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의 시선] 우리에게 ‘소버린AI’는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5분)
🎡 디케포럼, ‘인공지능의 지역적 맥락’ (4회 연재)
다케포럼은 디케입법정책연구원을 모체로 합니다. 디케입법정책연구원은 기술의 사회적 가치, 인간다움과 윤리, 젠더와 환경에 대한 고려에 기반해 실현가능한 입법과 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했습니다. 디케입법정책연구원은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한 현안에 대한 토의를 위해 ‘디케포럼’을 개최하고 그 내용을 ‘디케의 시선’으로 정리하여 발표합니다. 디케의 시선은 발제문에 참석자들의 격렬한 토론을 더해서 정리합니다. 향후 4회에 걸쳐 ‘인공지능의 지역적 맥락’을 짚어나갈 예정입니다. 첫 포럼에서는 김유향 디케입법정책연구원장이 발제를 맡았고 김보라미, 주한나, 임지선 운영위원이 참여했습니다.
1. 소버린 AI 전략, 핵심은 자율성이다
“‘챗지피티(ChatGPT)가 있는데 소버린 AI를 왜 개발하냐, 낭비다’라는 얘기는 ‘베트남에 쌀 생산 많이 되는데 뭘 농사를 짓냐, 사 먹으면 되지’ 이런 얘기와 똑같은 것”
이재명 대통령, 2025년 6월20일.
2026년, 한국은 ‘소버린AI’를 국가전략 목표로 설정한 뒤 전력질주하고 있다. AI 시대에 지역맥락의 AI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는 지금 AI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게 있어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우리에게 ‘소버린AI’는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사이버 주권’보다 확장된 ‘AI 주권’ 개념
우선 ‘소버린 AI’ 개념이 출현한 배경부터 정리해보자. 과거 인터넷 시대의 ‘사이버 주권’이 주로 데이터의 현지화나 플랫폼 통제에 머물렀다면, 인공지능(AI) 시대의 주권 개념은 반도체, 에너지, 데이터, 모델, 응용 서비스에 이르는 전방위적인 영역으로 확장됐다. AI 주권 논의는 ‘AI 인프라, 데이터, 모델’의 전략적 중요성과, 소수의 기업과 관할권에 대한 의존 심화 속에서 본격화 됐다. 기술 패권 경쟁과 국가 역량 재편이 맞물린 결과 등장한 것이 ‘소버린 AI’ 논의다.
현재 AI를 주도하는 국제 질서는 미∙중 양대 중심축 간의 경쟁 구도로 고착화되었으며, 다수 국가는 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전략적 딜레마에 놓여있다. 각국은 안보, 경제 성장, 문화적 자율성을 위해 소수 기업과 국가(미국,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자 하고 있다. 결국 소버린 AI는 미국 혹은 중국과 같은 초강대국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오히려 중견국이 자신의 선택지를 보전하기 위해 채택하는 전략인 셈이다.

논의의 출발점은 ‘소버린 AI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① 어느 층위에서 어떤 정도의 통제가 필요한가 ② 무엇을 국내화하고 무엇을 국제협력으로 조달할 것인가 ③ 국가의 통제력 강화가 시민의 권리와 시장의 역동성을 훼손하지 않게 하려면 어떤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한가에 대해 세밀하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소버린 AI’ 논의 초기에는 이 문제가 ‘자급자족’의 문제로 다뤄졌다. 마치 경쟁에 뒤쳐진 국내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내놓은 구호처럼 이해되기도 했다. 때문에 글로벌 빅테크 중심의 강대국간 패권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이란 나라의 ‘소버린 AI’ 시도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기술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 시선은 ‘통제 가능한 행위능력’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소버린 AI의 개념은 ‘절대적 독립’ 주장이라기보다 ‘부분적이고 복합적인 자율성’ 쪽에 가깝게 됐다. 해외 연구기관은 소버린 AI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몇 가지를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 “국가가 독립적으로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통제·규제할 수 있는 능력”🔖1.
- “주권이란 연속적인 스펙트럼이며, 어느 국가도 100% 독립할 수는 없으며,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어느 정도의 통제력과 협상력을 가질 것인가’의 문제”🔖2.
- “AI 주권은 ‘완전한 자급자족(autarky)’이 아니라, 중요한 AI 인프라의 구축, 사용, 도입에 있어 국가가 독립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전략적 스펙트럼’”🔖3.
- “소버린 AI를 인프라 소유로 오해해서는 안 되며, 전략적 통제와 회복탄력성을 확보하는 투자 조합이 중요하다.”🔖4.
단순한 국산화 아닌 ‘행위능력’ 확보
한국 연구기관들 역시 소버린 AI를 세분화해 정의해나가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소버린 AI를 기술주권론의 네 요소, 즉 “① 전략적 기술 식별 ② 의존의 관리 ③ 거버넌스 설계 ④ 사회·민주적 맥락을 AI 분야에 적용해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소버린AI를 “국가 AI 이니셔티브 확보를 위한 R&D 전략 관점”에서 정의하고 그 검토 범위로 초거대 언어모델(LLM), 국방AI, 컴퓨팅 인프라를 망라한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도 중견국의 소버린 AI는 “단순한 ‘국산화’, ‘관할권 확보’를 넘어 자국의 AI 안보·경제·정체성을 스스로 설계·조정할 수 있는 ‘행위능력’ 확보”에 맞춰야 한다고 설명한다.
소버린 AI 개념의 주요 층위로 좀 더 들어가보자. ① 기술적 층위 ② 정책적 층위 ③ 규범적 층위로 나눠 살필 수 있다. 우선 기술적 층위에서는 데이터, 컴퓨트, 모델, 클라우드, 인력, 에너지에 대한 통제력의 문제다. 정책적 층위 측면에서는 공급망 충격이나 외교적 압박 속에서도 자국 우선순위에 따라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율성이 핵심이다. 규범적 층위는 자국 언어·문화·법질서·권리보호 원칙을 반영할 수 있는 민주적 행위능력을 포괄한다. 즉, 소버린 AI는 기술 프로젝트이면서 동시에 산업정책, 외교전략, 공공조달, 그리고 헌법적 통제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소버린 AI의 실현은 ‘자율성’과 ‘상호의존성’의 동시 관리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 ‘풀스택 AI 주권’은 사실상 거의 모든 국가에서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AI는 광물, 에너지, 컴퓨팅 하드웨어, 네트워크, 디지털 인프라, 데이터 자산, 모델, 애플리케이션 등 전 영역에 걸쳐 병목점(choke points)이 집중되어 있는 초국가적 스택(transnational stack)이기 때문이다. 광물·에너지·컴퓨트 하드웨어·네트워크·데이터·모델·인재·거버넌스 전반에 걸쳐 병목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한 통제’ 역시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계층별 의존관계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실현가능한 개입’에 우선순위를 둬 공급자와 파트너를 다변화하고 상호운용성과 이식성을 내재화한 ‘관리된 상호의존(managed interdependence)’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어떤 조달이 단지 ‘상징정치’인지 검증해야
따라서 중견국이 취할 수 있는 네 가지 경로는 ‘특화(specialize), 정렬(align), 공유(share), 헷지(hedge)’다. 이러한 전략들이 ‘완전한 주권’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행위능력’을 제공한다 하겠다. 한국 맥락에서 풀자면 한국의 목표는 ‘전략적 자율성’이어야 한다. 미·중식 전면적 ‘풀스택 경쟁’을 복제하려 하기보다 핵심 취약 영역을 줄이고 협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한국의 ‘AI 풀스택’은 미·중과 같은 AI 강대국의 전 분야 독자 생태계 구축 및 우위 확보 ‘풀스택’과는 차이가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버린 AI는 전력정책, 산업정책, 공공데이터 정책과 분리될 수 없다. 데이터센터의 경우도 건설 자체보다, 전력가격, 냉각, 반도체, 공공GPU 인프라의 경제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어떤 영역에서 국산·오픈소스·상용모델을 어떻게 조합할지 판단해야 하며 어떤 조달이 실제로 기술 주권을 높이는지, 어떤 조달이 단지 ‘상징 정치’인지 검증해 나가야 한다.

앞으로 소버린AI 논의의 핵심은 ‘얼마나 자립할 것인가’보다 ‘어떤 의존을 감수하고 어떤 의존을 줄일 것인가’에 있다. 기술 로드맵, 거버넌스와 조달 규칙, 시스템 설계와 표준 그리고 주권 담론이 실제로 어떤 비용과 효익을 낳는지 검증하는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소버린 AI를 실제로 제약하는 병목이 무엇인지 살피고 소버린 AI를 어떤 방식으로 실제 제도에 구현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주권성(sovereignty), 안전성(safety), 비용(cost), 자원 역량(resource capability), 문화적 적합성(cultural fit),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이 분야의 공공조달이 단순한 예산 집행이 아니라 사실상의 국가 전략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소버린 AI는 국가 능력의 확대일 뿐 아니라 권리 침해 가능성의 확대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소버린 AI 체계가 ‘디지털 권위주의’의 도구가 될 수 있고 ‘개인의 권리’를 침식할 수 있다. 국가 엘리트가 AI의 초국경 경쟁을 강하게 인식할수록 ‘강제적, 착취적, 전달적, 정보적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투자하게 되며, 따라서 소버린 AI 경쟁은 기술 경쟁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국가형성의 계기가 된다. 예측기술과 선제적 개입이 확산될수록 가장 힘없는 집단의 자율성이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이다. 소버린 AI 담론이 국가의 역량과 통제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흐를 때, 가장 먼저 위축되는 것이 사회적 약자의 자율성일 수 있다.
국가 역량 강화와 민주적 통제 동시 설계
정부가 소버린 AI를 추진할수록, 데이터 접근권, 공공조달권, 인증 및 평가권, 인프라 배치 권한, 안전기준 설정 권한이 국가 안으로 더 집중될 수 있다. 그렇기에 소비린AI 정책 추진 시 국가역량의 강화와 민주적 통제를 어떻게 동시에 설계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물어야 한다. 소버린 AI가 국가의 역량을 높일수록, 예측행정·감시·자동화된 의사결정이 확장될 수 있다.
따라서 공공부문 AI에는 설명가능성, 이의제기권, 차별영향평가, 기록보존, 독립감사, 안전성 검증 의무가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AI 생태계를 위한 다자외교와 지속가능성과 신뢰성을 매개로 규범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 한복판에 우뚝 선 것이 ’소버린 AI’ 논의여야 한다.

🔖 참고 문헌
1. Shrier et al., 2024/2025.
2. Shalabh Kumar Singh, Shubhashis Sengupta, 2025.
3. Brookings, 2026.
4. 세계경제포럼(WEF), 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