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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렬 칼럼] “미국이 아틀라스처럼 세계를 떠받치던 시대는 끝났다”는 말 뒤에 숨은 함정… 먼로주의의 트럼프 귀결, 중차대한 운명의 시간.

한국 국제교류재단(KF)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제10차 KF-CSIS 한미전략포럼’이 12월 3일 워싱턴에서 개최됐다. 조현 외무부 장관은 영상 축사에서 11월 14일 발표된 팩트시트를 언급하며 “이 발전들은 우리의 동맹이 단지 지속될 뿐만 아니라 미래 지향적이고 전략적·포괄적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발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팩트시트 발표 시점에서 “한미동맹은 미래형 전략적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심화하게 됐다”면서 “양국이 함께 윈윈하는 한미동맹의 르네상스 문이 활짝 열렸다”고 말했었다. 한미동맹이 초강력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박윤주 외무부 1차관은 12월 1일 랜달 슈라이버 인도·태평양 안보연구소(IIPS) 의장을 만났다. 트럼프 1기 때 국방부에서 인·태 안보 담당 차관보를 지낸 슈라이버는 손꼽히는 대(對)중국 매파다. 미 의회의 초당적 자문 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CESRC) 위원장도 맡고 있다.

슈라이버는 “팩트시트의 성과가 매우 긍정적이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며 구체적 진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략에 한국이 협조하도록 압박하겠다는 말이다.

뒤집은 지도, 주한미군 사령관의 오버 액션.

팩트시트 공개 후 미국 인사들이 신이 났다. 11월 17일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은 위아래가 뒤집힌 동아시아 지도를 펼쳐놓고 한국은 중국의 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축이라고 언급했다. 그 직전 방한한 대럴 커들 미 해군참모총장은 대만 유사시와 관련해 “(한국군도) 분명히 일정한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이 중국 억제에 활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예측”이라고 언급했다.

케빈 김 미국 대사대리도 11월 20일 한국 핵잠 ‘승인’이 역내 도전 대응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슈라이버 의장이 말하는 “구체적인 진전” 역시 같은 맥락의 언급이다. 미국은 한국을 그들의 앞잡이로 취급하고 있다. 심각하다.

심각성의 배후 자료가 나왔다. 12월 5일 공개된 트럼프 행정부의 2025년 국가안보전략(NSS: National Security Strategy) 보고서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향후 4년간 외교, 안보, 국방 정책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최상위 전략 문서다. 항상 그랬듯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이 아틀라스(Atlas: 하늘을 어깨에 메고 있도록 형벌 받은 그리스 신화의 거인)처럼 전 세계 질서를 떠받치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맹국들이 국방비 지출을 GDP의 훨씬 더 큰 부분으로 늘리고, 특히 ‘제1도련선’ 방어에 필요한 역량에 집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먼로주의의 트럼프 귀결.

먼로주의(Monroe Doctrine)의 ‘트럼프 귀결’(Trump Corollary)이라는 용어도 나온다. 먼로주의는 1823년 12월 2일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James Monroe)가 의회에 제출한 연두교서에서 밝힌 외교 방침이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간의 상호 불간섭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나폴레옹 전쟁 후 유럽은 전통적 군주제를 복원하려 했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국가들에 대해 간섭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미국이 제동을 건 것이 먼로주의였다. 미국은 표면적으로 유럽과의 상호 불간섭을 통해 고립주의의 전통을 잇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메리카 대륙을 미국의 세력권으로 선언한 것이었다. 즉, 미국의 중남미지역 패권 의지를 드러낸 팽창적이고 공격적인 선언이었던 셈이다. 1904년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먼로 독트린을 확장하고 재해석해 ‘루즈벨트 귀결’(Roosevelt Corollary)을 발표하고 미국의 중남미 개입을 정당화했다. 2025년 NSS는 ‘트럼프 귀결’이다. 중국에 대한 공격의사 선언이며 동맹국들에 대한 군사적 착취의지 천명이다.

중국이라는 어휘가 25번 등장한다. 미국이라는 단어 다음이다. 북한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NSS가 북한을 17번 언급한 것과 대조적이다. 아시아 전략에서는 대중국 견제가 핵심이다. 한국과 일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과 일본은 적을 억제하고 제1도련선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역량에 초점을 맞춰 국방비를 증액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집단 방위를 위해 더 많은 것을 실행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적이란 물론 중국이다. 제1도련선(First Island Chain)이란 중국의 해군력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 전략적 방어선을 의미한다. 도련선 안쪽은 쿠릴 열도에서 시작해 한국, 일본 류큐 열도, 대만, 필리핀, 말라카 해협에 이르는 중국 본토 근해의 해역이다.

Outline of geopolitical situation in the South China Sea, Jan Odrobiński-Stąporek.

전략적 방어선, 최전선에 떠밀려 나설 한국.

미국은 제1도련선 방어를 위해 한국과 일본이 미군에게 항구 및 기타 시설에 접근하기 쉽게 허용해야 한다고도 언급하고 있다. 쉽게 말해 미군이 자유롭게 드나들겠다는 얘기다. 중국은 제2도련선(주로 괌, 사이판, 파푸아뉴기니)까지 군사력을 확장하여 태평양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어서 보고서는 무역 문제에서도 한국 등 주요 국가들이 중국 경제를 소비 중심으로 재조정하는 무역 정책을 채택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의 수출 주도형 경제 모델에 의존하는 것을 줄이라는 얘기다. 간단히 말해 중국과 거래를 끊고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에 동참하라는 압력이다.

한국은 제1도련선의 북쪽 시작점에 위치한다. NSS의 요구는 한국의 국방력을 중국의 해양 진출을 억제하는 데 직접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중국 해군력의 서태평양 진출을 막는 대잠수함 작전, 미사일 방어, 그리고 감시정찰 역량을 대폭 강화하라는 압박이다. 한국은 앞으로 단순한 북한 억제 역할에서 벗어나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의 최전선에 서야 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전부가 아니다. 주한미군이 대중국 견제를 할 수 있도록 한국이 협조하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은 그런 용어를 쓰지도 않는다. 이제 미국은 주한미군의 대중국 작전은 당연한 것이고, 이에 추가해 한국군의 직접적인 대중국 참전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은 미군이 한국을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당초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개념에 포함되어 있던 내용이다.

대포 밥 또는 폴 가이.

이는 미 해군이 한국의 항구에 함대를 배치해 중국을 공격하겠다는 이야기다. 한미 조선협력에서 미국이 군함을 한국에서 MRO(유지, 보수, 정비) 하겠다는 뜻에 미 함대를 한국에 배치하겠다는 저의도 숨어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아울러 미 공군도 필요하면 한국을 드나들며 중국을 치겠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한국이 미국을 위한 전진기지요 총알받이가 되라는 말이다.

‘총알받이’란 적군의 공격을 저지하거나 화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병력을 소모품처럼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영어로 ‘Cannon Fodder’(대포 밥) 또는 ‘Fall Guy’(넘어지는 놈)라고 한다. Fall Guy란 다른 사람의 죄나 잘못 때문에 체포(Fall)되거나 감옥에 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미국은 지금 한국을 대포 밥이나 폴 가이 신세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미국 대신에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인가? 우리가 미국의 식민지인가?

내주부터 부처별 업무보고가 시작된다. 국민에게 생중계 될 것이다. 하지만 외교·안보 분야는 제외다. 비밀이 많아서일 것이다. 국민이 알면 안 되는 일 말이다. 과거에 외무부의 연두 업무보고서의 맨 위를 장식한 문구는 항상 “한미동맹의 강화”라는 언사였다. 80년 동안 같았다. 미국이 하자는 대로 다 한다는 뜻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말이었다.

이번 외무부의 업무보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려된다. “한미동맹의 르네상스 문을 활짝 열” 방안이란 무엇일까? 혹시 미국 NSS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순순히 전부 내어주자는 얘기가 오가는 것은 아닐까? 지난 8월 말 이 대통령은 CSIS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다.”

이 대통령 말이 외교적 언사가 아니라 진심이라면 우리는 미국의 핵심 정책인 ‘제1도련선 정책”에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중이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공격을 받아야만 한다. 절대 안 될 일이다.

총알받이를 거부할 용기.

지금 외무부 고위 관리들이 미국을 방문해가면서 NSS 보고서의 내용을 행동에 옮길 것을 주장하는 미국 인사들을 만나 한미동맹 강화를 얘기하고 있다. 상대는 우리를 총알받이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럴 때가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왜 이토록 한가롭게 바라보고 있는가. 중차대한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은 미국의 요구와 강요를 단호히 거부할 용기를 키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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