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 인터뷰] 이제는 황혼의 역사를 향해 저무는 전세, 사회주택은 전세의 대안,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집을 밝히는 새벽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사회주택’의 저자 최경호 인터뷰. (⌚7분)
📙 ‘어쩌면, 사회주택’ 저자 인터뷰 (3회 연재)
- 전세의 황혼, 사회주택의 새벽
- 사회주택은 ‘플랫폼’이다 ⇦ 이 글!
- 사회주택, 마치 버스나 택시처럼!

민노 인터뷰: ‘어쩌면 사회주택’ ⑵
사회주택은 ‘플랫폼’이다
질문 정리: 민노
답변: 최경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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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5년 4월 21일에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소제목이나 본문에 맥락화했고, 본문은 최경호의 답변을 중심으로, 그러니까 인터뷰이 1인칭 시점으로 정리했습니다. 최종 정리 과정에서 인터뷰이가 직접 내용을 확인하고 퇴고했습니다.
뉴타운? 노노!! 다품종-소량생산과 친한 사회주택
뉴타운 사업을 계속했어야 한다는 평가가 있는데 왜 사회주택을 하냐고? 혹은 뉴타운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가 더 크지 않냐고? 글쎄. 뉴타운 사업은 ‘우리도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열망에 부응해 2002년부터 시작된 대규모 도시정비사업이다. 소품종 대량생산- 대량소비 패러다임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겠다.
반면, 사회주택은 다품종 소량생산, 수요자 주도의 생산방식에 더 어울린다. 그래서 뭐랄까, 패러다임이 다르다. 이명박식의 뉴타운 사업은 사회주택과 관련성은 깊지 않고, 사회주택의 경쟁자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물론 사회주택이 그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현재는 아니지만.
뉴타운 사업은 이명박 정부 시절 신기루처럼 흘러가다가 수습이 안 되어서 난리였다. 나는 사실 오세훈 시장이 당시 사퇴해 버린 속내에는, 학교급식 주민투표가 불발된 것보다, 뉴타운 사업이 너무 골치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억측을 하곤 한다. 박원순 시장이 보궐선거에서 당선될 때엔 이미 ‘뉴타운 해제해주세요’라는 민원이 빗발치던 때였다.

그런 민원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지속-유보-해제의 세 지역으로 구분하고 이를 수습해가는 과정이 2010년대 상반기 내내 있었다. 그리고 그게 일단락된 2015년 이후에, 그래도 이런저런 방법으로 계속 주택을 공급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서울시 사회주택조례도 생긴 것이다. 시점상으로도 사회주택이 뉴타운의 경쟁자라고 보기 어렵고, 사회주택 하려고 뉴타운을 해제한 것도 아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완공된 뉴타운에 입주한 주민의 자산가치가 최근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늘어난 것도 분명 사실이다. 2010년대 뉴타운 해제의 민원을 제기했던 분들 입장에선 속상할 수도 있겠고, 과거를 회상하면 격세지감이다. 금리, 코로나, 1인가구 증가, 재개발로 인한 철거, 등등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인데,.. 세상일은 알 수 없다.
최근 오세훈 시장의 ‘모아타운’은 뉴타운 사업보다는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한다. 뉴타운보다는 모아타운이 사회주택과는 좀 더 거리가 가깝다고나 할까? 소품종 대량생산보다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파트’ 위스테이… 결과로서의 사회주택
사회주택은 아파트를 싫어하냐고? 그렇지 않다. 그만한 땅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사회주택의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위스테이’는 남양주 별내에 있는 5백 세대 규모 아파트 단지다. 처음부터 입주자를 모집해서 여러 번 워크샵을 해가며 커뮤니티 공간 등을 만들고, 주민들로 꾸려진 사회적협동조합이 단지의 관리 운영을 책임진다.




물리적 형태는 아파트단지이지만, 기존의 ‘공급자주도 대량생산-대량소비 방식’보다는 좀 더 수요자 주도성이 강화되어, ‘수요맞춤형 공급’의 성격이 짙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단순히 시행사가 사회적기업이라서거나, 운영자가 협동조합이라서가 아니라,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방식에서 ‘풀뿌리’의 주도성이 더 발현되었다는 말이다. 앞으로 1인 가구가 많아지고, 고령사회가 될수록, 이런 방식으로 공급되고 운영되는 주택이 더 많아지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름이야 사회주택이라 부르든 자유주택이라 부르든 말이다.
이제는 신규 택지로 개발할 땅도 거의 없다. 앞으로 주택의 공급은 주로 낡은 집을 새집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아직 재개발이나 재건축에서 사회주택이 뭔가 보여준 사례는 거의 없다. 물론 이론적으로 원천 불가하다는 건 아니고. 기존의 사회주택 관계자가 시행사 역할이나 퍼실리테이터를 하는 방식도 연구 중이긴 한데, 넓게 보면 재개발이든 재건축이든 정비 조합이 기존의 방식대로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회적 가치를 시도한다면 그런 방식도 사회주택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즉, 주택의 형태나 규모, 소유관계보다는 그 집이 품은 가치의 차원을 강조하고 싶다. 형식적인 이름표가 아니라 사회주택의 ‘비전’을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앞으로 ‘신도시’가 새롭게 추진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미 주어진 주택의 재개발, 재건축 과정에서 사회주택의 비전, 철학, 소프트웨어가 포함되면 좋겠다.
사회주택이 무조건 옳다는 식의 당위론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비조합의 입장에서도 조합원들이 고령화하고, 커뮤니티나 돌봄이 중요해진다면, 자연스럽게 그런 필요나 가치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모든 조합원들이 다 분담금을 턱턱 부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사회주택이 추구하는 비전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즉, 어떤 주택이든 그 주택을 사회주택이다, 공공주택이다, 민간주택이다 규정하면서 시작하기보다는 결과가 실현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정책은 이런 다양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사회주택은 (다양한 가치를 담는) ‘플랫폼’이다
다양한 가치가 구체적으로 뭘 말하느냐고? 예컨대 환경, 장애인, 지역(소멸), 청년(일자리), 노인, 돌봄 등을 우선 떠올릴 수 있다. 사회주택 자체가 일자리를 만들 수도 있고, 직주근접을 실현할 도구가 될 수도 있으며, 노인과 장애인의 돌봄을 시스템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다. 가상발전소라던가 에너지 순환 같은 탄소중립을 위한 과제도 그런 것들이 기술만 도입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협력이 있어야 하드웨어도 제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라, 사회주택 같은 방식에서 빛을 더욱 발할 것이다. 돌봄이나 지역 활성화도 마찬가지로 접근할 수 있고, 책에도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을 소개했다.
모델이 너무 복잡하기에, 지금의 사회주택들이 성공한 걸로 보긴 어렵지 않냐고? 그렇다. 책에서 “사회주택의 유형이 이렇게 많다는 건 그만큼 성공적인 유형이 아직 없다는 방증”이라고 쓰기도 했다. 실제로 지금의 사회주택은 물리적 형태나 소유관계 그리고 법적 근거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이 복잡하게 많다. 하지만 이게 꼭 실패라기 보다는, 여러 가지 다양한 해법을 시도한 것이라 볼 수도 있고, 이제 몇 가지 효과들을 검증해서 집중할 만한 모델을 찾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나 많은 사회주택의 유형이 존재하는 건 그만큼 풀어내야 할 문제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해법을 찾다 보니 사회주택의 유형도 많아진 거라고 볼 수도 있는 거지. 땅 구하는 문제, 건설비 문제, 임대료를 싸게 받아야 하는 과제,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 충족 등등을 위해 고민하다 보니 말이다.

고시원을 리모델링한 사회주택과 신축 아파트형 사회주택은 물리적인 모양새만큼이나 입주자의 효용이나 공공과의 협력 구조가 다르게 진행된 것이다. 공사비를 저리로 빌려줄 것인지, 일부 보조금을 줄 것인지, 입주자의 보증금 비율을 낮추고 월세 비율을 높일 것인지, 택지개발지구에 가능한 인센티브인지 기존 시가지에서 가능한 인센티브인지..
그러니 이렇게나 유형이 복잡한 건,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극복하고 구체적인 희망을 찾기 위한 여러 가지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받아주면 좋겠다.
너무 과대광고 아니냐고 하는데.. 사회주택의 ‘가능성’을 이야기한 건 전체로 볼 때 이야기다. 사실 개별 주택 하나하나가 어떻게 청년 문제, 1인 가구 문제, 고령사회 문제 등의 세상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겠는가. 사회주택 하나가 세상의 열 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한두 개나 많으면 서너 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그런 다양한 사회주택의 유형들이 전체로서는, 세상의 다양한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의 사회주택은 장점은 여러 가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시도들을 탑재할 수 있는 플랫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돌려 말하면 사회주택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사회주택에 ‘돌봄’을 결합할 수도 있고, ‘친환경’을 장착할 수도 있다. 단기적 수익성만을 평가의 척도로 삼는 민간주택의 경우나, 공공성을 실현한다는 걸 ‘공기업 혼자서만 다 하려는 것’에서 찾는 경우에는 그런 다양한 가치들을 주택에 담아내기 쉽지 않다.
장애인을 위한 사회주택의 경우
사회주택에 살고 싶다고 쉽게 들어가 살 수 있는 거냐고 물었는데, 뭐 지금은 일단 물량이 너무 부족해서.. 슬프지만, 누구나 원하면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사회주택은 인기가 있고, 어떤 곳은 경쟁이 심해서 경쟁률이 20대 1을 넘기도 한다. 책에서 장애인을 위한 사회주택에 비장애인이 입주한 경우를 소개했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이는 ‘소셜 믹스’ 차원에서 그렇게 배정한 것이다. 한편, 입주자 공고를 냈는데 장애인 지원이 없으면, 몇 번 공고 후엔 비장애인을 받기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입주 자격 제한이 있냐고? 사회주택의 입주 기준으로는 대체로 우선은 소득 수준을 보고, 심사할 때 커뮤니티 활동을 반영하고 고려하는 곳도 있다.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하드웨어로서의 건물만 짓는 게 아니다. 이런 기획이나 설계가 일종의 ‘소프트웨어’인데, 장애인을 위한 사회주택이라면 이런 소프트웨어적 요소가 더 전문적으로 필요할 수 있다. 가령 사회주택과 발달 장애 지원 프로그램이나 가족 지원 프로그램이 결합할 수 있고, 종교단체나 사회활동단체와의 협업 구조를 설계해 볼 수도 있다. 의료기관과의 연계를 모색할 수도 있고.
책에 소개한 ‘다다름 하우스’는 지역의 사회복지법인과 사회주택사업자가 의기투합해서 기획하고, 공공에서 이를 지원해서 만들어진 경우다. 여기서 사회복지법인은 발달장애인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사회주택사업자는 건축가와 함께 그런 프로그램이 더 잘 실현될 수 있는 주택의 건설과, 입주자 모집과 관리∙운영 쪽을 맡는 것이다.




책에도 썼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의 2017년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지역사회 거주를 위해 필요한 것은 주거(28%), 식사(22%), 일자리(20%), 생활 지원(11%)”이라는데, 이런 수요를 감안한다면 식사나 일자리 관련한 조직도 같이 기획에 참여하는 모델도 가능할 것이다. 책에 소개한 부산의 도담하우스는 일자리 관련 조직이 주거 문제에까지 영역을 넓힌 경우다.
물론 갈 길이 멀다. 가령, 직장 있는 장애인은 주말에는 쉬어야 하는데, 시설 운영하는 분들도 직장인이니까 주말에는 쉬어야 한다. 그러면 공백이 생긴다. 취업한 장애인을 위해선 주말에 운영되는 새로운 프로그램과 운영 기관이 필요할 텐데, 아직은 이런 문제를 이상적으로 해결 사례는 없다. 취업한 장애인들을 위해서 주택만 제공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공공주택을 빌려서 운영하다가 계약기간이 끝나서 반환할 때, 안전바를 떼어낸 사례가 인상 깊었다고? 병원에서 퇴원한 분 중에서 바로 집으로 가서 자립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한 공간인 ‘케어비엔비’ 사례다. 시설도 집도 아닌 재활 훈련용 ‘중간 집’이라는 개념으로 운영되던 곳이다. 비장애인도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일종인 ‘안전바’를, 계약서상의 원상회복 의무 때문에 굳이 떼어야 했던 것이다.
사실 공공의 경직성을 비판하려고 이 사례를 들고나온 건 아니다. 공공의 경직성에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형평성이나 안정성을 추구하는 공공의 입장을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다만, 문제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고 탄력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민간이나 사회 부문과 ‘협업 구조’가 필요하다는 거다. 이 경우는 ‘기획 주체’와 ‘운영 주체’를 일치시키는 게 좋겠다는 거고, 각자의 장점을 살려서 협력할 수 있는 질서를 만들자, 그게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커뮤니티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정책에서는 많이들 커뮤니티를 강조하고 있는데요. 저희는 커뮤니티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실현의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츠스테이 기획자, ‘어쩌면 사회주택’, 최경호, 2024. 중에서

아츠스테이 기획자가 이렇게 말한 취지는 커뮤니티는 라이프스타일의 하위 개념이라는 거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고, 그 중 커뮤니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또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다양한 선택지를 주자는 것이 아닐까? 이건 그런데 내 주장이 아니라 나도 인터뷰를 한 것이고 그에 대한 내 주관적인 해석이라서 조심스럽긴 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