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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화요일[footnote]슈퍼 화요일은 미국 대선에서 가장 큰 규모로 예비 선거가 한꺼번에 열리는 날이다. 2016년 대선에선 3월 1일이다.[/footnote]의 승자가 결정됐다.

트럼프는 이날 앨라배마, 아칸소, 조지아, 매사추세츠, 테네시, 버지니아, 버몬트 등 7개 주에서 승리를 했고, 크루즈는 텍사스, 오클라호마, 알래스카 등 3곳, 루비오는 미네소타 한 곳에서만 승리했다. 힐러리도 7개 주에서 승리를 거뒀고(알래스카, 아칸소, 조지아, 매사추세츠, 테네시, 텍사스, 버지니아), 샌더스는 콜로라도, 미네소타, 오클라호마, 버몬트 등 4개 주에서 승리했다.

출처: ⓒ 뉴욕타임스 http://www.nytimes.com/elections/results
출처: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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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이 비행기라면, 승객들은 창밖을 내다보면서 기체 표면이 뜯겨 나가는 걸 목격하는 중이다. 그들은 다음에 떨어져 나갈 게 날개일지 엔진일지 걱정하고 있다.”

팀 폴렌티슈퍼 화요일 결과를 접한 뒤, 지난 2012년 공화당 경선에 나섰던 팀 폴렌티(Tim Pawlenty, 1960년~현재, 사진)가 한 말이다. 그 말을 전한 뉴욕타임스 기사는 “민주당은 이제 줄을 서기(falling in line) 시작했고, 공화당은 무너지기(falling apart) 시작했다”는 말로 슈퍼 화요일의 결과를 요약했다. 비록 샌더스가 북쪽 주에서 강세를 보이기는 하지만, 힐러리는 승세를 굳혔고 이제 트럼프를 공략하는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화당에서는, 그리고 워싱턴과 언론에서는 더는 아무도 트럼프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공화당

이제 공화당을 두고 “트럼프의 당(the party of Trump)”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가 대세라고 생각하고 기축세력(주류세력)에서 빠져나와 트럼프에 붙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이 갈가리 찢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어쨌거나 트럼프는 현재 공화당원이고, 공화당은 힐러리의 민주당과 경쟁을 하고 있으니 공화당이 백악관을 차지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DonkeyHotey, "Super Tuesday Primary Republicans 2016 - Caricatures", CC BY SA https://flic.kr/p/EmgHc6
DonkeyHotey, “Super Tuesday Primary Republicans 2016 – Caricatures”, CC BY SA

그에 반대하는 쪽의 논리는 이렇다:

  1. 트럼프가 대선후보가 되면 많은 공화당 지지자가 실망하고 당을 떠나거나 최소한 투표를 포기할 것이고, 힐러리를 찍을 사람들도 많다. 즉, 트럼프를 후보로 내놓으면 대선에서 지는 데다, 지지자만 잃는다.
  2. 공화당 후보를 찍었을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트럼프에 반대해 지역구에서 민주당 의원을 지지할 것이고 의회 상하원 중 최소한 한 곳(상원)은 민주당으로 넘어갈 것이다.

즉, 백악관과 상원을 모두 잃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다시 떠오르는 배리 골드워터의 ‘악몽’  

그런 기축세력의 두려움은 괜한 두려움이 아니다.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한 것이다. 바로 1964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출전해서 민주당 후보(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참패한 극보수 후보 배리 골드워터의 기억 때문이다.

공화당의 잊고 싶은 '악몽'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 1909년 1월 2일 ~ 1998년 5월 29일)
공화당의 악몽 같은 기억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 1909년 1월 2일 ~ 1998년 5월 29일)

골드워터는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으로 강경 보수파를 결집해 바람을 일으켰고, 그의 지지자들은 공화당 컨벤션에서 온건파였던 뉴욕주지사 넬슨 로커펠러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그렇게 후보에 당선된 골드워터는 “자유를 수호하려는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며, 정의를 온건하게 추구하는 것은 선이 아니다”는 메시지로 본선에 올라갔더랬다.

소수 인종 증오집단인 KKK 지도자가 자신을 지지한다는 말을 했음에도 바로 거부하지 않은 트럼프처럼 골드워터도 KKK 지도자로부터 공개지지를 받았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진부한 문구를 다시 꺼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Michael Casim, "KKK", CC BY https://flic.kr/p/dGgXS3
Michael Casim, “KKK”, CC BY

그해 대선에서 린든 B. 존슨이 골드워터를 상대로 얻은 61%의 득표율은 미국 역사에서 깨지지 않은 최고 기록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골드워터가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유권자들이 의원선거에서 대거 민주당 후보들을 찍었고, 그 결과 하원 295석(총 435석), 상원 68석(총 100석)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민주당에 안겨주었다는 사실이다.

정치학자들은 “(베트남전으로 상징되는 대외정책은 국내정책의) 진보와 개혁은 케네디가 아니라 린든 존슨의 업적”이라고 한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극보수주의자의 결집 때문이었다. 그들이 배리 골드워터를 밀었고, 중도를 화나게 했고, 그 결과 백악관과 상하원이 모두 민주당에 넘어갔다. 민주당은 그 힘을 받아 중요한 진보 정책들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인권법은 선거 전에 통과되었다. JFK 서거 이후 미국은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물론 역사가 과거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CNN의 줄리언 젤리저는 1964년과 달리 오늘날은 지역구가 당별로 고착이 돼서[footnote]게리맨더링 탓이 크다.[/footnote] 당시처럼 쉽게 의석배분이 바뀌지 않고, 무엇보다 공화당 지지자의 성향이 당시보다 훨씬 오른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골드워터나 트럼프 같은 후보들의 메시지에 그다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그렇다고 해도 역사를 잘 아는 공화당 기축세력이 올해 11월을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된다는 것은 앞으로 오바마에게 4년을 더 연장해 주는 것과 같다”는 공화당 내의 경고가 그것이다.

원래 공화당은 승자에게 대의원을 몰아줘서 빨리 후보를 정하고 일찍 줄을 서는 ‘일사불란한’ 경선을 한다고 알려졌다. 득표율대로 대의원을 나눠 갖다 보면 경선이 길어지고 경선이 길어질수록 후보는 상처를 많이 받게 될 뿐 아니라 본선 준비도 늦어진다. (물론 민주당에도 슈퍼 대의원 제도가 있어 무조건 민주적인 다수결에만 맡겨두진 않는다.)

마이크 머피 하지만 슈퍼 화요일 이후, 민주당은 빠르게 정리되는 반면, 공화당은 분열이 본격화하고 있다. 공화당 전략가 마이크 머피(Mike Murphy, 사진)는 트럼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정말로 된다면 재난이다. 우리 당을 수십 년 뒤로 돌려놓을 것이다. 트럼프는 마치 공화당이 질 수밖에 없도록 컴퓨터로 디자인해 놓은 듯한 후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백인 여성과 히스패닉을 공격한다. 우리 당이 이기려면 필요로 하는 바로 그 그룹들인데 말이다.”

방화벽 뒤의 힐러리

뉴욕타임스의 프랭크 브루니는 힐러리에게 이런 찬사를 보냈다.

“그녀는 한 번도 후퇴하지 않았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She never retreated. Never gave up.”)

사실 그게 힐러리의 성격, 힐러리의 정치 스타일이다.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 바람을 일으키는 정치인이 아니라 지지자와 반대자가 막상막하인 상황에서 이를 악물고 한 걸음씩 전진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브루니는 이제 그런 불굴의 의지(grit)만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특히 상대가 순전히 바람을 일으켜서 본선까지 올라가는 트럼프라면 힐러리에게도 바람을 일으킬 만한 전환점이 나와줘야 한다. 현재 여론조사로는 힐러리가 트럼프를 이긴다. 하지만 1) 트럼프는 모든 예상을 깨는 후보고, 2) 여론조사는 (통신,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갈수록 부정확해지고 있다.

Matt Johnson, "Hillary Clinton", CC BY https://flic.kr/p/Cqz4d5
Matt Johnson, “Hillary Clinton”, CC BY

힐러리는 샌더스의 바람에 맞바람을 일으켜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을 ‘견뎌내서’ 이기는 전략을 쓰고 있다. 힐러리 지지자 중에서 절대로 힐러리를 배신하지 않을 유권자층을 가리켜 흔히 방화벽(firewall)이라고 하는데, 이는 달리 생각해보면 힐러리의 큰 약점이다. 방화벽은 물러나고 대피할 때 버티려는 목적으로 필요한 것이지 전진할 때 사용하는 메타포가 아니다. 얼마나 더 커질지 모르는 트럼프의 열풍을 그런 방화벽으로 버티겠다는 전략은 위험하다.

힐러리에게는 바람이 필요하다. 젊은 여성들처럼 ‘바람’이 될 만한 요소는 전부 샌더스에게 빼앗긴 채로 본선에 올라가면 안 된다. 자기 당의 강력한 지지기반이 자신을 심드렁하게 바라보고 상태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상대 후보를 본선에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는 존 매케인의 2008년 캠페인이 잘 보여 준다.

연방대법원과 텍사스의 낙태규제법

슈퍼 화요일 뉴스에 밀려서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최근 연방대법원이 낙태와 관련한 사건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선거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다. 스칼리아 대법관의 사후에 사실상 진보, 보수 판사의 숫자가 4 대 4가 된 상황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가장 뜨거운 이슈를 심의하게 된 것이다.

심의 대상은 (다른 주도 아닌) 텍사스주의 낙태규제법이다. 현재로써는 그 법에 반대하는 텍사스 지역 클리닉들에 유리한 상황이다. 보수 대법관 한 명이 없어진 상황에서 캐스팅보트가 되는 케네디 대법관이 낙태문제와 관련해서 진보적인 판결을 내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최종 결정은 6월에 내려진다. 각 당의 후보가 최종결정 되면서 일제히 세력 결집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각 당의 색깔을 가르는 판결이 나오면 어떤 결정이 되든 지지자들의 열기에 기름을 부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낙태 문제는 젊은 여성들에게 가장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젊은 여성 표를 샌더스에게 크게 빼앗긴 힐러리로서는 그들을 다시 찾아오는 동시에 뜨거운 이슈를 통한 바람을 일으킬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Gage Skidmore, Hillary Clinton with supporters, CC BY SA https://flic.kr/p/D5GXhU
Gage Skidmore, “Hillary Clinton with supporters”, CC BY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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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잘 읽고갑니다. 과거에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사실은 처음알았네요 역사는 반복되는걸까요.. 글작성 감사합니다

  2. 어제 공화당 디베이트 정말 대박이었어요ㅋㅋㅋㅋㅋ 항상 너무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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