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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꺾정’ 칼럼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는 선거제 개편 논의로 한창입니다. 선거제를 어떻게 바꿀지도 문제지만, 국회가 결단해야 할 정치개혁 과제들도 산적해있습니다. 선거제 개편이 아닌 개혁이 되기 위해, 나아가 정치개혁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매주 칼럼을 통해 논하고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오늘 ‘중꺾정’ 칼럼의 필자는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입니다.

선거제도 개편 논의, 여론이 모순에 빠지는 이유 (유성진)
비례대표 늘리자, 표가 절반 이상 버려진다 (김형철)
반성 없는 양당정치, 바꾸려면 선거제를 개혁하라 (박영득)
기후위기·저출생 상임위를 만들 수 있다면 (김태일)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 회의’에 대한 기대와 우려 (조원빈)
적대적 양당제의 비극: 대통령-다당제가 필요하다 (이선우)
선거구 획정 문제, 결국 국회의원 정원 늘려야 (이재묵)
열려라 국회! 의원회관 문턱만 4단계 (민선영)
AI로 인한 멸종위험과 원자력 그리고 정치개혁 (서복경)

미국 소재 비영리단체인 AI안전센터(Center for AI Safety) 홈페이지에는 ‘AI 위험에 관한 성명서(statement of A.I. risk)’와 함께, 6월 6일 현재 ‘챗지피티(ChatGPT)’를 개발한 오픈AI 대표 샘 알트만을 포함한 466명의 서명이 게시되어 있다. 성명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AI로 인한 ‘멸종 위험(risk of extinction)’은 전염병·핵전쟁 같은 사회적 규모의 위험으로, 이를 완화하는 것이 지구적인 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AI 위험에 관한 성명서’ (출처: AI안전센터)

AI 연구자, 기술개발자, AI 기업 대표가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며 AI로 인한 인류의 ‘멸종 위험’을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6월 5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 기타 고피니트는 “AI가 노동시장에 가져올 대규모 혼란에 대해 각국 정부가 새로운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파이내셜타임스, 2023년 6월 5일 자). 최근 AI 기술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노동시장만이 아니라 인권, 인류의 생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입법과 규제를 통한 정치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경고가 반복되고 있다.

AI의 인류 위협 가능성, 입법적 대안 준비하는 국가들

유럽연합은 2018년부터 이 문제를 정책 과제로 다루기 시작했고, 유럽연합의회는 2019년부터 AI 기술이 인류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올해 안에 입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작년 10월 미국 백악관은 AI 시대 미국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AI 권리장전’을 공표하기도 했다. 5월 31일 미국과 유럽연합 당국은 AI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자발적 행동강령’을 마련하기로 했다. AI 관련 입법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 시간을 기다릴 만큼의 여유도 없을 정도로 AI 기술의 진전은 빠르고 위협은 크기 때문에 당장의 대응이 시급하다고 본 것이다.

우리 국회에도 AI 관련 12건의 법안이 제안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11건은 ‘AI 산업 육성, 교육 진흥’에 관한 내용이며 AI 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다루는 법안은 단 1개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최근 AI 기술의 위협을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미국이나 유럽연합 차원에서 진행되는 입법논의와 격차는 크다.

“한국이 재생에너지 목표를 30%에서 20%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줄인 것은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정책은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늘려 세계적으로 입지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원자력은 RE100에 가입한 기업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아닙니다.”(MBC뉴스, 2023/01/02, 마이크 피어스/클라이밋 그룹 RE100 대표)

게티이미지

또다른 위협인 원자력, 국가의 대안은 있는가

6월 5일 LG전자가 ‘RE100 이니셔티브’ 가입을 공표함으로써, 우리나라 기업 중 ‘RE100’ 가입 기업은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카카오 등 33개로 늘었다. ‘RE100’은 기업 활동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목표를 내세운 민간 차원의 자발적 캠페인으로 출발했지만, 애플, 구글, 메타(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3M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캠페인을 이끌면서 사실상의 무역장벽 기능을 하고 있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자사에 납품하는 기업들에게도 ‘RE100’ 요건을 충족하도록 요구하고, 기한 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RE100’이 요구하는 재생에너지에 원자력 발전 전력은 포함되지 않는다.

작년 9월 ‘RE100’에 가입한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사용하는 ICT 기업이며 국내기업 중 전력소비량도 단연 1위다. 이 많은 전력을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모두 감당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그 전력을 어떻게 충당할 수 있을까? 2020년 기준 OECD 국가 평균 재생에너지 비중은 31%지만 우리나라는 6%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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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생산량은 ‘RE100’ 가입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재생에너지 총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기업들은 삼성전자가 베트남에서 인증서를 구매하는 것처럼 다른 나라에서 재생에너지 인증서(REC)를 구매하거나, 자체 설비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방법을 택한다. 이 모든 게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비용이다. 우리나라 기업만 웃돈 주고 다른 나라에서 재생에너지 인증서를 구매해와야 한다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세계 재생에너지 시장은 급격히 커지고 있고 재생에너지는 이미 개별 국가들의 핵심 자원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늦었지만 재생에너지 발전량 확대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그마저도 후퇴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원전 생산 전력이 재생에너지 중심으로의 에너지 전환 흐름에 포함될 수 있을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유엔가입 193개국 가운데 원전으로 전력을 조달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포함 32개 뿐이다. 원전 보유국에서도 원전 수를 줄여나가는 판에, 무슨 수로 세계 에너지 시장 변화에 대응을 하겠다는 것일까?

미래의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정치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전에 없던 위협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AI의 위험이나 에너지 전환의 도전은 인류가 닥친 여러 위험 중 일부일 뿐이다. 이런 시대에 5천만의 미래는 어디에서 어떻게 준비해나가야 할까?

현대 민주주의 제도에서, 사법부는 과거를 보고 행정부는 현재를 보며 입법부는 미래를 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법부는 과거에 만들어진 법 조항과 과거 어느 시점에 적용된 판례를 기준으로 현재에 발생하는 사건을 판단한다. 사회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하는 것이 사법부의 주요 기능이다. 그래서 사법부에 미래를 준비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

행정부는 지난해 결정된 사업계획과 예산에 따라 올해 사업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법에 따라 행정부가 3년이나 5년 단위 좀 더 긴 시야를 가지고 당해연도 사업을 계획하고 집행하도록 하기도 있지만, 그래 봐야 행정부의 시야는 기껏 5년이다.

기후위기, AI 기술, 화석연료 에너지 등이 야기하는 미래의 위험으로부터 5천만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입법부가 감당해야만 할 역할이다. 국회가 그 능력을 갖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 어디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기능이다. 우리에게는 국회가 그 능력을 갖도록 만드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말이다. 국회가 다양한 미래의 위험으로부터 5천만을 지키는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정치개혁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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