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솔루션 공동 기획] 에너지 전환? 화석 연료 중심의 전력 거버넌스 개편이 전제 조건… 골든 타임 임박, 전환 지연 비용까지 계산해야 한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 한국의 에너지 자립도는 22%다. 두 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전기 요금이 요동을 친 건 당연한 결과다.
당장 부족한 화석연료를 어디에서 끌어올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대외 의존도를 낮추고 재생 에너지 비율을 끌어올리는 게 절박한 과제다.
정부가 최근 공개한 에너지 전환 계획의 디테일을 분석해 보자.
이게 왜 중요한가.
- 정부의 야심만만한 계획이 구호와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실행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 당장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30년까지 재생 에너지를 100GW로 늘리겠다는 입장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 재생 에너지는 단순히 많이 짓는 것 뿐만 아니라 연결돼야 하고, 팔려야 하고, 공정하게 보상받아야 한다. 모든 과정에서 예측 가능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전력 시장 개편도 함께 가야 한다.
- 재생 에너지를 늘리는 데 네 가지 병목이 있다.

첫째, 출력 제어: 가장 만만한 게 재생 에너지였다.
- 전기는 발전과 소비가 정확히 맞아 떨어져야 한다. 공급이 부족하거나 넘치면 블랙아웃(정전)이 발생한다.
-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출력 제어를 해야 하는데 이때 가장 만만한 게 재생 에너지다. 석탄 발전소는 완전히 식은 상태에서 가동하기까지 8시간에서 24시간까지 걸린다. LNG 발전소는 3시간 정도, 원자력 발전소는 아예 2~3일을 잡아야 한다.
- 그래서 전력 공급이 넘치면 만만한 재생 에너지의 스위치를 내리는 게 그동안의 관행이었다.
- 재생 에너지가 껐다 켤 때 걸리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선택의 문제다. 출력 제어를 예외적인 조치가 아니라 상시적인 관리 수단으로 쓰고 있다는 게 문제다.
- (아래는 재생 에너지 출력 제어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간략한 시뮬레이션이다. 당장 재생 에너지의 스위치를 내리는 건 쉽지만 장기적으로 재생 에너지 확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선착순 계통 접속 구조가 문제다.
– 전기를 내보내려면 한전에서 선로를 배정 받아야 한다. 업계 용어로 계통에 들어가야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 문제는 송전선과 변전소의 용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로 진입한 발전 사업자는 일단 계통 접속 대기열에 배정되는데 사실상 선착순에 가깝다.
– 11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 따르면 석탄 발전소를 LNG 발전소로 전환하면서 석탄 발전소의 접속 선로가 그대로 LNG 발전소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 선착순이 아니라 사업의 진척도와 폐지된 석탄 발전 선로의 재사용 가능성, 무엇보다도 재생 에너지 확대라는 목표와 정합성 등이 기준이 돼야 한다. 지금처럼 먼저 줄을 선 사업자가 가져가는 구조에서는 재생 에너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둘째, 재생 에너지를 만들어도 팔 곳이 없다.
- 한국의 재생 에너지 사업자는 툭하면 출력 제어를 당하고 전력구매계약(PPA) 시장은 가로막혀 있다. 정작 재생 에너지를 조달하려는 기업은 불투명하고 비싼 망 이용료를 부담해야 한다.
- 한국전력공사가 송전-배전과 판매 부문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발전 자회사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구조에서는 PPA 시장을 키우기 어렵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 재생 에너지를 구입하려는 기업이 PPA 시장으로 빠져 나가면 한전의 점유율이 줄어들고 수익성도 악화된다. 한전이 고정비 부담을 이유로 별도의 PPA 요금제를 도입하려 했던 것도 이런 구조적 이해 상충과 무관하지 않다.
- 2022년에 한전이 도입하려 했던 PPA 요금제는 산업용 전력 기본 요금이 일반 요금제의 1.5배까지 오를 수 있어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다. 일단 무기한 연기되긴 했지만 애초에 비용 구조 등이 불투명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 한전 입장에서는 그동안 투자한 비용이 있으니 이용료를 받는 건 당연하지만 공정성 논란을 피하려면 구체적으로 비용 구조를 밝혀야 한다.

송전망을 늘리면 해결될까.
– 쉬운 문제가 아니다.
– 정부는 재생 에너지를 34GW에서 2030년 100GW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345kV 송전선로 5개 루트와 서해안에 해저 HVDC 2개 루트 등 대규모 송전선로의 조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 송전망과 함께 ESS와 히트 펌프 같은 유연성 자원을 늘려야 한다.
– 화력 발전의 최소 발전 용량도 줄여야 한다. 석탄 발전소와 LNG 발전소는 최소 발전 용량이 50~60% 수준인데 해외는 30~40% 정도다. 최소 발전 용량이 다른 나라보다 10%포인트 정도 더 높다.
– 화력 발전의 최소 발전 용량을 단계적으로 낮추고 산정-검증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재생 에너지 수용 능력을 크게 늘릴 수 있다.
– 참고로 일본은 2024년 화력 발전소 최소 발전 용량을 50%에서 30%로, 중국은 60~70%에서 30~40%로 낮췄다. 한국도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셋째, 화석연료 중심의 거버넌스가 문제다.
- 이해 관계가 충돌하는 문제를 누가 판단하고 결정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 전력 공급이 넘칠 때 재생 에너지부터 스위치를 내리는 것도 역시 선택의 문제다. 송전망 투자 비용을 어떻게 분담하고 출력 제어 비용은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 등 중요한 쟁점이 많다.
- 한전은 한국 유일의 송전-배전 사업자면서 전력 시장에서 전기를 구입해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유일한 판매 사업자다.
- 형식적으로 한전이 전기요금 조정안을 마련하고 기후부와 재정경제부가 협의하고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한다.
- 출력 제어 정산 비용과 PPA 망 이용료 등은 한전과 기후부, 재정경제부의 협의로 결정한다. 이해 상충일 뿐만 아니라 시장 감시와 계통 운영 기준, 비용 검증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재생 에너지를 늘려야 한다는 문제 의식도 크지 않다.

전력감독원? 거버넌스 개혁이 먼저다.
– 전기위원회는 권한이 거의 없고 인력도 부족해서 실질적인 감독 기능을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 감독 기관 역할을 할 전력감독원은 2027년 초 출범이 목표다. 한전과 전력거래소가 각각 전력망 사업과 전력시장 운영에 집중하고 전력감독원이 독립적으로 시장을 감독하는 구조다.
– 한전 중심의 단일 구매 구조에서는 재생 에너지 직거래 확대가 기존의 수익 구조와 충돌한다.
–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감독 기관은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미국과 영국 등은 독립된 기관에서 요금을 결정하고 비용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넷째, 속도보다 예측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 단순히 규제 완화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정부는 2030년까지 해상 풍력을 14.3GW까지 늘린다는 계획인데 설치된 발전소는 지난해 5월 기준으로 0.3GW 밖에 안 된다. 97개 사업자가 32GW를 신청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 정부가 뒤늦게 해상 풍력 특별법을 만들고 지원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절차가 까다롭다는 지적이 많다.
- 태양광도 마찬가지다. 이격 거리 규제 완화가 쟁점이었지만 주민들의 반발을 설득하는 게 더 큰 과제다. 사업 초기부터 입지와 영향, 수익 배분 등을 주민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무엇을 약속했나.
– 재생 에너지 100GW를 조기 달성하고 발전 비중을 20%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 석탄 발전소 60기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했다.
– 가스 중심의 열 에너지를 재생 기반의 열 에너지로 전환하기로 했다. 히트 펌프 보급을 늘리고 지역 난방도 재생 에너지 기반으로 전환한다. 열 에너지 관리법도 만든다.
– 태양광 셀과 모듈, 풍력 터빈, 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 등 녹색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기술 개발과 세제 지원도 한다. – 한전기술지주를 설립하고, 지역 에너지 특별시도 만든다.
– 산업단지에 지붕형 태양광을 의무화한다. 영농형과 수상형 태양광도 늘린다.
– 전기화와 청정화도 속도를 낸다. 2030년 신차의 40%를 전기차 또는 수소차로 채우는 게 목표다. 30만 톤 규모의 수소 환원 제철 설비를 2028년 완공하고 2037년 상용화하는 로드맵을 잡고 있다.
– 분산형 전력망으로 전환한다.
– 마을 단위로 에너지 자립형 분산특구 모델도 만든다.
– 재생 에너지 보급 제도(RPS)를 장기 고정가격 계약시장으로 개편한다. 지역별 차등 요금제도 도입한다.
– 햇빛소득과 바람소득 마을도 늘린다.햇빛 소득과 바람 소득 등 에너지 소득을 1000만 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재생 에너지 병목, 네 가지 해법.
- 첫째, 계통부터 바꿔야 한다. 석탄 발전을 줄이고 접속 선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로드맵을 짜야 한다. 송전망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저장장치와 히트 펌프 등의 유연성 수단이 같이 가야 한다. 전기차 충전 시간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 둘째, 발전량과 유연성을 동시에 보상해야 한다. 장기 고정가격 계약 시장을 활성화하고 PPA 거래를 늘려야 재생 에너지 투자가 늘어난다. ESS와 VPP(가상 발전소), 히트 펌프, 열 저장 장치 등 계통 안정화에 기여하는 자원에 명확한 보상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화석연료 중심으로 보상을 설계하면 재생 에너지 확대에 속도를 낼 수 없다.
- 셋째, 선수와 심판을 나누는 거버넌스 개혁이 필요하다. 전기위원회 독립과 전력감독원 신설도 좋지만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책 수립과 규제, 시장 감시, 계통 운영, 비용 검증 기능을 더 명확히 분리하고, 이해 관계자 참여와 정보 공개를 제도화해야 한다.
- 넷째, 재생 에너지는 계획 입지 체제가 중요하다. 민간에 맡겨 두기보다는 정부가 나서서 갈등을 중재하고 병목을 해소해야 한다. 사업 초기에 정보를 공유하고 이익을 배분하는 실행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결론: 전환 비용에 전환 지연 비용까지 계산해야 한다.
- 재생 에너지의 효율을 따질 때는 재생 에너지의 출력을 제어할 때 드는 비용과 재생 에너지 전환이 늦어져서 수출 경쟁력을 잃을 때 발생할 손실, 석탄 발전소에 나가는 보조금 등의 비용을 모두 더해야 한다.
- 전환에도 비용이 들지만 전환이 늦어질 때 드는 비용이 더 클 수 있다.
- 신은비(기후솔루션 연구원)는 “선언과 실행 사이의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 “장기 고정가격 계약 시장은 설계가 없고, 전기위원회 독립성 강화는 방향만 있고, 해상풍력 계획입지는 32개월 공백이 있다. 선언은 이미 충분하다. 이제 필요한 건 각 과제마다 ‘언제까지, 누가, 어떤 기준으로’를 채우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