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배우는 컨템퍼러리 가정식] 오늘 배울 음식은 ‘버섯계란범벅(레부엘토)’ (6분)
참고.
이 글은 ‘봄’에 쓰여진 글입니다. 본문은 이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세상의 모든 주인공들이 언제나 전면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요리에 있어서 진정한 주인공은 수렴청정하듯 그 실체를 숨기고 접시 전체에 은근한 영향력을 발휘할 때가 많다. 지방이 ‘맛의 실세’로 행동할 때가 그렇다. 버터가 잔뜩 들어간 오믈렛이나 매시드 포테이토가 좋은 예다. 사람들은 이 요리들을 계란 요리 또는 감자 요리로 인식하지만 내 눈에 이들은 버터 요리다. 포슬포슬한 감자를 풍성한 크림으로 변신하게 만드는 것은 버터, 즉 지방의 힘이다. 우리가 보통 “맛있다”라고 이야기하는 음식 뒤에는 지방이 맛의 핵심으로 작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혹시 유튜브에서 중국집 볶음밥 만드는 걸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넉넉하다’라고 말하기엔 좀 과한 양의 기름에 계란을 풀고 익히면 그 많은 기름이 순식간에 계란과 한 몸이 된다. 거기에 밥과 함께 부재료를 볶는다. 볶음밥 결과물만 놓고 보면 그 정도의 기름이 들어갔을 거라고는 상상이 잘 안 된다. 마치 마요네즈처럼 말이다. 이는 다이어트를 달고 사는 우리 한국인에게 배신감과 슬픔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그만큼 음식이 맛있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칼로리가 높을수록 맛있다는 게 그냥 드립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방은 소금, 산(미)과 함께 맛을 구현하는 핵심요소다.
계란은 맛과 영양, 다용성 어떤 면에서 바라보더라도 위대한 식재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방이 맛의 핵심요소라는 관점에서 계란의 미식적 가치는 다시 한번 빛난다. 지난 편에서 살짝 언급했듯 노른자는 그 자체로 훌륭한 소스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계란의 진정한 능력은 노른자의 레시틴 성분으로 기름의 유화를 도우며 그 향을 포집하는 데 있다. 쉽게 말해 “계란은 기름을 엄청 먹고 향을 잘 붙잡는다.”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이론적으로 수분과 기름의 비율이 적절하다면 계란노른자 1개로 10컵 이상의 기름을 유화할 수 있다. 마요네즈가 80% 이상 식용유로 이뤄져 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이런 노른자의 능력을 일찍이 캐치해 서양에서는 계란과 함께 지방 또는 향이 풍성한 재료들을 조합한다. 대표적으로 가히 향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트러플(송로버섯)도 종종 노른자가 살아있는 상태의 계란과 함께 낸다. 언젠가 ‘냉장고를 부탁해’에 GD가 나와 트러플을 계란프라이에 올려 먹는다는 말에 패널들이 그 비싼 걸 계란이랑 먹냐며 놀라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계란은 트러플의 향을 즐기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내가 있었던 스페인에서는 풍성한 지방과 향, 그리고 강렬한 짠맛을 한 몸에 품은 하몽을 주로 덧댄다. 이런 계란의 향과 지방을 포섭하는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한 요리는 바로 까르보나라다. 요리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이 높아지며 오리지널 까르보나라에는 크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은 까르보나라의 포인트는 계란 노른자가 아닌 강한 염장 숙성을 거친 돼지 볼살, 관찰레의 지방에 있다는 점이다. 씹어먹을 살코기도 별로 없는 짜기만 한 지방 덩어리를 굳이 쓰는 이유는 돼지 지방이 품고 있는 향에 주목한 것이다. 노른자는 그 자체의 풍성함과 동시에 관찰레의 지방과 향을 온전히 포섭하기 위해 기능한다. 그래서 까르보나라를 조리과학적 관점에서 정의하면 ‘베이컨이 곁들여진 노른자 소스 파스타’라기보단 ‘노른자를 활용한 관찰레 오일 파스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계란은 지방의 표정(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하얀 캔버스다.
그래서 오늘은 지방의 향을 단단하게 붙잡는 이 계란의 원리를 활용한 요리를 소개한다. 전혀 생소한 난생처음 듣는 이름일 텐데 스페인의 소박한 계란 요리 ‘레부엘토(Revuelto)’다. 거창해 보이는 이름과는 달리 레부엘토는 스페인어로 그냥 ‘범벅’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부드럽게 익힌 스크램블 에그로 이해하면 편하다. 현지 레스토랑 메뉴판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이름이니 스페인 여행을 염두에 둔다면 눈에 익혀두면 좋겠다. 스페인에서는 버섯이나 염장 대구가 들어간 ‘레부엘토 데 세타스(버섯)’, ‘레부엘토 데 바칼라오(염장대구)’가 유명하다.
레부엘토는 어떤 식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계란의 뛰어난 융통성을 이용한 요리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다양한 버섯들을 메인으로 사용하되, 봄에만 만날 수 있는 제철 재료도 함께 곁들여보자. 바로 엄나무순이다. 엄나무순은 두릅과의 나물로 개두릅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통통한 참두릅에 비해 그 고소함과 아삭함은 덜하나 그만의 쌉쌀함과 두드러지는 향이 일품이다. 그러니 오늘 우리의 목표는 계란의 능력을 빌려 버섯이 가진 풍성한 향과 감칠맛, 엄나무순이 뿜어내는 봄의 향취를 붙잡는 데 있겠다. 재료도 복잡하지 않다.
재료
올리브오일, 버섯, 계란, 마늘, 완두콩(옵션), 소금, 엄나무순(개두릅)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향이 풍성한 제철 버섯이면 더없이 훌륭하겠지만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표고, 느타리, 팽이 등도 상관없다. 요리의 포인트가 버섯의 감칠맛과 향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완두콩이 곁들여지면 은근한 단맛과 함께 색다른 포인트가 된다. 사실 구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생으로 먹어도 단맛이 들어오는 어린 완두콩이면 더 좋겠다.
레시피
= (지방 + 향) + 유화도구 + 기타
= (올리브오일 + 버섯, 마늘, 엄나무순) + 계란 + 완두콩(옵션)
1. 올리브 오일을 넉넉하게 두른 팬에 적당한 크기로 준비된 버섯과 마늘을 넣고 소금 간을 한다. 반드시 약불에서 오래 익힌다.
2. 그동안 소금물에 엄나무순을 짧게 데쳐 물기를 빼 준비한다.
3. 데치고 남은 물을 이용해 완두콩을 익히고 건져둔다.
4. 버섯과 마늘에 색깔이 충분히 났으면 준비된 엄나무순과 완두콩을 넣고 가볍게 볶는다.
5. 여기에 계란을 넣고 약불에서 천천히 뒤섞어 가면서 부드럽게 익힌다.
위에서 설명했듯 오늘 레시피의 핵심은 지방과 향, 그리고 이를 포섭하기 위한 계란의 사용에 있다. 먼저 올리브 오일을 ‘넉넉하게’ 사용한다. 앞의 두 편을 거쳐오며 맛과 향을 빼는 ‘인퓨전’을 설명했다. 오늘이 그 인퓨전 개념이 온전히 적용되는 레시피다. 약불에서 버섯을 ‘오래’ 익힌다. 센 불에 빠르게 볶는 게 아니라, 약불에서 버섯의 수분을 천천히 빼앗아 가며 오일에 그 향과 맛을 내어놓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기름이 넉넉하게 남아야 한다. 이 요리의 진짜 주인공은 ‘버섯’이 아니라 ‘버섯의 향을 머금은 기름’이기 때문이다.
몇 분 동안 익혀야 한다고 물으신다면 그건 나도 모른다. 불의 세기, 버섯의 양, 팬의 넓이, 원하는 결과에 따라 모두 다르다. 그걸 다 알아도 시간을 특정할 수 없다. 버섯은 그 부피의 대부분이 수분으로 이뤄진 식재료다. 그러니 약불에서 버섯이 충분히 쪼그라들어 마이야르 반응이 시작되고, 기름에서 버섯의 구수한 향이 진동할 때까지 익히면 된다. 시간에만 기대기에 요리는 변수가 너무 많은 활동이다. 요리에 대한 판단은 언제나 ‘시간’이 아닌 오감을 통한 ‘관능’으로 한다. 항상 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살피고 코를 대고 향을 맡아보고 적극적으로 맛을 보는 습관을 들이자.
이 요리를 완성시키는 것은 계란이다. 미리 풀어 둬도 괜찮고, 터프하게 흰자와 노른자가 완전히 섞이지 않아도 좋다. 그것보다 계란을 익히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약불에서 계란이 부드럽게 익어가며 기름을 흡수할 수 있도록 조금씩 뒤섞는 방식을 추천한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섞게 되면 크림 같은 스크램블 에그가 된다. 결국 원하는 스타일의 차이인데 센 불에서 끝까지 익혀 계란이 딱딱한 상태로 남지 않도록, 적어도 달걀의 촉촉함은 지키도록 노력하자. 사실 이 부분은 말로 설명하기가 참 힘드니 참고 영상을 첨부한다.
생 노른자에 위화감이 없는 분이라면 접시에 완성된 레부엘토를 담은 후 신선한 노른자를 한 알 추가하는 것을 추천한다. 음식이 가진 온기로 천천히 노른자를 익혀가며 빵을 곁들여 먹는다. 향긋한 올리브오일에 구수한 흙내음을 온전히 내어놓은 버섯은 식감과 감칠맛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한다. 완두콩과 제철 엄나무순은 봄의 생동감을 달착지근함과 씁쓸함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계란의 융통성이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부드럽게 포용한다. 원리를 알면 레시피나 특정 재료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계란은 누구와도 잘 어울리면서 상대의 장점을 잘 살려주는, 성격 좋고 다정한데 공부까지 잘하는 친구 같다. 그러니 원하는 향을 가진 식재료가 있다면 용감하게 뭐든 붙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