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현 칼럼] 질문을 바꿔보자, 내란은 어떻게 가능했나… 우리는 어떤 시민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
1년이 지나 ‘12.3’ 계엄과 내란의 민낯을 샅샅이 보고 있다. 윤석열 카르텔의 은밀한 친위쿠데타 시도 장면을 CCTV 영상이 재현하고 있다. 너무 리얼해서 픽션처럼 느껴지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그러나 ‘12.3’은 끝난 사건이 아니다. 그날의 내란 시도는 실패했지만, 실패한 내란이야말로 더 오래 남는다. 최근 공개된 영상들은 마치 퍼즐을 맞추듯 그 밤을 다시 호출한다. 국회 안팎에서, 시민과 기자, 직원들이 찍어 올린 장면들은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12.3이라는 거대한 장면의 연속체를 만든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사물들조차 그 연속체에 말을 보탠다. 노상원의 수첩, 고문용 장비, 탄약 박스, 부서진 유리창과 쌓여 올린 책상들, 국회 상공을 날던 드론. 12.3 그날의 국회의 밤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듯 국회 모든 창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국회의장과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의장실과 사무처 직원들이 필사적으로 모든 층계를 뛰어 다니며 불을 켰다. 그것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무력에 먹히지 않으려는 몸의 저항이었다.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의 발걸음, 담담한 말 끝에 울컥하고 마는 목소리, 그리고 그 모든 장면과 대비되는 일부 권력자의 뻔뻔한 표정들. 나는 김예지와 김상욱 등 몇몇 국민의힘 의원들이 잠시나마 시민적 책임을 선택했던 장면을 인정한다. 계엄 해제에 찬성하고 탄핵에 동의한 것. 그것은 당론이 아니라 소신이었고, 정치인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의 도덕과 윤리였다. 똥통 속에서도 빛나는 사람은 있다. 그 빛이 슬프다. 그러나 내란의 흐름에 영합했다가 발각되자 조롱과 자기 합리화로 일관했던 친윤 의원들의 얼굴은 오래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버려지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얼굴들을 잊고 싶지 않다. 분노는 오래 남았다. 그러나 분노만으로 이 초현실—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인이 국회를 포위하고, 고문 장비가 준비되고, 그것이 실제로 실행된—이 왜 가능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내란은 사건이 아니라 조건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질문이 바뀐다.

내란은 사건이 아니라 조건이다.
종식은 단지 사라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내란은 실패했다’는 말이 종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한 내란은 여전히 우리 곁에 붙어 있고, 그 흔적은 구조와 감정, 제도와 기억 속에서 계속 작동한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내란이 조건이라면, 내란 종식은 그 조건을 다루는 능력을 뜻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내란종식은 선언의 언어로 이뤄지지 않는다. “끝났다”고 말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란은 끝났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다시 작동을 시작한다. 잊히고, 흐려지고, 무마되고, 그래서 반복된다. 도나 해러웨이는 ‘트러블과 함께 하기’를 말했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문제 속에 머물며 응답하는 것. 내란종식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내란의 잔해를 치우고 잊는 것이 아니라, 그 트러블 속에 머물면서 응답-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내란 종식이란, 따라서 이런 동사들로만 가능할지 모른다. 그날을 지워지지 않게 붙들어두는 기억하기. 목격과 사물들을 공적 기억으로 남기는 기록하기. 그 내란을 가능케 한 구조를 드러내는 분석하기.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고치는 설계하기. 그리고 그 잔재와 관계 맺는 방식을 스스로 바꾸는 다르게 살아보기. 이 다섯 가지는 순서가 아니다.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를 불러낸다. 분노가 기억을 낳고, 기억이 기록을 요청하고, 기록이 분석을 가능케 하고, 분석이 설계를 추동하고, 설계가 다시 삶의 방식을 묻는다. 그 순환 속에서만 내란은 비로소 종식을 향해 움직인다.
이것이야말로 실패한 내란이 남긴 질문이자, 우리가 응답해야 할 작업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란은 더 은밀하게, 더 정교하게 되풀이될 것이다.
12.3의 밤은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그 밤이 보여준 것은 내란의 실체이자, 시민이 민주주의의 마지막 저지선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그것이 가능했는지 묻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 조건을 재구성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내란종식은 사건의 종료가 아니라 사회를 다시 쓰는 능력이다. 12.3은 실패한 내란이지만, 그것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내란 종식을 말하기 전에,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묻자.
‘평화 월딩’이라는 키워드로 연구소 설립을 준비하면서, 1년을 넘어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많은 연구와 실천을 떠올리며, 재구성하는 생각들이 가득하다. 꿈에서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의미에서 ‘12.3’은 내 연구와 실천, 아니 내 삶에서도 커다란 변곡점이 되고 있다.
나는 분노했다. 그리고 지금도 한다. 그러나 분노만으로는 이 초현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 내란은 사건이 아니라 조건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평화란 무엇인가? 어떤 이는 갈등이 사라진 상태를 평화라고 말하지만, 그 언어조차 폭력적일 수 있다. ‘문제를 제거하자’는 말은 너무 자주 문제를 만든 권력이 아니라 문제를 말하는 사람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평화를 갈등의 소거로 정의하는 순간, 폭력은 오히려 강화된다.
여기서 도나 해러웨이의 문제제기는 오솔길 느낌 같은 중요한 영감을 준다. “트러블과 함께 살기”라는 그의 말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관계를 재설계하라는 요구다. 트러블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는 것. 평화 월딩의 윤리도 바로 여기에 닿아 있다.
‘평화 월딩’이라는 키워드.
12.3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 실패한 내란은 이미 우리 곁에 붙어 있다. 따라서 평화는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계속 사는 법을 발명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연구자-시민으로서의 행위는 무엇일까?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작은 동사들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날을 잊지 않는 연구자-시민의 고집으로서 기억하기. 증언과 사물을 공적 기억으로 만드는 기록하기. 권력과 정동, 배후 구조를 밝혀내는 질문으로서 분석하기. 재발을 막는 규칙과 장치를 만드는 제도 설계하기. 그리고 민주주의를 방어할 주체로 다시 서는 시민 역량 재구성하기. 이것들은 추상적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실천이다.
평화 월딩은 폭력 없는 세계를 약속하는 꿈이 아니다. 폭력의 흔적을 다른 세계의 설계 자재로 바꾸는 작업이다.
12.3의 밤은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그날의 파열음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떤 언어로 기록하고, 어떤 제도로 응답하고, 어떤 시민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 그 질문이야말로 내란이 남긴 진짜 유산이다.
평화는 선언이 아니다. 평화는 트러블과 함께 일하는 능력이다. 내란은 지울 수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다시 설계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