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인터뷰 38.] 삼성의 ’52시간 노동시간 규제 완화’ 주장은 한국식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맥거핀’ 전략이다. 이재용의 알리바이를 제공하고, 공적 자원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일거양득의 전략.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이 이야기하는 노동과 경제와 세계 그리고 인간. (⌚9분)

“벽에 걸린 저건 뭔가요?”
“아, 저거요? 맥거핀입니다.”
“맥거핀이라고요? 어디에 쓰는 건가요?”
“스코틀랜드 북부 산악지대에서 사자를 잡는 데 쓴답니다.”
“스코틀랜드에는 사자가 없는데요?”
“아, 그럼 맥거핀은 아무것도 아닌 거군요.”

영화에는 ‘맥거핀 효과’라는 게 있다. 영화감독 히치콕이 자신의 작품에 도입한 일종의 ‘트릭’이다. 위 대화는 히치콕이 맥거핀을 설명하는 하나의 예시다. 스코틀랜드에 사자가 살지 않는다면, 사자 잡는 데 쓰는 새(鳥) 맥거핀도 소용이 없다. 히치콕은 관객의 관심을 일정하게 유도하면서 긴장을 유지하기 위한 ‘어떤 소품'(혹은 어떤 배경 설정이나 관념)을 사용했고, 그게 바로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사자 혹은 그 사자를 잡기 위해 쓰는 새, 맥거핀이다. [사이코]의 돈다발, [바톤 핑크]의 미스터리한 상자, [미션임파서블 3]의 ‘토끼발’이 영화 속 대표적인 맥거핀들이다.

스릴러의 거장, 앨프리드 조지프 히치콕 경(Sir Alfred Joseph Hitchcock, 1899~1980). 1960년대 모습. 위키미디어 공용.

삼성의 ’52시간 노동시간 규제 완화’ 논란에서 왜 갑자기 맥거핀 타령이냐고? 삼성의 ’52시간 노동시간 규제 완화’ 주장은 히치콕이 울고 갈 한국식 미디어 정치경제학의 ‘맥거핀’이기 때문이다. 이번 ‘제네바 인터뷰’에서는 삼성의 52시간 ‘징징거리기’에 관해 이상헌 박사에게 물었다.

이상헌 박사가 보기에 삼성의 ’52시간 징징거리기’는 하나의 미디어 전략이다. 항상 이야기는 권력의 욕망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런 서사의 대결이야말로 현실적 권력관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이상헌 박사는 지적한다. 삼성이 반도체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면서 52시간 노동시간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떠벌리는 ‘이야기’에는 어떤 합리적 이유도 과학적 근거도 경제학적 설득력도 없다. 거기엔 ‘오너’ 이재용(삼성전자 회장)의 잘못된 판단과 실수 그리고 부족한 리더십을 가리고 싶은 ‘가짜 알리바이’가 가득하다.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라는 그럴듯하게 보이는 합법적 방식으로 공적 자원을 사적으로 유용하겠다는 또 다른 목적은 덤이다.

이상헌 박사가 삼성의 ’52시간’을 미디어 전략으로 평가하며 비판하는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자.

이상헌의 ‘제네바 인터뷰’ [ep. 38]

이재용의 알리바이:
삼성 노동시간 서사에 담긴 미디어 전략

질문 정리: 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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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5년 1월 24일(금)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소제목이나 본문에 맥락화했고, 본문은 이상헌 박사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최종 정리 과정에서 이상헌 박사가 직접 내용을 확인하고 퇴고했습니다.

52시간 제한 풀어주세요? 그건 참 뜬금 없는 이야기

48시간은 52시간에 비하면 훨씬 과학적이다. 물론 우연적 요인도 있겠지만, 48시간이라는 건 하루 8시간 노동하고, 6일 일한다는 걸 기준으로 만들어진 숫자다. 5일 일하면 40시간이다. 48시간이든 40시간이든 국제적으로 주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걸 문제 삼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노동시간이 문제 된다. 이건 한국 특유의 현상이다.

이런 맥락에서 52시간이라는 건 아주 독특한 숫자다. 우선 결론을 말하면, 반도체 산업, 특히 삼성이 52시간 제한을 풀어달라고 했다고 해서 그런 요구를 받아줘선 안 된다. 왜냐? 지금 반도체 산업의 위기 원인은 ‘노동시간’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때문에 반도체 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낮아졌다? 그러면 외국 반도체 산업의 노동시간이 한국과 비교해서 늘었다는 비교 대상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 자료를 접해 본 적 없다.

물론 미국은 ‘오버타임'(노동시간 제한) 규제가 없다. 대신에 철저하게 추가 노동에 관해 돈을 지급해야 한다. 미국은 그렇다. 대만이나 유럽은? 가령 네덜란드는 법이 아주 엄격하다. 그런 상황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연구원 노동시간이 경쟁력과 관련된다는 건 좀 뜬금 없고 황당한 이야기다. 한국은? 노동시간 규제도 많지만 그 예외 규정도 굉장히 많다. 대기업은 전략적으로 법을 지키는 외양을 취하면서도 다른 편법적 방법을 취해왔다.

다시 강조하지만, 52시간 규제 완화 주장은 우선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고, 그 근거 역시 비합리적이며, 국제적인 기준으로도 정말 너무 ‘올드 패션’이다.

AI 시대에 노동시간 타령하기.

삼성 미디어 전략의 핵심은 ‘이재용의 알리바이’

삼성의 방식이라는 게 이렇다.

  1. 언론의 서포팅: ‘노동시간 때문에 한국 반도체 경쟁력 떨어졌다’류의 기사들
  2. 국회 토론회: 노동시간과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에 관한 무슨 무슨 토론회
  3. 정부나 여당 혹은 유력 야당의 움직임

이런 일련의 과정은 고도로 기획된 ‘미디어 전략’이다. 그리고 그 미디어 전략의 핵심에는 정말 삼성 반도체 경쟁력 제고를 위한 몸부림과 진심이나 과학적인 분석의 결과로 꼭 그렇게 해야겠다는 다짐이 담긴 게 아니다. 삼성의 미디어 전략은 삼성 반도체의 부진이 실은 기업의 총수 역할을 하는 이재용 삼성전기 회장의 판단 착오와 리더십 부재라는 ‘진짜 이유’를 감추기 위해 철저하게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간 때문에 삼성 반도체의 경쟁력이 하락해야 그 책임을 이재용이 탓이 아닌 ’52시간 규제’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일관해서 노동시간 제한 규제 완화를 드라이브해 왔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이런 ’52시간 프레임’을 갖다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앞서 강조했지만, 52시간 규제 완화 프레임은 어떤 논리적 실증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정치가 반응하는가? 이게 바로 기업의 프레임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한국 정치와 미디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에 대한 원칙이랄까 철학이랄까 방향성이 없다. 연구원만 문제된다면, 반도체 업체뿐만 아니라 바이오 산업, 자동차 핵심 하이테크 엔지니어들이 문제되어야 하는데, 왜 반도체만?

이런 질문은 정치도 언론도 충분히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아니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품을 법하다. 물론 반도체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긴 하지만, 이건 정말 심하다. 이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미디어 전략이 여전히 반복되는 건 기본적으로는 기업도 정치도 언론도 그 철학과 원칙이 존재하지 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주 간단한 질문, 아주 평범한 상식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 그런데 정치도 언론도 그걸 안 한다.

삼성의 서사를 무너뜨리는 단 두 개의 질문

상식적인 질문 한두 개면, 삼성의 엉터리 미디어 전략이 구축한 서사는 무너진다.

  • 엔비디아가 오래 일해서 경쟁력이 생겼나?
  • SK하이닉스가 연구원 노동시간 늘려서 삼성을 앞섰나?

연간 단위로 보면 한국은 꽤 길게 노동할 수 있는 나라다. 그리고 주 단위로 40시간 52시간을 비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노동 시간 통제가 강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아래 한국경제 기사를 한 번 살펴보자.

한국경제의 ‘엉터리’ 비교 인포그래픽. 기사 출처.
  • 투자액 비교 자체가 삼성은 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이 포함된 것이고, 특히 휴대폰이 많을 거다. 위 한경 기사의 인포그래픽 상 비교 자체가 합리적인 비교가 아니다.
  • 오른쪽 반도체 점유율도 한국 노동시간 규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점유율이 떨어진 것과는 관련이 없다고 봐야 한다.
  • 만약에 2010년 정도에 노동법을 세게 바꿔서, 노동시간을 강하게 통제했기 때문에 점유율이 낮아졌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게 팩트다.
  • 가운데 그래프를 보자. 월평균 노동 시간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대만이 연간 약 2000시간 정도, 한국은 약 1900시간 정도다(각각 2022년 기준). 두 개의 다른 데이터를 비교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원들 노동시간도 대만과 별 차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응원까지 받으면서 공적 자원을 사적으로 유용하기

한국의 노동시간 법제는 아주 오래됐다. 우선 대기업에 먼저 적용했고, 차츰 5인 이하 사업장에 적용할지가 쟁점이 됐다. 노동법적 환경, 규제의 환경은 최소한 지난 10년 동안 한국도, 미국도, 대만도, 일본도 없었다. 반도체 대기업에 관해서는 노동시간 조건은 대동소이하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한국만 노동시간 때문에 경쟁률이 떨어지고 점유율이 낮아졌다는 것은 앞서도 말했지만,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우선 가장 주요한 목표는 ‘이재용 (잘못) 없다!~’는 프레이밍을 위한 미디어 전략이고, 부수적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미디어 전략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징징거림이 가진 ‘도덕적 해이’를 생각해 보라. 돈 많이 벌 때는 투자하지도 않다가 점유율 떨어졌다고 정부에 지원해달라? 어떤 국민에게도 설득력이 없고 지지받을 수 없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럴듯한 ‘핑계’를 대기 위해 ‘노동시간’이라는 한국 특유의 친화적 ‘레토릭’을 가져온 것으로 보이고, 그렇게 삼성의 잘못과 이재용의 잘못을 가리는 면죄부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노동자의 게으름’이라는 프레이밍은 역사적이고 문화적이며 관습적으로 아주 감성적인 수용도가 아주 높은 게 사실이다. 미국에서 빅테크가 이런 주장을 했다면? 언론에서는 헛소리라고 비웃을 것이고, 아마도 언론의 융단 폭격을 당했을 거다. 일본도 이런 식으로 노동시간을 기업의 실수를 감추는 미디어 전략으로 삼거나 노동자의 게으름이라는 전 근대적인 이미지 전략은 거의 사라졌다. 장시간 노동의 추억을 가진 세대는 이런 방식의 프레이밍에 아주 익숙하고 수용도가 높아서, 어떻게 보면 이런 미디어 전략은 초일류를 추구하는 삼성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은 아주 후진적이고 사악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식 과두정의 정치경제학

반도체 사업이 어려워진 상황에 대한 ‘희생양’ 찾기이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일타쌍피’ 전략이다. 가정해 보자.

선임연구원에게만 노동시간 규제를 풀겠다고 한다면? 정말 삼성이 좋아할까?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다. 노동시간 규제 풀어준다고 해서 반도체 경쟁력이 올라가지 않을 거라는 건 삼성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규제 완화는 삼성의 미디어 전략상 일종의 ‘트로이 목마’에 불과하고, 가장 큰 목적은 이재용의 잘못과 실수를 감추는 것이며 현실적 목표는 정작 정부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것(속마음)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어떤 지원이 가능할까? R&D 투자와 관련해서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무슨 무슨 위원회에서 세제 혜택안을 입법할 수도 있고, 초저금리로 금융 지원을 할 수도 있다. 삼성의 미디어 전략은 그런 여러 가지 경제적 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베이스 마련 작업으로 보인다. 민주당도 이런 삼성의 속마음을 알고 있을까? 당연히 알면서 속아주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이야기를 하면서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하나로 합체한 ‘과두정’의 위험성을 이야기했는데, 모든 이윤과 이익은 독점할 수 있고, 국가적 지원마저 사회적인 제도의 방식으로 동원할 수 있는 게 이 과두제의 핵심 논리다. 삼성은 한국에서 그런 힘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인 비용을 사적으로 유용할 수 있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국가대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악용)한 삼성의 미디어 전략은 사회적 자원을 사적으로 (편)취하기 위한 내러티브 작업이다. 언론 역시 아는지 모르는지 그런 삼성의 ‘시나리오’에 기꺼이 편승하고 있다.

삼성만을 위한 서사… 대안적 서사는 정치와 언론의 몫

철저하게 삼성이라는 사적 기업을 위한 서사 만들기가 진행 중이고, 안타까운 점은 기업 이기주의 내러티브에 대항하는 ‘대안적 내러티브’가 없다는 점이다. 삼성 52시간 사례처럼, 거대 기업 중심의 내러티브에는 민주당이 따로 없고, 국민의힘이 따로 없다. 서로의 적대적 당파에도 불구하고 양당 모두 기업의 내러티브에 포섭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국민의힘은 완전히 포섭됐고, 민주당은 한 발을 걸치고 있는 모양새라고 볼 수도 있지만, 본질에서 양당의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커 보인다. 민주당 안에서의 스펙트럼을 보면, 합리적인 그룹이 많아 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대안적 내러티브를 논의하는 그룹은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은 정당이 해야 하는 일이고, 언론이 해야 하는 일인데, 현실은 어떤 면에서는 좀 비정하기도 하다. 항의하고, 반대하는 책임을 시민단체나 개별 시민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익은 서로 담합해서 취하고, 사회적인 자원마저 사적으로 유용하면서 그 책임을 시민사회에 돌리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정당이 존재하는가? 왜 언론이 존재하는가? 정당도 언론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야기에는 사회적인 힘이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힘이 실린 이야기라면 더 큰 힘이 있다. 반대편(삼성)이 너무 노골적으로 시민을 바보 취급하면서 정당과 언론마저 하나가 되어 사적인 이익에 취하고 있다면, 그 집단 기득권의 힘에 저항할 수 있는 사회적인 서사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사회적인 대안 에너지가 광장에서만 표출되고 있어서… 그게 좋아보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서사를 만들어주는 곳이 없어서 발생하는 한계이기도 하다.

가장 강력한 이야기, 가령 종교. 모두 말씀과 이야기의 묶음을 경전으로 삼는다.

광장의 원형적 서사가 정책으로 이어진 적은 거의 없다. 당연히 없을 수밖에 없는 게 그 서사를 정당이 연구소가 일상적으로 연구하고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작업을 하지 않는다. 광장에서 만들 수 있는 서사는 아무리 아름답고 원형적이더라도 ‘단 한 줄짜리’밖에 안 된다. 정책적 숙성 과정이 없다. 큰 일을 하려면, 정치적 서사를 만들고, 그걸 정책적인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광장에서 만들어지는 서사는 급박하기 때문에 선거와 연결되고, 이런 일상적인 과정(단단한 정책화의 과정)과는 달리 ‘부실’할 수밖에 없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 국면이 탄핵 국면이라서 삼성의 전략적인 미디어 작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일상적으로도 그런 대안적인 내러티브를 만들어내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가령, 복지를 중심으로 하는 서사가 성장 서사로 옮겨가는 과정이 ‘진공’이다. 어떤 과정도 없다. 정책을 수정할 수는 있지만, 설명과 논의와 여러 가지 과정이 필요한데… 지지도가 빠지니까 원칙이자 철학과도 같은 기본 정책을 바꾼다? 몹시 아쉽다.

시대적 변화에 대응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시대적 변화’라는 건 하루이틀만에 생기는 게 아니다. 갑자기 복지사회에서 성장으로? 최소한 몇 개월이라도 시민과 국민과 소통의 과정, 숙성의 과정을 거쳐서 정책 변화, 노선 변화를 취하면 그건 ‘정치의 과정’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 기본 입장이 바뀌면? 이런 걸 정치적 과정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좀 더 긴 호흡, 좀 더 단단한 철학과 원칙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그 방향은 공동체 전체, 특히 ‘희망 없는 사람들’을 향하는 것이라면 좋겠다.

“우리에게 희망이 주어지는 것은 오로지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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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연간 한국과 대만 노동시간의 차이인 1891 시간과 2163 시간, 즉 272 시간 차이를 1900 시간과 2000 시간으로 거의 1/3로 내려치는 건 이 기사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만드네요.

  2. 알마 님께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라고 합니다.

    대만 노동시간은 연간 약 2000시간이 맞습니다.
    정확히는 2008시간입니다.
    아래 대만노동부 발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2022년 기준).
    https://buly.kr/1c8ZsQF

    참고로 동년(2022년) OECD 발표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01시간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average_annual_labor_hours

    말씀하신 숫자의 출처는 검색해도 잘 찾아지지 않습니다.
    1. 한국 1891시간
    2. 대만 2163시간
    해당 출처(조사기관과 발표 시기)를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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