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용혜인 씨는 청와대 자유게시판을 통해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처음 제안한 분입니다. 청와대 게시판에서 글은 사라졌고, 시민들은 여러 차례 시청광장에 모였습니다.
5월 18일 용혜인 씨는 침묵행진에 참여했던 97명과 함께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6월 민주항쟁 기념일이 있는 6월을 맞아 그가 다시 슬로우뉴스에 글을 보내왔습니다.
이 글은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선전문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를 사는 ‘문제적 개인’의 체험과 주장은 기사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편집자) [/box]
안녕하세요. 용혜인입니다.
4월 30일, 처음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시작한 그 날로부터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 한 달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유가족들이 어버이날 영정사진 들고 청와대 앞 길바닥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해경 해체가 발표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짓기도 했습니다.
저도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경찰한테 잡혀 유치장에 들어가 44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유치장에서 멍하니 바라본 TV 화면에는 온종일 대통령의 눈물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티끌 정도의 위로겠지만, 그 눈물이나마 끌어낸 것은 청와대를 향해 걸었던, 밤을 지새웠던 유족들의 발이었습니다.
벌써, 1면에 등장하지 않는 세월호
세월호 이야기는 이제는 언론매체의 1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참사처럼 세월호도 잊혀가고 있습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고 봄비로 무감각한 뿌리들을 흔든다던 “잔인한 4월”은 여름 더위에 쫓겨나고 겨울이 채 되기도 전에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있습니다.
24일 촛불집회에서는 “우리의 슬픔 투표로 각인”이라는 피켓들이 넘실거렸습니다. 제게는 이 말이 “투표 날 외에는 아무 정치적인 행동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생명보다 이윤이 중요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언가 달라졌을까요.
6월 항쟁의 의미
열흘쯤 지나면 6월 항쟁 기념일입니다. 1987년 정부의 “호헌” 조치에 반발한 시민들이 직접 역사를 앞으로 움직였던 날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직선제가 이루어진 날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려 직선제를 쟁취했으니 우리는 열심히 투표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직선제라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때 시민들이 이뤄낸 가장 큰 쾌거는, “호헌조치”에 맞서 “개헌”을 이끌어냈다는 바로 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을 운영하는 하나의 법칙을 대의정치인이나 관료가 아니라, 시민들의 뭉쳐진 힘으로 바꿔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이날이 역사적 기념일로서 우리에게 과시하는 바는, 국민이 위임된 권력을 이겨내고 자신을 주권자로 세웠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위임된 권력이 할 수 있는 한계 그 이상으로, 민주주의의 확장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날들을 산 자건 아니건, 1960년 4월의, 1987년 5월의 역사를 어떤 식으로든 기억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로지 “투표로 심판하자”는 말은 위임된 권력에 대항하며 확장해온 민주주의를 이제 그만 중단하자는 것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민중이 역사를 움직이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는 말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앞에 지금, 어쩌면 직선제냐 아니냐보다 더 큰 문제가 놓여있습니다.
바로 이윤이냐, 생명이냐의 문제입니다. 생명이 비용이 되는 사회,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어쩌면 헌법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경제성장이 먼저라는, 국정에서부터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붙들고 있는 태도 말입니다.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대마왕 같은 대통령이, 하룻밤 사이에 세상에 걸어놓은 마법인 걸까요?
‘경제성장 우선’이라는 마법에 걸린 사람들
제가 아직 유치장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던 5월 19일, 몇 명의 청년들이 박정희 기념관에서 기습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이 나라는 지금까지 “경제”라는 주문 앞에서 인권도 생명도 그 무엇도 양보 되어야만 했고, 그 어떤 정권도 이 교리를 부정한 바 없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 동의합니다. 생명보다 이윤이 중요하게 생각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을 뿐입니다.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생명을 비용으로 취급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으로 보고 만 것일지도 모릅니다.
1964년 우리는 ‘국익’을 위해 베트남에 군대를 보냈고, 2004년 우리는 국익을 위해 이라크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2014년 지금, 밀양의 농민들은 도시의 원활한 전기수급을 위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그 50년 동안, 생명의 단가는 바뀌었을지 몰라도 생명이 비용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생명의 단가가 아닙니다. 생명이 이윤을 위해 희생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모든 권력을 위임하고, 그 위임에 의해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선택하는데 만족하자는 것은 역사를 그대로 진행하자는 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역사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입니다. 얼마의 “비용”이 들던지 말입니다. 그것은 어떤 대단한 정권도, 어떤 대단한 정치인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역사 속에서 때때로 국민 스스로 해냈던 일입니다.
6월 10일, 다시 거리에서
6월 10일, 거리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리고 청와대로 갑시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삶을 통치하기 위해서, 우리가 다시 인간이기를 약속하기 위해서. 경제성장을 위해 인권과 생명은 잠시 잊고 가자는 그 끔찍한 약속을 파기하기 위해서.
거리에 나서기가 아직은 두려운 사람들도, 평범한 말보다 험악한 구호가 더 익숙한 사람들도, 진지한 사람도 익살스러운 사람도, 깃발을 든 사람도 깃발 없는 사람도. 함께 갑시다. 정권이 아니라 역사를 심판하기 위해, 착한 시민들에게는 금지된 방향으로 걸어갑시다.
침묵은 끝났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우리는 죽은 자를 기억하는 착한 사람들이었다”는 자족만으로 이 시대를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사람 잡는 경제성장 속에서 스러지는 생명을 명절처럼 맞이할 수는 없습니다. 생명보다 이윤을 앞에 두었던 역사에 종군한 자들을 모두 지난 역사 속으로 돌려보내야 할 때입니다. 봄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라일락을 심어야 할 때입니다.
6월 10일, 다시 거리에서 만납시다.
마음으로 크게 응원합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잘못 지시한 선장의 말을 비틀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분출하려는 그불만이
과연 정상적인 의식에서 출발한 발상인가부터 되돌아 봐야 합니다.
멀쩡하게 생겼지만 정신은 혼미한 자들이 너무 많다는것은 사실입니다.
지방 선거에 나와 지역 주민을 위한다는 말보다 ‘박근혜 공주를 도와주세요’ 라며 불쌍한 척 하는 정치인들 말씀이죠?
정신이 정말 혼미해지더군요.
베트남전쟁에참여한게돈때문도있었겠지만6.25때도와준미군을생각해서라도참여해야하는거였고공산주의에맞서민주주의를이룩하려고하던베트남을위해서라도참전한게맞다.그걸그냥돈을위해참전했다고하면정말안될말이며설사돈때문이었다해도그돈덕에우리가이렇게살고있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