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 칼럼] 정부 예산 0.3%, 2조 원이면 오스트리아식 공공 임대 가능… 장기 저리 공급자 금융과 주거 보조비 확대가 해법이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땅장사’에 대해 한마디 했다. 구체적인 대안의 방향까지 언급하진 않았지만, 지금처럼 택지를 조성해 민간에 매각하는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땅장사’가 문제라면, LH는 그 대신 무엇을 해야 하나? 이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많은 대안을 제시해왔다.
- 대표적으로는 ‘싱가포르 모델’처럼, 땅을 팔지 말고 임대해서, 주택을 전부 토지임대부 형태로 공급하자는 주장이 있다.
- 또는 토지임대부 방식이 공공성을 추구하는 이상은 좋지만, 특유의 전세와 경쟁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사정상 (토지임대 방식은 업무용지에만 적용하고) 택지는 지분공유형으로 공급하자는 주장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리스가 ‘반값’ 자동차가 아니듯 토지임대부 주택은 그냥 ‘반전세’일 뿐 참고)
이러한 대안들의 장단점을 논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이 글의 목적은, 위의 어느 대안이든, 이를 실현하려면 ‘장기저리 공급자 금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런 공급자 금융이 없다면 땅장사를 금지한다손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요, 오히려 더 꼬일 우려도 크기 때문이다.
땅이 문제라는데 왜 돈(금융) 이야기를 꺼내는 것일까? 집은 땅 없이는 지을 수 없으니, 주택 문제의 근본에는 역시 토지 문제가 깔려있다. 따라서 주거권의 실현을 위해서는 토지에 대한 권리 역시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공공성 있는 토지의 사용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특히 경제 발전의 과실이 토지 위에 맺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자들의 소유욕을 다스리려고만 하기보다는, (적절한 조세정책과 함께) “소비자에게 땅을 팔지 않아도 작동하는 주택 시스템(주거레짐)”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장기저리 공급자금융’은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어쩌면 그 자체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소귀에 경 읽기’일지라도, 이를 한 10년 하면 소는 몰라도 주변 사람은 경을 이해하리라는 기대로 쓴다. (한 4년만 더 떠들면 10년을 채울 것 같다)

LH의 ‘땅장사’와 한국 사회의 비극.
토지를 다루는 공공 조직은 1975년 토지금고가 효시였다. 산업화에 주력하던 시기라, 토지금고의 주된 사업 분야는 산업단지 조성이었다. 이후 한국토지개발공사(1979)와 한국토지공사(1996)을 거쳐 2009년 대한주택공사와 합병되어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되었다.
1980년, 국회를 대체한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택지개발촉진법이 제정되었다. 이와 함께 주택 500만호 계획이 세워졌고, 한국토지개발공사의 주된 업무는 택지개발 사업이 되었다.
(참고: 택촉법의 짜릿한 제정과정에 대한 슬로우뉴스의 만담)
이후 ‘공영택지개발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주택용지의 조성과 공급 사업을 살펴보면, ‘강력하면서도 무능한 국가’라는 오묘한 한국의 ‘발전국가론(Developmental State)’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다.
강력하면서 무능하다니, 무슨 말인가. 소유권을 빼앗는 ‘수용’을 통해 땅을 끌어 모으고, 택지조성과 주택건설 및 이를 위한 도로와 상하수도의 설치 과정에서 각종 인허가 과정을 건너뛰며 결정하고 처리하고 지시하는 과정에서는 ‘강력한’ 국가이지만, 돈은 없어서 민간 건설사에게 얼른 팔아야 하고, 그 건설사도 돈이 없어서 선분양제도를 활용해서 소비자의 돈을 당겨다가 짓고, 그 소비자도 돈이 없어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식으로, 최종 단계의 돈을 끌어다가 짓는 시스템에 의존해야 했던 ‘무능한’ 국가였다.
다른 산업분야처럼, 국가주도의 성장 과정에서 민간의 자원에 의존하고, 동시에 (그 전에는 미약했던) ‘시장’을 창출하고 시장의 질서까지 만들어갔던 모습은 주택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끊임없이 집값이 올라야만’ 작동하는 시스템이었다. 집값 상승이 멈추자 어떤 일이 (특히 전세 부문에서) 벌어졌는지는 지난 몇년간 우리 모두가 목도한 바다.

무늬만 공공, 재무구조는 시장 논리.
일제강점기에도 도시화로 인한 주택난에는 ‘공공(?)’이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제국주의 총독부일망정 주택의 공급을 시장에만 맡겨서는 해결이 안 되었기에 1941년에 ‘조선주택영단’이 설립되었다. 이 조직은 1948년 대한주택영단으로 바뀐다. 이를 이어 1962년에 대한주택공사가 출범했다.
대한주택공사는 당시 허허벌판과도 같았던 반포와 잠실 등에 선견지명을 가지고 <주공>아파트를 열정적으로 지어 팔았다.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단독주택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시대였음에도,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곳에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집’을 공기업이 나서서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아파트는 아직 한국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던 건축형식이었고, 단지에 중고층 공동주택을 짓는 것은 건설업계 입장에서도 어려운 사업구조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단독주택을 가장 선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도적으로 성공 모델을 보여주는 것이 어쩌면 당시 공공의 진취적인 역할이었다.
즉 한동안 지속될 도시화 과정에서의 주택난 해소를 위해, 개개인들의 선호와 무관하게, 앞으로 필요한 주거유형을 확산시키기 위해 기획·건설 및 배분에 관련된 복잡한 제도를 정비해가면서, 국가가 나서서 시장을 아파트 중심으로 재편한 것이다.
원하는 곳에 원하는 집? 원하지 않는 곳에 원하지 않는 집?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주택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는 2004년까지도 단독주택이 1위(48.6%), 아파트가 2위(47.9%)였다. 차이가 0.7%에 불과했으니, 아파트가 1위로 올라선 것은 2005년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아파트 진흥에 골몰하던 국가가 ‘이 땅에는 아파트만 지을 수 있다’는 아파트지구 제도를 1976년에 도입한지 29년, 즉 한 세대가 지나서야 드디어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1위가 된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파트지구’제도는 2003년에 폐지되었다. 이제는 국가가 지정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자청해서 (재개발해서) 아파트 단지로 동네를 바꿔달라고 하는 시대다. 이렇듯 사람들의 선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고정불변의 것도 아니다.
1970년대에 ‘사람들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집’만 짓겠다고 ‘아파트를 안 지었으면’ 우리의 주거현실은 끔찍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커뮤니티 시설을 배타적으로 일부 사람들만 자급자족하도록, 계속해서 국토를 쪼개고 합쳐서 아파트 단지로 공급해야 할까? 그러면 몇 십년 뒤 우리의 주거현실은 안녕할까?
지금은 아파트 지구를 지정해야 하던 때와는 달리, 인구는 고령화·1인가구화·다문화화되고, 아파트의 비중이 주택의 60%가 넘었고, 수도권 거주인구도 절반이 넘었고, 기후 위기, 에너지의 위기, 건설폐기물의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
공공은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형성된 단독주택, 아니 아파트에 대한 선호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델을 (50년전 아파트 생태계를 선도할 때처럼) 나서서 선보이고, 새로운 생태계의 질서에 필요한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기존의 이해관계에 익숙한 나머지, 혹은 이러한 이해관계를 몰라서, 새로운 과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이미 있는 시장을 바꾸는 ‘재편’이라는 말보다는, 아파트 중심의 주택 산업 생태계 자체를 국가가 나서서 ‘만들어갔다’는 것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공공주도 아파트 모델의 성공과 민간으로의 확산은, 민간의 건설사나 임대사업자 등의 ‘시장’ 자체가 미약했던 대한민국에서 주택 공기업이 해당 부문의 발전을 위해 선도적 기여한 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건축 유형의 측면에서는 공공이 선도적으로 시장을 만들어냈지만, 재무적 측면에서는 민간과 차이가 없었다. 주로 공급한 것은 분양주택이거나, 단기임대 후 분양하는 분양전환 임대주택이었으니, 선분양과 전세제도에 의존했던 것은 앞서 택지개발사업에서의 민간건설사나, ‘대한주택공사’나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거치는 동안 한국의 주거 시스템은 ‘선분양’과 ‘전세’에 의존해서 최종 소비자의 돈을 끌어다가 집을 짓는 방식이 자리를 잡았고, 복지는 뒷전으로 밀렸다.
이 시스템에서는 전세가 필수적인 역할을 했으니, 전세를 매개해줄 다주택자는 차마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1970년대 군사정권 시절부터 이따금씩 소환되어 ‘공공의 적’으로 지목되기도 했던 다주택자는, 살풀이가 끝나면 돌아와 전세 앞에서, 다시 이러한 주거 시스템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맡았더랬다.
1987년의 민주화 이후에야 비로소, 주택분야에도 복지 관점의 사업이나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 복지는 영미식 자유주의적 차원이었는데, 프랑스식 조합주의나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대중모델’이나 ‘보편복지’는 아닌 ‘잔여복지’의 차원이었으되, 성장 일변도의 체제에서 이제 복지도 조금은 챙기는 체제로의 성격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그 전환의 비용을 누가 치뤘을까?
임대주택의 난립과 사업간 교차보조 시스템
집은 땅 위에 지어야 하고 두부 자르듯 토지와 건물을 나누기는 어렵다. 그러니 토지공사가 아닌 주택공사라 해도 택지 조성 영역을 다루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이에 점점 더 큰 규모의 택지를 개발하고 싶은 주공과, 주택용 토지 사업에도 진출한 토공은 택지의 ‘크기’를 기준으로 업무 영역을 나누고 있었으니 뭔가 어색한 노릇이었고, 모종의 조정은 필연이었다. 결국 2009년에 두 기업은 통합되었다. 사업의 영역상으로는 합리적인 방향이었을지 모르는데, 개발업무와 복지업무라고 생각하면 다소 이질적인 면이 합쳐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한편 공공주택 정책은 유형이 계속 늘어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정권교체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주거복지의 정책대상이 넓어져서, 이제 잔여복지의 성격을 벗어나는 것을 지향하며 좀 더 많은 계층을 정책대상으로 삼게 되는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임대주택의 유형이 복잡하게 추가되었는데, 이로 인하여 정책 대상간 형평성의 문제가 뿌리깊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같은 형편이어도 누가 어느 유형에 입주하게 되느냐에 따라 주거비의 지출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임대주택의 ‘유형난립’은 입주자 측면에서도 형평성의 문제를 가져왔지만 공급구조 측면에도 난맥상을 더했다. 주택도시기금에서 85%의 비용을 감당했던 영구임대와 달리, 행복주택이니 국민임대니 50년임대 하는 유형들은 각각 기금의 투입량, 상환방식이나 이자율 등의 조건이 모두 달랐다. 게다가 임대료 기준도 다르니, 임대료 수익도 다 달랐다.
결국 유형에 따라 초기의 건설비용도 다 다르고, 이 비용을 처음에 감당하게 해 줄 주택도시기금의 비중과 조건도 다 다르고, 완공 후의 임대료를 통한 수익구조가 전부 다 다른 가운데, 그 차이는 LH가 (어디선가 돈을 벌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민주화와 IMF 위기를 거치며 대한민국의 경제와 금융체제의 성격에 중요한 변화가 생기는 가운데, 어느정도 수준의 주거복지는 실현하자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임대주택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은 감당하기 어렵고 (혹은 싫고), 주거복지 정책은 펼치고 싶었던 국가는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을 공기업에 떠넘겼다.
와중에 임대주택의 유형은 계속 추가되는 가운데, 여러 유형의 임대주택의 저마다의 재무구조는 더욱 복잡해졌다. 그런데 이를 깔끔히 정리하기보다는, 주택과 토지개발을 모두 담당하는 공기업이 알아서 택지 쪽의 수익으로 주택 쪽의 비용을 메꾸는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자, 이제 이 모든 것을 뜯어 고칠 때가 온 것인가?

임대주택은 어쩌란 말이냐.
사정이 이러하니 ‘땅장사’라고 비하하거나 택지개발 업무를 악마화하지 말라, 택지개발 사업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게 하면 앞으로 임대주택은 어쩌란 말이냐, 하는 LH의 항변은 한편으로 일리가 있다. 혹은 항변이 아니라, “이렇게 잠시 떠들다가 말겠지, 어느 정치인이든 별 수 있나? 임대주택을 지으려면, 지역구에 떡고물이라도 받아가려면 우릴 건드릴 순 없지”라고 배짱을 부린다 해도 그렇다.
그래서 택지개발로 돈을 벌지 못하게 하려면, 주택도시기금 등의 공적인 기금이 장기저리 공급자금융으로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에서 들어오는 임대료로는 초기 비용을 충당하기까지 십수년, 어쩌면 삼십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기에 그렇다. 이는 아무리 원가 수준으로 임대료를 현실화 해도 그렇다. 그 기간 동안 천천히 상환할 수 있는 조건의 기금이 공급자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다.
해외사례를 봐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초기 비용회수에는 4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 걸 기준으로 계획을 짠다. 이건 이상하거나 부당한 것이 아니라, 임대주택 재무구조 설계의 기본이다. 구체적으로 토지 비용은 50년에 걸쳐, 건설비용은 40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도록 짠 것이 아래 프랑스의 경우다. 이러한 장기 상환 구조에 각종 유지보수비와 관리비, 25년 뒤로 부과를 미뤄준 토지세에 맞춰 임대료는 아슬아슬한 수준으로 책정된다.

이와 같이 토지비와 건설비를 장기간(40~50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장기저리 공급자 금융은 사회(공공)주택 재무구조의 핵심요소다. 그리고 이러한 장기저리 공급자 금융은, 주택 뿐만 아니라 토지만 임대 할 때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수용을 한다고 해도 매입가격 총액은 만만치 않고, 주거용이나 업무용 필지를 공급하려면 해당 필지 외에도 기반시설 조성 비용이 상당하다.
토지를 매각하지 않고 임대하면, 이렇게 초기에 들어간 비용을 천천히 회수하게 된다. 그럼 그 사이에 LH가 버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택지조성에 들어간 비용은 예컨대 프랑스처럼 40~50년에 걸쳐 상환하도록 하고, 이로 인한 부채는 공기업의 경영평가에서 별도의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안 그러면 LH라고 무슨 수가 있겠는가. 땅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아?
결례를 무릅쓰고 과감한 상상을 해보자면, 어쩌면 이러한 개혁을 제일 싫어하는 것은 LH일 수도 있겠다. 공급자금융이 들어와서 LH를 땅장사에서 해방시켜주면, 익숙한 지금의 방식, 즉 택지개발을 통해 수익을 내고 이를 좋은 일에 쓰는 보람찬, 혹은 생색 낼 수 있는 방식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건대, 앞으로는 택지개발을 할 땅도 거의 남아나지 않는 상황이 된다. 3기 신도시 이후에 우리가 4기, 5기 신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어차피 수도권 인구도 절반이 넘었고, 지방에서 더 보내줄 인구도 없어지고 있다. LH로서도 신규택지개발에서 수익을 얻는 방식 외의 새로운 사업 모델의 발굴에 사활을 걸어야 할 시점이다. 그간 수고 많았으니 LH여, 억울함은 잠시 접어두고 힘을 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보자.
임대주택은 영원히 임대 주택으로.
그런데 이렇게 ‘공급자 금융’을 투입하려고 보니 드는 의문이 있다. 공공임대주택 사업에서 2조원 가까이 적자가 난다고 하는데, LH가 주장하는 적자의 내역에 왜 주택도시기금의 역할은 빠져 있는 것일까?
주택도시기금에서는 공공주택 공급 비용의 상당부분을 출자와 융자를 통해 지원하고 있으며, 융자의 경우에는 20년 거치 20년 상환 조건의 대출상품도 있다. 그렇다면 2000년대에 지어진 어떤 주택들은 아직 20년의 거치 기간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도 2조원 씩 적자라면, 앞으로 본격 상환시점이 닥치면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것일까? 아니면 장부상의 최종적으로 정산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현재로서는 현금흐름에 무리가 없는 것일까?
사실 현재의 적자는 건물 가치가 감가상각해서 ‘0’이 되는 것을 가정한 회계 장부상의 적자라고 들었다. 아마도 파국에 이를 정도의 문제가 현재의 재무구조 속에 잠복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이 문제를 짚는 이유는 ‘분양전환’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자고 하기 위함이다.
애써 지은 임대주택을 나중에 팔아치워서 생기는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한 쪽에서 아무리 지어도 다른 쪽에서 계속 팔면, 정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임대주택의 재고 유지가 힘들고 끊임없이 새 주택을 건설해야 하는 부담이 따르게 된다. 처음엔 실수요자에게 분양한다 해도, 손바뀜이 일어나면 다주택자의 수중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따라서 입주자가 먼저 간절히 원할 경우라면 몰라도, 공급자의 재무여건 개선을 위해 분양하겠다고 하는 것은 임대주택 정책의 취지를 거스리는 조삼모사와 같은 눈가림에 해당한다.
앞서 프랑스 사례에서도 보았지만, 아무리 공급자 금융이 투입되어도 손익분기점은 먼 훗날에 잡히는 것은 당연하며, 이는 ‘부담가능한 임대주택’ 사업의 숙명이자 본질이다. 그런데 과거엔, 그리고 현재에도, 이를 회피하기 위해 임대주택을 일부 분양주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리와 습관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장기저리 공급자 금융과 주거보조비가 해법이다.
택지개발에서 당장 수익도 내지 않고, 중간에 집을 팔지도 않으면서, 장기간에 걸쳐 초기의 비용을 회수하는 것. 무거운 과제 같지만, 원래 임대주택이라는 사업이 그런 것이다. 마치 발전소와 같다. 초기에는 큰 비용이 들어가지만, 장기간에 걸쳐 이용자들이 내는 사용료로 건설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공급자 금융이 필요한 것이다. 선분양이나 전세가 아니고!
마지막으로 싱가포르 모델에 대한 제언과 주거보조비 확충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마치려 한다. 국유지가 80%가 넘고 주택청(HDB)의 공공분양 주택의 최초 분양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지원을 하는 싱가포르의 사례는 ‘내집 마련’의 열망이 강한 한국에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토지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임대하고 주택만 분양하는 대신, 주택을 팔 때는 공공에 환매하는 시스템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서의 논의에서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점이 있어서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주거 시스템은, 굳이 해외에서 모델을 찾는다면, 1당이 장기집권한 도시국가의 모델 보다는, 네덜란드나 오스트리아 쪽이 좋다고 본다. 국토 차원에서는 균형발전을 이룩하고 공급자는 중앙공기업, 지방공기업,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등이 다양하게 어우러져서 분양과 임대가 골고루 공존하여, 그나마 현실에서는 1인가구나 다인가구나, 집을 소유하든 임대하든 저마다의 선택권을 가장 존중하는 시스템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뭐 사회적 합의가 굳이 싱가포르 방향으로 정해진다면 별수 있겠는가. 다만 싱가포르 모델을 지향한다 해도 다음 두 가지는 꼭 당부하고 싶다. 저렴한 지상권과 결부된 환매 의무와, (여기에서도 또!) 금융이다.
싱가포르의 토지임대부 주택은 토지임대료로 적은 금액을 1회성으로 내고 지상권을 얻는 대신, 매각시에는 공공이 환매한다. 그런데 서울시(SH)의 요청으로 개정된 주택법에서는 사인간 거래를 허락했다. 싱가포르보다 훨씬 비싼 토지임대료를 매달 내야하는 만큼 입주자들의 부담이 커지는 것을 상쇄하기 위해, 나중에 제 3자에게 매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토지임대부의 취지를 2가지 측면, 즉 저렴한 토지임대료의 측면과 환매를 통한 공공성 확보의 측면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타락이다. 이럴 거면 뭐하러 복잡하게 토지를 임대하는 것일까?
금융 역시 중요한데, 이번엔 소비자 금융이다. 토지임대료가 아무리 저렴한들, 건물값만 해도 몇 억이다. 흔히 생각하는 6억짜리 집이면 대략 건물값만 해도 3억이라고 할 때, 평균적인 근로자가 바로 현금으로 3억을 주고 집을 사긴 쉽지 않다. 어느 정도는 대출이 필요하다.
그런데 주로 담보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한국의 소비자 금융 시스템에서는, ‘토지 지분이 없는 자’에게는 대출이 불가능하다. 즉 토지임대부 주택을 한국에 도입하려면, ‘토지 지분이 없는 입주자’에게도 대출을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가령 앞서의 지상권에 근거하여) 마련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처럼 주택청을 만들것이냐, 우리는 국유지가 적은데 가능하겠느냐는 등의 문제는 이에 비하면 차라리 부차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해외의 어느 모델을 따르겠다면 싱가포르보다는 오스트리아 모델이 좋겠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한다.
주거보조비 확충이 핵심.
주거비 보조제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하고, LH의 ’택지개발 사업‘에 대한 대안 차원에서만 간단히 언급하고 마친다.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를 원가 수준으로 받고 장기저리 금융이 들어와서 공급자를 뒷받침하게 된다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입주자 중에서는 이마저도 부담스러운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래서 주거복지의 차원에서 입주민의 소득수준에 맞춰 임대료를 차등화하는 것을 추구했다. 형편에 따라 ‘주거비’를 차등화하는 방법으로 ‘임대료’를 직접 조절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거대 독점 공기업이 주먹구구 식으로 비용과 수익을 하나의 바구니에서 처리할 때나 작동 가능한 방법이다. 분권화 시대에 지방공기업도 공급자의 역할을 하고, 민간 영역에서 사회주택도 많아지는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다. 같은 비용을 들여 공급한 주택에 대한 임대료가 입주자에 따라 달라지게 되면(=소득연동형 임대료), 공급자 입장에서도 저소득층이 입주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공급자가 다양할 경우에는 공급자 사이에서의 형평성도 문제가 된다.
더 큰 문제는, 공급자가 장기적인 현금흐름 계획을 세울 수 없게 되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장기저리 공급자 금융’을 얼마나 어떻게 투입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다시 말해, ‘땅장사’를 그만두게 하기 위해 투입해야 할 공급자 금융의 규모나 상환조건을 설계하기 어려워진다.
앞으로 임대료는 공급자가 땅장사를 하지 않아도 운영이 가능한 원가 수준으로 임대료를 받되, 이 임대료와 입주민이 부담가능한 수준의 주거비와의 차이는 별도의 주거보조금으로 메꾸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즉 임대료는 주택의 품질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책정하고, 주거(보조)비를 입주자의 소득에 연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무슨 대단히 신기한 게 아니라, 대부분의 복지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방식이다. 오히려 임대주택도 온갖 종류에, 재원 구조와 임대료와 입주자격이 제각각인 지금 우리의 방식이 진귀한 편이다.
현재도 주거급여라는 이름으로 제한적으로 시행되는 주거보조비의 1년 예산이 2조원이 좀 안된다. LH가 주장하는 임대부문의 적자도 그 정도 된다. 그럼 700조원에 가까와지고 있는 우리나라 예산에서 0.3%만 더 주거보조비 예산으로 투입하면, LH는 땅장사에서 해방되고 우리는 토지를 더 공공성 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분야가 다 저마다 예산을 늘려야 할 이유가 있겠지만, 부동산이 그렇게 문제라면, 정말 땅장사를 그만하게 해야 한다면, 이제 더 늦기 전에 잘못 끼워진 단추를 다시 채워야 하지 않을까?
LH<국토부<행정부<국회의 판단은?
정말 마지막으로, 어느 우화를 소개하며 마치고자 한다. 기업에서 인재들의 퇴사가 잦아 이유를 파악해보니, 집이 먼 사람들이 퇴사하는 경향이 뚜렷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인사담당자의 대책은, 집이 가까운 사람 위주로 신입사원을 뽑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재를 뽑으려는 CEO는, 회사 가까운 곳에 사택을 마련할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LH의 시야에서는 택지분양을 하지 못하면 분양전환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주택도시기금을 다루는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는 장기저리 대출을 해주기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소관부처인 국토부는 어떤 관점에서 사안에 접근해야 할까? 국토교통부 뿐만 아니라 복지부와 기재부, 농림부와 행안부까지 다루는 행정부의 관점은, 또는 정무위와 기재위와 국토교통위가 있는 입법부의 시야는 어때야 할까?
이제 문제는 장기저리 공급자 금융이다. 그리고 주거보조비다. 이를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은 주택도시기금 외에도 충분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