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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묵적지수]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 님과 논쟁적 인물과 현상, 이슈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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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카진스키)를 생각한다

03. AI

명묵적지수 01. 유나바머


명묵적지수 첫 번째 인물은, 그야말로 논쟁적인 인물, ‘유나바머’ 시어도어 “테드” 카진스키입니다.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1. 인류에게 있어 산업 혁명과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 산업 혁명 덕분에 ‘선진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평균 수명이 대폭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는 불안정해졌고, 삶은 무의미해졌으며, 인간은 비천한 존재로 전락했다. 심리적 고통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으며(제3세계의 경우에는 육체적 고통과 함께), 자연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었다. 앞으로 테크놀로지가 계속 발전할 때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아예 사라져 버릴 것이고, 자연은 더욱 극심하게 파괴될 것이다. 또한 추측컨대 사회적 혼란과 심리적 고통도 훨씬 더 극심해질 것이며, ‘선진국’에서도 역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시어도어 카진스키, [산업사회와 그 미래], ‘서문’, 워싱턴포스트: 1995. 9. 19.
AI가 생성한 이미지.

유나바머의 죽음, AI 시대의 도래

민노: 카진스키는 가고, AI 시대는 왔습니다. 테러범 유나바머는 죽었지만, 사상가 카진스키의 전언은 AI 시대에 더 생생하게 살아 남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임명묵: 사실 집단적으로 할 수 있는 거는 별로 없다고 봅니다. 결국 기술 체제라는 게 계속해서 심화할 거고, 특히 미국과 중국이 AI 경쟁을 선언한 이 마당에 국가적으로든 기업적으로든 AI를 핵심으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점점 늘거고, 우리는 그걸 거부할 수 없을 거고요. 아주 높은 확률로…

민노: 유럽연합 경우에는 AI규제법이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는데 우리나라는 관료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규제에 관해선 1도 얘기를 하지 않고, 대부분 어떻게 지원할까, 육성할까, 글로벌 경쟁력 운운하면서 몰빵하고 있잖아요. ‘경주마’ 같은 좁은 시야가 염려됩니다.

임명묵: 유럽 애들이 정말 오만한 게, 그렇게 해봤자 그건 자기네들 산업만 자살하는 길이죠. 일국적 차원에서의 합리적 선택은 그냥 기술 체제를 끝까지 밀고 가는 거죠. 전 지구적인 차원의 경쟁이니까. 일국 차원에서의 규제는 국가의 차원에서는 굉장히 비합리적인 일이죠.

민노: AI의 기술적인 진화 속도와 이것을 규제하고 이것을 컨트롤하는 제도나 철학이나 사회적인 문화적인 인프라나 어떤 지적 각성 수준을 고려할 때요. 견제가 될 걸로 보세요. 아니면 기술 진화의 속도에 사회적 진보의 속도가 밀릴 걸로 보세요.

임명묵: 세계 정부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기술 진화에 사회 진보가 압도적으로 밀리겠죠. 정부, 국가 간의 경쟁 시스템이 그 진화를 계속 추동하니까요. 그리고 국가 간에 격리 시스템이 있는 마당에 초국적인 차원의 규제 합의 같은 게 가능할 리도 없고요.

민노: 하지만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와 유럽연합이 어쨌든 AI 규제법들을 계속 만들어내기는 할 거잖아요. 적어도 의회 차원에서는.

임명묵: 그렇죠.

민노: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회 차원에서도 그런 발상 자체가 안 보이거든요. AI 관련 법안을 봤는데, 극소수만 규제 법안이고 대다수가 진흥 법안이죠. AI 낙관론에 몰빵한 사회죠.

“우리 국회에도 AI 관련 12건의 법안이 제안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11건은 ‘AI 산업 육성, 교육 진흥’에 관한 내용이며 AI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다루는 법안은 단 1개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최근 AI 기술의 위협을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미국이나 유럽연합 차원에서 진행되는 입법논의와 격차는 크다.”

서복경, AI로 인한 멸종위험과 원자력 그리고 정치개혁, 슬로우뉴스: 2023. 6. 8.

카진스키의 위상

민노: 카진스키, 어떻게 봐야 할까요. 카진스키를 우상화할 수도 없고요.

임명묵: 그럼요. 그냥 우상할 수도 없고, 이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할 수도 없고… 다만 이제 인간의 어떤 존엄한 삶이란 무엇인가. 카진스키가 말한 권력 과정, 그 의미 있는 성취감은 기술 체제의 전방위적인 침입 속에서 어떻게 지킬 수 있을 것인가…생각해봐야겠죠.

민노: 사상적 계보에서 보면, 카진스키는 어느 정도의 위상, 어느 지도 속에 속한 사람으로 보세요.

2018년 당시의 두긴(왼쪽, 위키미디어 공용), 1940년대 에볼라(오른쪽, 퍼블릭 도메인).

임명묵: 적어도 반(反)기술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거의 예수 정도의 위상이죠. 최근 현대 서구 사회가 가치의 위기에 휘말리면서 급진적인 사람들이 인기를 많이 끌고 있거든요. 카진스키도 그중 하나죠. 그리고 사실 급진적인 사상가들 중에는 이제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두긴(Алекса́ндр Ге́льевич Ду́гин, 1962~현재)이나 이탈리아 파시스트인 율리우스 에볼라(Giulio Cesare Andrea Evola; 1898~1974)나 이런 사람들과도 같은 계보에 있죠.

민노: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니에요?

임명묵: 많이 위험하죠. 일단 율리우스 에브라나 알렉산드르 두긴 같은 경우에는 파시스트 정치라는 차원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사람이고, 파시스트라는 건 지구적으로 일단 나쁜 것이라는 합의가 명확하잖아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더 차단이 잘 되는데… 하지만 카진스키의 ‘단번에 망하게 하자’는 사실은 우리가 저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다 알기 때문에…

민노: 좋게 보면 낭만적이고, 나쁘게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헛소리고?

임명묵: 두긴이나 에볼라 같은 사람은, 그런 사람들이 등장하면 사람들이 위기를 느끼는 거지만, 카진스키의 경우는 솔루션이 너무 허무맹랑하니까 사실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죠.

민노: 카진스키 같은 사람의 탄생이랄까요. 이 사람은 사회적으로 아이콘이 됐잖아요, 어쨌든 간에. 미디어의 호들갑을 제외하더라도 어쨌든 이 사람은 문명의 산물이고, 사회의 산물이잖아요. 또 어떻게 바라보면 미국 사회의 산물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미국적인 너무나 미국적인 카진스키(라는 존재 그리고 그 이미지)의 탄생. 사진은 2027년 제작된 드라마 [맨헌트] 포스터.

임명묵: 엄청나게 미국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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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진스키라는 ‘매력적인’ 냉소와 절망… 그 항체

민노: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이렇게 과격한 무정부주의자를 만들어내는 그런 시스템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고, 이 사람을 악마화한다고 해서 이 시스템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이 사람을 우상화한다고 해서 이 시스템에 어떤 항체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 사람은 좀 더 적극적으로 입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임명묵: 정확히 제가 생각하는 겁니다.

민노: 그럼에도 카진스키의 전언을 돌아봄에 있어 스스로 경계하고 있는 점이 있을까요.

임명묵: 일단은 현 체제에 대한 뭐랄까, 엄청난 냉소와 염세주의가 가득한데요.

민노: 거기에 이끌리게 되죠.

임명묵: 그렇죠. 그런데 그것을 잘 조절을 해야 된다. 우리가 카진스키처럼 정말 오두막 짓고, 토끼 사냥할 거 아닌 이상이야. 결국엔 산업기술 체제와 공존하고, 거기 위에서 카진스키가 말한 어떤 건전한 의미 추구나 건전한 성취감 추구를 고민하면서… 집단 차원에서 기술 문명과 거리를 두는 것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개인 차원에서는 기술과 좀 거리를 두는 연습도 필요한 것 같고요. 그런 차원에서 이제 카진스키를 봐야지! 카진스키 말대로 현대 사회는 다 쓰레기야! 인간은 다 걸어 다니는 기술 체제의 노예들이야! 이렇게 보는 건 경계해야죠.

민노: 사실 그런 감정적인 이끌림이 없지 않죠. 그런 격정적이거나 냉소적인, 절망적인 이끌림을 그래도 좀 옆에서 잡아주는, 그런 도움이 되는 어떤 사상적인 어떤 흐름 내지는 그런 친구 내지는 따뜻한 손길, 이런 것들이 있을까요?

임명묵: 개인적으로는 전통 사상들이 좀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거든요. 불교라든가 기독교가 될 수도 있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카진스키주의에 빠질 때부터 불교를 열심히 봤었는데요. 경전에 관한 해설들을 많이 봤죠.

민노: 저도 ‘숫타니파타’와 같은 불교의 원시 경전을 아주 좋아합니다. 소박해서 더 위대한 것 같아요.

임명묵: 그런 차원에서 사실은 카진스키가 반(反)근대, 근대 비판사상의 어떤 계보에 있는 거고, 또 근대 비판사상의 또 어떤 또 대가들이 이제 전 근대 종교들이잖아요.

민노: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임명묵: 그런 차원에서 이제 물론 이제 전(前)근대의 어떤 글들은 현대 기술체제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쓰였기 때문에 이런 글들이 현대 기술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문제의식을 심어주지는 않지만은 적어도 이제 개인 차원에서 현명한 삶이나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나침반 역할은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온건하게 또 그걸 수행할 수 있는 길도 알려주는 것 같고요. 다만, 현대 사회에 대한 진짜 이거 뭔가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아라고 이제 그런 직접적인 짜릿한 문제의식을 느끼려면 카진스키를 찾지 않을 수 없는 거고요.

민노: 카진스키는 테러리스트인데 무슨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고 난리야, 이런 분들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께는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요.

‘와이어드’ 창업자 케빈 켈리(1952년 생). 사진은 2022년 당시 모습.

임명묵: 우리가 사는 사회는 굉장히 다면적이잖아요. 뭐든, 어떤 어느 정도의 위명을 얻은 지적 사상들은 나름의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진스키의 반대편에 속한 케빈 켈리(Kevin Kelly; 정보기술 잡지 ‘와이어드’ 창업자이자 초대 편집장)라고 기술 사상가 있잖아요. 이 사람이 [기술의 충격; What Technology Wants, 이한음 옮김, 민음사: 2011] 이라는 책을 냈거든요. 거기에서도 카진스키와 똑같은 이야기를 해요. 기술 체제의 발전은 이제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가역적으로 죽죽 일어나는 거고, 그거는 이제 우리가 막을 수 없는 거다. 기술 고도화는 자율적으로, 완전히 자율적으로 일어나고 이미 인간의 손을 떠났다.

민노: 카진스키와 방향은 다르지만, 완전히 같은 진단을 한 거네요.

임명묵: 케빈 켈리가 자신의 책에서 카진스키를 한 번 짚고 넘어가겠다고 하니까 동료들이 말렸다는 거죠. 하지만 한 챕터를 할애했고, 카진스키와 같은 진단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건 인간을 위해서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기술 체제의 자율적인 고도화라는 관점에서 카진스키는 나하고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민노: 하지만?

임명묵: 카진스키는 기술 체제의 자율적 고도화가 인간의 파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체제 속에서 인간이 훨씬 더 긍정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고 본다. 제3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봐라. 기술 체제 속에 들어가고 싶어서 저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지 않은가.

AI… 그리고 인간의 죽음

민노: 마지막 질문입니다. AI 시대로 상징되는 기술 문명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까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임명묵: 비겁한 대답이지만, 사람마다 다르죠.

민노: 대체로, 그 집단적 경향성을 전망한다면요.

임명묵: 이 추세로 가면 대체로 사람들의 정신적 위기는 계속 심화되지 않을까요?

민노: 좀전에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는데요. 그러면 계급적이고 계층적인 관점에서 물어볼게요. 계층적으로,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으로 구별해봅시다. AI 시대라는 거, 젊은 사람들과 늙은 사람들에게 어떨까요? 차이가 심할까요.

임명묵: 사실은 뭐랄까, AI가 인터넷이라는 거를 엄청나게 나이가 든 다음에 한 사람들은 그냥 그것을 어떤 삶의 보조 수단 정도로 삼다가 그냥 갈 것 같은데요. 이걸 태어나서부터 그냥 흠뻑 젖어서 살고 있는 사람들, 저도 어느 정도 그렇고요. 그런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 기술 체제와 엮이면서 우리가 알던 인간성의 면모들을 잃어가지 않을까…

민노: 인간성의 차원에서는 인간이 지금까지 지켜왔던 가치나 관습적인 문화의 차원에서는 많은 것들이 파괴될 것이다?

임명묵: 존엄성도 그렇고.

민노: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도 있고, 시스템에 맞춰서 진화할 수도 있고, 퇴보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로 그 변화를 부를 수 있을 텐데요. ‘파괴’라고 보시는 건가요.

임명묵: 제가 생각하기에 그 변화는 파괴나 해체.

“만약 그 배치가 출현했듯이 사라지기에 이른다면, 18세기의 전환점에서 고전주의적 사유의 밑바탕이 그랬듯이 만약 우리가 기껏해야 가능하다고만 예감할 수 있을 뿐이고 지금으로서는 형태가 무엇일지도, 무엇을 약속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어떤 사건에 의해 그 배치가 뒤흔들리게 된다면, 장담할 수 있건데 인간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놓은 얼굴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미셸 푸코, [말과 사물], 1966., 이규현 옮김, 민음사: 2012., p. 526.

민노: 이번엔 돈 있고 힘 있는 사람과 돈 없고 힘 없는 사람, 두 계급으로 구별할게요.

임명묵: 소위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식들에게 기술에 너무 빠지지 말라고 통제한다잖아요. 그런데서 이미 뭔가 타나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민노: 자신들은 그걸로 돈을 벌겠지만, 자기 자식에게는…?

임명묵: 그러니까 더 기만적인 거죠.

민노: 그럼 돈 없고, 힘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임명묵: 그냥 빠져서 사는 거죠. 자기의 데이터와 선호 체계와 이런 걸 바치고 도파민을 얻어가고.

민노: 데이터 제공자로서…?

임명묵: 그렇죠.

민노: 알고리즘 데이터 제공자로서의 삶…

이제 미래의 노동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재편된다.
소수가 독점하는 API ‘위’ 노동(노란색)
인간을 대체하는 자동화(분홍색)
그리고 대다수의 API ‘아래’ 노동(파란색).
(참고: 강정수, 알고리즘 사회,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2015)

임명묵: 이 체제와 거리를 두면서도 이 체제 속에서 이득을 얻어가는 그런 권력과 돈이 있는 사람 수는 갈수록 적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노: 정말 정말 마지막 질문. AI 시대는 임명묵, 글을 쓰는 젊은 작가이자 대학원생에게는 어떨 것 같아요.

임명묵: 어쨌든 긴 글과 나름 흡입력 있는 글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의 수는 존재하고, 그래도 당분간은 AI가 그런 걸 쓰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민노: 틈새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

임명묵: 불리하지만은 않다?

민노: 그런 시대를 원합니까? 개인적으로.

임명묵: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민노: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작은 소우주, 작은 섬 같은 어떤 해방구를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요.

임명묵: 그렇죠.

민노: 5년 뒤, 10년 뒤, 20년쯤 뒤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임명묵: 머신러닝에 기반 알고리즘이 지금 10년 정도 됐잖아요.

민노: 그래요? 네.

임명묵: 그 10년만에 세상 ‘개판’난 거 생각하면…

민노: (….)

(다음 마지막 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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