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젠더 정의와 돌봄 부재한 전환의 역설. 기후재난 반복될수록 돌봄노동 착취도 늘어난다. (윤자영/충남대 교수) (⏳3분)

탄소배출 저감, 에너지 전환, 녹색 금융. 한국의 기후 정책이 말하는 전환의 언어다. 그러나 이 전환은 누구의 노동을 통해 지속 가능한가? 누구의 삶을, 누구의 건강과 시간을 담보로 이루어지는가? 지금까지의 기후 위기 대응은 기술과 자본 중심의 협소한 대응에 갇혀 있다. 돌봄, 즉 사람과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일상적 노력은 정책에서 보이지 않는다.
기후위기 본질: 사람과 지구의 재생산 위기
여성주의 경제학자 다이앤 엘슨은 ‘경제 정책은 사람과 지구를 부주의하게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돌봄경제가 해답이다’라는 제목의 기고문(2024.11. 더 컨버세이션)에서 현재의 기후 위기를 ‘사람과 지구를 돌보지 않는 경제 구조의 문제’로 규정한다. 엘슨은 기후 위기를 ‘사람과 지구의 재생산 위기’로 보며, 이중의 고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짚어간다.
- 하나는 인간 역량(capabilities)의 고갈이다. 과도한 노동, 식량·주거의 불안정, 돌봄 노동의 가치 절하가 그 예다.
- 다른 하나는 환경 시스템의 고갈이다. 자원의 과잉 채굴, 대기·수질 오염, 생물다양성의 파괴는 지구 자체의 재생 능력을 위협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기후 대응은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한국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수소경제·스마트 그리드·녹색투자에 대규모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2024년 헌법재판소는 정부 기후법이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개정을 명령했다. 기후 위기 대응이 더 이상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헌법적 책무가 된 셈이다.

이러한 전환의 언어 속에서 여전히 말해지지 않는 영역이 있다. 2023년 발표된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도 ‘돌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후 재난이 반복될수록 장애인과 노인의 보호, 병약자의 돌봄, 아동의 안전관리 등 돌봄의 수요가 증가하며, 그 부담을 온전히 가족에게, 그 중에서도 여성에게 전가하고 있다.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간병인과 같은 저임금·비정규 돌봄노동자에 관한 처우 개선은 기후 대응 정책 어디에도 없다.
기후 정책 목표, 생존 가능성에 맞춰져야
다이앤 엘슨은 모든 경제 정책이 세 가지 기준, 즉 경제적 효율성, 인권, 그리고 젠더 평등을 충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후위기 대응 역시 이 세 기준을 바탕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특히 ‘사회적 재생산’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정책은 정의롭지 않다고 말한다.
엘슨은 ‘균형재정’ 논리가 ‘불균형한 삶의 조건’을 은폐한다고 비판하며, 정책 목표를 ‘생존 가능성’을 중심으로 재설계할 것을 제안한다. 인간 삶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기반에 대해 기후정책이 체계적으로 침묵한다면, 기후 정책이 오히려 돌봄노동에 대한 착취를 더욱 공고히 하는 구조를 재생산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엘슨은 단지 ‘여성의 참여 확대’ 같은 제도적 보완을 넘어 ‘돌봄경제’로의 구조 전환을 주장하며, 엘슨이 참여한 영국 여성재정그룹 보고서는 다음의 네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 첫째, 경제의 재구성으로, GDP 성장 중심의 경제 목표를 폐기하고, 사람과 지구의 ‘삶의 질’ 향상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 둘째, 소유 구조의 민주화로, 에너지, 돌봄, 주거 등의 기본 인프라를 공공화하고, 협동조합·커뮤니티 기반 소유모델을 확산해야 한다.
- 셋째, 정책의 전환으로, 탈탄소 물리 인프라뿐 아니라 돌봄·사회 인프라에 대한 공공투자를 중심축으로 삼아야 한다.
- 넷째, 국제 기후 정의 실현으로, 성인지적 기후 금융, 채무 탕감, 세제 개혁을 통해 글로벌 남반구의 전환 역량 확대해야 한다.

세계는 젠더 의제 주류화, 갈길 먼 한국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성인지적 기후정책 수립을 위한 젠더행동계획을 채택한 이후, 당사국 대부분이 젠더 의제의 주류화를 도입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기후 관련 의사결정 기구 내 여성 대표성도 매우 낮다. 시민사회는 지역 돌봄네트워크, 탈탄소 기반 돌봄공간, 커뮤니티 기반 회복력 등을 제안하고 있지만 이러한 의제는 기후담론의 변두리로 밀려나 있다.
이제 막 출범한 한국의 새 정부가 진정한 기후위기 대응을 말하려 한다면, 더 이상 기술과 시장, 성장과 수출에 기댄 ‘친환경적 개발주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녹색 전환이 단지 신산업 육성과 온실가스 감축 수치에 그칠 때, 그 비용은 다시금 사회적 약자와 돌봄노동자, 여성의 몫으로 귀결된다. 새 정부는 기후정의의 이름 아래 사회적 재생산의 회복력, 돌봄노동의 존중, 젠더 기반의 불평등 해소를 기후 정책의 중심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