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리포트] 지도자-에이전트-학부모 카르텔을 깨야 한다… 덩치와 힘으로 밀어붙여 이기는 성과 중심 축구, 이적료 장사 등 구조적 모순 직시해야.
홍명보만 욕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그 시간에 한국 축구 새 판을 어떻게 짤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1999년부터 스포츠를 담당한 김세훈(경향신문 스포츠부장)은 지난 6일 정연욱(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여론 압박 속에서 홍명보 감독은 수비 축구를 하다가 변화를 주지 못한 채 실패했다. 팀을 하나로 묶지도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홍명보가 가장 큰 잘못을 했지만 인격 모독까지 하면서 무릎 꿇리는 게 한국 축구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토론회에는 김세훈, 김현희(前 제주SK FC 단장), 류청(골포스트 대표), 안치준(한국프로축구연맹 리그운영본부장), 유상건(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 심재희(한국 체육기자연맹 사무총장)가 참여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2026년 북중미 FIFA 월드컵은 한국 축구 민낯이 여실히 드러난 대회였다. 판을 바꾸지 않으면 암흑기가 찾아온다.
- 홍명보 개인 책임론에 갇혀서는 안 된다. 감독도 문제지만, 선수들도 매우 안이했다. 김세훈은 “대표팀 일부 인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체코와의 1차전을 이기고 선수들이 매우 안일해져 훈련을 제대로 안 했다고 한다”면서 “볼을 잡은 이강인 선수가 상대 선수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우리 선수 중 누구도 볼을 받으러 뛰어가지 않았다. 이건 축구의 기본이다. 미흡한 기본이 오로지 감독만의 책임일까”라고 꼬집었다.
- 또 다른 토론자 김현희는 한때 국민적 영웅이자 행정가로서 인정받았던 홍명보가 현재 아무에게도 지지받지 못하는 “괴물”로 전락한 현실에 아쉬움을 표했다. 누군가의 실수를 포용하거나 토론하지 못하고 개인 탓으로만 돌리는 문화는 문제라는 것이다.
- 팬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만 해서는 발전이 없다. 김세훈은 “기자들이나 유튜버들이 클릭 수 장사, 팔로우 확보를 위해 너무 팬들이 좋아하는 얘기만 기사화한 것 같아 반성한다”고 했다.
“대표팀, ‘참교육’ 교실 같았다.”
- 손흥민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선수와 주장으로서 모두 실패한 대회였다. 손흥민의 공격 포인트가 없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주장으로서 팀을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 선수들을 옹호하는 팬이 많다. 과연 이 선수들에 대한 옹호가 답일지, 아니면 선수들에 대한 비판이 답일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 김세훈은 “취재한 바로는 우리 축구 대표팀이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교실과 거의 비슷해지고 있다. 더 나빠지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 김현희도 ‘요즘 선수들 태도’를 지적했다.
- “이기적이다. 지금 당장의 손해를 견디지 못한다. 특히 지적받는 것을 견뎌내지 못한다. 감독이 자신의 실수를 지적하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걸로 받아들인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전술을 이야기할 수 있나. 감독 비판을 들으면 쪼르륵 에이전트나 기자들, 유튜버들에게 이야기한다. 팬들이 감독을 뭐라고 하기 시작한다. ‘이기적인 연대’가 생겨나면 감독을 자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결국 시스템이 붕괴한다.”
- 김현희는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다. 실수하는 순간 균열이 생기고 실점한다. 실수한 것들을 얘기해야 하는 이유”라며 “우리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감독은 선수의 실수를 말할 수 없다. 그랬다간 ‘감독이 선수 탓 한다’는 프레임이 씌워진다”고 꼬집었다.
‘철학 부재’ 축구협회, 외교력도 없다.
- 절차와 규정을 무시한 홍명보 선임으로 축구협회는 월드컵 개최 전부터 축구팬 민심을 잃은 상태였다. 류청은 “축구협회에 좋은 직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순환 보직 등으로 연속성이 필요한 자리에서 밀려났다. 행정력과 외교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 협회는 북중미 월드컵에 뛸 주심을 배출하지 못했다. 류청은 “정몽규 전 축구협회 회장은 AFC 심판위원장을 맡기도 했는데, 정작 2002년 월드컵 이후 24년간 심판 한 명을 배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 김현희는 “초중고, 대학교, K3, K4, 지도자 심판 관리 등 풀뿌리 축구 저변을 확대하는 사업에 협회가 나서야 하는데, 대표팀에만 집중해 왔다”고 꼬집었다.
- 장기적 계획 없이 단기 성과에만 치중하다 보니 감독 선임 절차, 의사 결정 구조, 투명성 등 모든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진단이다.
진짜 문제는 유소년 시스템.
- 국가 대항전인 A매치는 한 나라에서 가장 축구 잘하는 11명과 11명의 대결이다. 그러나 김세훈은 “한 나라 유스 시스템에서 가장 잘한 선수 11명과 상대국 유스 시스템에서 가장 잘한 선수 11명의 대결”로 바라본다. 그만큼 유스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 유소년 축구(유스)가 11인제에서 8인제로 바뀌었다. “패스와 볼 터치를 늘리자”는 취지였지만, 일부 학교는 7명을 수비에 배치하고 1명만 공격시키는 ‘뻥 축구’로 이를 왜곡한다. ‘오늘의 승리’에 지도자 생명과 아이들 진학이 걸려 있어서다.
300만 원에 선수 사고 파는 유소년 축구.
- 김세훈에 따르면, 고등학교 팀이 선수를 구하기 어렵다 보니 중학교 지도자들은 선수 한 명을 300만 원씩 팔고 있다. 고등학교의 경우 전국 대회 성적이 좋아야 대학교에 갈 수 있다 보니 덩치와 힘으로 밀어붙이는 이기는 축구만 남았다.
- 지도자 월급은 학부모에게서 나온다. 학부모는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길 바란다. 대회에서 이겨야 진학을 바라볼 수 있다. 한국 유소년 축구에서 ‘이기는 감독’을 최고로 치는 이유다.
- 10대 시절에 개인기와 축구 센스를 습득해야 할 유망주들이 ‘버티는 축구’만 배우다 보니 전술 수행 능력이 뛰어난 유럽 선수들과 격차가 벌어진다.
‘지도자-에이전트-학부모’ 카르텔 깨야 한다.
- 지도자, 에이전트, 학부모 사이 얽히고설킨 기득권 비즈니스를 깨부숴야 한다. 어떤 나라는 초등학교 축구에서 아이들의 출전 시간을 총 경기 시간의 절반으로 제한한다. 주전, 비주전으로 선을 긋지 않는다. 아이들은 서로를 응원한다. “내 자식만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 한국은 학령에 지나치게 묶여 있다. 강한 팀을 상대할 기회가 부족하다. 주말 유소년 리그를 보면, 스코어가 5 대 0, 10 대 0 수준이다. 잘하는 팀은 수비할 필요도 없다. 2골 먹히면 5골 넣으면 되니까. 그만큼 수준 차이가 크다.
- 김세훈은 “실력 좋은 중학교 3학년은 고등학교 1학년과 뛰어야 하고, 잘하는 고등학생은 성인 무대에 데뷔할 수 있어야 한다. 20살 전후로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경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월반 가능한 유스 시스템이 필요하다.
프로 유스도, 대학도 선수 방치한다.
- 일본은 21세 이하 선수를 따로 모아 ‘U-21 J리그’를 운영한다. 고교·유스를 졸업했지만 1군에서 못 뛰는 19~21세 선수들에게 실전 무대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J1~J3 전체 약 60개 구단 중 11개 구단이 참여한다.
- 국내 프로 구단 중 B팀을 운영하는 곳은 전북 현대가 유일하다. 즉, 우리는 10대 후반~20대 초반 선수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뜻이다.
- 프로 규정 ‘우선 지명’도 문제다. 프로구단에 소속된 고3 학생 10명이 졸업한다고 하면, 1~2명은 프로로 직행하고 나머지 5~6명은 대학교로 진학하는데 ‘우선 지명’으로 묶인 뒤 방치된다. 구단이 허락하지 않으면 3년간 타 구단 이적은 불가하다. 김세훈은 “한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는 18세가 되면 선수를 풀어준다. 우리는 선수들을 붙잡아 놓고 침 발라 놓은 채 이들로 이적료 장사를 한다”고 비판했다.
일본과 무엇이 다른가.
- 일본 축구협회는 2005년 “2050년 월드컵 우승, 축구 인구 1,000만 명 달성”이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연령대별, 포지션별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일관된 교육을 시행했다. 그로 인해 핵심 선수가 빠져도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탄탄한 선수층을 구축했다.
- 앞서 설명했듯, 어린 선수들에게 실전 경험을 제공하며 축구협회뿐 아니라 프로 구단, 지역 협회, 학교가 하나의 방향성과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 일본은 월드컵 진출 실패나 본선에서의 부진 등 숱한 위기에도 지도자를 함부로 바꾸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유소년 환경 개선과 지도자 교육으로 기반을 다졌다.
- 일본 축협은 단순히 월드컵 우승을 넘어 사회 전체에 축구가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나카무라 슌스케, 하세베 마코토 같은 축구 레전드가 적은 보상에도 기꺼이 대표팀 막내 코치로 합류하여 현장에서 궂은 일을 맡고 헌신했다. 한국 축구계와 대조적이다.

축협 회장, 누구를 뽑아야 하나.
- 축협 회장 정몽규가 6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차기 리더십 조건은 무엇인가.
- 류청은 “축협 회장은 냉정히 얘기하면 외교하는 명예직”이라며 “정몽규 회장은 이와 달리 실무에 깊숙이 관여했고, 이런 부분이 밖에서 보기에 거대한 무능으로 비쳐졌다”고 비판했다. 류청은 지자체장 거취에 따라 흔들리는 K리그 시민구단 사례를 들며 “축구협회 역시 정권이나 외부 입김에 흔들리지 않도록 피파(FIFA) 규정 등에 입각한 철저한 독립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 김현희는 리더를 선수 시절의 화려한 명성이나 성과만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과거 합리적 판단을 내렸거나 작은 규모라도 훌륭하게 시스템을 구축해 본 경험이 있는 인물을 올바른 절차를 통해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 김세훈은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은 현 축협 집행부와 문체부가 선거인단 확대 등 무리하게 선거 규정을 바꿔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행 제도인 300명 이내의 선거인단 투표로 회장을 선출하되, 후보들이 진정성 있는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했다. 새 회장 선출 후 여론을 수렴해 다음 선거 규정을 고치는 것이 순리라고 강조했다.
박지성·이영표의 혁신, 성공할까?
- 지난 6일 K-축구 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살아있는 레전드 박지성(FIFA 분과위원회 위원)이 유승민(대한체육회장)과 함께 혁신위 공동위원장으로 나섰다. 국대 출신 이영표, 박주호도 위원으로 참여한다.
- 김세훈은 “선수로서 성공한 것은 인정하지만, 이들이 정말 한국 축구를 위해 소위 희생과 헌신을 했는지 회의적”이라며 “이왕 출범했으니 당장의 여론을 달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한국 축구를 바꿀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길 바란다”고 했다.
- 김현희는 “정몽규가 축협 회장 4선을 위해 출마했을 때 많은 축구 인사들과 동료들이 ‘박지성, 이영표가 출마했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시스템이 무너지고 좋지 못한 성적표를 받고서야 혁신에 나선 것에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그들이 갖고 있는 네트워크, 선진 축구 경험이 혁신으로 이어져 한국 축구가 발전하길 바란다”고 했다.
- 한편, 토론회에 참석한 이용수(축협 부회장)는 “현재 우리 역할은 다음 집행부를 선정하는 절차를 잘 준비하고 물러나는 것”이라며 “여러 의견을 잘 정리하여 전달하겠다”고만 했다.
- 국민의힘 의원 정연욱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가 과도하게 축협을 비판하고 개입한다’는 지적에 “축구라는 종목은 국민 스포츠라는 특수성이 있다. 국민 모두가 지켜보고 감정을 표출하는 종목”이라며 “(과도한 개입이라는) 지적도 타당한 면이 있지만, 국회는 국민 요구에 따라 국정감사 등을 통해 축구협회를 들여다볼 책무가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