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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돈키호테와 아틀라스

“공포는 사물의 본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게 하지.”

‘슬픈 얼굴의 기사’ 라만차의 돈키호테는 이렇게 말한다.

신기술은 오래된 작업 방식을 대체한다. 그래서 오래된 작업 방식으로 일했던 사람들은 그 일을 빼앗긴다. 그래서 신기술은 마치 일자리를 잡아먹는 무자비한 괴물처럼 묘사되기도 한다(분노의 포도). 어떤 시대를 규정할 만큼 강력한 신기술, 그에 따른 제도와 문화가 등장하면 갑자기 현재는 과거가 되고, 지나가 버린 추억이 된다. 익숙했던 모든 게 촌스럽고, 측은하며 때론 우스꽝스럽거나 퇴장해야 할 퇴물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건 사물에 그치지 않고, 제도나 문화에 한정하지 않으며, 결국, 무섭게도,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나/우리)’은 이미 과거의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돈키호테도 마찬가지다. 돈키호테는 기사가 더는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의 마지막 기사다. 그는 무시무시한 풍차와 싸우고, 미코미코나 공주를 핍박하는 ‘거인’ 포도주 부대와 싸우며, 정작 실제로는 시골 여인에 불과한, 돈키호테에게만 아름다운 여인 둘시네아를 위해 투쟁한다. 그리고 그 찬란한 모험의 끝에, 자신의 시종이자 동료이며 돈키호테만큼 위대한 영웅 산초 판사에게 자신의 모든 유산을 전한다.

물론 현실은 잔인할 만큼 초라하다. 돈키호테는 광기에 사로잡힌 우스꽝스럽고 볼품없는 시골 귀족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투쟁과 죽음은 그렇지 않다. 그 투쟁은 서툴지만 고결하고, 그 죽음은 소박하지만 따뜻하며 무엇보다 숭고하다. 그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도의 화신, 불멸의 기사로 영원을 산다. 햄릿은 과거를, 돈키호테는 미래를 숙주로 삼아 영생한다(햄릿의 고뇌는 과거 회귀적이고, 돈키호테의 모험은 미래 지향적이다).

다시 돈키호테의 충고로 돌아가자. 공포는 사물의 본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오늘 화두는 ‘아틀라스’다. 피지컬 AI 시대를 상징하는 아틀라스는 현대차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최첨단 휴머노이드(인간 모습을 한 로봇)다. 아틀라스는 힘세고, 지치지 않는다. 1억 연봉 노동자보다 2배 더 일할 수 있다. 더 많은 월급을 요구하지 않고, 회사를 상대로 투쟁하지도 않는다.

노동자의 공포이자 새로운 기술의 ‘신’으로 등장한 아틀라스를 둘러싸고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정확히 말하면, 언론이 시끄럽다. 하지만 그 공포는 익숙한 저널리즘 ‘마케팅’의 일부인 것처럼 보인다.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은 신기술과 일자리에 관한 담론이 과장된 공포와 이분법적 결정론에 의해 신화화하고 왜곡돼 있다고 비판한다. 이상헌에 의하면, 언론의 ‘아틀라스 공포 마케팅’이라는 요리의 주요 재료는 둘이다.

  1. 공포는 돈이 된다.
  2. 현대차 노조는 싫다.

그 두 가지 재료로 만든 요리는 조악하다.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인간처럼 걷고 움직이는 로봇이라는 현실이 된 SF의 미래, 그러니 오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감정과 공포를 일단 거두고 로봇과 일자리의 미래, 아틀라스와 현대차 노조의 내일에 관해 이상헌에게 물었다. 이상헌은 의외로 ‘희망’을 이야기했다. 아래 그 희망의 근거를 정리한다.

이상헌의 ‘제네바 인터뷰’ [ep. 55]

로봇과 돈키호테:
아틀라스의 ‘거대한 수레’에 희망을

공포 시장: 과장과 혐오 그리고 이분법

“노사 합의 없이는 (아틀라스 투입) 단 한 대도 안 된다”

헌대차 노조, 2026년 1월 22일

“거대한 수레 피할 수 있나”
“투쟁 전략 일부겠지만, 어차피 올 세상이면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기본 사회가 필요하다.”

이재명, 2026년 1월 29일 수석보좌관 회의

생산적인 논의가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현대차 노조에 대한 감정이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해도 불협화음으로 ‘엇박자’가 난다. 언론을 포함해서 현대차 노조에 대한 감정이 별로 안 좋다. 감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다. 경청할 이야기조차도 감정적인 반응이 먼저 나오는 것 같다. 이런 감정적 요소를 제거하는 게 먼저 필요하다. 그래야 생산적 논의를 할 수 있다.

한편, 대통령의 “거대한 수레’는 정확한 비유는 아니다. 굴러가긴 굴러갈 테지만, 어떤 속도로 어떤 방향으로 굴러가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정치는 그 방향, 속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비유 이야기를 했으니 하나 더. ‘러다이트’ 비유는 너무 나아간 것 같다. 현대차는 이미 자동화율이 굉장히 높다. 기아 광명 공장(광명 EVO Plant)은 생산 공정이 100% 로봇이다. 하지만 고용 규모는 로봇 100%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큰 변화가 없다. 인간의 관리에 필요하다. 19세기 러다이트 상황, 그러니까 처음 기계가 처음 등장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상황과는 좀 다르다. 이미 로봇화는 진행이 이뤄지고 있다. 언론이 ‘공포 마케팅’으로 이 상황을 묘사하는 이유는 알겠지만, 너무 과장하는 것 같다. 이게 첫 번째다.

크롬(브라우저)에서 ‘아틀라스 네오 러다이트’로 ‘이미지’ 검색한 모습.

그리고 대통령의 ‘기본 사회’ 언급은 너무 쉽게 일자리를 포기하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는 한다(웃음). 기본 사회로 넘어가기 전까지 중간 단계는 얼마든지 있다.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다. 너무 드라마틱하게 양자택일 문제처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나 싶다.

기술 변화를 인간 중심으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게 핵심 질문이다. 과장된 극적 논의는 자제하면 좋겠다. 아틀라스 이슈와 함께 뉴스에서 언급되는 ‘아마존 3만 명 감축’도,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3만 명 감축 계획이라고 하면 아마존이 정말 격변의 소용돌이에라도 빠진 것처럼 받아들이지만, 아마존의 전체 고용 규모는 지난 5년 동안 비교적 꾸준히 유지됐다.

그리고 신규 고용에 관해서는 ‘대량 감원’보다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기술 변화와 연동한 일자리 문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언론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없어지는 일자리 쪽에만 주목한다. ‘비대칭적인 정보 생산과 소비, 유통’의 경향성이 존재한다.

📌 참고: 연도별 아마존 전 세계 고용 규모 (정규직 및 파트타임 포함):

2020년: 약 129만 8천 명 (팬데믹 초기 물류 수요 폭증으로 인한 대규모 채용)
2021년: 약 160만 8천 명 (최고점)
2022년: 약 154만 1천 명 (팬데믹 후 인력 감축 시작)
2023년: 약 152만 5천 명 (비용 절감 및 효율화 지속)
2024년 (전망/상반기): 약 152만~155만 명 수준 유지 (대규모 감원과 AI 부문 채용 병행)
2025년 초: 약 155만 6천 명 ~ 157만 8천 명 (구조조정 후 재조정, AI 및 클라우드 부문 투자 확대) 

그리고 민노씨가 말한, 2019년 5월 현대차 노사의 ‘자동차 산업 미래 전망과 고용 변화 토론회’ 전망도 아주 적절한 예시다. 당시 윤선희(금속노조 현대차지부 4차 산업연구위원회 팀장)는 이렇게 말했다:

전동화(전기로 움직임)와 공유 경제 등에 따른 생산 기술 변화로 2025년에는 생산 인력이 40% 줄어들 것

윤선희(금속노조 현대차지부 4차 산업연구위원회 팀장), 2019년 5월.

2019년 당시 고용 현황을 보면,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생산직은 약 3만2000명(현재는 약 3만 명)으로 “40%가 줄어들 것”이라는 건 예측은 빗나갔다. 생산직 규모는 그때와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신규 채용 뉴스는 뉴스 가치가 낮고, AI 시대의 도래와 감원 이슈에 관해서는 뉴스 가치를 높게 부여한다. 그리고 하나 더 이런 ‘선입견’을 강화하는 게 주식과 뉴스의 상관관계다. 아마존과 같은 큰 기업들은 배당과 관련해 경영진의 ‘비용 감축 의지’를 ‘감원 뉴스’로 어필한다. 예전에는 대량 해고 뉴스가 주식 가격을 떨어뜨렸지만, 지금은 해고 뉴스가 주식에서는 ‘굿 뉴스’다. 그런 측면도 있다. 그리고 아마존은 지금 고용 규모로만 보면 좀 포화 상태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건, AI 투자와 인력 비용 감축이다.

주가를 위해 뉴스를 흘리고, 뉴스를 만든다.

“단 1대의 로봇도”

노조의 협상 전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체협약(현대차 노사 단체협약 제41조) 규정이 있다. 물론 ‘미국 공장에 로봇을 도입하는 문제를 왜 한국 공장 노동자와 협의해야 하나?’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결국 한국 공장에도 영향을 크게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 측에서는 노조와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노조는 한국 공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서 당연히 이야기해 보자고 할 수 있다.

참고로 현대차가 지난해(2025) 무분규 협상 타결이 6년만 깨졌다. 하지만 이걸 심각한 신호로 볼 필요는 없다. 당장 아틀라스를 도입하는 게 아니라서.

미국 공장에 먼저 도입하는 이유: 숙련도 문제

시간당 운용 비용 1달러? 로봇을 컨트롤하고 감시하는 인력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한데, 그런 인력 비용을 빼먹고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왜 미국 공장에 먼저 도입하려고 하느냐면, 트럼프 압력도 있고, 두 번째는 자동차공장을 만들려고 하면, 저숙련 노동자로는 현장 관리가 안 된다. 아무리 자동화라고 하더라도, 중숙련 이상의 인력이 필요하다. 현지 인력 숙련도를 고려하면 미국 공장에는 아틀라스를 투입할 수밖에 없다.

그 관점에서 보면 한국 공장은 숙련도가 높아 사정이 좀 다르다. 미국에서는 인간 노동자보다는 로봇 투입이 더 싸게 먹힐 수 있다. 지금 당장 공장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리고 로봇을 투입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건 미국 공장이다. 경제지에서는 한국 노조가 반발해서 미국 공장에 도입한다고 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 공장에 먼저 투입하는 건 그럴 만한 상당한 이유, ‘숙련도’라는 이슈가 있다.

공장 현장에서 로봇만 남고 인간 관리자가 사라질 것으로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A 시나리오.

  1. 아틀라스를 도입한다.
  2. 예전 인력 100명 있었는데, 100명 모두 사라진다! (이건 말이 안 된다)
  3. 예전 100명 중 70~80명 인력을 아틀라스가 대체한다. (이 경우라고 하면)
  4. 그러면 원가를 얼마 얼마 절약할 수 있다.
  5. 이런 가정도 절반만 맞다.

B 시나리오.

  1. 아틀라스 생산 라인에 도입한다.
  2. 그러기 위해선 초기 투자 비용이 엄청나다. 한국이 설비 투자가 엄청 빠르긴 하지만.
  3. 위 A 시나리오의 맹점은 생산 총량을 그대로 두고 인력만 대체한다는 가정이다.
  4. 가령 기존 30만 대를 생산했다고 하면, 아틀라스 도입 이후에는 50만 대 100만 대로 물량 생산 목표를 높인다.
  5. 그리고 추가된 목표에 따라 추가 인력 수요가 생긴다. (참고: 기아차 광명 공장)

현장 변화의 입체성을 다각도에서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탁상에서 현재 자료만으로 일차원적인 숫자로 살펴보면, 인력 고용 추이를 잘못 계산할 가능성이 크다. 즉, A로 계산하면 절반만 맞고, B로 현장과 변수, 외부 환경 변화 등의 추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당장이 아니라 내일을, 패배가 아니라 희망을

광명 기아차 공장은 100% 자동화했다고 했지만, 공장 현장에서 ‘오류’가 생기면 인간이 나서서 그 구멍을 메꿔야 한다. 자동화 100%라고 해도 인간이 현장에서 사라진 건 아니다. 항상 관찰하고 보고하고 점검해야 한다. 물론 그런 모니터링 업무마저 아틀라스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경우는 좀 새로운 차원이긴 한다. 한국이 많은 분야에서 ‘프런티어’ 역할을 하는데, 공장 실무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인간형 로봇으로는 전 세계 최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주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광명 기아차 공장의 경험 때문이다. 그동안 로봇 자동화를 이만큼 이끌어왔다. 다만 우려하는 것은 너무 단기로 편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다. 선악이나 승리 혹은 패배의 이분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틀라스로 인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일자리’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있는 일자리에만 집중해서 생각하면, 새로운 숙련 체계, 새로운 직종을 만들어낼 여지는 오히려 적어진다. 현재 상황에서 내가 가장 우려하는 건, 기존 일자리 대체에만 몰두하는 정치권과 기성 노조 그리고 언론의 관점이다. ‘지금 당장 내 일자리’만 생각하면 좋은 논의의 가능성은 작아진다. ‘미래의 다음 세대 일자리’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대차 노조에 대한 한국 사회적 ‘낙인'(선입견) 때문에 ‘지금 당장 일자리’에만 주목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긴 하다.

현대차 노조와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

민노씨 말대로, 아틀라스 관련한 기사들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쌤통’이라는 댓글이 많을 수밖에 없다. 현대차 노조는 이기적이고 돈은 많이 가져가는 노조로 사회에 비춰왔다. 비정규직 문제에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현대차 노조의 전체 규모 4만 명 4천 명 중 생산직은 약 3만 명 수준이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90%)은 정규직(특히 생산직의 경우)이다.

현대차 노조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좋게만 볼 수 없다. 비정규직을 통해서 비용을 감축하고, 정규직의 이익을 늘리는 방식으로 현대차의 비용 절감은 이어져 왔다. 그런데 ‘나 현대에서 일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비정규직이 매우 많다. 현대차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하청 규모만 1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우대’ 받는 정규직 현대차 노조가 어떤 ‘노력’했느냐고 물으면 노조가 이야기할 게 별로 없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정규직 중심) 현대차 노조가 자신의 ‘오늘 일자리’에만 매몰되지 말고, 미래 세대의 ‘내일 일자리’를 고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일자리 고민은 통상 ‘난 퇴직이 5년 남았어’, ‘난 10년 남았어’ 거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과 상황은 이해하지만, 좀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어떨까.

  • 아틀라스를 중심으로 미래의 숙련 구조는 어떻게 바뀔까.
  • 아틀라스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관련 직종을 창출할 수 있을까.
  • 그것도 이왕이면 좀 더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려면 어떻게 힘을 모아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함께하면, 기존 노조가 퇴직함으로써 일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일자리를 위해 유산을 남길 수 있다.

로봇세와 젠슨 황

10년 전부터 이야기했던 건데, 힘들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금은 관련한 논의가 잠잠해졌다. 거대 기업의 독점화와 금융화는 법리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로봇으로 생산성이 높아지면, 그 유익이 발생하고, 노동자가 일정하게 피해를 보니 생산 이익을 재분배하자는 논리고, 무엇보다 로봇으로 인해 피해 본 노동자에게 배분하자는 좋은 취지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 두 가지 난점이 있다.

  1. 로봇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어렵다.
  2. 데이터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데이터는 상대적으로 특정하고 정의하기 쉽다.

국제적인 논의도 쉽지 않다. 독점화와 금융화는 세금보다는 공정거래법상 독점 규제 차원으로 접근하는 게 오히려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빅테크를 통한 금융화도 문제다. 이 문제는 로봇세와는 별도로 논의해야 할 것으로 본다.

젠슨 황이 “AI가 110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건, 뭐랄까, 젠슨 황에게 영향력 있는 사업가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발언권을 주는 느낌이랄까. 젠슨 황의 발언권이 기술과 기업에 한정되면 좋을 텐데, 마치 세계의 운명, 지구의 운명,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처럼 언론이 띄운다. 주가에 영향을 주기 위한 측면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젠슨 황은 뛰어난 사람이지만, 세계는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젠슨 황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와 테크 그루, 슈퍼스타 경영자의 ‘예언’은 빗나갔다.

젠슨 황은 뛰어난 경영자다. 하지만 세계는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아틀라스가 정말 필요한…힘들고 위험한 곳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현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사회적 관점에서 사람들이 로봇을 다 싫어하는 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쓰면 좋을 분야가 있다. 인간이 일하기엔 너무 힘들고 위험한 곳이다. 그런데 세상의 관심은 로봇 도입을 통한 기업의 비용 절감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기득권 노조의 반발이라는 식으로만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다. 그것도 아니면 주가 상승 재료로 ‘뉴스’를 흘린다. 그런데 아틀라스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정말 많은 분야가 있다.

대표적인 게 위험한 일자리, 채굴 관련한 일자리, 건설 관련한 일자리, 조선소 쪽 일자리다. 사회적으로도 공공 서비스 중에서 위험한 일자리가 많다. 가령, 소방 업무라든지.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 로봇 비용과 로봇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기여가 높은 부문에 로봇을 우선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분야는 오히려 ‘후순위’다. 로봇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사회적 공익적 가치가 높은 곳에 먼저 배치할 수 있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돌봄

내가 무엇보다 주목하는 분야는 ‘돌봄’이다. 돌봄 영역에서 아틀라스의 활용도가 높을 수 있다. 현재 돌봄 노동의 주체는 ‘노인’이다. 늙고 힘없는 노인이 더 늙고 더 힘없는 노인을 돌본다. 이런 돌봄 영역에 로봇을 적극 도입하면, 로봇을 관리하고 제어하는 관련 일자리를 확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로봇이 기존의 인간 노동을 1:1로 대체하는 건 아니다. 로봇과 관련한 일자리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그리고 돌봄 서비스 영역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30만 대 생산하는 자동차를 50만 대, 100만 대 증산하는 방식으로 관련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로봇과 관련한 일자리는 생각보다 더 늘 수 있다.

‘로봇이 몰려온다.’
‘로봇이 인간을 대신한다.’

이런 프레임은 너무 단순하다. 마치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식의 과장된 공포는 현 상황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인간이 만든 기술이고, 그 기술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도 인간이 정할 수 있다.

아틀라스라는 ‘거대한 수레’에 희망을

이재명 대통령도 로봇이 그저 인간 노동자를 대체한다는 것이 아니라 로봇이 사회적으로 기능할 다양한 가능성을 강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틀라스가 반드시 생산직 노동자를 대체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하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트라스를 그런 역할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거대한 수레”라는 비유가 ‘공포’에서 ‘희망’으로 바뀔 수 있었는데 아쉽다. 근미래의 심각한 현안으로 생각하고 사회적 상상력,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기에는 여유가 없었을 수 있다. 대통령이 로봇과 일자리의 관계에서 뭔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는 것으로 여기진 않았으면 한다.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는 어떤 틀이나 방향으로 결정된 게 아니다. 그 미래는 인간이 디자인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로봇이 온다! 이런! 이제 우리 어떻게 하지?’ 이런 반응보다는 ‘로봇이 온다고? 그럼 이제 우리는 로봇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걸 해보면 어떨까? 저렇게도 한번 해볼까?’ 이런 접근, 반응과 방향성이 훨씬 더 ‘생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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