 떨어진 줄 알듯이
캔디 고씨는 딸로서 원망스럽고 행태에 분노를 느껴 옳은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올리셨는데
다음 상황은 아버지란 자가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다오가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 너도 잘한 건 아니지 않냐는 식의 물귀신 개판이 되어가니 세상은 헐리웃 영화와는 다르다는 말밖에…..
번역 감사합니다. his own flesh and blood 혈육 대박 맞는 번역이네요.
한 쪽 입장만을 담고 있으며, 내용 자체는 개인사이지 않느냐 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 편지를 번역해야 하는 이유는 편지 안에 충분히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 초반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처음 보았을 때 저는 화가 났습니다. 그는 자기 자식도 교육한 적이 없는, 아니 실상은 완전히 무시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자기 혈육도 가르치지 않으려는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서울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 진정으로 애정을 가진 후보,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 즉 자신의 자녀들을 정성으로 보살피는 데에서 시작하는 후보 말입니다.”
고승덕의 가장 큰 잘못은 왜 재벌가의 둘째딸 박유아씨에게 장가를 갔나 하는것 아닐까요? 재벌가 영애께서 자식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버리면, 도대체 가난한 집 아들이 할수 있는것이 있을까요? 아빠가 아무리 아이들을 보고싶어도 엄마가 보여주지않으면 볼수없는것이 현실입니다. 박유아씨가 아닌 평범한 여자와 결혼 했다면, 아마도 그런 수모는 격지않았겠지요. 이혼 후에도 박유아씨는 자식들에게 반복적으로 저 남자때문에 자기의 삶이 힘들다고 얼마나 세뇌를 시켰겠습니까? 박유아씨는 돈으로 살수 없는게 행복이라는걸 몰랐겠지요.
서로 안 맞아서 이혼할 수 도 있고 억울한 점도 있었겠지만 기자회견하면서 카톡공개하고 공작정치로 못 것보다는 자식에게 진짜 사과하는 아부지였으면 좋았을텐데 자식 허물을 덮어주는
고승덕씨 자중하시고 조용히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