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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묵적지수] ‘K를 생각한다’ 임명묵 님과 논쟁적 인물과 현상, 이슈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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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카진스키)를 생각한다

04. 맨헌트

명묵적지수 01. 유나바머


시어도어 “테드” 카진스키(Theodore “Ted” Kaczynski) 혹은 유나바머(A.K.A. the Unabomber).
1942. 5. 22. – 2023. 6. 10.

민노: 드라마 [맨헌트: 유나바머] (2017, 디스커버리 커뮤니케이션, 넷플릭스) 얘기도 좀 할까요? 드라마 속 ‘유나바머’는 고립된 존재의 고독, 국가 기획의 실패. 그런 두 가지 속성이 두드러졌던 것 같습니다. 때론 찌질함이랄까… 그런 묘사도 디테일했고요. 다만, 테러리스트 이미지는 다소 퇴색된 것 같기도 합니다. 좀 미화됐달까.

임명묵: 살인 테러리스트임에도 캐릭터가 꽤 매력적으로 묘사됐죠. 드라마 초반(전체 8편 중 2편 후반부)에 주인공 피츠 전(前) 수사관(샘 워싱턴 분)이 연방교도소로 유나바머를 찾아갈 때의 그 긴박함이 좋았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조금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고요. 아무래도 메시지가 지나치게 단순화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2023.8. 현재)은 넷플릭스에서 종영된, 당시 넷플릭스 독점 스트리밍 [맨헌트: 유나바머] (2017)

이하 [맨헌트: 유나바머] (2017)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피하고 싶은 독자는 아래 링크를 눌러 주세요.

스포일러 넘어가기 (아래 링크 클릭!)


민노: 메시지가 단순화됐다고요?

임명묵: 상징적인 게 마지막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주인공 피츠가 이제 차를 몰고 가다가 아무도 없는 도로에 빨간색 신호등만 있고, 그 신호등(기계)의 지시만 기다리는 장면이죠. 기계 문명에 의해서 자유가 종속된 상황을 표현한 거로 보이는데요. 드라마 속에서 유나바머와 주인공이랑 오랜만에 만나 신문할 때 네 유나바머가 그런 말을 하죠.

“뒷마당 새가 울고 있는 소리가 자동차 경보장치로 들리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뭔가 잘못된 걸 느꼈”다고. 그러자 (전) 수사관 피츠는 자기는 “차를 몰다가 깨달았”다고 말하죠. 아무도 없는 텅빈 도로에서 빨간 신호등에 “멈춰서 순종했”다고. (기억에 의존한 임명묵 님 답변을 드라마 속 정확한 대사로 정리함. 편집자.)

[맨헌트: 유나바머] (2017) 속 한 장면.

1997년 9월 9일 오전 6시 7분 심문.

피츠(드라마 주인공, 전 FBI 수사관): 말하기 싫어?

유나바머: 내 경우엔 시카고에서 시작됐지. 어느날 뒷마당에서 흉내지빠귀가 울기 시작했어. 아주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로 노래했지. 그 소리가 자동차 경보장치 소리로 들리기 시작하더군. 삐비삐~삐삐피~ 그 소리 뭔지 알지? 난 거기 앉아서 그 멍청한 새가 1시간이나 울어대는 걸 들으면서 생각했지.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모든 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 계속 그 생각을 하면서 이해하려고 애썼지. 우리가 얼마나 잘못했길래 이 지경이 됐을까 하고.

피츠: 난 차를 몰다가 깨달았어. 차를 탈 때마다 그 생각을 했어. 차를 탈수록 이해가 되더군. 어느날 밤 차를 몰고 퇴근하던 중이었어. 거리에 사람이라곤 없었지. 빨간불이 켜져 있어서 계속 기다렸어. 계속 기다리고 기다렸지. 주위엔 차가 한 대도 없었지. 하지만 멈춰서 순종했어. 그때 깨달았지. 기술이나 기계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한테 하는 짓이 문제라는 것을. 우리 마음이 더는 자유롭지 않으니까.

유나바머: 자유로워지고 싶었군.

피츠: 맞아.

유나바머: 인간성과 자율성을 원했어.

피츠: 그래.

유나바머: 모두가 그걸 원해. 너무나 간절히 원해서 매일 수천 명씩 죽어가지. 얼마 안 남은 인간성을 회복하려고. (알았어!) 생각해보게. 우리가 말하는 사이에 자살로 죽은 사람들이 내가 죽였다고 추정되는 사람들보다 많아. 더 많은 사람이 항우울제와 성형수술, 불량식품으로 죽는데 왜 모두가 날 그렇게 무서워하지? 이 질문을 자문해보게. 왜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내가 미쳤다는 걸 증명하려 애쓰지? 내가 말해주지. 내가 옳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맨헌트: 유나바머] (2017, 8부작, 디스커버리 커뮤니케이션스, 당시 넷플릭스 독점 스트리밍, 현재 종료)

임명묵: 유나바머와 주인공 수사관의 대화에서 등장한 그 장면과 유사한 상황을 다시 마지막에 배치하면서 기계 문명의 명령을 따르는 인간이라는 식으로 묘사한 걸로 보이는데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유나바머에 관해선 오두막에서의 자유로운 몸짓을 회상하는 장면과 교도소에 갇힌 장면이 오버랩된다. 이 장면에 이어서 주인공 피츠가 탄 차는 빨간 신호등에 갇힌 것처럼 멈춰진다. 즉, 유나바머가 오히려 더 자유롭고, 주인공 피츠는 구속당한 것처럼 대비돼 묘사된다. 편집자.)

여기까지 스포일러.



울트라 계획이 날 망친 게 아니야!

임명묵: 유나바머 선언문(Unabomber Manifesto, 이하 ‘선언문’)이라고도 불리는 [산업사회와 그 미래] (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 워싱턴포스트: 1995.)를 읽어보면 단순하게 인간이 기계의 명령을 따른다보다는 좀 더 깊은 함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드라마는 그걸 아무래도 좀 단순화했죠. 드라마 속 빨간 신호등의 메시지는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스럽잖아요?

민노: 그것보다는 좀 더 더 복합적이고 깊은 뜻이 있다?

임명묵: 그렇죠. 빨간 신호등 장면으로 선언문의 의미를 한정하면 좀 아쉬움이 있죠. 제가 선언문을 먼저 보고 드라마를 봤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겠지만요. 이와 관련해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맨 헌트]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나온 다음에 어떤 사람이 유나바머에게 그 드라마 줄거리를 편지로 써서 전달하고 답장을 받아냈어요.

민노: 답장에서 유나바머는 뭐라고 했을까요?

임명묵: 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데, 유나바머는 드라마가 과장이 좀 심한 것 같다고.

민노: 나 그런 사람은 아니야! 그런 느낌일까요?

임명묵: 유나바머가 과장이라고 했던 중요한 부분이 CIA MK 울트라 계획(Project MK-ULTRA; 1960년대 미중앙정보국이 민간인을 상대로 한 세뇌 실험)이라는 건 드라마에서 묘사한 것처럼 그렇게 엄청난 게 아니었다는 거죠.

오리지널 1960년 녹음 중에서: “1960년 3월 14일 월요일 아침입니다. 12번 쌍 시작합니다. C 씨와 카진스키 씨입니다. 카진스키의 암호명은 ‘로풀’입니다. ‘L-A-W-F-U-L’.”

나레이션: 1958년 메사추세츠 케임브리지. 테드 카진스키는 16살의 나이에 장학금을 받고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다.

하버드 동문 로이 라이트: 그는 제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 중 한 명이었어요. 그는 제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 중 한 명이었어요. 놀랍도록 따뜻한 사람이었죠. 사랑스럽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있었고, 멋진 토론을 수도 없이 나눴습니다. 제게는 우리 우정이 소중했어요.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요. 어떤 실험 때문에 우리 우정이 끝나버렸거든요. 전 미처 몰랐어요, 그 실험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제가 알았다면 분명 가만있지 않았을 겁니다.

심리학자 사샤 리드: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헨리 머리(Henry Murray; 1937년~1962년까지 하버드 심리클리닉 소장 역임)가 이끈 실험이었어요. 하지만 테드와의 인터뷰 기록은 기밀로 봉인됐죠. 접근이 불가능해요.

헨리 머리의 공인 전기 작가 포레스트 로빈슨: “헨리 머리가 사악한 악당이고,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희생양이라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 아무런 근거가 없죠.”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 (2020, 4부작 다큐멘터리) 중에서
테드 카진스키, 젊은 시절 모습. 출처: 유나바머: 그가 입을 열다(Unabomber: In His Own Words, 2020)

민노: 카진스키를 망칠 만큼 영향을 준 실험이 아니다?

임명묵: 그렇죠. 그 CIA의 불법 실험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게 아니야! 그런 느낌이죠.

민노: 비유 하자면, 내가 CIA 실험 때문에 불량품이 된 게 아니야! 이런 느낌인가요? 나는 원래 내 사상을 좀 과격한 수단을 통해서 실현했을 뿐이야. 나 사상가야. 나 불량품 아니야! 이런 느낌?

임명묵: 그럴 수 있겠죠. CIA실험은 드라마 속에서 과장됐고, 그것이 내 인생에 미친 효과도 과장됐다. 이렇게 말했어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테러리스트 유나바머

민노: 유나바머 카진스키는 테러리스트잖아요.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데요. 이 사람의 페르소나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봤을 때 여러 가지 빛깔, 여러 가지 풍경들이 보이기는 하는데 현대 기술 문명의 필연적 폐해를 경고한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테러리스트 유나바머가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도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기술 문명의 디스토피아를 예견한 사상가로서의 면모가 유나바머의 잔혹한 테러리스트로서의 실체마저 지워버리는 것도 부당하잖아요. 테러리스트로서는 이 사람을 어떻게 평가를 하세요?

임명묵: 사실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을 했죠, 당연하게도. 무엇보다 시스템 그러니까 유나바머가 타깃으로 노린 사람들이 시스템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고요.

민노: IT 관련 교수들 이런 사람들이었죠.

임명묵: 선언문대로라면, 산업 기술 문명의 최상층부를 타격했어야 되는 거 아니냐. 단순히 사회에 혼란을 주고 너의 어떠한 비틀린 폭력 욕망을 드러내고자 만만한 이들을 그냥 죽여놓고 정당화한 거 아니냐.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 있고,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없잖아 있을 거라 생각하죠.

민노: 그럼에도 솔직하게, 객관적으로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요. 이 인물에게 끌리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요. 이 페르소나라고 할까요. 왜 어떤 면에 그렇게 끌리는 걸까요.

임명묵: 일단은 그 행위는 비윤리적이더라도, 자신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사람에게, 어떻게 보면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 어떤 호기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너무 압도적이고, 센세이셔널한 일의 당사자, 그 캐릭터에 관해 궁금해서 파고든 경우가 많은 것 같고, 저도 그랬거든요.

민노: 제 주변에도 유나바머에 관해 절대 호의적으로 말할 것 같지 않은 분들조차도 최근 유나바머가 유명을 달리하자, 그 죽음에 관한 이야기하면서 꽤 호의적으로 유나바머에 관해 언급해서 놀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이 분들은 테러를 찬성할 만한 사람들은 전혀 아니고, 테러를 누구보다 비난하고, 분노할만한 분들인데 말이죠. 그럼에도 유나바머에 대해서는 양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는 거죠. 일종의 아이콘이 된 것 같아요, 이 사람은.

그 유명한 ‘카진스키의 오두막’. FBI 제공.
워싱턴 DC 뉴지움에 전시된 카진스키 오두막 내부 모습. 위키미디어 공용.

임명묵: 그러니까 저 같은 경우는 이제 범죄 심리학 책을 읽다가 이 사람 이름을 처음 발견했는데요.

민노: 그게 언제인가요?

임명묵: 2018년쯤으로 기억합니다. 유나바머가 잡힌 게 1995년이니까 그땐 제가 2살이었잖아요. 알 수가 없었던 거고요. 범죄 심리학 책을 읽다가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대명사로서 고지능과 반사회성을 갖춘 사람으로서 유나바머를 접했고, 그때 ‘아, 이 사람 골 때리네’ 하면서 찾아봤는데, 유나바머 선언문을 읽게 됐고, ‘이거 뭐야? 이거 생각보다 사상적으로 엄청난데!’ 하면서 파고들게 된 건데요.

사실은 같은 테러리스트라고 할지라도 티모시 맥베이(Timothy James McVeigh; 1995년 4월 19일 미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정부청사 폭탄테러 주범, 걸프전 참전 용사로 훈장까지 받은 경력이 있었다.)나 오사마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에게는 공감하지 않게 되잖아요. 티모시 맥베이는 오클라오마 연방청사 테러로 168명이 사망하고, 700명 가까이 부상을 입었으니까요. 어린이 희생자도 19명이나됐고요. 오사마 빈 라덴은 말할 것도 없고요.

민노: 오사마 빈 라덴은 전쟁 수준에 가까운 사상자를 냈죠.

임명묵: 어쨌든 그 사람들을 봤을 때도 유나바머와 같은 그런 엄청난 통찰력이랄까, 이런 걸 딱히 보여줬다고 생각되지는 않았기 때문에요.

민노: 유나바머가 그 선언문 외에 어떤 지적인 생산물이 있나요?

임명묵: 그 사람이 원래는 수학과 교수여서 수학적인 연구를 했고요. 하지만 그 분야에서 큰 업적은 못 낸 걸로 알고 있어요.

민노: 그렇다면 선언문이 이 사람을 대표하는 작업물이겠군요. 작가로 치면 데뷔작이자 대표작이자 유작인 셈인가요?

임명묵: 유작까지는 아닌 게 감옥에서도 계속 집필 활동을 해서, [혁명]이라는 책도 냈는데, [산업사회와 그 미래]에 비할 건 아니었던 것 같고요.

민노: 그렇다면 유나바머를 역사적으로 평가하게 한 ‘작품’이라는 관점에서는 ‘선언문’이 유일한 건가요? 그럼 그렇게 봐도 되나요?

임명묵: 사실상 그렇다고 봐야죠. 사실 선언문 자체가 대단한 글이기는 합니다만, 그게 또 무슨 대단한 독창성을 가진 작업이냐면, 그런 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작업이라는 게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간 난쟁이’잖아요.

뉴턴의 표현으로 널리 알려진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선 난쟁이”라는 문구는 사실 그 문구 자체가 이 문구의 교훈을 함축하듯, 앞선 선배들로부터 이어서 전해진 표현이다. 그 연원을 거슬러올라가면 다음과 같다. (이하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의 추적, 한익수,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의 교훈’, 김포미래신문: 2016. 12. 21.에서 발췌 재인용)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 1676년. 뉴텀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는 거인보다 더 멀리 본다.”

조지 허버트, 1651년.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있는 난쟁이와 같아서 거인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멀리 볼 수 있지만 이는 우리 시력이 좋거나 신체가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거인의 몸집이 우리를 들어 높은 위치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존 솔즈베리, 1159년. 허버트는 1621년 로버트 버튼의 글에서 따왔고, 버튼은 디에고 데 에스텔라에게 빌려왔으며, 그는 솔즈베리의 글을 인용한 것으로 추정됨.

“우리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들과 같기 때문에 고대인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멀리 볼 수 있다.”

베르나르 사르트르, 1130년. 솔즈베리가 사르트르의 글에서 빌려온 것으로 추정됨.

민노: 물론 대단한 통찰이 담긴 글이긴 하지만, 이 작은 문서는 그렇게까지 평가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거든요, 사실은.

임명묵: 네네. 그러니까 선언문 자체도 유나바머의 지적인 작업들을 종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유나바머가 그냥 시오도어 카진스키(Theodore Kaczynski)라는 이름으로만 그 글을 발표했다면, 정말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읽혀지고, 저 같은 극동아시아의 94년생 대학원생, 그 글을 읽었을 당시 학부생이 읽었을 리는 없겠죠. 어쨌든 그 테러 행위를 통해 자신을 각인시킴을 통해서 자신의 사상을 뭐랄까 더 멀리 전파했다는 거는 부정할 수 없고요.

민노: 테러 더하기 미디어죠. 보통의 평범한 사람 중에 무정부주의 성향에 반기술문명 사상을 가진 사람은 아주 많을 텐데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 [산업사회와 그 미래] 수준의 선언문 하나 발표한다고 무슨 큰 반향이 일지는 않았을 거잖아요. 거대한 바다에 물방울 하나 정도였을 테니까요. 그런데 카진스키는 달랐죠. 카진스키가 유나바머였으니까.

임명묵: 그렇죠. 그리고 두 번째로 또 우리가 또 사상과 테러 행위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요. 대학에서 마르크스나 레닌 같은 사람을 굉장한 사상가로 공부하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공산주의라는 사상이 사람을 죽인 거로 생각하면은 유나바머랑은 비교가 안 되잖아요.

민노: 똑같은 의미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이 보이지 않는 어떤 살인 행위를 강제하고 스스로 죽음을 강요하게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그런 경우는 이루 말할 수가 없겠죠. 그걸 수치화하기는 대단히 어렵기는 하지만.

임명묵: 그렇죠. 그래서 테러리스트니까 그 사상을 비윤리적이라고 하기에는 인간 활동이라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의 그런 속성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분리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의 통찰과 그의 비윤리적 행위를 분리할 필요가 있고, 그의 비윤리적 행위가 그의 통찰을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상이 그 행위를 모두 정당화시키는 건 또 절대 아니고요. 굉장히 복잡하고, 입체적으로 봐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카진스키와 멕베이

“로키 산맥의 알카트라즈”로 불리는 ADX 플로렌스 교도소. ADX는 Administrative Maximum Facility (최고 보안 관리 시설)의 약자.

민노: 좀 전에 말씀하신 멕베이에 관한 언급도 흥미로웠는데요.

임명묵: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1995)의 주범 티모시 멕베이(Timothy James McVeigh; 1968~2001. 6. 11. 사형 집행)가 자신은 교도소(ADX 플로렌스)에서 카진스키와 많은 것을 공유했다고 주장했죠. 자신과 카진스키는 ‘자유’를 침해하는 대상을 공격했다는 점에서 유사한데, 그 대상이 자신은 연방정부이고, 카진스키는 산업기술문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죠.

1995년 4월 19일 앨프리드 P. 뮤러 연방정부청사(Alfred P. Murrah Federal Building)에 가해진 폭탄 테러로 9.11 테러 전까지 최악의 인명 피해를 낸 폭탄 테러다. 168명이 사망했고, 680명이 부상을 입었다.

주범인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는 걸프전에 참전해 훈장까지 받은 전쟁 영웅이었다. 공범은 테리 니콜스(Terry Nichols), 마이클 포티어(Michael Fortier)이었고, 이들 셋은 미국 육군 훈련소 동기였다. 로리 포티어(Lori Fortier; 마이클 포티어의 부인)도 범행을 도왔다. 범인들은 극우 반연방주의자들이었다.

공격당한 오클라호마 연방정부청사 모습. 1995년 4월 21일 모습. 퍼블릭 도메인.


민노: S급 테러리스트끼리 만났다는 게 흥미롭네요. 카진스키는 멕베이의 주장에 어떻게 반응했나요?

임명묵: 카진스키는 2000년 4월 25일 한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멕베이에 관해 말하는데요. 자신이 멕베이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전제하면서 이렇게 말하죠. 멕베이의 테러에 관해서 죽은 사람이 너무 많고, 자신은 그런 테러를 선호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걸프 전쟁에서 미국이 죽인 이라크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전쟁 영웅이라 칭송하고, 멕베이는 테러리스트라고 말한다. 이 차이는 걸프 전쟁의 폭력은 체제를 유지시켜주는 폭력이고, 멕베이의 폭력은 체제를 붕괴하자고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력이라는 본질은 같지만) 걸프전의 폭력은 체제가 용인하고, 멕베이의 폭력은 체제가 용인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죠.

민노: 일견 당연한 말이긴 하네요. 형법에서도 평상시에 사람을 죽이면 살인인데, 전시에 적국의 사람을 죽이면 영웅이 되는 거잖아요. 사회적인 평가로서 위법성이 제거되니까. 물론 이런 상황 자체는 법적인 문제이면서 동시에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질문이기도 하지만요.

임명묵: 그렇죠.


이상 정리된 대화는 인터뷰 시작 부분이었지만, 편집 과정에서 ‘K(카진스키)를 생각한다’ 연재의 마지막 부분으로 재배치한 것입니다. 이 점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민노: 오늘 긴 대화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즐거웠습니다.

임명묵: 네, 아마 에르도안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혹은 다른 소재로 찾아뵙겠습니다.

민노: 언제든 환영입니다. 쉬십시오, 그럼.

임명묵: 예, 고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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