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이콥의 자위 기계 이야기를 처음 듣고 구역질이 났던 것처럼, 당신도 그의 행동에 구역질이 날 수 있다. 그리고 제이콥의 고백을 당신과 당신의 삶과는 관련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상식을 벗어난 일종의 극단적 도착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당신과 나, 즉 우리는 살아가는 방식에 관해서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인식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저마다 자신만의 자위 기계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 말이다.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제1장 자위 기계를 만드는 남자. 영문 2021, 한글 2022.
원제: Dopamine Nation: Finding Balance in the Age of Indulgence, 2021.08.
애나 렘키(Anna Lembke, 1967년생) 스탠포드대학 스탠포드 중독의학 이중진단 클리닉 소장.

애나 렘키의 [도파민네이션] (영어 2021, 한글 2022, 흐름출판)은 따뜻하고, 흥미로우며 논쟁적이다. 이 책은 마치 이웃집 아줌마가 자신이 직접 겪은 어려움과 친구들이 겪은 다양한 삶의 고비를 들려주며 함께 힘 내보자고 따뜻하게 손잡아주는 것 같다. 중독자들 사례는 놀라운 구경거리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다. 중독자 치료 방법론에 관한 가설들을 이야기할 때는 논쟁적으로 변한다.

요즘 ‘도파민’이란 용어가 친숙하다. 그건 마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만큼이나 우리의 일상에 빠르게 안착해다. 심지어 트랜드에 관한 책을 쓰는 어떤 교수는 ‘도파밍’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한다. 유행을 ‘창조’하려는 욕망이 담긴 조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신조어야말로 우리가 ‘도파민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효석 박사에게 이 책, [도파민네이션]에 담긴 좀 더 다양하고 풍부한 맥락과 혹 놓치기 쉬운 의미에 관해 물었다.

이효석의 ‘슬로우민트’

타락한 자의 지혜: 흥미롭고 따뜻한 ‘도파민’ 이야기

질문, 정리: 민노

안내 알림

이 글은 2023년 8월 27일 진행한 인터뷰를 여러 번에 걸쳐 보충하고 정리한 것입니다.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가급적 맥락화하거나 소제목으로 표시하고, 이효석 박사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편집자)

도파민이란 무엇인가?


  • 도파민은 인간 뇌의 신경전달물질이다.
  • 도파민은 보상 자체의 쾌락보다는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와 더 관련이 있다.
  • 도파민은 특정 행동과 약물의 중독 가능성 측정 지표로 쓰인다.

지난 반 세기 신경과학의 발전은 근본적인 보상 과정(reward process)를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는 고통과 쾌락을 관장하는 메커니즘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함으로써 과도한 쾌락이 고통으로 이어지는 이유와 과정에 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됐다.

(…중략…) 도파민(dopamine)인간 뇌의 신경전달물질1957년 처음 발견됐다. 두 명의 과학자가 따로 발견했는데, 그 중 한 명인 칼손은 노벨 생리학상을 받았다. 도파민은 보상 과정에 관여하는 유일한 신경전달물질은 아니지만, 신경과학자들 대부분은 도파민이 그 중 가장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도파민은 ‘보상 그 자체의 쾌락을 느끼는 과정’보다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 과정’에 더 큰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유전자 조작으로 도파민을 만들 수 없게 된 쥐들은 음식을 찾지 못하고 음식이 코앞에 놓여 있어도 굶어 죽지만(동기 부여가 없으므로), 음식을 입안으로 바로 넣어주면 임식을 씹어서 먹으며 그걸 즐기는 것처럼 반응한다.

동기 부여와 쾌락 사이의 차이를 두고 논쟁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도파민은 특정 행동이나 약물의 중독 가능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쓰인다. 예를 들어, 어떤 약물이 뇌의 보상 경로에서 도파민을 더 많이, 더 빠르게 분비할수록 그 약물의 중독성은 더 크다고 평가된다. 이는 그 약물이 말 그대로 도파민을 함유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뇌의 보상 경로에서 도파민 분비를 유도한다는 의미다.

애나 렘키, 제3장 뇌는 쾌락과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도파민네이션] 영어 2021, 한글 2022.

들어가며: 위기의 시대를 헤쳐나갈 중독자의 지혜


결과적으로 지금의 우리는 더 많은 보상을 얻어야 쾌감을 느기고, 상처가 덜하더라도 고통을 느낀다. 이러한 기준 변화는 개인 수준뿐 아니라 국가 수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이글어 낸다. 우리가 이 새로운 생태계에서 잘 지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우리는 21세기 인간으로서 어떠한 사고와 행동 방식을 가져야 할까?

어쩌면 그 해답을 중독자들이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에게 강박적 과용을 피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은 중독에 가장 취약한 사람, 즉 중독과 싸우는 이들이다. 오랫동안 여러 문화에서 타락한 자, 기생하는 자, 버림받은 자, 부도덕한 자로서 소외당해온 중독자들은 지금 시대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지혜를 다져 왔다.

같은 책, 제3장 뇌는 코락과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민노: 이 책은 아주 좋은 의미에서 세상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지혜를 담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감동했던 구절이 있는데요. 오랫동안 사회 문화적으로 배척된 중독자를 오히려 위기의 시대를 견딜 수 있는 지혜의 전달자로 묘사하는 부분은 그 역설적인 발상과 크고 따뜻하게 포용하는 큰 품이 느껴져서 감동을 전해줬는데요. 이효석 박사께는 이 책이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합니다.

쾌락에는 대가가 따르고, 고통에는 보답이 따른다.

이효석: 네, 제게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는 흔히 전통적 가치라 생각하는, 그러니까 쾌락에는 대가가 있고 고통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가르침이 최신 뇌과학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과거에는 지혜로운 스승이나 종교적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통해 알게 된 것이고 오늘날에도 충분히 유용한 교훈이지만, 현실에서는 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욜로(YOLO)라든지, 탕진잼(탕진하는 재미, 자신의 경제적 한도에서 마음껏 낭비하며 느끼는 즐거움), 소확행과 같이 눈앞의 즐거움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말들이 생겨났고요.

쾌락에는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도파민네이션]은 인간의 뇌를 연구한 결과 이런 전통적 가치가 실제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곧, 쾌락의 추구는 더 큰 쾌락의 요구로 이어질 뿐이라는 냉철한 진실과 인간은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따끔한 교훈에 더해 지금 당신이 겪는 고통이 미래의 행복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따뜻한 희망까지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흔히 과학은 가치중립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말을 얹지 않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말해주지요. 마치 21세기, 뇌과학 버전의 도덕경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이유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을 텐데 그런 사람들에게도 큰 위로가 될 겁니다.

1. 있는 그대로 말하라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을 피하고자 자신을 범선의 돛대에 묶어달라고 선원들에게 요청한 일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는 자기 선원들에게 명령한 것처럼 자기 귀에도 밀랍을 바르는 것으로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왜 기둥에 몸을 묶고 세이렌의 노래를 들었을까? 세이렌은 그들의 노래를 들은 누군가가 살아남아서 그 이야기를 했을 때만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오디세우스는 죽음 근처까지 갔던 자신의 여행을 이야기함으로써 세이렌들을 물리쳤다. 말로써 죽음을 이끈 셈이다.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제8장 있는 그대로 말하라, ‘솔직함이 뇌를 치유한다’, 2021. 한글 2022.

율리시즈(오디세우스)와 세이렌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Ulises y las Sirenas (1891)

이효석: 제가 특히 개인적으로 감동한 부분은 이 책 제8장의 제목인 “있는 그대로 말하라”라는 문장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인생의 화두처럼 생각했던 문장이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우연히 이 책을 읽다가 한 챕터의 제목으로 그 문장이 그대로 쓰여 있어 무척 놀랐죠.

책에도 나오지만, 사실 사람들은 누구나 거짓말을 하거든요. 인간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는 명백합니다. 쉽게 말하면 손해보다 이익이 크기 때문이죠. 한 레벨 더 깊이 들어가면, 사실을 확인하는 비용이 그대로 믿었을 때 비용보다 일반적으로 크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이건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진화심리학까지 가지 않더라도, 생물학은 사실 온갖 생명체들이 서로 속고 속이고 있는 현장에 대한 학문이죠. 곧, 적당한 속임수는 개체에 이득을 주고,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모든 특성은 만연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에,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속임수를 기본적인 능력으로 장착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고요.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지능 역시 다른 인간을 속이기 위해, 또 남에게 속지 않기 위해 발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거짓말과 지능: 거짓말이 유리한 사회


이효석: 곧, 지능이라는 것이 얼마나 남을 잘 속이느냐와도 관계가 있다는 거죠. 물론 문명은 사회적으로 위험한 속임수에는 대가를 치르도록 발전해 왔습니다. 신뢰나 정직에 높은 가치를 두는 규범이 그렇고, 범죄자를 가두는 법이 그런 것이죠. 그럼에도 여전히 어떤 정도의 거짓말이나 속임수는 인간의 본성에 남아있고, 또 여전히 그런 이들 중에 문제가 드러난 이들만이 뉴스에 나오고, 아마도 훨씬 많은, 드러나지 않은 이들이 그렇게 드러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겠죠.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는 그렇게 거짓말 전략이 잘 통하는 사회였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회가 갈수록 더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고, 정보가 점점 더 투명해지는 사회가 되었죠. 물론 프라이버시의 측면에서는 그런 방향이 마냥 바람직하다고만은 말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어쨌든 과거에는 잘 통했던 전략, 곧 적당한 거짓말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 점점 더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요. (물론 도시의 익명성이나 사회의 복잡성이 거짓말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크게 만들거나 사실을 밝히는 비용을 커지도록 하는 면도 있기 때문에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인간의 진화한 본성과 현대 사회 환경의 괴리를 나타내는 말로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전중환 교수님의 책 제목이 있지요. 음식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지방을 저장하려는 식욕이 성인병의 원인이 된 것을 가리킬 때 쓰는 개념이고요. 저는 거짓말을 하는 본성도 그런 운명이 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년 전부터 ‘있는 그대로 말하기’, 곧 거짓말하지 않기를 인생의 중요한 원칙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당연히, 있는 그대로 말해도 괜찮을 정도로 실제로도 잘 행동해야겠죠.

거짓말은 생존을 위한 지능의 진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삶의 가이드라인, 있는 그대로 말하기의 미덕


이효석: 그러니까, 이 ‘있는 그대로 말하기’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 말해도 괜찮을 정도로 살아가야 하니까 오히려 이 원칙은 말의 원칙이 아니라 행동의 원칙, 삶의 원칙이 됩니다. 즉, 자기 삶의 가이드라인이 된다는 거죠. 언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기’는 ‘궁극의 자기애’라고요.

자기 자신이 너무 소중하고, 그런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을 거라고요. 그런 자신을 감당하는 걸 참을 수가 없고, 따라서 매 순간 자기 자신을 그 기준으로 감시하게 되죠. 지금 이런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기준 말이죠. 아무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고요.

물론 이런 생각들도 이미 다 있던 것이죠. 정직은 원래 어느 사회에서나 매우 큰 가치가 있는 개념이고, 그건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거짓말이 그만큼 유용한 전략이었고 또 횡행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런 속임수 전략 중에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 있지요. 물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데 능숙할 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고 그게 인간이라는 종의 성공 요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부정 본능]이라는 책이고요. 우리가 흔히 이렇게 말하잖아요.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고.

한편, 자기 자신을 속인 사람은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되죠. 꼭 어떤 사회적이거나 물질적인 대가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 자신에게 속는 그 자체가 바로 그 대가입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고요. 인간의 존엄성을 믿는다면,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형벌입니다. 저는 어떤 원칙은 그 원칙을 어기는 자체가 형벌이 되는, 곧 스스로를 그 원칙을 어긴 사람으로 불신하게 되고 그 대가를 영원히 치러야 하는, 그런 자기 완결적 원칙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있는 그대로 말하기’ 원칙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네요.

책에는 더 직접적인 예가 나옵니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되잖아요? 때로는 지나고 나서 그게 결정적인 순간이었음을 알게 될 수도 있지만, 또 지금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고민하면서 이 순간이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인 것을 아는 경우도 있지요. 이 책에 나오는 ‘작은 교통법규를 어긴 레지던트가 재판받는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이야기이고 무척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누구나 그런 결정적 순간을 경험할 텐데, 그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바로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빚어낼 수 있는 그런 고귀한 순간이라 생각합니다.

책에는 잘못된 행동에 중독된 제이콥(가명)이라는 남자의 이야기도 나오지요. 제이콥이 자신의 두 번째 부인에게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했을 때 그는 부인이 자신을 떠날 줄 알았는데 부인은 오히려 자기를 용서해 주었고, 또 당신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도 말해주지요. 이 부분도 감동이었고요. 아마 이 순간은 그 부인에게도 결정적인 순간이었을 겁니다. 곧, 남편을 용서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하는 순간 말이지요. 이 결정에 따라 그 부인은 잘못을 고백하는 남편을 용서한 사람이 될 것인지, 용서하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인지가 결정되었을 거고요.

2. 호르메시스, 고통에는 보답이 있다


호르메시스는 추위, 열기, 중력 변화, 방사선, 음식 제한, 운동 등 해롭거나 고통스러운 자극이 조금 혹은 정당하게 주어졌을 때의 긍정적인 효과를 연구하는 과학의 한 분야다. 호르메시스(Hormesis)는 ‘실행하다’, ‘압박하다’, ‘강권하다’는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호르마인(hormain)에서 유래했다.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호르메시스의 과학’

이효석: 그리고 호르메시스(Hormesis; 그리스어로 자극하다, 촉진하다. 독소라도 소량이면 몸에 유익하다는 것)를 설명하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제가 여기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이 호르메시스가 제가 관심이 있는 항노화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거든요. 특히 소식이 그렇습니다. 소식은 거의 모든 실험동물의 수명을 늘리는, 현재 가장 잘 알려진 수명연장 방법입니다. 파리나 쥐 같은 경우는 20~30%씩 수명을 늘리고요. 물론 동물에게 유익한 처방이 인간에게도 그대로 유효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분자 생물학 수준의 기제가 계속 밝혀지고 있어서 점점 더 그럴듯한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칼로리를 줄인 식단을 먹은 27살 원숭이(왼쪽)과 먹고 싶은대로 먹은 29살 원숭이(오른쪽). 위스콘신, 메디슨대학교 제공. 20년 동안 추적 관찰해 2009년 발표. 이 실험은 소식의 장점이 아니라 과식의 단점을 보여줄 뿐이라는 실험 설계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음식을 줄임으로써 우리 몸이 불필요한 나쁜 세포들을 분해하는 오토파지(Autophagy; 자가포식, 자가소화작용, 자식작용) 기능을 활성화하고, 즉 스스로 나쁜 세포를 파괴함으로써 좋은 방향으로 세포를 재질서화하는 거죠. 사실 운동에도 호르메시스 적인 면이 있습니다. 우리 몸에 스트레스를 주는 거잖아요. 특히 근육을 늘릴 때는 한계 지점까지 가서 근세포를 파괴하고 다시 단백질을 흡수해 새로운 세포를 만들면서 근육을 키우는 거니까요.

소식(少食)


이효석: 저 같은 경우에는 어쩌다 2년 전부터 소식(하루 1식+단백질 파우더 보충)을 하고 있는데요. 저녁 한 끼를 먹고 있습니다. 이전에 점심을 먹을 때는 점심 식사 이후에 피곤하고 졸린 게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사라져서 좋고요. 또 40대 이후로는 신진대사가 느려져서인지 끼니를 꼬박꼬박 다 먹으면 체중이 조금씩 늘었던 것 같은데 그걸 관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보통 끼니를 걸러보지 않으신 분들은 이게 아주 큰 결심이나 인내력이 필요한 일처럼 생각하시기도 하는데, 저는 아침은 평생 안 먹었고, 그러다 보니, 점심을 안 먹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요. 회사에서 매시간 조금씩 운동하고, 단백질 보충이 필요해서 3시에 단백질 파우더를 먹고요. 저녁 한 끼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고 싶은 걸 먹고 있습니다. 한 끼를 먹으니 뭘 먹어도 너무 맛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책에서 말하는 고통 뒤에 쾌락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작은 규모로 경험하는 셈이죠. 공복감을 오전부터 계속 유지하다가 저녁때 그걸 크게 해소하는 셈이니까요. 사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고통은 쾌락의 예비 신호이자 축적이고 따라서 어떤 고통은 쾌락의 일종이 되기도 하죠.

이런 내용은 R. 새폴스키의 [행동] (영어 2018, 한글 2023)에 잘 나옵니다. 언제 이 책도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하루 한 끼를 먹는 많은 이들 중에는 저녁보다 점심을 택하는 경우가 많고, 제 생각에도 그게 더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수면 서너 시간 전부터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좋은데 어려움이 약간 있습니다.

3. 정체성: 약 먹고 자신을 잃어버린다면


차라투스트라가 어느 날 커다란 다리를 건너갈 때였다. 불구의 거지들이 그를 둘러싸고 어떤 꼽추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라, 차스투스트라여! 민중도 그대의 가르침을 받고 그대의 가르침을 믿게 되었소. (중략) 그대는 장님을 고치고 절름발이를 달리게 할 수 있소. 그리고 등에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는 자에게서는 약간쯤 덜어줄 수도 있소.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야말로 불구자로 하여금 차라투스트라를 믿게 하는 정당한 방법일 것이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꼽추에게서 혹을 떼어내면 그에게서 정신을 떼어내는 것이 된다. (후략)”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85), 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 2010.
  • 위 인용구에서는 ‘척추 장애인’ 대신 번역서 표현 그대로 “꼽추”로 옮겼습니다. 이 점 독자의 양해를 구합니다. 편집자.

민노: 애나 렘키는 자신을 사례로 들면서 우울증 약을 끊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약을 끊었을 때의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약을 끊습니다. 그 장면은 마치 차라투스트라가 척추 장애인에게 했던 말을 떠올립니다. 차라투스트라의 그 말은 마치 기독교 신약성경에서 장님의 눈을 뜨게 하는 예수의 기적과 대비되기도 하죠. 차라투스트라가 신약의 설정을 의도적으로 염두에 두고 쓰여져서 더 그렇게 대비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요.

이효석: 이 질문은 결국은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 다시 읽을 때도 느낀 점인데요. 이 책이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중독이란 무엇인가’이고요. 우리는 흔히 중독을 이렇게 정의하죠, 곧 자기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 말이죠.

그런데 자기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건 그가 그 행동을 하는 순간에는 어쨌든 그걸 원하기 때문에 한다는 거죠.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나를 제어하고자 하는 나와 제어를 당하는 또 다른 나를 생각할 수 있고, 결국 자아란 무엇이고 자유의지는 무엇인가까지도 갈 수 있는 질문이고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척추 장애 상황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겠죠. 아마 그가 평생을 척추 장애인으로 살아왔으니, 그 사실이 그 사람의 정체성, 곧 그가 지금까지 학습한 자아에 대한 인식,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가 취하도록 만들어진 행동 양식 등에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할 겁니다. 니체는 그런 의미로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도 또 그 자신일 거고요.

렘키의 책에도 나오지만, 결국은 가치판단의 문제겠죠. 그 약을 끊음으로써 온전한 자기 자신, 하지만 우울증을 가진 자기 자신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약을 먹음으로써 약의 영향,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영향을 받는 내가 될 것인가. 그러니까 약을 먹지 않아서 우울증이 너무 심해져 삶과 일상이 피폐해지고, 가족과 친구들의 관계에서 방해가 되더라도 그걸 감수할 수 있을 것이냐고 말할 수도 있고요.

이것은 어떤 원칙이 있다기보다는 양적 비교, 곧 이득과 피해를 잘 고려해야 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물론 저도 약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요. 특히 정신에 영향을 준다면요. 그러나 또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가 섭취하는 모든 물질은 어떤 식으로든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도 있고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 반대도 성립하죠. 그래서 요즘 너무 맛있는 탄수화물, 특히 당류가 신체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에 이를 자제하는 흐름이 있지요.

4. 중독을 관리할 수 있는가


민노: 중독을 관리할 수 있는가는 이 책의 흥미로운 질문 중 하나입니다. 논쟁적인 질문인데요. 특정 약물 중독 상태에서 그 상태를 유지하고 관리해서 얻어지는 이익이 있다면 그걸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가. 아니면 중독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음으로써 얻어지는 장점이 있더라도 약물 중독은 무조건 끊어내어야 하는 것인가. 렘키는 자신의 임상 경험을 통해 ‘약한 중독’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사례들이 있다고 말하는데요.

이효석: 이것도 정말 중요한 질문이죠. 사실 왜냐하면 그건 우리는 잘 알고 있듯이 술하고 담배에 관해서도 똑같은 얘기를 할 수 있잖아요. 한편으로 경험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도 있고요. 바로 ‘적당히’라는 게 아주 힘들다는 것 말이죠. 물론 시대가 바뀌면 기준이 바뀌기도 합니다. 담배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예전에는 하루에 한 갑 피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하루 담배 한 갑이면 정말 많이 피우는 거죠.

그래서 금연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한 갑 피우던 걸 10개비로 줄이고, 또 더 줄이고 그런 계획을 세우는데, 그런 실천이 쉽지 않기 때문에 또 담배는 한 번에 끊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고, 술이 담배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요. 술을 반드시 끊어야 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술이 끼치는 해악에 대해 여러 말들이 있죠.

그러니까 모두에게 해당하는 정답, 곧 어느 정도로 유지해야 할지, 끊어야 할지, 또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지 등을 말해주기는 어렵고, 즉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를 것 같고요. 제 생각에는 그게 정말 나쁜 물질이라면 ‘적당히 관리’하기 본다는 것보다는 단번에 끊어버리는 게 오히려 더 쉽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그런데 이런 경우에 뇌가 어떻게 반응할지, 따라서 어떤 것이 답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또 어렵습니다. 일단 책에서 말하는 도파민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끊어야 자기가 가진 보상 회로를 조금이라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내성과 금단


이효석: 모든 중독은 보통 두 가지 문제가 있어요. 하나는 내성이고, 다른 하나는 금단이죠. 내성은 똑같은 수준의 자극에 관해 둔감해지기 때문에 같은 쾌락을 얻기 위해 점점 더 강한 외부 자극을 요구하는 것이고요. 금단은 그 자극이 있다가 사라졌을 때 그 사라짐 자체가 고통이 돼버리는 거고요. 애나 렘키가 책에서 계속 시소 그림을 보여주는데, 내성과 금단이라는 게 사실은 그 시소의 메커니즘으로 다 설명이 가능합니다.

마약은 내성과 금단의 존재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한 예이죠. 반면, 게임이나 쇼핑, 소셜 미디어같이 우리가 흔히 중독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대상은 마약보다는 훨씬 사회적 금기가 덜한, 일반적으로는 허용된 것이고요. 그래서 이런 대상에 대해 내성이나 금단이 존재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요. 단지 그 자극이 우리 뇌 자체의 보상 회로를 변경시킬 정도로 충분히 강할 때는 내성과 금단이 생길 수 있을 것 같고요.

NPR(내셔널 퍼블릭 라디오. 미국의 공신력 높은 언론. 편집자)에서 소개한 한 연구는 게임이나 포르노에 중독될 정도로 강한 자극과 보상을 받는 사람은 전체의 2~4%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하고요. 그러니까 책에서 이야기하는 초콜릿, 소셜 미디어, 게임, 포르노, 쇼핑 등의 자극은 일반적으로는 뇌 보상 회로를 재설정할 정도로 강하지 않다는 거고, 이 책은 아주 훌륭한 책이긴 하지만 그런 측면에서는 약간 과장이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도파민 중독? 도파민 단식? 과장된 수사다


도파민 중독이나 도파민 단식은 유사과학인가? 과장된 수사(레토릭)라는 게 주연호(서울아산병원)의 지적.
도파민을 둘러싼 과장된 수사, 가령 도파민 중독, 도파민 단식, 세로토닌 만능주의에 유의하자고 말하는 주연호(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의학채널 비온뒤 캡처.

이효석: 보통 사람들이 도파민에 관해 이야기할 때 ‘중독’이니 ‘단식’이니 하는 과장된 표현을 쓰는데, 주현우 교수님(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은 그런 게 바로 유사 과학이라고 말합니다(웃음). 제가 아까 말씀드린 뉴욕타임스 기사도 같은 취지고요. 도파민은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쁜 건 아닙니다. 도파민이 많거나 적다고 그것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고요.

도파민, 동기 부여에 관여된 물질


이효석: 도파민이 전체적으로 너무 적으면 문제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킨슨병이 관계가 있다고 하고요. 도파민은 신경 전달 물질인 동시에 호르몬이기도 하니까요. 어떤 경험을 했을 때 도파민이 부족하다면, 그것 자체로 좋거나 나쁜 건 아니라는 말이겠죠.

도파민에 관해선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쾌락 물질로 생각했다가, 그다음에는 보상회로의 중요한 요소로, 그리고 지금은 동기 부여와 관련한 물질로 이야기됩니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도파민이 그런 행동을 하게 하는 건 맞지만, 도파민 없이도 쾌락을 느낄 수 있고요. 즉, 쾌락을 느끼게 하는 방향으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게 도파민의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5. 수치심, 지연할인, 통과의례


자기파괴적 수치심 vs. 친사회적 수치심


이효석: 그리고 이 책에서 수치심의 이중성을 지적하는 부분 역시 아주 탁월합니다. 애나 램키는 친사회적인 수치심과 자기 파괴적인 수치심을 구별하는데요. 자기 파괴적인 수치심은,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주정뱅이와 비슷합니다. 어린 왕자가 왜 술을 마시느냐고 물어보니까 술 마시는 게 부끄러워서 마신다고 그러잖아요. 딱 그런 거죠. 부끄러워하면서도 그걸 즐기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파괴적인 수치심이고요.

그러나 그걸 넘어서서 주변 가까운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부끄러운 점을 밝힘으로써 오히려 유대감을 얻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램키 교수는 말합니다. 결국 앞서 이야기했던 ‘솔직함’,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말하기’와 이어지는 맥락인 거죠.

물론 모든 것을 아무에게나 말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겠죠. 처음 만난 사람에게 갑자기 자신의 약점이나 내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겠지요.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건 어쨌건 더 높은 차원의 관계를 원한다면 ‘있는 그대로 말하기’가 최선이라는 겁니다. 자신의 결핍을 이야기한다는 건 나는 그걸 너에게 숨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신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 점이 있기도 하고요.

‘함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우선 솔직하게 결핍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여러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기, 내 결점이나 단점까지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의 또 다른 특징은 결국 그런 단점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떠나가고,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만 주위에 남는 것이거든요. 친구들의 평균이 자기 자신이라는 말도 있고요.

누구나 힘든 일을 겪을 수 있고, 부끄러운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승화시키느냐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이고, 친사회적 수치심이 바로 그런 승화를 뜻합니다. 저도 비슷한 일을 겪었고 이 책에 나오는 그런 경험을 했지요. 그러던 중에 어느 날 산책을 하는데 기분이 너무 좋은 거예요.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바람을 쐬고, 걷는 것 자체가 너무 기분이 좋고. 이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죠. 힘든 일을 겪고 난 이후에 일상의 하나하나에 다 감사하게 된다고요.

지연 할인(딜레이 디스카운팅)


이효석: 책에서는 ‘마시멜로’ 실험을 통해 지연 할인(‘딜레이 디스카운트’)을 언급하는데, 이 개념은 진화심리학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다뤄요. 원시 시대를 생각해 보면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중요했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특히 음식이 그랬죠. 당장 눈앞에 과일이 있다면 그 과일을 배부르게 먹어야 하죠. 그런 개체가 생존에 더 유리했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경쟁자들에게 빼앗길 수도 있고 썩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연애에서도 마찬가지였겠죠. 당시에는 그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겁니다.

오늘날의 인류에게도 그런 습성이 아직 남아 있고요. 당장 모든 것을 채우려 하고, 넘치도록 욕심을 내고 싶은 마음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이제 당장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삶은 아니잖아요. 따라서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지연 할인, 곧 즐거움을 내일로 미루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약간은 경계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런데 중독자일수록 이런 지연 할인 경향이 강하다고 나오죠.

Q. 미래는 어느 정도 후인가?

  • 중독자: 일주일쯤 뒤?
  • 비중독자: 5년쯤 뒤?

책에 나오는 이야기죠. 중독자는 겨우 한두 주일을 미래라고 생각하고, 비중독자는 4년~5년 뒤를 미래라고 답하죠. 그만큼 비중독자는 긴 호흡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데, 중독자는 그렇지 못한 거죠. 중독자들에겐 전두엽이 관장하는 이성적인 판단과 본능적인 반응이 마비돼 있어서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 생각하고, 비중독자는 이성적인 활동을 통해 먼 미래까지 잘 바라보고 가장 유리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거죠.

무임승차와 통과 의례


민노: 사이비 종교가 오히려 더 까다로운 통과 의례를 갖추고 있다는 지적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신도와 추종자를 끌어낼 수 있다고, “사이비 종교적인 규약들이나 그 집단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들이나 규칙들을 많이 만들어 놓으면 오히려 사람들이 덜 거기에 가입하고 덜 추정할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다.”라고 렘키 교수는 지적하죠. 소속감을 높이고, 무임승차를 줄이기 위한 대가로 받아들이는 정당화되기도 한다는 건데요(야노코니의 희생과 오명의 이론).

사이비 종교의 통과의례는 왜 더 까다로운가.

이효석: 대학의 동아리에도 신참 통과 의례를 아주 힘든 일로 시키는 경우가 있죠. 가입 절차를 어렵게 만들어서 일단 힘들게 얻은 자격의 가치를 높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구요. 또 어려운 통과 의례를 겪은 사람들끼리는 더 쉽게 친해질 수도 있겠죠. 그런 친밀감과 소속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좀 과도한 규칙이나 불필요해 보이는 참여를 강화하고 무임 승차를 줄이는 거죠. 자기가 한 일이 어려운 일일수록 커뮤니티 안에서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기도 할테고요.

민노: 이게 인간의 뭐랄까 속물 근성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활용한 거잖아요?

이효석: 정확합니다.

쾌락을 차단하면 오히려 감동과 즐거움이 커진다?


이효석: 기본적으로 일상의 쾌락을 많이 차단할수록 더 작은 쾌락에 감동과 기쁨을 느낄 가능성은 커지지 않겠느냐고 저도 생각합니다. 하루만 굶어도 웬만하면 다 맛있잖아요. 일종의 ‘내성’ 같은 것인데요. 고통 자체가 결국 또 새로운 쾌락으로 균형을 찾을 거라는 가능성이라는 거죠.

맺으며: 나도 저럴 수 있었어


민노: 이 책에서 인상적인 건 타인의 불행에 관해 ‘나도 충분히 저렇게 될 수 있었어’라고 공감하는 태도였습니다. 그 생각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았습니다. 내가 중독자가 되지 않은 건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고, 나도 저렇게 중독으로 비참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 같아. 나는 운이 좋았어. 애나 렘키의 이런 관점이 저는 아주 좋았습니다. 중독자를 나(우리)와 분리하지 않고, 나도 저럴 수 있었다고 열어두는 그런 태도 말이죠. 그런 것들이 되게 좀 따뜻하게 완전히 분리시켜놓은 게 아니고 나도 저럴 수 있었어. 이효석 박사께는 이 책의 어떤 점들이 와닿았나요?

이효석: 책에서 자주 이야기하지만, 오늘날 모든 이들이 어느 정도는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저도 온라인 쇼핑에서 몇천 원짜리라도 평소 가지고 싶었던 것들을 시켜놓으면 택배가 올 때까지 실제로 기분이 좋거든요. 생각해 보면 그 물건이 좋아서가 아니라 소비 행위에 대한 중독 같아요. 그리고 그런 즐거움이 예측되기 때문에, 어떤 물건을 사기 전부터, 즉 고르는 과정도 재미가 있고, 그런 사람들의 본성이 알려져서인지 요즘 점점 더 그런 신박한 물건들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 저도 그런 쇼핑 습관이 있어요.

민노: 생활의 소확행인데 관리되는 약한 중독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효석: 많이 줄이려고 하죠. 예를 들어, 이번 한 달은 그런 소비를 하지 않겠다거나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도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해주는 좋은 행동이고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책에 이야기가 그대로 나와서 새삼스러웠습니다. 어쨌든 이게 말씀하시는 그것, 곧 관리가 되는 약한 중독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몰입, 지금/여기

이효석: 그러다 보면, 이런 모든 것들이, 결국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데 요즘은 몰입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몰입이 뭐냐 하면은 ‘지금’, ‘여기’ 이 두 단어거든요. 지금은 시간이고 여기는 공간인데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 그게 삶의 하나의 해답이라 생각하고요. 한편으로, 몰입 자체도 과하면 또 중독될 수 있을 것 같고요.

민노: 삶을 회피하지 말고 주어진 삶에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쓰자. 두렵고 힘들다고 도망치지 말고 그 자리에 멈춰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메시지 같네요.

이효석: 맞습니다. 그게 결국은 솔직함에서 출발하는 거죠.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