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의 시선: AI의 지역적 맥락] 소버린 AI 구축을 위한 예산은 빅테크 기업의 연간 R&D 예산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다. 하지만 ‘디지털 영토’를 뺏기지 않으려는 각 국가들의 법적, 정책적 노력은 계속된다. (⌚8분)
🎡 디케포럼, ‘인공지능의 지역적 맥락’ (4회 연재)
다케포럼은 디케입법정책연구원을 모체로 합니다. 디케입법정책연구원은 기술의 사회적 가치, 인간다움과 윤리, 젠더와 환경에 대한 고려에 기반해 실현가능한 입법과 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했습니다. 디케입법정책연구원은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 현안에 대한 토의를 위해 ‘디케포럼’을 개최하고 그 내용을 ‘디케의 시선’으로 정리하여 발표합니다. 디케의 시선은 발제문에 참석자들의 격렬한 토론을 더해서 정리합니다. 향후 4회에 걸쳐 ‘인공지능의 지역적 맥락’을 짚어나갈 예정입니다. 첫 포럼에서는 김유향 디케입법정책연구원장이 발제를 맡았고 김보라미, 주한나, 임지선 운영위원이 참여했습니다.
1. 소버린 AI 전략, 핵심은 자율성이다
2. AI 시대, 국가별 생존 방정식
“AI 주권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미국의 거대 모델에 대한 의존은 디지털 식민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루치아노 플로리디(Luciano Floridi), 2024.
국경 없는 AI 시대, ‘국가’ 앞세워야 하는 역설
국경 없는 인공지능 서비스 시대인데, 역설적으로 어느 때보다 ‘국가’를 앞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인공지능의 거대한 돌풍 앞에서 각 국가는 식민지가 되지 않으려 내달리고 있다. ‘기술적 폐쇄성’으로 흐르지 않으면서 ‘디지털 영토’를 지켜낼 방법은 무엇인가? 현재 각 국가들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AI 전략은 어떻게 같고 어디부터 다른가?
들어가기에 앞서, 이런 주제를 다룰 때 난감한 지점을 먼저 털어놓는다. 인공지능 기술과 서비스 만이 아니라 인공지능 이슈에 대한 연구와 자료 자체도 편향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국 발 논의가 압도적이다. 미국의 국가 이익을 전제한 미국 싱크탱크발 정보에서 소버린 AI 이해의 지표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소버린 AI에 대해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적 논의들이 넘쳐나는 이유이다. 인공지능의 지역적 맥락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한국의 소버린 AI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어려운 이유이다.
이전에는 개별 국가의 인공지능 경쟁력이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가졌느냐, 혹은 얼마나 똑똑한 알고리즘을 구축했느냐에 달려 있는 듯 보였다면, 지금 그 중심축은 ‘컴퓨팅 인프라의 확보와 지속가능성’으로 이동했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주장한다. 나아가 AI 컴퓨팅 역량은 더 이상 단순한 IT 인프라 및 산업 지표가 아니며 국가 주권과 경제적 회복탄력성, 과학기술 혁신 역량을 규정하는 이른바 ‘근본 통화(Fundamental Currency)’가 됐다고 분석한다.

‘디지털 식민주의’에서 벗어날 각국의 소버린 AI 전략
OECD의 ‘국가별 AI 컴퓨팅 역량 비교 분석’ (2026) 보고서는 이 같은 흐름을 여실히 보여준다. 2023년 이후 상위 3개국 즉 미국, 중국, 영국과 나머지 OECD 회원국 국가들 사이의 공공 AI 연산 자원 격차가 400%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극단적인 ‘컴퓨팅 격차’가 인재들이 인프라를 찾아 떠나는 ‘두뇌 유출’을 가속화하고 중견국들의 기초 과학 생태계를 더욱더 붕괴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드웨어 자원이 부족한 국가가 결국 소프트웨어와 인재 경쟁력까지 연쇄적으로 상실하게 되는 구조적 악순환을 드러낸 셈이다. 이 분석에서 OECD는 AI 컴퓨팅 역량을 단순히 보유한 GPU의 개수로 측정하지 않고
- 공공 및 민간의 총 연산량(Total Available FLOPs),
- 연구자 접근성(Accessibility),
- 에너지 효율 및 전력망 연계성(Energy Sustainability)을 지표로 평가했다.
유럽, 미∙중 의존성에 대한 경계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아남고, 이른바 디지털 식민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한 각 국가별 소버린 AI 전략은 무엇인가? 우선 유럽은 ‘규제의 방패와 보조금의 창’ 전략이다. 유럽은 최초의 ‘인공지능법(AI Act)’을 만들고 강력한 법적 틀을 방패로 사용하는데 이는 기술적 열세를 규제적 우위로 상쇄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즉 유럽연합의 ‘인공지능법’은 단순한 안전장치가 아니라, ‘유럽 내 시장을 유럽적 가치에 맞게 재편하려는 주권적 도구’이다.
더불어 유럽은 인공지능 경쟁에서 개별 국가의 자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디지털 유럽 프로그램(Digital Europe Programme)’과 ‘유로HPC 공동사업(EuroHPC JU)’을 통해 예산을 통합 집행하고 있다. 유로HPC 공동사업은 유럽연합(EU)과 회원국, 그리고 민간 파트너가 함께 운영하는 초고성능 컴퓨팅(HPC) 공동 이니셔티브이다.
2021년부터 2027년까지 총 예산 약 70억 유로(약 10조 2,000억 원)를 투입, 세계적 수준의 슈퍼컴퓨터(LUMI 등)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디지털 주권을 강화하는데 있다. 즉 미국이나 중국의 슈퍼컴퓨팅과 인공지능 인프라에 의존하지 않고 유럽 자체의 계산능력과 데이터 처리 역량을 확보하는데 그 목표가 있다. 이를 통해 핀란드의 LUMI-Q, 이탈리아의 LEONARDO 등 최상위권 공공 슈퍼컴퓨터를 성공적으로 구축했으나, 민간 영역의 컴퓨팅 자본 투자는 여전히 미국에 크게 뒤처진 상태다.

2023년 말에서 2024년 초에 추가된 ‘AI Factory 이니셔티브’는 약 21억 유로를 배정해 연구자와 스타트업들이 고성능 컴퓨팅 자원에 접근하여 소버린 LLM을 학습시킬 수 있는 ‘전용 컴퓨팅 시간’을 구매해준다. 프랑스는 유로HPC 공동사업을 활용해 독자적으로 25억 유로(약 3조 6,000억 원)를 더 투입해 이 중 5억 유로는 ‘미스트랄 AI(Mistral AI)’와 같은 로컬 챔피언 육성에, 나머지 20억 유로는 저전력 AI 반도체 개발과 인재 양성에 쓰고 있다. 프랑스의 미스트랄과 독일의 알레프 알파(Aleph Alpha)와 같은 ‘국가 챔피언’ 모델들은 효율적인 소형 모델(sLLM)과 투명한 오픈소스를 무기로 빅테크의 폐쇄적 생태계에 대응하려는 소버린 AI 노력의 일환이다.
유럽의 소버린 AI 노력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OECD는 유럽연합의 공공 컴퓨팅 인프라 투자가 회원국 간의 데이터 공유라는 측면에서 모범적이지만, 인프라 접근을 승인받기 위한 복잡한 관료적 절차가 실제 스타트업들의 모델 학습 주기를 평균 4.5개월 지연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연합의 정책과 경제문제를 다루는 브뤼셀 기반의 싱크탱크인 브뤼겔(Bruegel)은 유럽의 과도한 규제가 혁신 속도를 저해하고 민간 자본 유입을 방해한다며, 규제만으로는 기술자율성 확보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문제는 유럽적 가치에 맞는 AI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하는가이다.
일본, 가장 친화적인 AI 국가 목표… ‘AI 부활론’ 열풍
일본은 2025년 ‘AI 기본계획(Artificial Intelligence Basic Plan)’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AI’를 앞세워 세계에서 가장 AI 친화적인 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동시에 소버린 AI 개념을 국가 전략에 포함시켜 미국·중국 의존을 줄이고 자국 내 대형 모델과 인프라를 육성하고자 한다.
특히 보조금 지급을 통한 민간 클라우드 육성과 자국어, 문화, 사회적 맥락에 맞는 국내 대형언어모델을 개발하고, 저전력 GPU, 데이터센터, 인재 확보를 통한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본은 정부가 공공 슈퍼컴퓨터를 직접 짓기보다는, 사쿠라 인터넷(Sakura Internet)이나 소프트뱅크 등 민간 기업이 엔비디아(NVIDIA) 칩을 구매할 때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비용의 최대 50%를 보전)하는 정책을 쓴다.

경제산업성은 GPU 확보를 위해 민간 협력 포함 약 2조 엔(약 18조 원) 규모의 보조금을 투입하며, 소프트뱅크와 라쿠텐의 자체 데이터센터 구축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사쿠라 인터넷에 약 500억 엔, 소프트뱅크(SoftBank)에 약 420억 엔을 지원해 총 1만 장 이상의 H100/B200 GPU 서버군을 확보하도록 했다.
OECD는 “일본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약 2조 엔 규모의 보조금을 통해 민간 데이터센터의 GPU 집적도를 OECD 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인 연산력 확보에는 유리하지만, 미국 하드웨어(Nvidia) 의존도가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음을 의미하며 장기적인 하드웨어 주권에는 기여하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일본 내에서는 잃어버린 IT 주권을 AI에서 찾겠다는 ‘AI 부활론’이 일고 있다. 일본 AI정책자문위원이자 도쿄대 교수인 마츠오 유타카는 ‘소버린 AI전략’이라는 2025년 저서에서 일본어 데이터와 제조업 강점을 결합해 국가 정체성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려는 방향을 강조한다. 일본어 특화 LLM인 ‘Llama-3-일어 변형’ 모델 개발과 더불어, 제조 현장의 로봇 공학에 AI를 이식하는 피지컬 AI에 주력하는 것은 그 일환이다.
인도, 실용적 전략 ‘시티즌 스택’ ‘바시니’
인도는 디지털 공공 인프라 기반의 포용적 소버린 AI 전략을 구사한다. 거대한 인구와 데이터라는 자산을 무기로, 미국 빅테크의 기초 모델(Foundation Model) 생태계와 경쟁하는 대신 “국민에게 닿는 최종 서비스(Application)와 언어 주권”에 예산을 집중하는 실용주의적 전략이다.
인도 사례는 국가 AI 생태계가 모든 것을 중앙에서 통제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나 ‘소버린 AI’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다른 길을 보여준다. 즉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모델을 직접 통제하기 보다는 행정, 의료, 교육, 농업 등 국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집중하고, 다양한 언어, 지역, 산업을 포괄하는 국가 특성상 하나의 중앙집중형 모델보다 상호운용 가능한 시스템을 통해 진정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도는 기초 모델 경쟁을 포기하고 ‘시티즌 스택(Citizen Stack)’에 집중하고 있다. 수백조 원이 드는 범용 거대언어모델(LLM)을 기초부터 새로 만드는 대신 기존의 글로벌 오픈소스 모델(메타의 Llama 등)을 가져와 자국의 방대한 ‘디지털 공공 인프라, 예를 들어 생체인식 신분증 아드하르(Aadhaar)나 통합 결제 인터페이스 UPI 등과 결합하는 전략을 통해 정부 행정, 의료, 금융에 특화된 소버린 AI 에이전트를 배포하는 데 집중한다.

동시에 인도는 22개의 공식 언어와 수천 개의 방언이 존재하기에 서구 중심의 AI가 인도인들을 소외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 주도로 ‘바시니(Bhashini)’라는 국가 언어 번역 AI 플랫폼을 구축했다. 바시니는 2026년 초 인도의 자체 클라우드와 GPU 인프라로 완전히 이전되어 ‘소버린 AI’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 받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AI가 자국의 문화적, 언어적 다양성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규범적 주권의 대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인도는 하드웨어 인프라 소유권(Compute)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데이터(Data)와 서비스 플랫폼(Application)을 국가가 통제하면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고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AI 리더로 군림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이다.
싱가포르, ‘틈새’ 전략…관문으로서의 주권
싱가포르는 강대국들과 기술로 정면충돌하는 대신, ‘동남아시아 문화권의 데이터 맥락(Context)’이라는 빈틈을 파고들어 이 지역에 진출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Gateway)으로서의 주권을 확립하려 하고 있다. 영어·중국어·말레이어·타밀어 등 다언어 환경을 가진 싱가포르는, 글로벌 모델이 잘 반영하지 못하는 동남아시아 특유의 언어·문화 데이터를 AI에 반영하는 데 집중하고, 이를 통해 단순히 기술 경쟁이 아니라, 문화적 주권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한다.
싱가포르 정부와 동남아시아 연구자들이 협력해 개발한 다언어 대형 언어모델 프로젝트 SEA-LION(Southeast Asian Languages in One Network) 모델은 영리한 틈새시장 공략법이다. 영어 중심의 글로벌 빅테크 모델들이 잘 다루지 못하는 동남아시아 지역 언어(인도네시아어, 태국어, 베트남어 등 11개 언어)에 특화된 소형 모델(sLLM)을 선제적으로 개발하여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미국·중국·EU처럼 대규모 슈퍼컴퓨팅이나 범용 LLM 경쟁에 뛰어들기보다는, 지역적 특수성과 응용 분야에 집중하는 전략이다.

싱가포르는 좁은 영토와 부족한 자원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빅테크와의 신뢰할 수 있는 국제적 파트너십을 통해 아시아 지역의 AI 거점(Hub) 역할을 수행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자체적인 클라우드 기업이나 AI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을 키우는 대신, 구글, MS, AWS 등 글로벌 기업들의 데이터센터를 자국 내에 유치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단, 정부가 요구하는 강력한 보안 지침과 가이드라인을 따르도록 강제함으로써 물리적 인프라 없이도 ‘행정적·법적 통제권(Governance)’은 확보하려 하고 있다.
한국, ‘풀스택’ 야심찬 포부
이들 국가들의 소버린 AI 노력들을 볼 때, 한국의 ‘풀스택(Full-stack) 자립’은 야심차게 보인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의 우위를 바탕으로 NPU(신경망처리장치)와 클라우드, 모델을 모두 국산화하려는 유일한 중견국가다. OECD 보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컴퓨팅 역량이란 단순히 최신 GPU를 얼마나 많이 수입하여 창고에 쌓아두느냐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즉, AI 시스템을 가동할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국가의 핵심 연구자와 기업들이 장벽 없이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연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쿠다(CUDA) 생태계의 소프트웨어 장벽을 넘기 위한 전환 비용이 한국 민간 시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면서, 이상적인 정책 목표와 시장의 현실적 선택(Nvidia 선호) 간의 극심한 괴리가 관찰된다”고 우려한다. 한국의 소버린 AI 정책과 향후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에 자세히 논의해보고자 한다.

이처럼 소버린 AI를 추구하는 모든 국가들이 미국과 중국으로부터의 ‘기술적 독립’을 외치지만 소버린 AI 구축을 위한 예산은 빅테크 1개 기업(MS, Google)의 연간 R&D 예산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이다. 지금 인공지능 세계에서 미국산 하드웨어(Nvidia)와 미국산 프레임워크(PyTorch 등)에서 자유로운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인공지능 시대 ‘디지털 영토’를 뺏기지 않으려는 각 국가들의 법적, 정책적 노력이 부질없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