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콜드케이스] 미디어를 통해 반영·증폭·구성되는 문제적 현상과 사고방식을 ‘캡콜드’ 김낙호 교수가 명쾌하게 분석합니다.
- 인어공주, 디즈니의 해석본은 어떻게 추억의 원본이 되었는가
- 곳간에서 진보난다: 정치적 올바름과 반(反)페미니즘 그리고 성평등은커녕
- 신나면 망한다: ‘미제 똥물’ 전설에서 ‘밥.꽃.양.’의 현실까지
- 숭배와 혐오의 이분법을 넘어서: 로알드 달, 르 귄, 그/그녀
- PC 가짜 논쟁의 종착점: 답은 작품에 있다 (끝)
인어공주와 PC, 그리고 페미니즘
곳간에서 진보난다
캡:콜드케이스 01-02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은 그 조어의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만만한 용어, 만만한 개념이 아닙니다.
“‘정치적 올바름’ 개념이 오늘날처럼 소수자집단과 주류집단 사이의 논쟁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에 이 용어는 레닌 좌파들이 자신들의 노선과 관련하여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 좌파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과격함을 아이러닉하게 표현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 진보주의자들이 주장한 다문화주의·다양성 개념은 사회적 정의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에 보수주의자들은 ‘정치적 올바름’이 사회적 정의가 아니라 주류집단의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특정 소수자집단의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후 PC지지자들은 anti-PC지지자와의 논쟁 과정에 주류집단의 헤게모니를 비판하는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또 다른 의미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정치적 올바름’이란 용어는 사회 변화와 진보, 보수라는 사회적 시각에 따라 의미가 추가되거나 새로운 의미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종일, 정치적 올바름의 개념과 논쟁 범위 고찰, 2016.
“[캡틴 마블], [어벤져스: 엔드 게임], [인어공주] (개봉 예정)에 대한 전문가 비평과 대중 반응을 함께 분석한 결과, 각각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찬성과 거부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에서 일정한 차이가 발견되었다. 전문가 담론 속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문화예술 생산자들이 반드시 추구해야 할 가치로 논의되었던 반면, 대중 담론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영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으로 치부된다. 이때 ‘정치적 올바름’ 비판을 정당화하는 기제로는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팬들에 대한 기만, 역차별 담론 등이 동원되었으며 그 논리적 귀결은 원작 근본주의와 예술 지상주의이다.”
한송희, 이효민, 영화와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논쟁 : [캡틴 마블]과 [어벤져스: 엔드게임], [인어공주]를 중심으로, 2020. 5.
“‘트럼프 현상’의 근저엔 지난 40년간 미국 사회를 지배한 ‘정치적 올바름’과 그에 따른 ‘위선의 제도화’, 그 토양 위에서 구축된 ‘플랫폼 정치’와 ‘정치적 양극화’에 대한 강한 집단적 불만, 그리고 이 불만을 행동으로 현실화시킬 수 있게 한 ‘미디어 혁명’이 있었다.”
강준만, ‘미디어혁명’이 파괴한 ‘위선의 제도화’;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본 ‘트럼프 현상’, 2016.10.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언어 사용을 통제하려는 운동의 철학이다. 이 운동은 미국에서 1980년대부터 활발하게 전개돼 왔지만, 1990년대초부터 보수 우파의 반발로 이념적인 ‘문화전쟁’의 한복판에서 격렬한 갈등의 온상이 되어 왔다. 사회적 운동으로서의 PC의 역사가 이제 겨우 수년에 지나지 않는 한국에서 수십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PC 비판 담론을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도 좋을까?“
강준만, ‘정치적 올바름’의 소통을 위하여, 2018.12.
인어공주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정치적 올바름에 관해 캡콜드 님께 물었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의 어원: 반어 혹은 조롱
민노: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은 어떤 억압이랄까, 피곤함이랄까, 경직성이랄까, 그런 부정적인 느낌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캡콜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 자체를 쪼개서 봐야 합니다. 그냥 올바름이라고 하지 않고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하잖아요. 실제론 올바르지 않다는 얘기예요. 그 순간의 어떤 정치적인 목표에 적절하다라는 의미로 쓰인 거죠. 굉장히 반어법적으로 쓰였던 거거든요.
특히 20세기 초반 같은 경우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정치 운동을 하면서 현실에서는 불편하고 비효율적이고 문제가 있는 거라도 정치적인 도그마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잘못됐지만(우스꽝스럽지만) 정치적 방향에서는 올바르다는 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거고요.
이 용어가 사실은 70년대에 사회진보운동들이 문화적인 패러다임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재발굴되는 데요. 소수 그룹의 사회적 권력을 박탈하는 표현 방식이 문제라면서 그런 표현 말고 중립적인 용어를 새로 쓰자고 주장하고, 그런 중립적인 용어를 쓰지 않으면 굉장히 잘못하는 거라는 그런 움직임이 70년대에 이미 있었단 말이죠.
그렇게 불편을 감수하고 도그마를 따르는 운동을 하는 게 한편으로는 굉장히 우스운 일이지만, 그것이 정치적으로는 올바르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포섭해서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거다라는 거죠. 즉, 70년대에도 마찬가지로 반어법적 의미로 쓰였다는 거죠. 한마디로 조롱이었단 말이예요. 조롱.
한국적 맥락에서 정치적 올바름
민노: 조롱이라…
캡콜드: 미국적 맥락에서 조롱과 반어로 쓰였던 ‘정치적 올바름’이 오늘날 특히 한국에서 재발굴된 건 세계적으로 온라인 미디어상의 반동적이고 극우적인 일련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온라인 극우파들이 들고나온 논리적인 흐름이 이런 거였거든요.
- 좌파가 미디어를 모두 장악했다.
- 그래서 우리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억압한다.
- 그 모든 게 여성이나 성적 소수자 같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자유를 뺏어가려는 활동의 일환이다.
- 그런데도 정치인이 그걸 제지하지 못하는 건, 그게 정치적으로는 옳기 때문이다!
민노: 아!
캡콜드: 지금 오히려 미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pc)라는 말은 구닥다리가 돼서 더는 안 쓰고요. 소위 깨어있는(woke)라는 말을 써요. ‘깨어있는’을 이제 ‘정치적 올바름’ 대신에 조롱의 의미로 쓰는 거죠. 어쨌든 한국은 한 단계 늦게 수입이 되면서 여전히 PC, PC 하게 되는 거죠.
민노: 우리나라로 치면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을 조롱의 의미로 쓰는 것과 비슷하겠네요.
캡콜드: 그런 비슷한 흐름이죠. 같은 거를 지칭하지는 않지만, 그런 비슷한 흐름으로 일종의 조롱의 의미가 되는 거죠.
뒤늦은 미국수입품 PC, 한국에서 히트(?)한 이유
민노: 우리나라는 그럼?
캡콜드: PC라는 게 한국에서 지난 몇 년 동안 히트를 친 게 뭐냐면 반페미니즘 흐름하고 사실은 딱 맞닥뜨려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민노: 맞아요.
캡콜드: 지난 몇 년을 보면, 기존 권력에서 계속 주변화 돼있던 여성이 그나마 힘을 얻어가던 그런 분야였잖아요. 우선 지적하고 싶은 건, 모든 사회적 권력관계라는 게 어떤 비슷한 흐름이 있는데요. 제가 즐겨 쓰는 말이 ‘곳간에서 진보난다’라는 말이 있어요.
민노; 곳간에서 진보난다?
캡콜드: 예, 곳간에서 인심난다처럼 곳간에서 진보난다라는 말인데… 그러니까 내가 뭔가 가진 게 있고, 가진 거를 안 뺏길 것 같을 때에는 좀 더 다른 계층, 다른 그룹들한테도 뭔가 조금 더 권리를 얻도록 해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든단 말이죠. 그냥 평범한 인간의 어떤 유기적인 심리 기제인 거죠.
그런데 그에 비해서 내 위치, 내 권력이 흔들리는 것 같다 하면 굉장히 방어적이 되고요. 피할 수 없는 기본적인 기제인데요. 그게 사실은 지난 한 10여 년 동안 여성 인권이 좀 더 표면화하면서 안 그래도 경쟁 체제가 굉장히 심한 한국에서는 굉장히 남성에게도 위협적으로 다가왔단 말이죠.
레디컬 페미니즘 vs. 강력한 반동
민노: 제가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는데요. 기본적으로 진보층에서는 레디컬 페미니즘조차도 제가 느끼기에는 정치적 올바름의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지지했단 말이죠. 앞서 설명하신 극우파의 반동적인 맥락과는 정반대에서.
캡콜드: ‘레디컬’이라는 것은 다소의 긍정적인 역할이 있고, 장기적으로는 굉장히 많은 문제들을 낳곤 하는게, 기본적으로 소위 말하는 기존 체제를 확 근본적으로 뒤집어 엎는 전투적인 태세로 들어간단 말이죠. 그래서 초기에 무언가 억압된 구조를 뚫는 데는 굉장히 장점을 발휘하는데 왜냐하면 그만큼 강력하게 공격을 하니까요. 그런데 그다음에 다수 지지를 이끌어서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데에는 금방 한계를 드러낸다는 말이죠.
민노: 그런 맥락에서요.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페미니즘이 굉장히 핫한 어떤 이념적인 지향 내지는 운동 내지는 사회적인 어떤 흐름이었던 것 같은데요. 지금은 일시적인 쇠락일 수도 있고, 침체일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는 뭐랄까 어떤 강력한 반동을 만나고 있잖아요, 지금.
캡콜드: 그렇죠. 강력한 반동이라고 표현하신 게 딱 맞는 것 같아요.
뜬구름 잡는 반(反)페미니즘 담론들
민노: 캡콜드 님 보시기엔 페미니즘은 일시적인 쇠락인가요? 아니면 강력한 반동에 의한 멈춤인가요. 아니면 장기적인 침체 국면인가요. 어떻게 보세요?
캡콜드: 우선 페미니즘을 세분화를 해서 봐야 할 것 같아요. 페미니즘이라고 해도 페미니즘이 포함하고 있는 범위가 아무래도 넓죠. 그러니까 실제로 어떤 노동 평등으로서의 페미니즘도 있는 것이고, 어떤 문화적인 영역에서의 페미니즘도 것이고, 제사상 함께 차리기 같은 일상에서의 페미니즘도 있는 거고요. 여러 층위의 페미니즘이 있는데요.
우선 레디컬 패미니즘이라고 해서 특히 온라인 등지에서 갑자기 확 부상했던 방식은 페미니즘 자체를 이슈화시키는 데 굉장히 집중했고, 그 과정에서 굉장히 전투적으로 나왔단 말이에요. 그래서 아주 재빨리 결국 큰 반동을 만났고요. 처음에 이슈 자체를 키우는 데 있어서는 그런 반동마저도 사실은 도움이 돼요. 사람들을 주목하게 하니까요.
하지만 그다음에 각 영역에서 페미니즘의 성과를 계속 정착시키고, 더 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종류의 운동, 다른 종류의 노력들이 계속 필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당장 일터에서의 임금 형평성이나 진급 등등과 관련한 노동 영역의 평등과 관련해선 주목을 쉽게 끌지도 못할 뿐더러 그 문제를 해결하는 거는 주목만 많이 끈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지금도 현장에서는 많은 분들이 잘 안 보이는 방식으로 안 보이는 곳에서 굉장히 많이 정말 피나는 노력들을 많이 하고 계신데요. 그런 거는 애초에 문화적으로 큰 이슈가 안 된단 말이죠. 그거에 비해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거는 뭐냐면 그냥 막연하게 ‘지금은 여성상위 시대다’라는 둥 여성지향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너무 꼴 보기 싫다더니 둥, 그런 추상적인 영역에서만 (반)페미니즘 담론이 폭발하는 거죠. 현실과 괴리가 있는 그런 상태죠.
성평등은커녕… 노동평등의 현실
민노: 그러니까 담론 자체가 너무 비생산적이다. 좀 불필요한 부분에 너무 좀 과잉 대표되고 있다. 이렇게 보시는 건가요?
캡콜드: 그렇죠. 굉장히 의미 없는 부분에서만 대중적 여론들이 몰려 있(었)고, 그거보다 사실 훨씬 더 중요한 영역에서는… 저는 가령 노동평등 쪽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실제로 아직 통계 수치를 보면 성평등은커녕 여전히 소위 많은 유리천장이 있고, 임금 불평등이 있고, 그런 것들이, 진전이 아예 없다는 거는 아닌데, 진전이 굉장히 더디거든요.
노동평등의 관점에서 본 실제 통계 수치 (편집자)
- 2022년 경제활동참가율(%) “통계청 성불평등지수(GII) 현황에서 인용
- 남성대비 여성 임금비율
- 남성대비 64.6% (2021년 기준)
- 월임금 총액(평균): 남자 383만 원 v. 여자 248만 원 (2021년 기준)
- 주요 OECD 회원국 남녀 임금격차(%): 압도적으로 1위 (31.5%)
캡콜드: 그런데 그런 노동(불)평등과 관련한 자료들로 사람들이 흥분하고 감동하지는 못하는 거고, 그보다는 여성들이 내가 보기엔 막연하게 더 잘 나가는 것 같고, 그런데 아직도 우리가 여성들을 우쭈쭈해줘야 하느냐 그런 게 반동의 핵심 포인트거든요. 이미 여성상위가 됐고, 성평등인데 왜 우리 남성이 여성을 봐줘야 되느냐? 그게 반동의 기본 ‘네거티브’(흑색선전)예요.
한마디로 앞서 얘기했던 ‘곳간에서 진보난다’ 말이 바로 그런 포인트인데, 사회 진보라는 거를 굉장히 시혜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기본 마인드가 아무래도 세계 어디서나 있거든요.
(계속)
캡:콜드케이스
캡콜드(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김낙호 교수) 님은 만화 덕후이자 미디어 전문가로 연구 분야는 언론학입니다. 캡콜드 님께 사회적 논란과 지적 이슈에 관해 묻고, 그 답변을 정리합니다. 첫 번째 케이스는 인어공주와 PC(정치적 올바름) 그리고 페미니즘에 관한 이슈입니다. 가독성을 고려해 나눠서 올립니다. 캡콜드 님과의 대화는 6월 초에 있었고, 이후 계속 보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