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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오전 8시]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이 전하는 노동과 세계 그리고 인간에 관한 이야기. ‘노동시간’ 본격 썰 2탄. 유럽에서 ‘휴가’란 무엇인가.

‘충전 잘~하세요!’

흔히 하는 말. 어떤 악의도 없다. 악의가 있을 리가. 휴식은 마땅히 일을 위한 것. 우리에게 휴식은 노동을 위한 대기 시간이다. 그냥 당연한 덕담. 나도 이런 말 자주 한다.

휴식은 일을 위한 것. 일의 피로가 한계까지 쌓이면, 생산성의 위기를 초래할 만큼 몸과 마음이 지치면, 좀 더 긴 휴식, 휴가 처방을 받는다. 휴가는 일을 위한 치료제인 셈이다. ‘선진국’ 대한민국에 아직 새마을운동의 그림자는 남아 있다.

지난 인터뷰에도 ‘노동시간’에 관해 물었다(초과근로에 관한 한국식 해법: 비정규직?). 좀 더 긴 호흡으로 노동시간을 둘러싼 다양한 화두를 묻고 싶었다. 원래 준비했던 질문은 ‘주 4일’ 근무제. 노동시간이라는 나무에서 뻗은 큰 가지, 그 가지에서 다시 갈라진 작은 잔가지 중에 ‘휴가’가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1~2분짜리 질문. 길어야 5분짜리. 하지만 이상헌 박사의 답변은 1시간 내내 계속됐다. 이 질문은 유럽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역사를 관통하는 질문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제목을 생각했다.

유럽인에게 휴가는 왜 삶의 중심이 되었나
유럽의 휴가는 어떻게 삶의 신앙이 되었나
유럽인에게 휴가가 가장 중요한 연중 이벤트인 이유
삶을 위한 휴가? 휴가를 위한 삶!
이제 산문(노동)을 멈추고 시(휴가)를 쓸 시간
유럽에서 1년의 삶이란 한 달의 여름휴가와 그 나머지

인터뷰를 정리하는 지금, 이 순간도 그러고 있다. 유럽에서 휴가는 왜 이토록 중요한가. 왜 유럽의 휴가는, 우리에게처럼 단순히 일을 위한 ‘충전’이 아닌가. 이상헌 박사의 목소리로 직접 확인해 보자.


알림 및 안내

이 글은 2024년 2월 23일 금요일 제네바 시각 오전 8시에서 9시 5분까지 이상헌 박사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를 이 박사와 상의해서 답변 중심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독자께서 조금이라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인터뷰 내용을 좀 더 세분해서 정리했습니다. 목차 링크를 통해 궁금한 항목을 골라 읽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유럽내 삶과 근로여건 개선을 위한 유럽재단'(Eurofound)이 지난해 EU 회원국들의 휴일 및 휴가, 근로시간 등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공휴일을 포함한 연간 유급휴가 일의 경우 스웨덴이 42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독일 40일, 이탈리아 39일, 룩셈부르크와 덴마크 38일 등의 순이었다. 반면 에스토니아가 26일로 노는 날이 가장 적었고, 라트비아 27일, 헝가리 28일, 아일랜드 29일 등으로 주로 신규 가입국들의 휴가 일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 EU 회원국들 연간 휴가 일수도 양극화 (2019) 중에서

“에스토니아가 26일로 노는 날이 가장 적었고”

연간 유급휴가 26일이 적다고? 장난하냐?

(…)

이제 본격 인터뷰 정리!

유럽의 휴가는 경제적 뒷받침의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 오늘날 유럽의 휴가(문화)가 ‘경제적 뒷받침’의 결과냐고 물었는데,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답하자면, 유럽의 휴가는 경제적 뒷받침 때문만은 아니다. 그게 중요하다.
  • 유럽 휴가 문화는 프랑스의 바캉스에서 출발한다. 19세기부터 있었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건물은 유럽의 휴가 문화가 시작되면서 만들어졌다.
  • 그러니까 19세기에 휴가는 귀족 같은 선택된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노동자 계층은 바캉스를 선망했다. 왜 아니겠는가.

제1차 대전에서 흘린 피의 대가: 베르사유 조약 13편


  • 제1차 세계대전, 정부는 노동자를 징집해야 했다. 정치적 거래가 필요했다. 전쟁이 끝나면 노동자 권익을 높이겠노라고 했다. 정부는 노동자를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그 대가를 노동자에게 약속했다. 휴가가 바로 그 ‘딜’의 핵심 사항이었다.
  • 내가 몸담은 세계노동기구(ILO)의 탄생도 그 맥락 속에 위치한다(1919년). ILO는 1919년 4월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제13편)에 따라 설립됐다. 조약은 종전 후 ILO를 만든다는 내용을 담았다.
베르사유 조약의 체결. 1919년 6월 28일.
  • 노동자의 권익 향상은 평화의 중요한 축이라고 베르사유 조약은 강조한다. 현실적으로도 맞는 이야기다.
  • 그런 역사적 맥락이 유럽의 휴가에는 존재한다. 20세기 초, 노동조건을 향상한다고 했을 때 그 핵심 이슈 중 하나가 휴가다. 그때는 2주~3주 정도의 유급휴가가 화두였다. 그 논의는 제2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 이어졌다.

결정적 계기, 프랑스의 인민전선 정부 (1936)


  • 프랑스는 1930년대 중반에 공산당과 사회당 그리고 급진당(중간 계층 대변)이 연합한 인민전선이 형성됐다. 인민전선 정부는 포퓰리즘이 강했다. 통상 법을 만드는 데 수개월은 걸리는데도, 2주 유급휴가제도 법제화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 ‘귀족도 휴가를 누리는데 우리도 누려야지!’ 노동자는 생각했다. 이때부터 휴가라는 게 상층 계급만 누리는 게 아니라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했다.
  • 1935년 7월~8월 코민테른은 7차 대회에서 ‘인민전선’ 정책을 채택한다. 계급을 초월해 연합해야 한다는 것. 그 직전까지 코민테른은 스탈린의 ‘사회파시즘’론을 채택했다. 스탈린은 사회파시즘론에서 사회민주주의와 파시즘을 동일시하면서 “둘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쌍둥이”라고 말했다.
  • 참고로 코민테른은 세계 공산당 및 공산단체의 연합체,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약칭으로 ‘제3인터내셔널’로도 불린다. 이미 1930년대 중반에 이르면 코민테른은 소련 스탈린주의 관료들의 도구로 전락한 뒤였다.
  • 아무튼 스탈린은 나치 독일의 파시즘에 맞서 영국, 프랑스 등과 세력을 규합하려고 했고, 인민전선론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 프랑스 정치 세력은 당면한 파시즘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공산당과 사회당이 손을 잡았고, 중간계급의 성격이 강한 급진당도 여기에 연합체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그것이 프랑스 인민전선의 탄생이다.
  • 1936년 5월 선거에서 프랑스 인민전선은 크게 승리했다. 사회당은 무려 1백47석(기존 97석)을 확보했고, 공산당도 72석(기존 10석)으로 의석수를 크게 늘렸다. 급진당은 106석(기존 159석)을 확보했다.
  • 1936년 프랑스 노동자 총파업은 계급적 정치 결합인 인민전선으로 인해 그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로는 아주 획기적인 성과를 노동자에게 가져왔다.
  • 총파업의 결과인 ‘마티뇽 협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주 40시간 노동 2) 2주 유급휴가제 3) 인금 인상 4) 프랑스노동총동맹(CGT) 인정.
  • 하지만 결국 30년대 말, 이런 성과는 ‘반동’의 거대한 물결에 휩싸여 무효화한다. (편집자)
인민전선(계급 연합)은 노동자에 의한 혁명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블룸 정권은 기업가들에게는 버팀목 역할을 했다. 하지만 노동자 처우는 급진전했다. 하지만 그 개혁마저 30년대 말 거대한 반동의 물결에 휩싸인다.

유럽의 평등주의적 사고가 함축된 휴가


  •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의 2주 유급휴가제는 두 가지 방향성을 가졌다. 우선, 2주 유급휴가제를 모든 계층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둘째, 2주 휴가를 3주, 4주, 5주로 늘리는 노력을 기울였다.
  • 이렇게 유럽의 평등주의적 사고가 가장 잘 반영되고 함축된 문화가 바로 휴가다. 유럽에서 휴가는 경제적인 풍요의 결과가 아니라 모두가 휴가를 누려야 한다는 공감대, 문화, 평등의식의 결과인 셈이다.

‘거꾸로’ 휴가를 먼저 놓고 그 조건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 그래서 경제적 풍요의 논리적 귀결로 장기간 유급 휴가가 생긴 게 아니라, ‘거꾸로’ 그런 휴가를 위해서는 어떤 경제적 조건이 필요한지, 어떤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지 생각했다. 물론 경제적 조건과 휴가는 함께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숙해졌지만, 굳이 순서를 따지면 그렇다는 거다.
  • 그런 의미에서 유럽 복지의 핵심이 바로 휴가다. 유럽 사람들이 휴가를 기다리는 건 그래서 장난이 아니다. 마치 메카에 가기 위해 사는 무슬림처럼. 유럽인에게 휴가는 그만큼 중요하다. 휴가를 실현하기 위해서 다른 제도적인 장치들과 정치적 움직임이 따라왔다고 봐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있는 카바(Kaaba, 석조 신전)는 무슬림의 제1성지로 여겨진다. 전 세계의 무슬림은 메카를 향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카바를 향해 예배한다. 위키미디어 공용. 2020년 12월 모습.

법정 유급휴가 없는 미국 (닮은꼴 한국)


  • 반면에 미국은 법정 유급휴가가 없다. 육아휴가나 이런 것도 없다.
  • 미국 건국 초기에는 노동시간이 짧았다. 하지만 제2차 대전을 지나면서 미국의 노동시간이 늘고, 유럽의 노동시간이 짧아졌다. 오늘날 미국의 휴가 기간은 1, 2주 정도고, 유럽은 4~6주 정도다. 차이가 꽤 벌어졌다.
  • 우리 법제는 형법에서는 대륙법(특히 독일)을 계수했고, 민법에서는 독일법을 계수한 일본의 법제를 계수했는데, 휴가에서는 유럽보다는 미국이나 일본에 가깝다.

집착과 강박? 휴가(유럽)와 외식(한국)


  • 경제적인 수준에서 한국은 유럽처럼 휴가를 보낼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경제적인 수준으로 보면 한국은 이탈리아나 스페인과 비슷한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휴가는 아주 중요하다. 그러니까 경제적인 조건의 차이는 아니다.
  • 문화적으로 한국은 다들 너무 바빠서 자신의 일상 중 일부, 식사 같은 걸 외식으로 해결한다. 그런데 유럽은 그런 외식 문화 규모는 생각보다 작다. 유럽에서 외식은 아주 특별한 이벤트에 속한다. 그러니까 외식 문화는 우리에게는 일상이지만, 유럽인에게는 우리의 그런 모습이 아주 특이해 보일 거다. 굳이 비교하면 유럽인이 휴가에 가지는 강박관념과 한국인이 외식이나 회식, 친구나 가족과의 문화에 관해 가지는 집착이나 강박이 비슷한 것 같다.

휴가 갈 수 있는 사람 v. 갈 수 없는 사람


  • ‘모든 사람에게 휴가를!’ 휴가는 사회적 결속을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다. 지금도 그런 관념이 많이 남아 있다.
  • 20~30년 전만 해도 휴가를 갈 수 있는 사람, 휴가를 갈 수 없는 사람으로 사회적 계층을 구별했다. 그것은 마치 우리나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이와 유사해 보인다.
  • 가령, 호주나 미국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한다고 치자. 그 근로계약에 휴가에 관한 항목이 계약의 일부로 포함돼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마치 우리나라 근로계약에서 정규직 계약이냐 비정규직 계약이냐의 차이와 흡사하다.
  • 그래서 휴가는 노동자를 통합하는 매개이자 지향점이면서도 동시에 노동 계층화의 기준이 되는 예민한 문제이기도 하다.
  • 우리는 미국식이다. 돈 없으면 휴가 못 간다.

한국의 휴가 문화는 노동의 연장 같다


  • 우리도 유럽처럼 휴가 기간이 늘까? 조금씩 늘긴 하겠지만….
  • 한국의 휴가 문화는 약간 노동 문화 같다(웃음). 휴가에서도 뭔가를 해야 한다. 계획을 세우고, 뭔가 일하면서 성과를 내는 것처럼 휴가에서도 성과를 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사무실, 공장에 가지 않을 뿐이지 뭔가를 계속하는 것 같다. 한국인에게 휴가는 뭘까? 나에게 물어보면, 한국인은 마치 일처럼 휴가 가는 것 같다.
  • 유럽은 그냥 떠난다. 한국적 기준으로 보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굳이 이야기하면, 휴가는 유럽문화다.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이벤트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결과다. 우리는 휴가를 문화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계기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유럽 기업이 휴가 좀 줄이자고 할 수 있을까? (No!)


  • 그런 이야기는 ‘차마’ 꺼내지도 못한다. 그런 이야기 했다가는 정말 큰일난다.
  • 비유하면, 프랑스에서 정치인이 레지스탕스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을 한다고 떠올려 봐라. 그 정도 수준이다.
어? 우리나라는 독립운동가 흉상 날려버려도 멀쩡하네? (ㅡ.ㅡ;) 육사 충무관. 2020년 당시 모습. 왼쪽에 홍범도 흉상이 보인다. 지금은 철거됐다. 위키미디어 공용.

기업이 주는 ‘혜택’ 아니라 기본권, 사회적 연대의 상징


  • 그래서 휴가는 기업이 주는 혜택이 아니다. 노동자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사회적인 권리, 거의 헌법적 권리, 기본권처럼 인식한다.
  • 가령, 면 단위 작은 마을에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휴가를 못 가는 경우,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휴가를 보내주기도 한다.
  • 또는 난민에게도 ‘당신들도 우리 가족이다. 우리 공동체 일원이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돈을 모아 휴가를 보내주기도 한다. 사회적 연대, 공동체 결속의 핵심 중 핵심이 바로 휴가다.

유럽의 휴가, 더 늘까?


  • 지금 5주, 6주까지 늘었다. 10년~20년에 1주 정도씩 는 셈이다. 그래서 더 늘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느끼는 휴가? 체화된 유럽인과는 다르다


  • ILO의 휴가기간은 6주다. ILO에서도 봄이 오면 여름휴가 신청한다고 난리다(웃음).
  • 주로 여름에 한국에 갈 때 쓰고, 다 쓰지 못한다. 누적할 수도 있는데, 누적된 게 꽤 많다.
  • 나는 한국에서 자랐고, 유럽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휴가가 조금은 익숙해졌지만, 내면화하진 않은 것 같다. 휴가를 유럽인처럼 체화하진 못했다. 그렇게 체화하려면 어릴 때부터 어떻게 휴가를 보내는지 부모에게 배우고, 직접 일상으로 느껴야 하지 않을까?

‘저녁이 있는 삶’과 비교하면?


  • 유럽에서 복지국가 논의 중 워라벨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게 휴가다.
  • 한국으로 치면, ‘저녁이 있는 삶’이랄까. 그런데 그 정치적 표어가 한국에서 들으면 확 와 닿는데, 유럽 사람들 시각에서 보면 그게 뭐지? 이럴 거다(웃음).
  • 우리는 업무가 끝난 저녁에도 뭐가 많다. 회식도 해야 하고,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업무 연장으로 누군가를 만나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저녁이 있는 삶’은 우리에게는 와닿는 표어지만, 유럽인에게는 아무런 느낌이 없는 말이다. 별로 공감하지도 못할 거다.
  • 유럽인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지중해에서 차를 몰고 바캉스 대열에 끼느냐 끼지 못하느냐…거기에 달려있다. 아무리 고된 휴가길이라고 하더라도 그 길고 긴 바캉스 자동차 대열에 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삶의 목적이다.
  • 휴가기간에 쓰는 돈이 나머지 기간에 쓰는 돈보다 많을 거다.

휴가기간 업무 공백?


  • 6월 말부터 8월 말까지 업무 분량을 조절하고, 또 휴가에 맞게 조율한다.
  • 관공서 같은 곳은 일 보러 오는 사람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정치인들도 휴가를 떠난다.
  • 이주노동자가 일정하게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하고, 학생들에게는 알바하기 가장 좋은 때이기도 하다.

시에스타가 사라졌다? 관광객의 착각


  • 스페인 경제가 어려워져서 시에스타(낮잠을 자는 스페인의 관습)가 사라졌다? 그건 관광객의 피상적인 관찰일 가능성이 크다. 시에스타 특이하네? 이제는 시에스타 안 하고 가게 문도 여네? 그런 건 관광객의 시선이다.
  • 시에스타가 없으면 다소 늦게 출근해서 조금 늦게 밥을 먹고, 문 닫아버리고, 늦게 퇴근한다. 그러니까 전체적인 노동시간은 시에스타와 별 상관이 없다.
구스타브 쿠르베, ‘해먹'(Die Hängematte), 1844.

한국은 노동중독사회?


  • ‘노동중독’이라는 표현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정말 일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그렇다. 가령 19세기 중반 일본 개항 초기에 미쓰비시와 같은 조선소에 투자한 외국 기업이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한 게 일본인 노동자가 너무 일하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 그러니까 사실 결과론이다. 노동중독 ‘현상’인 거지, 노동에 정말 중독되는 건 아니니까. 한국은 휴가조차도 노동의 연장 같다. 혹은 노동에 대한 반대급부 같다.
  • 노동중독이라고 말하면 놓칠 수 있는 게, 한국 전쟁 이후 ‘무노동’에 관한 사회적 논의, 대안적 논의가 단 한 번도 없었다.

휴가라는 독자적인 상징체계


  • 같은 사람이라도 한국에 있을 때, 유럽에 있을 때 생각도 달라지고, 느낌도 행동도 달라진다. 서로 다른 상징체계에 의해 인식과 행위가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 한국 사회는 노동을 중심으로 상징체계가 구성된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일이 생기느냐면, 강압적인 노동 담론의 일부로서 포섭되는 걸 싫어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자기 자신을 노동자라고 말하는 걸 싫어한다. 이율배반적이지. 노동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있는 사람은 그래도 괜찮지만 그 피라미드 아래쪽에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 그 체계 안에서 행복한 사람도 있고, 벗어나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텐데.. 노동중독은 노동중독을 ‘강요하는’ 사회라는 맥락에서 공동체적 상징체계의 결여가 만들어낸 현상이지, 정말 자발적인 노동중독을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 물론 일에서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그건 유럽도 마찬가지다. 직업(occupation)에는 추구, 점령이라는 어원이 있다. 일과 관련한 기독교 문화, 베버가 말한 직업적 소명을 가진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유럽적 전통이기도 하다.
  • 하지만 유럽은 노동 바깥에서 정의되는 ‘휴가’라는 독자적인 상징체계를 구성했다. 그래서 일터의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일 바깥’에 있는 상징, 의미 체계가 없다. 그래서 항상 쳇바퀴 도는 이야기만 나온다.
유럽인에게 바캉스는 직업 바깥에 존재하는 독립적으로 구성된 상징체계다.

우리에게도 유럽의 휴가처럼 ‘노동의 바깥’에 뭔가 생길 수 있을까


  • 유럽의 휴가와 같은 역사적, 문화적 상징 체계, 의미 체계는 몇몇 사람이 필요에 의해 공학적으로 접근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형성된 문화다. 그건 사회적인 사건의 축적을 통해서 형성하는 거다.
  • 일본은 독특한 문화 현상이 만들어지기는 하는 것 같다. ‘서브컬처’라고 부르는 일본적인 뭔가가 있다. 파편적이고, 소극적이지만, 그게 일본적인 방식이라면 방식으로 보인다.
  • 아시아적인 특징일까 싶기도 한데, 한국은 그런 것도 없는 것 같고…싱가포르도 그런 게 별로 없다. 한국은 그래서 좀 미국 같다. 경제학 교과서에 존재하는 좀 더 순수한 형식의 자본주의. 물론 그래도 교과서와 차이가 크지만, 그래도 좀 그런 자본주의에 가까운 편이라고 느낀다. 확실히 한국은 미국에 가깝다.
  • 경제학 교과서에서 노동 공급은 벌 수 있는 돈과 일을 하면서 느끼는 고통이 한계에 닿을 때까지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좀 경제적 교과서적인 프레임에 가까운 것 같다.
  • 프랑스는 그런 경제학 교과적인 프레임을 교란하고 해체하는, 가령 휴가와 같은 문화적 장치들이 많다.
  •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총선에서도 이런 노동이나 휴가에 관한 문제의식이나 정치 담론은 전혀 없고… 이와 관련한 사회운동, 문화운동도 없는 것 같다. 당분간 양적 변화는 있겠지만, 질적 변화, 시스템적인 변화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작은 씨앗도 보이지 않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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