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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인터뷰 44.]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재명 대통령의 통괘한 일성, 그 다음 숙제들.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이 말하는 인간과 노동. (⏰12분)

여는 말: 공개 국무회의에서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

“후진적 산재를 영구적으로 추방해야 한다.”
“다섯 명이 올해 일하러 갔다 돌아가셨다,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공사 현장에 가보면 하청의 하청, 하청의 하청의 하청이 반복된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한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닌가?”

“노동자의 사망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기업의 이익이 돼서는 안된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도 사람이다, 12시간씩 주야 맞교대로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산업재해가 거듭 발생할 경우 해당 기업은 회생이 어려울 만큼 강한 엄벌과 제재를 받아야 한다”

이재명(대통령), 국무회의, 2025.07.29.

지난 7월 29일 KTV채널과 유튜브를 통해 편집 없이 통째로 송출된 공개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했던 말들이다. 통쾌했다. 반가웠다. 그 말의 의미를 이상헌 박사(ILO 고용정책국장)에게 물었다. 이야기는 ‘고래힘줄’에서 이주노동자로 그리고 결국(?) 플랫폼 노동, 특히 로켓배송으로 상징되는 최첨단 후진국 노동으로 이어졌다.

로켓배송은 잘 눈에 보이지 않는 채로 숨겨진 산재 중에서도 그 암흑의 핵심이고, 그 핵심에는 기업만 악당처럼 숨어 있는 게 아니라 소비자와 노동자가 서로 다른 욕망의 풍경처럼 뒤섞여 있다. 그 숙제는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다. 그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살펴보자.

이상헌의 ‘제네바 인터뷰’ [ep. 45]

이재명 대통령의 반가운 원맨쇼:
문제는 다시 로켓배송이다

질문 정리: 민노, 답변: 이상헌

💡 알림 안내

이 글은 2025년 8월 1일(금)에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가독성을 위해 인터뷰어의 질문은 소제목 등으로 함축했고, 본문은 문답이 아닌 인터뷰이 이상헌 박사의 답변을 1인칭으로 정리했습니다. 최종 정리 과정에서 이상헌 박사가 직접 내용을 확인하고 퇴고했습니다.
🔖 여는 말: 민노(인터뷰어)
🔖 본문: 이상헌(인터뷰이)

이재명 대통령의 ‘일성’

세 가지로 그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동안 한국의 산재에 관해 고민하고 이야기하면서 느꼈던 갈증을 단번에 풀어주는 ‘일성'(一聲)이라고 할 만하다.

1. 정치라는 ‘퍼즐 조각’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우선 반갑다. 그리고 높게 평가한다. 아주 긍정적인 정치적 행위로 본다. 우리가 산재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 부족했던 점이 뭐였나. ‘정치의 의지’였다. 한국은 정책과 제도 차원에서는 다른 나라에 꿀릴 게 없는 나라다. 정책 실험도 많고, 행정력도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도 산재가 심각했던 이유는 ‘정치적 의지’의 결핍이었다. 그 점에 비추면, 이번 전체 공개한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이라고 할 만큼 그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SPC와 포스코이앤씨의 즉각적인 반응을 보면, 그 영향력을 알 수 있다.

2. 구체성의 문제

공정의 문제, 시간의 문제, 서로 상황이 다른 노동자의 문제에 관해서 언급했다. 막연하게 ‘산재 줄이자’는 차원이 아니라 왜 산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를 구체적인 작업 환경과 노동 시간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언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즉,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기존에 정치인의 언어와는 다른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다양하고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기존 대통령들이 하는 방식처럼 훈계하고 윽박지른다기보다는 각료들과 함께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그 질문을 통해서 과제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지난 공개 국무회의에서 빛난 건 대통령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담겨진 구체성이었다. 대통령은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과제와 해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려고 노력한 것처럼 보인다.
3. 현장성

현장성은 구체성과 비슷하지만, 좀 다른 개념이다. 아무리 사안에 관해 잘 알아도 직접 거기에 가봐야 아는 경우가 많다. 탁상에서 만든 정책이 아무리 구체적이더라도, 직접 현장에 가면 그 정책의 구체성이 좀 더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그런 면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의 접근 방식은 아주 좋았다.

한국 산재 문제 해결에서 이 세 가지가 가장 부족했는데, 이번에 이재명 대통령이 이 세 가지를 한번에 총족하는 행보를 보여줬다. 아직은 갈증을 모두 해소하기엔 첫걸음이긴 하다. 하지만 좋은 출발이고, 귀한 마중물이다. 사실 이런 실무적인 접근은 국무총리나 장관급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사안을 주재하고, 그 자리에서 문제 해소의 실마리가 나왔다는 점에서는 일부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반갑다.

특히 소년공으로서의 기억이 생생한 힘이 되고, 대통령 작업을 수행하는데 경험적 기초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586도 그렇고 모든 세상 이치가 다 그렇지만, 본인이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해서 세월이 지나도 영원한 민주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소년공이었다고 해서 지금도 노동자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관심이 있다면, 훨씬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이 나올 가능성은 크다. 역사에도 그런 사례는 많다. 물론 그 반대 사레도 있지만… 자신의 경험으로 본인 행동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한국 정치에는 그런 과오를 범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 대신에 지금 추진하는 일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발전시키고 키워나가면 좋겠다. 좀 더 이어서 이야기하면 또 다른 조건 하나가 더 필요하다.

4. ‘고래힘줄’

대통령과 고용노동부 장관도 현장 출신(?)이라서 서로 잘 맞는 것 같다. 하나 더 이야기하고 싶은 건, 산업재해 해결의 긴 여정, 그 구조적인 측면을 생각해봐야 한다. 첫 출발이 아주 좋지만, 정권 5년을 바라보면, 고래힘줄처럼 끈질기고 지속적으로 이 과업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좋다. 고래힘줄처럼 밀고 나가는 힘과 의지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현장을 잘 알고, 능력 있어 보이고, 전직 대통령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이런 분위기도 언제 그랬냐는 듯 일변할 수 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왜 개입하냐, 왜 시시콜콜하게 간섭이냐,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 원맨쇼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고래 심줄’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데, 시작은 원맨쇼로 했지만, 전사적인 차원으로 팀으로 조직으로 체계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국무회의 생중계도 좋지만, 이런 ‘쇼잉’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적인 실험이 필요하다. 대통령 원맨쇼는 정말 필요한 때가 아니라면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강력하게 드라이브 하는 건 당연히 필요한데, 사회적인 힘을 만들어내야 한다. 노동자의 힘을 만들고, 사회적 관심도 만들어내야 한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언제든 정치적 흐름은 바뀔 수 있다. 5년 내내 해야 하는 사업인데,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고, 5년 내내 작동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그건 노조의 힘일 수도 있고… 그런데 노조만의 힘만 필요한 게 아니라 무엇보다 소비자의 힘, 시민사회의 힘이 더해져야 한다.

보이지 않는 위협: 하청∙플랫폼∙이주노동자

‘고래힘줄’의 비유를 들면서 지속성 관점에서도 중요하고, 지금 당장 그 시작점으로도 중요한 게 있다. 한국 산재 구조와 관련이 있는 문제다. 대기업과는 접근 방식을 완전히 달리 해야 하는 진짜 산재 ‘암흑의 핵심’이다.

1. 산재는 대기업의 문제라기보다는 중소기업과 하청기업의 문제다

SPC나 포스코이앤씨 같은 대기업은 오히려 ‘목줄’을 잡기 쉽다. 당장 회장을 불러서 압박하는 방식은 오히려 쉬운 방식이다. 그런데 산업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곳은 대기업이 아니다. 중소기업이고 하청기업이다. 그래서 대통령도 하청과 비정규직 문제를 언급했지만, SPC가 산재에서 가진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그 산재의 공간과 그 빈도와 성격으로 보면, 한국 전체 산재에서 대표성을 가지는 건 아니다.

산재는 주로 건설현장과 하청기업에서 많이 일어난다. 이재명 대통령도 그걸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공사 현장에 가보면 하청의 하청, 하청의 하청의 하청이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산재가 집중적으로 많이 일어나는 곳, 거기에 좀 더 집중해서 어떻게 하면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인가에 관해서 구조적이면서도 더 촘촘하고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포스코이앤씨 홈페이지에 팝업 임시 게시물로 올라온 사과문. 2025.07.29.
초강수 빼든 대통령. 하지만 산재는 대기업 문제라기보다는 이대통령 말처럼 “하청의 하청의 하청” 문제다.
2. 배달 플랫폼 노동자의 문제

중소기업이나 하청보다 오히려 더 심각할 수 있는 측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플랫폼’이다. 플랫폼 노동자는 아예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폭염과 관련해서 택배업 종사자가 7월에만 3명이 사망했다. 배달 등에 종사하는 플랫폼 노동자는 어떨까? 아마 제대로 통계에 잡히지도 않고, 기사화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 배달 ‘특고’ 노동자들은 교통 사고 등으로 굉장히 많이 다치고 죽는다.

특고(특수고용) 형태 배달 노동자는 아예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이들 배달 노동자는 대부분 제도 바깥에 존재한다. 이들은 위험의 최전선에 내몰려 있다. 그 사실은 우리가 매일 접하는 도로 주변을 조금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3. 위험의 외주화, 이주노동자의 문제

그리고 세 번째로, 위험의 외주화라는 게 대통령 생각보다 정책 당국자 생각보다 그 진행이 아주 빠르다. 이미 많은 경우에 이주노동자에게 그 위험이 넘어가 있다. 그래서 ‘산재 사망을 줄인다’고 했을 때, 그 정책 목표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1. (한국) 노동자 산재를 줄인다
  2.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일터 산재를 줄인다

이 두 가지 정책 목표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아주 다를 수 있다. 당연히 정책 목표는 ‘일터의 산재’ 줄이기로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주노동자의 문제, 죽음의 외주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2023년 3월 경기도 포천 한 돼지 농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뒤 야산에 유기된 타이 출신 이주노동자 분추 프라바세눙의 장례가 고국 태국에서 치러지고 있는 모습. 유족 제공. 한겨레 재인용.

이재명 대통령이 ‘지게차’ 사건에 관해 아주 강도 높게 비판했는데, 그것도 시작은 아주 좋다.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인권과 인류애에 바탕해 즉흥적이고 감성적인 반응을 표현했다. 이런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런 반응은 이전에도 자주 있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선 좀 많았다. 물론 윤석열 정부에서는 적어도 노동계에 대해선 그런 반응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아주 예외적인 정부였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는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공감이랄까, 연민이랄까, 그런 것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각설하고, ‘지게차’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개별적인 반응에 멈출 게 아니라 그 당연한 목소리, 당연한 인간적인 반응을 사회적인 힘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무리 대통령의 일성이 강력한 힘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성을 사회의 메아리로 거대한 고함으로 만들지 않으면 쉽게 지워진다. 그걸 메아리로, 고함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소비자고, 노동자이며, 국민이다.

지금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격적인 보호막, 그런 제도가 있는가? 없다. 출발은 좋지만, 대통령의 ‘원맨쇼’는 훌륭하지만, 그게 반복하면 좋지 않다. 그리고 그런 ‘독무대’는 장기적으로는 좋지 않은 방식이다. 개인기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고, 그런 방식은 지속적일 수도 없다.

지게차 사건의 ‘진짜’ 해법

앞서 잠깐 사례로서 이야기한 스리랑카 지게차 노동자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이 사례에서 바람직한 해법은 뭘까?

이 사례는 사회적으로 그야말로 ‘난리’가 난 사건이다. 무려 대통령이 나서서 한마디하고, 지역 시민단체도 나서면, 회사와 가해자는 사과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인 스리랑카 노동자도 다소 예외적인 보호를 일시적으로 받을 수 있거나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이 사건에서 스리랑카 노동자는 이직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해자를 고소하지는 않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건 그 개인의 선택이긴 하지만, 그 이유가 ‘더는 가해자와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한다.

거기에 힌트가 있다. 이렇게 세상을 뒤집어 놓은 사건에서조차 피해자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을 힘들어 하고, 두려워한다. 그런데 이렇게 알려진 사건은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고, 뉴스에서 온통 지게차 영상을 보여주는 ‘인권 침해’ 사건은 오히려 드물게 밝혀진 경우라고 봐야 한다.

대통령의 한마디는 반갑고 인간적이며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늘 모든 사안에 대해 그럴 수는 없고, 그게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런데 이런 유사한 일이 잘 알려지지 않는 채로 다른 이주노동자에게 생겼다면? 그런 경우가 훨씬 더 많을 텐데, 피해자가 불이익 당하지 않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가해자가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처벌받는 것을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해법’이라고 한다면, 그런 해법은 아직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민청을 만들어서 통합적으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늘 이야기했다. 이주노동자 문제를 파편화한 개별 사건으로 변죽만 울리는 것은 해법에 닿기 어렵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개별적인 사건 하나가 튕기듯 뉴스화하면 거기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그걸로 땡치는 방식으로 때우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이런 파편에 대한 파편적이고 일시적인 반응이 아니라 전체적인 체계와 시스템이다. 이민청과 같은 체계적인 관리 조직이 필요하고, 이주에 관한 전체적인 그림과 원칙과 구체적인 방법론 그리고 그런 바탕 위에서 쌓아가는 사회적 다양성에 관한 축적된 문화 자본이 필요하다.

물론 모든 시작은 감정적인 반응이다. 인간적인 분노 혹은 연민이다.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좋다. 다 그렇게 시작한다. 그런 그런 분노와 연민, 대통령의 일성을 통해서 감정적인 카타르시스의 공유에만 그치지 말고, 지속적인 반응과 대응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게 ‘해법’이다. 대통령의 일성이 없으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면, 그게 오히려 문제다. 문재인 정부에서 그런 아쉬움이 많았다.

‘로켓배송’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SPC 산재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특히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문제(12시간 노동 문제)를 언급했다. 이 문제는 제조업만의 문제는 아니고, 서비스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노동시간 문제가 드러나는 방식은 좀 다르다. 예를 들면, SPC 12시간 맞교대는 쿠팡의 로켓배송 노동자의 지속적인 야간 노동과 비슷하게 노동자의 피로를 가중하는 장시간 노동이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로켓배송 노동자의 장시간 야간 노동은 SPC의 12시간 맞교대와도 좀 다르다.

지난 인터뷰(참고: 쿠팡 방정식: 소비자와 택배기사의 오징어 게임)에서 이미 자세히 다룬 것처럼, 서비스업에서 가장 괴로운 게 새벽 맞교대인데, 로켓배송은 심지어 ‘맞교대’ 개념 자체가 없는 장시간 야간 노동이고(참고: 쿠팡 클렌징을 아십니까), 대다수 택배 노동자가 ‘특고’ 형태의 간접 고용이라서 근로기준법의 문제도 아니며, SPC와 같은 ‘공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적∙장소적인 제약도 없기 때문에 제도적인 범위, 그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앞서 내가 이야기한 모든 문제의식이 함축된 질문은 아주 간단하다:

로켓배송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전 세계에서도 그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교대 개념조차 없는 장시간 야간 노동’. 통계에도 잡히지 않고,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암흑의 핵심, 그 깊은 곳에 존재하는 로켓배송.

자본과 고도화한 디지털 알고리즘에 의해 플랫폼 노동자의 시공간은 제도 바깥으로 무한 확장한다. 그에 비해 제도의 그물은 너무 헐겁다. 이에 대응할 만한 정책적 제도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그 돌파구가 ‘소비자’에서 나올 필요가 있다. 소비자 편익을 어느 정도 줄여나갈 수밖에 없다. 로켓배송을 줄여도 좋다거나 새벽 배송은 없어도 된다는 방식이 필요하다. 물론 어려운 문제다.

굳이 소비자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더라도, 제도적으로 그런 ‘편익 감소’를 소비자가 감수해야 한다. 정치적이고 사회문화적이며 심리적인 문제다. 쿠팡의 경우에,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와는 달리, 개별 소비자 각각의 편익에 관한 문제라서 더 어렵다. 즉,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는 전통시장 상인이 목소리를 높이고, 일반 시민도 이를 어느 정도는 용인했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영업시간 규제가 가능했다. 그런데 쿠팡의 새벽배송 서비스에서는 그런 소비자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다. 나처럼 정책을 고민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만약에 ‘쿠팡’ 노동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다면, 생산과 소비와 서비스가 다 섞여 있는 이 문제를 우리 사회가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의미는 크다. 많은 이해당사자가 연결된 사회적∙경제적∙정치적으로 뒤엉킨 이런 난제를 풀 수 있다면, 돌봄 노동과 같은 다양다기하고 복잡한 문제도 풀 수 있다. 그런 해법을 얻을 수 있다. 그만큼 어렵고, 그만큼 도전할 가치가 있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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