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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오전 8시]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이 전하는 노동과 세계 그리고 인간에 관한 이야기. ‘노동시간’ 본격 썰 3탄. 주4일제, 이름만큼 혁신적인가?

제오시 ‘노동시간’ 특집

이상헌의 ‘제네바 오전 8시’ [ep.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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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4년 3월 8일 금요일 제네바 시각 오전 8시에서 9시 5분까지 이상헌 박사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를 이 박사와 상의해서 답변 중심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독자들께서 조금이라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인터뷰 내용을 좀 더 세분해서 정리했습니다. 목차 링크를 통해 궁금한 항목을 골라 읽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4일제, 정말 이렇게 환호할 만큼 혁신적인 걸까?

현실성 있는 논의인가?


현재는 개별 기업과 노조 중심의 논의에 머물고 있다. 그것도 일부 대기업에 한정되는 주제다. 정부가 고민할 단계로 보기엔 시기상조다. 우선순위에서는 한참 후순위일 것으로 보이고, 현재 동력도 없으며, 동력을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을 거다.

그런데 그런 논의에 우선해서 주 4일 근무제(이하 ‘주4일제’)가 정확히 어떤 걸 의미하는 건지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주4일제, 사실은 ‘압축노동’


주4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압축노동이고, 다른 하나는 진짜 주4일제다. 우리가 말하는 주4일제는 대부분 노동시간이 줄어들지 않는 압축노동을 말한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 A-압축노동형 주4일제(현재 논의 대부분이 바로 이것!): 노동시간이 줄어들지 않고, 대신에 노동을 4일 동안 ‘압축’하는 방식이다. 가령, 주당 40시간 5일 동안 일하는 노동자가 그 노동시간 그대인 40시간을 일하되 주 4일 동안 10시간씩 월화수목을 일하고, 금토일을 쉬는 방식이다. 현재 주4일제 논의의 대부분이 사실은 이 압축노동형 주4일제다.
  • B-노동시간 단축형 주4일제(‘진짜 주4일제’):실제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식이다. 즉, 가령 주 5일 40시간 노동하는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4일 32시간으로 단축하는 방식이다. 현재 주된 논의 대상은 ‘전혀’ 아니다.

압축노동의 등장 배경


압축노동이 등장한 배경은 제2차 대전 이후 압축 성장이다. 산업이 발전하는 만큼 교외 주택이 팽창했다. 그에 따라 출퇴근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교통 정체가 심해진 건 물론이다. 그에 따라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졌다. 근로자도 피곤해서 생산성이 떨어지고, 기업으로도 손해였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좀 더 압축적으로 5일 동안 일할 걸 4일 동안 일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유연근무제(탄력근무제, 선택근무제, 재량근무제 등)도 출근시간 정체를 피하는 방법 중 하나로 생산성 제고 차원으로 도입됐다.

적용이 쉬운 업종? 제조업엔 어렵다


‘압축노동’은 노동시간을 좀 더 스마트하게 활용하기 위한 논의다. 노동자와 기업에 모두에 도움이 되는 방식을 고민했고, 그래서 압축노동 방식은 기업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단적으로 말해서 제조업에는 적용하기가 어렵다. 교대 패턴을 바꾸는 정도만 가능할 것다. 왜냐하면 제조업이라는 건 대부분 ‘상대방’이 존재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즉, 상대 업체와 ‘묶여 있는’ 업종, 여러 관계사와 ‘얽혀 있는’ 업종에서는 압축노동 혹은 유연근무가 쉽지 않다. 상대방의 시간까지 내가 조절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거래 ‘상대방’이 연결되지 않는 업무의 독자성, 개별성이 확보된 업종에서 압축노동이 용이하다. 제조업은 다른 노동자의 노동시간과 조율이 필요해서 힘들다.

주4일제의 한계


주4일제를 처음에는 ‘획기적’으로 시도했다가 슬그머니 없애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정말 이 주4일제가 ‘획기적’인지에 관해선 앞서 설명한 것처럼 특정 업종에서, 노동자와 기업의 이해에 부합하는 경우에 한정적으로 도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렇게 획기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주4일제는 기업 특성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다.

그래서 노동의 총량은 똑같지만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노동자의 편익, 소위 워라벨 차원에서 논의가 있는데, 적용 대상이 제한될 수밖에 없고, 보기에 따라서는 업종별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노동시장 계층화(피라미드) 측면에서 보면?


즉, 주4일제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업종으로도 첨단 업종이 많고, 기업 형태로도 대기업이 대부분이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즉, 고소득 노동자들이다. 그래서 주4일제 논의가 개별 기업 주도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면, 노동시장 계층화를 더 견고화할 가능성이 크다.

업종별 기업별 형평성 문제가 있으니까 전국 단위로 생각할 수 없느냐고? 불가능하다. 법적인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정책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일부에서는 분명히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의미가 그렇게 크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생각만큼 그렇게 ‘혁신적’이진 않다


기업 주도로 논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고, 국가가 주도해서 정책적으로 집중하기엔 뭔가 매력이 떨어진다. 우선순위로 상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주4일제 논의는 그 자체로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다른 더 중요한 논의들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노동시간의 총량이 변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그 의미는 한정적이다. 프랑스는 법정 주 노동시간이 35시간이니까 주 4일 동안 하루에 약 9시간 정도 일하면 4일 근무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7시간씩 5일 일하는 5일 근무가 대부분이다.

기후위기 대안으로 고려?


통근시간을 감소시킬 수 있고, 자가용 이용을 감소할 수도 있다. 그렇게 탄소 저감을 유인할 수도 있지만, 그런 목적으로 주4일제 근무를 하자고 말하기엔 갖춰진 게 너무 없다. 사회 전반으로 주4일제를 확대할 수 있다면 친환경적인 목적에도 부합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현재로선 그 의미가 너무 제한적으로 보인다. 4일만 일한다고 자동차 사용이 줄어든다는 보장도 없다. 주말에 자차를 이용한 여행이 늘어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저탄소 정책의 일환으로 주4일제를 이야기하는 건, 기후위기 대책 수백, 수천 가지 중 하나 정도의 의미에 불과하다고 본다. 사실 도시 환경 오염에 관한 이야기는 70년부터 나온 이야기기도 하다.

저숙련 노동자 직업 훈련의 가능성?


훈련시간, 재취업 교육시간의 확보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 실제로 노동시간이 줄어든 상태도 아닌데 다시 훈련이나 재취업 교육을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그게 곧바로 사실상 노동시간에 편입할 가능성이 크다. 즉, 사실상의 노동시간이 줄어들지도 않는 상황에서 늘어날 가능성만 커진다.

물론 노동시간이 실질적으로 줄어드는 ‘진짜’ 주 4일 근무제 상황에서 저숙련 노동자가 하루 정도를 훈련 기회를 가지고, 그걸 고용보험에서 지원하는 형태라면 말이 된다. 그런데 40시간 노동하면서 훈련한다고 하는 건, 제도적으로 만들기 좋은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과노동이 되기 십상이다. 훈련시간을 합치면 주 노동시간은 50시간을 훌쩍 넘길 수 있다.

육아나 젠더 평등에 도움이 될까?


힘들다. 금토일은 쉬니까 좋겠지만, 월화수목은 어떻게 하나? 월화수목은 4일 동안은 6시 퇴근이 아니라 8시에 퇴근한다는 건데, 그러면 육아 공백이 훨씬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사회 전체의 육아 돌봄 시스템은 8시 퇴근이 아니라 6시 퇴근에 맞춰져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가족 안에서 추가적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경우나 월화수목에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돌봄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경우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주4일제는 오히려 여성에게 더 ‘독박 육아’를 가중하게 할 수도 있다.

진짜 혁신은 노동시간의 단축


그래서 노동압축형 주4일제는 아직 논의가 무르익지도 않았고, 시행에 난점도 많으며, 시행한다고 해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아서 그다지 혁신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정말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건 당연히 주 40시간에서 주 35시간 노동으로 가자고 말하는 거다. 그런데 프랑스도 선제적으로 과감하게 진행했다가 현재는 많이 후퇴한 상황이다. 쉽지 않아 보인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주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줄이자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묘하게 노동시간은 그대로 두고, 주4일제로 하자고 하면 ‘오, 이건 할만하겠는데?’라고 생각하기 쉽다. 당연히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보다는 노동시간을 줄이지는 않으면서 주 5일 노동을 주 4일 노동으로 하자고 하면, 일종의 ‘착시 효과’ 때문에 꽤 대단해 보이면서도, 사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건 아니라서 수용성이 아무래도 실제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보다는 훨씬 높기는 하다.

하지만 다시 강조한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주4일제와 노동시간을 그대로 두고, 다만 그 노동시간을 4일 동안 압축하는 주4일제는 완전히 별개다. (끝)

주4일제, 결론? 일부 노동 계층에겐 의미가 있겠지만, 대체로 빛 좋은 개살구 혹은 과대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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