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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 지역소멸] 전주에서 다양한 사업과 실험을 진행 중인 즐거운도시연구소 대표 정수경 박사에게 지역소멸의 현실적인 의미와 관계유발자의 개념 그리고 관계를 쌓는 방법에 관해 물었습니다.

지역소멸은 이제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 0.701. 인구학자들이 ‘언빌리버블!’을 외치는 기적의 숫자, 대한민국 출산율이다(통계청 2023년 6월 인구동향, 2분기 합계출산율). 반세기 넘는 눈부신 압축성장의 대한민국은 이제 소멸을 향해 더 눈부신 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역소멸이 아니라 국가소멸이다. 이 글은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슬로우뉴스_솔루션저널리즘_지역소멸 #취재_이정환_민노씨 #기획_김낙호_이정환_민노씨

이 글은 정수경 즐거운도시연구소 대표와의 지리산포럼 현장 인터뷰(9월 1일), 화상 인터뷰(9월 10일), 전주 방문 인터뷰(9월 21일)를 정리한 것으로 두 차례로 나눠서 발행한다.


지난 8월 말에서 9월 초까지 지리산포럼2023에 다녀왔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기억이다. 셋째 날 아침, ‘로컬’에 관한 발제와 토론이 있었다. 조희정(더가능연구소)의 발제를 통해 ‘관계인구’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다. 정수경(즐거운도시연구소)의 토론으로 ‘관계유발자’라는 단어도 처음 만났다. 인상적이었다. 좀 길지만, 최대한 그대로 인용한다.

왼쪽부터 한종호(소풍벤처스), 조희정(더가능연구소), 최도인(메타기획컨설팅), 박우현(밀양소통협력센터), 정수경(즐거운도시연구소), 전정환(커뮤니티엑스). 지리산포럼2023 – 지금, 다시 시작, 세 번째 날, 다시 지역에서 삶을 시작한다는 것: 보양토론 ‘로컬의 일, 돈, 주거, 문화, 교육’, 더가능연구소 X 보양포럼, 2023. 9. 1. 사진 민노씨.

관계인구

관계인구는 살고있는 사람(정주인구)도 아니고, 잠깐 들르는 사람(관광인구)도 아닌, 지역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 총무성, 관계인구 홈페이지 설명 중에서.

생활인구

2023년 1월부터 시행되는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생활인구’라는 개념이 포함되었다. 생활인구는 인구를 바라보는 관점을 주민등록지를 기준으로 한 거주 중심에서 지역과 연결된 다양한 관계 중심으로 확대한 것이다. 타지역에 살고 있는 도시민이 우리 지역과 맺는 다양한 관계를 발굴하고 확대하여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도입목적이다. 일본이 인구감소 대응정책으로 새롭게 제기한 ‘관계인구’의 한국적 적용이다.

이성현, 나라살림백과 ‘생활인구 또는 관계인구’ 중에서
관계인구 유형, 한국 나바스 국가균형발전종합정보시스템에서 일본 총무성 자료를 참고해 개념화한 자료. (정리: 조희정 박사, 더가능연구소)

관계’인구'(人口)보다 중요한 건 관계유발자

관계인구에 관해서는 제가 꼭 드릴 말이 있는데요. 인구는 통계예요. 행정기관이 행정 단위로 잘라서 수를 내는 거죠. 그런데 일본이 관계인구라는 단어를 만든 이유가 있어요. 새로운 인류가 아니고요. 그냥 농어촌이나 이런 데 들여다 보니까 부모님 농사나 일거리를 도와주려고 오는 자식들이 있고, 농사 지어주는 체험하는 도시인이 있고, 와서 계속 서핑하는 젊은이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예전부터 계속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지역에 연결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관계인구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그러니까 ‘이미 있는 사람’을 정의한 거예요. 있는 사람을 정의했는데, 행정에서 이걸 어떻게 이용할까 하다가 농림부 같은 곳은 농사에 집중해서 정책을 만들었어요. 일본관광청 같은 곳에서는 왔다갔다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정책을 만들었죠. 그리고 국토교통성 같은 경우는 그 지역에서 일해야 해요. 그래서 마을 만들기 참여자를 관계인구라고 정의했어요. 그러니까 일본도 각 부처마다 정의가 다 달라요. 그 이유는 관계인구가 너무 다양하고 많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선택적으로 ‘우리 부처의 관계인구는 이거다’라고 거기에 맞게 돈을 쓰고, 정책을 하고 있거든요.

그 개념이 나온 게 2018년 정도예요. 아직 오래 안 됐어요. 우리나라가 보통 일본 정책을 가져올 때 한 10년 정도 간격이 있는데요. ‘관계인구’는 이름이 너무 예뻐서 그냥 가지고 온 거예요. ‘관계인구, 관계인구’ 하면서 사람들이 ‘인구'(人口)에 주목하는데요. 제일 중요한 건 관계되는 사람이 아니고, 그 관계를 유발하는 사람이 누군지가 더 중요해요. 물론 지자체에서는 관계인’구'(口)가 중요하죠. 사람 ‘수’가 중요하니까 계속 ‘누가 오는지’만 생각해요. 그런데 실제로 지역에 있는 사람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예요.

그래서 저는 항상 새로 올 사람도 중요하지만, ‘이미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말해요. 가령, 어촌계가 있잖아요. 실제로 어촌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다른데 사시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줄고 있어요. 그 사람들은 이미 그 어촌의 관계인인 거예요. 일하는 관계에서 그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하고, 그 사람들의 일을 도와주는 관계 안에서 정책을 운영하자는 거예요.

제가 관계인구에서 ‘인구’라는 개념보다는 관계인에 집중하자고 했는데요.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요. 제가 전주에 사는데요. ‘내가 전주의 관계인구가 돼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정수경의 관계인이거나 아니면 인스타그램에서 어떤 예쁜 카페를 봤는데, 그게 좋아서 자주 가는 카페 사장님의 관계인이 되기도 하는 거죠. 그래서 그런 관계를 유발하는 사람이 많은 지자체일수록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그 지역에 가는 거예요. 그렇게 관계가 쌓이는 거죠.

그래서 제가 관계인구를 이야기할 때요. 행정은 관계인구를 늘릴 수 있는 관계유발자를 지원하고, 공간을 마련해줘야겠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는 민간이잖아요. 저는 전주에 있으니까 제가 무슨 관계인구를 늘려야겠다가 아니라 그냥 열심히 일하는 거예요. 절대로 밖에서부터 보지 말고, 안에서 얼마나 많이 쌓을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하고, 커뮤니티랑 연결되는 ‘관계’를 진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한번 생각해보세요. 저는 제가 사는 전주보다는 서울에 사는 친구가 더 많아요. 그 친구가 저를 보러 오면 그 친구는 관계인이잖아요. 여기 계신 분들도 다 관계인이 있으세요. 그래서 외부에서 어떻게 하면 관계인을 모시고 올까가 아니라 이미 그 지역에 사는 분들(관계유발자)에 관한 고민을 ‘역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1) 관계유발자(지역 주민) 2) 관계되는 자(외부 관계인) 3) 관계를 묶는 자(지역의 행정기관 공문원), 이렇게 세 개 영역으로 나눠서 고민을 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정수경, 지리산포럼2023-지금, 다시 시작, 세 번째 날, [다시 지역에서 삶을 시작한다는 것: 보양토론 ‘로컬의 일, 돈, 주거, 문화, 교육’] 토론 중에서

누군가 ‘소멸’이라는 단어를 붙여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취재한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지역소멸’ 혹은 ‘지방소멸’을 취재하면서 그 말 자체를 너무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당신이 사는 마을을, 당신의 고향을 지역소멸이라는 이름으로 취재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일까. 네까짓 게 뭔데 소멸이니 어쩌니 떠드는가. 욕먹지 않으면 다행 아닐까. 정수경 즐거운도시연구소 대표에게 첫 질문으로 그걸 물었다.

정수경 대표의 ‘관계유발자’라는 표현 때문에 원신연 감독의 ‘저주받은 걸작’ [구타유발자들] (2006)이 떠올랐다. 개념으로는 정반대에 가깝다. 사진은 [구타유발자들]의 한 장면.

지방소멸이 아니라 지자체 시스템의 붕괴다


일본은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지방소멸이란 표현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나름으로 그런 단어까지 나온 맥락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갑자기 지방소멸이라는 말만 툭하고 던진 면이 없지 않아요. 지방에 계신 분들은 우리 동네 인구가 줄든 말든 우리는 어차피 여기서 살 건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반감을 표하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지방소멸이나 지역소멸이라는 말을 쓰면 동네분들이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우리는 역사가 있고, 몇천 년을 이렇게 사람이 계속 살았어. 그때는 인구가 더 없었어. 그래도 계속 유지 됐어!”라고 말씀하세요. 저도 그 정신은 유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로컬 정신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특정 구역에서 지자체가 소멸할 수는 있죠. 지자체의 행정 테두리, 시청이나 군청이 사라져버릴 수 있는 상황인 거예요. 지자체가 지역의 인구 감소를 현실로 받아들여서 재정을 거기에 맞도록 축소하고, 그렇게 감소된 재정에 맞는 지자체 사회에 맞는 정책으로 가겠다고 하면 지방소멸 문제가 크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인구가 아직 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지자체가 많아요. 옆에 있는 지자체는 줄더라도 우리 지자체는 늘 거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대한 시설들을 자꾸 짓잖아요.

그렇게 되면, 지자체 재정 규모가 너무 커져요. 하지만 정작 그 규모를 유지할 지역민은 없는 거죠. 쉽게 말해 세금을 낼 사람이 없는 거에요. 결국 지자체는 파산하고, 그걸 지방소멸이라고 해야 할 텐데요. 그래서 정확하게 표현하면 지자체 시스템의 소멸이라고 해야 하고, 그 소멸이 주민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지역소멸은 도시 시스템의 문제인 거죠. ‘지방소멸’이라는 굉장히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지역의 행정이 그 현실을 받아들여서 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의료라든가 교육이라든가 뭔가 지역민이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서비스들이 다 붕괴되는 거죠.

정수경 즐거운도시연구소 대표

민노: 지역 행정 시스템의 붕괴와 소멸이네요.

정수경: 그렇죠. 가령, 작은 종합병원이 유지되려면 인구 30만 명은 있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 내가 사는 지역이 30만 명을 유지할 수 없다면, 옆 동네, 옆 도시까지 ‘연결’ 시스템을 잘 만들어서 30만 명 의료 생활권을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그러면 실질적으로 행정 구역이 넓어지는 효과가 생기겠죠. 그런 걸 지방 행정이 지방소멸의 관점, 더 정확히 말하면, 도시 서비스 붕괴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노: ‘연결’이라는 단어가 키워드 같습니다.

전북대학교병원. 전북 전주시 덕진구 건지로 20에 위치한 지역거점병원이다. 참고로 전주시 인구는 2022년 기준 66만1259명이다. 출처는 통계청(KOSIS). 사진은 전북대학교병원 제공.

쇼핑난민과 만물상의 부활: 지역의 결핍 채우는 사람과 기능


정수경: 관계인구도 단순히 ‘외지인들도 여기 오세요!’가 아니에요. ‘연결’돼 있는 거죠. 가령, 어떤 도시의 규모가 30만 명 정도의 소비자는 유지가 됐다고 쳐요. 그런데 잘나고 기술 있는 사람들은 다 대도시로 갔단 말이에요. 그러면 병원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거죠. 전문 의료인력이 있어야 하고, 그밖에도 기술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소비자만 30만 명 있어봐야 병원을 유지할 수 없잖아요. 그러면 의사들에게 ‘왕진 같은 걸 좀 해줘’라고 말하려면 아예 이주하라고 할 수는 없는 거예요. 왔다갔다 하면서 진료해달라고 말할 수는 있겠죠. 그래서 결국 찾아보면 왕진 같은 걸 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어요. 이제 그런 의사분들이 관계인구로 연결돼야 한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민노: 여기서는 의사가 관계인이겠네요.

정수경: 그렇죠. 관계인구라는 범위가 굉장히 넓어요. 그때(지리산포럼)도 얘기한 것처럼, 우리 지역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하루이틀 정도 일하는 사람도 관계인구에요. 우리 지역에 거주하지 않고, 가령 서울에 거주하는데 제가 사는 전주 시내 병원이 있긴 하지만, 전주시에 와서 의료 봉사를 한다면, 그게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씩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관계인이죠.

민노: 정 대표께선 기술과 기능의 차원에서 한 도시의 부족한 기능을 충족해주는 사례로서 관계인, 연결을 말씀해주셨는데요. 관계인과 ‘연결’하는 매개랄까요. 가장 흔한 건 ‘친분’ 아닌가요?

정수경: 그럴 수도 있죠. 여러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여러 지자체에서 ‘워케이션'(일+휴가)에 목매잖아요. 근데 워케이션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그 지역에 애착이 있는 분들은 아니잖아요. 그냥 이제 그냥 와서 일하다 가시고 이러는 것들인데요. 워케이션을 생각하다 보니까 ‘베케이션’이라는 관광에 적합한 시설들만 짓게 돼요. 그래서 되게 힙한 곳이 되기도 하고요.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고는 생각해요. 있어야죠. 관광이라는 측면에서 계속 올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도 관계인구이고요. 사장님하고 친분이 생겨서 더 오게 되는 애착이 생길 수도 있고요. 두 번째 유형으로 원래 오던 사람들은 혈연이나 지연이 있어서 그냥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고요.

그런데 저희처럼 도시 정책을 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이 지역에 불러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지역에 없는 기능과 요소를 가진 사람들인 거죠. 전문성과 청년도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옛날에 만물상이라고 아시죠? 트럭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놓고 파는 분들이요. 일본에서 만물상이 많이 줄었다가 다시 늘고 있어요. 왜냐면 고령 인구가 많아져서 그분들이 마트에까지 못 가시는 거예요(쇼핑난민). 그래서 매주 필수품을 가져다주는 그런 유통회사들이 일본에서 엄청나게 늘고 있거든요. 심지어 세븐일레븐이나 로손 같은 일본의 대표 편의점에서도 만물상이 생겼고요. 노인 인구가 많아서 마트에까지 직접 물건을 구입하기 어려운 분들이 사는 동네에 생활필수품을 유통해주려고 서울에 사는 만물상이 우리 동네에 온다면, 그 만물상도 관계인이 될 수 있는 거죠.

쇼핑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쇼핑난민”이라는 단어 중  “쇼핑”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쇼핑난민”이라는 단어는 쇼핑난민의 개념을 한국에 소개하기 위한 기사 등에서 일본어 “카이모노난민(買物難民)”을 번역해 사용한 단어입니다.

“카이모노(買物)는 신선식품, 식료품, 생활용품 등을 포함한 무언가를 “사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카이모노가 쇼핑이라는 단어로 번역되다 보니 종종 시골에 거주하여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에 가서 대량으로 무언가를 구매하거나 사치품을 사는 것이 어려운 것으로 이해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카이모노난민은 신선한 재료, 식료품, 일용품 등을 파는 상점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거동, 교통이 불편하여 상점에 접근하기 어려운 고령 인구를 의미합니다.

일본은 쇼핑난민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와 언론에서 해당 이슈를 언급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난민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너무 강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어 반발이 생기자, 현재는 “쇼핑약자”라는 단어로 변경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늘  “쇼핑난민”이라는 단어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싶거든요.

정수경, ‘쇼핑난민을 구해줘! (1) 이동형 슈퍼 도쿠시마루’ 중에서
정수경, ‘쇼핑난민을 구해줘! (1) 이동형 슈퍼 도쿠시마루’에서 재인용.
일본의 고령화 시대 쇼핑난민을 위한 이동슈퍼 ‘도쿠시마루’(とくし丸). 2012년 2대로 창업했는데, 2022년 8월 기준 ‘도쿠시마루’ 차량은 1천 대를 넘었고, 이용객은 약 15만 명에 이른다. 고객층은 주로 70대 후반~80대, 일주일에 평균 2회 정도 이용한다. 도쿠시마루 제공.

시골 동네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요. 우리 동네에 필요한 걸 다 적어본 다음에 이 부분이 좀 비어 있네. 그런데 이 부분은 이사오기는 힘들 것 같으니까 자주 오게 하자. 그리고 그렇게 우리 동네에 부족한 걸 채워주는 사람에게는 여기에 살지 않더라도 오면 좀 반겨주자.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니까 어떤 정형적인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관계를 고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민노: 말씀을 들으니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등장인물(이병헌 연기)이 생각나네요.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드라마 속 만물상도 관계인이겠네요?

tvN, 우리들의 블루스, 노희경 극본, 김규태 등 연출, 2022.

정수경: 그렇죠. 관계인이죠. 제가 지리산포럼에서 그 얘기했잖아요. 관계인구는 행정적인 개념이에요. 일본에서 수입한 개념이죠. 그런데 사실 시나 군 단위로 관계인을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동네, 내가 사는 마을의 관계인구, 관계인을 생각할 수 있죠.

지역에서 65세 미만은 청년…그리고 청춘의 의미


민노: 우리 지역에 없는 기능과 요소(예를 들면 ‘청년’)을 말씀하셨는데요. 가령 그런 기능이 없어도, 청년이 아니더라도 가령 나는 노년인데 전주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거나 나는 경력이 단절된 이혼 여성인데 밀양에서 새출발을 해보고 싶어.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잖아요. 이런 분들도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수경: 제가 ‘청년’이라고 굳이 이야기를 한 건 하도 행정에서 ‘청년, 청년’해서.. (웃음) 당연히 청년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사실 지금 지방에 가면요. 65세 미만이면 청년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광범위한 청년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액티브 시니어’도 청년인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청년이라는 표현보다는 ‘청춘’이라고 이야기하긴 해요. 귀촌해서 ‘나는 그냥 놀거야’ 하는 분도 좋지만, 동네를 위해서 그리고 본인 수익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을 ‘청춘’이라고 부르는 거죠. 그런 분들이 많아져야 어쨌든 도시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 분들이 지역에 거의 안오니까요. 그런 분들이 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거죠.

관계유발자요? 예가 좀 과감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


민노: 지리산포럼에서 관계유발자를 강조하셨는데요. 행정기관이 관계유발자를 육성하고 지원할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냥 개인의 매력에 가까운 걸까요? 여기에 관해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궁금합니다.

정수경: 우선 조희정 박사님께서 발표하신 ‘관계안내소’가 있어요(참고로 조희정 박사와의 인터뷰도 곧 공개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일본은 그걸 플랫폼처럼 이용하죠. 동네에 재밌는 사람, 재미 있는 일, 아름다운 자연환경 이런 걸 소개해주는 일, 관계를 맺어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그 관계안내소에서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그 동네 사람과 이야기를 잘 발굴하고 외부인들에게 연결시킬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는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포럼에서 관계를 유발하는 측면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관계유발자라고 표현을 했는데요. 관계인 한 명을 우리 동네에 데려오는 것보다는 관계유발자를 어떻게 데려올 수 있느냐가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령, 우리 동네에 되게 핫한 카페 사장님, 또는 좀 예가 과감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고향에서 책방을 운영하시잖아요. 어마어마한 관계유발자인 거죠.

경상남도 양산시 입장에서 보면 어마어마한 관계유발자일 문재인 전 대통령. 사진 출처는 평산책방.

그런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예를 들었지만, 관계를 유발하는 모습이나 그 규모는 다 달라요. 작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책읽기 모임을 하는데, 그게 너무 재밌어서 멀리 사는데 그 카페에 갈 수도 있는 거고요. 그렇게 너무 양태가 다양해서 행정기관이 육성한다는 건 좀 어렵다고 생각하고요.

관계유발자를 새롭게 키운다고 생각하기 전에 ‘지금 우리 동네에서 관계인구를 유발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고민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요. 저희가 산청군 쪽 일을 하고 있는데요. 산청에는 ‘목화장터’라는 주민 커뮤니티가 있어요. ‘비토 님’이 그냥 너무 심심하고 소통이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었어요. 심심하니까 장도 같이 보고, 벼룩시장 장터도 열고, 맘카페처럼 정보도 올리고, 이런 걸 하셨대요. 그런데 그 커뮤니티가 좋아서 귀촌하는 사람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카페와 같은 상점이나 커뮤니티 혹은 그저 그 장소, 가령 지리산이 좋아서 관계가 생겨날 수 있어요. 그래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뭔가를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기가 조금 어려운 거예요.

산청 지리산 목화장터.

관계망 그리기, 그것부터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민노: 행정기관의 아쉬운 점, 그리고 우선 해야 할 일은 어떤 걸까요.

정수경: 가장 큰 문제점은 젊은 사람 워케이션이랄까, 프리랜서들이 와야 해! 막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잖아요?

민노: 그렇죠.

정수경: 그렇게 시류에 휩쓸리는 것보다는 지금 우리 지역에서 관계를 유발하는 사람이나 단체, 그런 자연환경을 정리해 보는 거죠. 그렇게 사람과 단체, 환경의 관계망을 그려서 우리가 더 만들 수 있는 관계가 무엇인지, 이 관계들에서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우선은 관계망을 그려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가령, 관광 쪽에서 관계를 유발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사람들이 더 잘 홍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요. 또 그런 사람들을 묶어서 아이디어를 내게 하는 그런 일도 해볼 수 있고요. 아까 말한 도시 서비스와 관련해서 의료 등의 필수 서비스가 부족하거나 단절돼 있다면, 그걸 채워줄 수 있는 사람,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거나 그런 네트워크를 만드는 정책을 해줘야죠. 그래서 행정기관이 좀 다양하게 관계를 볼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어요.

민노: 그렇다면 그런 관계망 프로젝트는 거버넌스의 틀을 구성해서 진행해야 할까요? 아니면 관이 주도해야 할까요? 아니면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면 그걸 행정이 뒷받침하는 시스템을 취해야 할까요? 어떤 방식이 이상적일 것으로 생각하세요.

정수경: 관계망을 그려보자는 목표가 세워지면요. 가령, 행정이 책방을 운영해서 관계를 만들자는 불가능해요. 그런 건 최대한 민간에 맡기고요. 행정은 인구 감소에 따라 줄어든 전문인력이나 도시 서비스를 제공할 만한 청춘들이 관계되려면 어떤 공공 서비스가 필요할지 고민하셔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오히려 관이 주도하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민간이 계속 튼튼한 관계망을 만들어가게 해주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근데 어렵죠.

민노: 어렵나요? 어떤 점에서 어려울까요.

정수경: 우선 행정기관이 민간을 믿고 예산을 맡긴다는 게 쉽지 않죠. 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민간이 돈 받지 말고 알아서 해야지라고 생각하긴 하거든요. 왜냐면, 자기 사업으로 자기가 돈 버는 일이고, 그걸 열심히 하다 보면 관계가 생기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런 관계망이 생기면 지역에도 좋지만, 자기 자신에게도 아주 좋은 일인데, 이게 보조금 같은 형태로 지원이 되면, 직접 자기 사업으로 돈을 벌지 않고, 좀 좋지 않은 순환고리가 생기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계속)

지리산포럼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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