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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묵적지수]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 님과 논쟁적 인물과 현상, 이슈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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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카진스키)를 생각한다

02. 틱톡

명묵적지수 01. 유나바머/카진스키

명묵적지수 첫 번째 인물은, 그야말로 논쟁적인 인물, ‘유나바머’ 시어도어 “테드” 카진스키입니다.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129. 기술이 강력한 사회적 권력인 또 다른 이유는, 주어진 사회적 배경 속에서 기술적 진보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 방향은 결코 되돌려질 수 없다. 일단 어떤 기술 혁신이 도입되면 사람들은 대개 그것에 의존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더 진보한 혁신에 의해 대체된다. 사람들이 개인으로서 기술의 새 요소에 의존하는 것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시스템도 대체로 그것에 의존한다(만약, 예를 들어, 컴퓨터가 없어진다면 현재의 시스템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라). 그러므로 시스템은 더 거대한 기술화(technologization)를 향해 오직 한 방향으로만 나아간다. 기술은 계속해서 자유가 한발짝 더 물러서도록 – 전 기술 시스템의 타도에 못 미치게 – 강요한다.

시어도어 카진스키, [산업사회와 그 미래], ‘기술은 자유를 향한 열망보다 더 강력한 사회적 권력이다’, 워싱턴포스트: 1995. 9. 19.

임명묵: 결국 현대인들이 느끼는 어떠한 불만, 성취감을 느끼기 힘든 그리고 대리 만족 활동이나 게임이나 SNS나 혹은 통장 잔고가 쌓이는 것 자체에 몰두하면서 어떠한 진정한 성취감도 느끼지 못하고 그리고 이제 그런 것들이 왜곡된 형태로 출몰하고 있는 것. 그런 것들이 이제 또 근원적인 원인이 기술 체제의 비가역적인 고도화에서 기인한다라고 하는 어떤 통찰….

민노: ‘비가역적’이라는 말이 키워드 같네요.

임명묵: 그렇죠.

민노: 저는 가장 섬뜩한 게 인간이 어떻게든 만들어놓은 문명의 산물들, 그게 기계든 아니면 제도든 간에 그걸 어쨌든 인간이 이해 가능하고, 설명 가능한 차원에서 만들어냈지만 이제 그 과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넘어갔잖아요. 그게 아주 상징적인 것 같아요. AI 알고리즘의 과정을 인간은 이제 이해하지 못한다면서요?

임명묵: 그렇죠.

민노: 그 부분이 결정적인 것 같은데요. 이제 인간은 인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게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

임명묵: 제가 슬로우뉴스에 카진스키에 관한 글(베이징, 실리콘밸리, 유나바머)을 썼을 때도 결국에 그 얘기를 한 건데요. 그러니까 미국에서 그런 말이 많잖아요. 기술 발전을 뭐랄까 조절할 수가 있어야 하고, 사회적 영향력과 효과를 생각해서 논의해야 하고… 그런 말들을 많이 하지만, 결국 그런 논의의 와중에도 중국은 미국을 이기기 위해 더 급진적으로 기술 발전을 시도할 텐데….

민노: 그럼 안되겠죠. 미국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죠.

임명묵: 미국도 그런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글을 쓴 거죠.

민노: 지난날의 핵무기 개발과 비슷하게 되겠네요.

임명묵: 제가 그 글에서 실제로 썼었죠. 나치가 핵무기를 개발하면 미국이 안 할 수 없고, 미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소련이 안 할 수가 없고 그런 거죠.

민노: 이제 AI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화제가 넘어온 것 같은데요.

임명묵: AI 이전에 틱톡이 굉장히 상징적이라고 봤습니다.


틱톡

41. 거의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대리 만족을 위한 활동은 진짜 목표(즉, 권력 과정에 대한 욕구가 이미 채워졌을 경우에도 여전히 달성하기를 원하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에 비해 충족감이 떨어진다. 대리 만족을 위한 활동에 깊이 몰두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코 만족할 줄을 모르며,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데서도 그 같은 사실은 분명히 드러난다. 그래서 돈에 눈이 먼 사람은 끝없이 더 많은 부를 향해 질주하는 것이다. 과학자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곧바로 다음 문제로 달려간다. 장거리 주자는 언제나 더 멀리,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자신을 몰아세운다. (후략)

시어도어 카진스키, [산업사회와 그 미래], ‘대리 만족을 위한 활동들’, 워싱턴포스트: 1995. 9. 19.

민노: 틱톡이요?

임명묵: 틱톡이 중국에서 나왔잖아요. 애들 뇌를 망친다는 거는 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죠. 그러니까 짧고 자극적인 영상에 중독돼서 참을성이 없어지고, 인간을 좀 더 원시적인 상태로 몰아간다. 그런데 틱톡이 미국을 휩쓸었잖아요.

민노: 그랬죠.

임명묵: 그리고 지금 미국에서는 틱톡을 막는다. 어쩐다 소리가 나오지만은 이미 틱톡이 만들어낸 포맷을 페이스북이 이제 인스타 릴스로 만들고, 유튜브가 쇼츠로 만들면서 그냥 똑같이 가버렸잖아요.

민노: 거의 혹은 완전히 똑같아졌죠.

임명묵: 그러면서 이제 사람들은 더욱더 틱톡 같은 숏폼(Short Form; 짧은 동영상; 평균 15~60초, 최대 10분 정도의 동영상 콘텐츠) 영상에 종속됐고, 미디어 소비라는 게 거기에 사실 저항하는 게 의미가 없어요. 저도 맨날 쇼츠를 보는데, 이렇게 비판적으로 말하면서도 쇼츠를 보는 거죠.

민노: 저는 숏폼을 거의 보지 않는데요. 제가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예요. 그걸 안 볼 수 없는 정도인가요.

임명묵: 스마트폰을 하면 숏폼을 안 볼 수가 없죠. 거부할 수 없죠.

민노: 선택의 영역을 벗어났네요, 이제.

임명묵: 그러니까 선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소수 있을지 몰라도 절대 다수가 낚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민노: 1030 중에선 10명 중 몇 명이나 볼까요?

임명묵: 10명이면 9명은 보지 않을까요?

민노: 아.

임명묵: 왜냐하면 유튜브 틀면 쇼츠가 제일 먼저 나오고, 자신이 가장 재밌게 볼 수 있는 쇼츠 알고리즘 분석에 따라서 무한 추천되니까요.

민노: 그럼 10, 20, 30으로 나눴을 때는 10대가 가장 많이 보겠네요?

임명묵: 아무래도 그렇겠죠. 틱톡이 10대 문화로 시작했으니까

민노; 그런데 20이나 30은 또 공부하고 미팅하고 놀고 이러느라고 볼 시간 있나요?

임명묵: 코로나 때 디지털 문화가 일상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에 뭐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면서 보는 거고 꿈꾸면서 보는 거고… 카진스키의 통찰이라면 그 통찰대로 흘러가고 있는 거죠. 틱톡 같은 숏폼을 보면, 모두 숏폼을 안 보면 안 되는…

민노: 그렇죠. 그럼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도태시키는 거죠. 스스로 자신의 뇌를 학대하면서.

임명묵: 그렇죠. 그 대신에 쇼츠의 조회수는 치솟고, 쇼츠와 관련된 광고비도 치솟고, 기업 가치는 올라가고, 또 새로운 무언가가 또 나오고, 그걸 다들 또 모방하고 이 과정의 연속이죠.

민노: 좀 꼰대스러운 얘기일 수도 있는데, 쇼츠가 미디어의 어떤 지배적인 플랫폼이나 형식이 된다면 어떤 긴 호흡이 필요한 토론이나 대화에 영향을 줄 거로 보세요.

임명묵: 저는 줄 걸로 보는데요, 부정적으로.

민노: 그럼 숏폼은 세상을 좀 더 풍요롭게 느끼고, 좀 더 인간을 섬세하게 바라보는데 부정적일 걸로 보세요?

임명묵: 섬세하게 바라보고, 풍요롭게 느끼고… 그런 건 배치되는 개념이죠, 쇼츠와는.

민노: 배치된다… 부정적일 거라는 답변이시죠. 그렇죠. 양립하기 어렵겠죠.

임명묵: 섬세하고, 풍요롭게 느끼고 바라보는 쇼츠, 그런 건 존재하지 않죠.

민노: 그러면 세상이 좀 더 그런 미디어의 지배적인 흐름 내지는 형식 그런 어떤 산업적인 요구 때문에 좀 더 ‘와일드’ 해지겠네요.

임명묵: 그렇죠. 지금도 이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봤을 때…


카진스키가 본 소셜미디어

민노: 그런 차원에서라도 카진스키가 유명을 달리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요. 쇼츠 같은 것들을 접했다면, 아주 비판적으로 봤겠네요.

임명묵: 페이스북이 출현했을 때 누군가 카진스키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민노: 카진스키에게 페북이 출현했다고 편지를?

임명묵: 네, 페이스북이나 기업이 나타나서 이러저러한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카진스키 왈, 당신이 아다시피 나는 1995년에 감방에 들어가서 페이스북 뭔지도 모르고 인터넷도 해본 적이 없다. 사실은 당신이 말한 것에 내가 정확하게 답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신 말만 들어봤을 때 그 페이스북이라는 거는 가짜 우정(“친구를 사귀기 위해 자기애적 자기 광고를 올리는 곳”)을 나누는 그런 시스템인 것 같다. (이에 관한 정확한 내용은 아래 ‘참고’를 볼 것. 편집자)

카진스키는 2010년 6월 페이스북에 ‘카진스키’ 페이지를 만들자는 한 ‘펜팔’ 학생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자신은 페북에 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첫 반응이 극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면서도, 들은 바로는 페이스북은 청소년(혹은 모든 연령대)이 인터넷으로 친구를 사귀기 위해 자기애적 자기 광고를 올리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썼다. (야후 뉴스에서 발췌 인용, 아래 원문 기사 참고)

원문: “But my initial reaction is strongly negative because the little that I do know suggests that Facebook is mainly a place where adolescents (of any age) post narcissistic self-advertisements in an attempt to make friends via the Internet,” he wrote in June 2010.

The Unabomber letters: A Yahoo News special report

민노: 시니컬하지만 대단한 통찰력이네요. 퍼거슨 경보다 더 핵심을 찌르는 말이네요. (참고: 알렉스 퍼거슨, “그것-소셜미디어, 특히 웨인 루니의 트위터- 말고도 당신 인생에 할 게 정말 많습니다. 차라리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이라도 더 읽겠어요. 진지하게, 전 그건 시간낭비라고 봅니다.” 편집자)

임명묵: 그렇죠. 인생의 낭비. 다른 것도 다 인생의 낭비지만 인생을 어떻게 낭비하냐? 가짜 우정을 나누면서 낭비하는 거죠.

민노: 물론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우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눌 수 있겠지만요.

임명묵: 그럼요.

민노: 그런데 임명묵 님은 페북 통해 교류를 많이 하시죠?

임명묵: 아까 숏폼을 비판하면서도 숏폼에 중독되어 있다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죠(웃음). 페이스북의 관계, 혹은 페이스북에 쏟는 시간과 감정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알지만, 또 이미 제 삶이 거기에 의존하게 되어서 또 끊어낼 수는 없는. 그래서 제가 카진스키는 될 수 없는 것이지 않을까요(웃음). 어쨌든 그래서 이런 카진스키의 통찰을 재발견해야 하는 건 SNS가 나오고 나서 아닌가 싶고요. 그래서 저도 그때 ‘K를 생각한다’라는 90년대생론도 결국 카진스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90년대생들 소위 MZ 세대들의 어떤 심리적인 불만이 이러한 기술 체제의 확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것이다는 생각을 한 거죠.

민노: 그 영향이 가시적이지는 않더라도 말이죠? 그런 어떤 불만이 그런 불안이 감성의 차원에서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임명묵: 그렇죠. 그 대리만족 활동에 대한 추구,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의 좋아요 수가 사실상 명확한 대리 만족의 표상인 거고, 그걸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멋진 사람으로 못 살지’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열패감을 재생산하는 구조인 거죠. 그리고 그것을 더욱 자극해야지만 팽창할 수 있는 빅테크의 어떤 메커니즘이 있는 거고요.

민노: 그런 소셜 미디어가 카진스키가 말했던 직접적인 자기 만족의 수단은 절대 될 수 없다? 아무리 페이스북의 좋아요, 인스타그램의 좋아요가 많아도.

임명묵: 그렇죠. 제 나름으로 어쨌든 팔로워 만 명이 넘는 사람으로서 보건대, 절대 자기 만족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보고요. 물론 10만 명 넘는 사람은 진짜 만족이 있는데?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민노: SNS 셀럽으로 광고 활동하고, 유튜브로 좋은 컨텐츠를 생산하면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버는 분들도 극소수 있겠지만, 99%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의 ‘좋아요’ 수가 진정한 자기만족 수단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임명묵: 그렇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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