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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베이비부머 귀향 프로젝트, 잘 될 수 있을까?

마강래 교수가 제안한 ‘베이비부머 귀향 프로젝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수도권 집중이라는 문제: 한국에서 가장 큰 문제는 수도권 집중이다. 그 한 축은 낮은 출산율, 다른 축은 초고령화이며, 그 논리적 귀결은 디스토피아다. 청년 세대의 좌절, 세대 갈등, 노인 대책의 어려움 등이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서 파생한다.
  • 베이비부머의 은퇴: 1차(’55~’63년) 2차(’64~’74년생) 베이비부머가 은퇴할 시점이고, 이들 중 특히 지방 출신 수도권에 거주하는 베이비부머의 귀향이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라고 마강래 교수는 주장한다.
  • 베이비부머의 귀향과 수도권 주택 문제: 지방 출신 수도권 베이비부머 10~20%만 귀향한다면? 혁명적 변화 생긴다. 꼭 집 팔지 않아도 집을 임차해 공급이 많아지면 매매 가격 낮아진다. 정부의 ‘추임새'(정책)만 제대로 들어가면 20%(88만 명) 이동도 가능하다.
  • 베이비부머-지방 중소 도시-중견 제조기업 결합 모델이 중요하다(특히 ‘동남권’ 제조업 모델).
  • 비수도권 메가시티 전략: 지방 소멸 대응한 지방 거점 도시의 메가시티화도 필요하다.
  • 함양 실험: 일자리와 연계한 양질의 임대주택을 제공해 지역 ‘인구댐’ 역할을 할 수 있다.
  • 도시국가: 앞으로 한국은 남북 도시국가(강원·충청 포함한 수도권 vs. 영호남)이 된다.

이상이 마강래 교수의 ‘베이비부머 귀향 프로젝트’ 개요다. 좀 더 풍부한 맥락과 정확한 정보를 원하는 분은 직접 김도연 기자의 인터뷰를 참고하기 바란다.

수도권 집중이 모든 문제의 근원적 구조다.

하지만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정현종). 단순히 몸만 이동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삶의 토대가 전부 함께 이동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동시에 기존 삶의 물리적 정서적 토대와는 완전히 분리되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의 노동은 기본적으로 ‘어떤 공간'(마을, 문화, 전통, 관습, 공동체)에 뿌리박고 있다. 물론 공간에서 분리된 노동이 점차로 늘고 있긴 하지만, 그 노동의 공간성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세계화)은 이미 치명적인 부작용(포퓰리즘∙극우화)을 유럽과 미국에서 발생시킨 바 있다(이에 관해선 ‘세계화의 황혼, 포퓰리즘’ 참고.)

마강래의 아이디어처럼, 수십 년을 도시에서 살아온 베이비부머가 얼마나 귀향할 수 있을까. 이들 베이비부머-지방중소도시-중견제조기업을 한국의 ‘동남권 벨트’에서 실현할 수 있을까. 수도권의 베이비부머가 고향으로 돌아가 주 3~4일 근무 월 150만 원의 제조업체 직원으로 질 좋은 임대 주택에서 생활하면서 수도권에 소유 중인 주택 월세로 ‘잘사는 것만 걱정하면서’ 살 수 있을까.

국제노동기구(ILO) 일자리 ‘대표선수’ 이상헌 박사에게 베이비부머 귀향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알림 안내

이 글은 2025년 6월 20일(금)과 6월 27일(금)에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가독성을 위해 인터뷰어의 질문은 소제목이나 본문에 맥락화했고, 본문은 이상헌 박사의 답변을 중심으로 인터뷰이 1인칭으로 정리했습니다(‘인트로’만 인터뷰어). 최종 정리 과정에서 이상헌 박사가 직접 내용을 확인하고 퇴고했습니다.

마강래 교수의 인상적인 제안

마강래 교수 인터뷰에서 “초광역 행정 체제”라는 표현이 눈길을 끌었다. 외국에서는 접하기 쉽지 않은 표현이다. 초광역 행정 체제를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한국적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마 교수는 인구를 중심으로 한 도시 계획의 관점에서 아주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을 제안했는데, 일자리를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반갑고, 유익한 제안으로 생각한다.

“균형발전론은 226개 기초자치단체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다. 이는 지자체 간 경쟁만 심화시킨다. 수도권이 공간적으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으니 지방도 그에 상응하는 공간적 힘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초광역 행정 체제다. 메가시티는 처음부터 끝까지 집적 경제(기업이나 인구가 한 지역에 모여 있을 때 발생하는 경제적 이점)다. 대도시 거점, 중소도시 거점, 농어촌 거점을 연계해 압축된 연결망을 만들고, 이들이 수도권처럼 하나의 도시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핵심 거점에 청년들이 선호하는 4차 산업혁명 일자리를 집어넣는 전략이 메가시티다.” (마강래)

청년들은 ‘메가시티’로,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은 월세 놓고 지방으로 가라. (김도연, 슬로우뉴스, 2025.06.18)
제네바 소재 집무실에서 줌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이상헌 박사.
베이비부머 귀향만이 지방과 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메가시티 이론가’ 마강래 교수.

한국의 베이비부머가 수도권의 비싼 부동산 자산을 ‘버리고’, 지방중소기업의 고용 연계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역에 정착한다는 것의 의미를 좀 더 풀어보면, 중소기업은 좀 더 싼 인력을 확보하고, 정부나 지자체 보조를 통해 부담을 덜 수 있다. 귀향하는 베이비부머도 지역의 중소기업도 서로의 기대 격차와 능력을 절충하고 보완하겠다는 방법론이다. 마강래 교수는 베이비부머가 대도시에서 빠져나오면, 주택 공급에서 ‘숨통’이 틔일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그것도 말이 된다.

‘퍼즐’ 조각 하나 더

다만, 하나 더 생각해 봐야 할 게 있다.

이 모델에서 중장년층의 고용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방에서 수도권(혹은 지역 거점 메가시티)으로 향하는 청년의 고용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초광역 행정 체제’라는 표현을 써서 행정력을 강조하는 것 같은데, 그점은 이해가 된다. 마강래 교수의 아이디어는 기본적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건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게 대전제다. 그러니 이 모델에서는 기업에도 이익이 있고, 도시에서 떠나 지역(고향)에 정착하는 베이비부머 중장년층에게도 유익하며, 수도권이나 지역 메가시티로 떠나는 청년에게도 주택 임대 등에서 유익한 윈윈 모델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선 생각해 볼 건, 중장년층이 지방에 내려가면, 이들의 ‘수요’를 고려해야 한다. 이들은 ‘생산’만 하는 게 아니다. 특히 중장년층의 의료 수요와 돌봄 수요가 핵심이다. 그러니까 귀향한 베이비부머를 ‘뒷받침’해야 하는 수요, 이 수요는 주로 서비스업종에서 생길 텐데, 이런 서비스 산업을 어떻게 지역에 구성할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러니까 귀향하는 지역의 사회적 서비스 수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 하나, 이들 중장년층이 대도시에서 누렸던 문화적인 인프라를 어떻게 충족하게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즉 의료를 포함한 돌봄 수요와 문화적 인프라 문제를 일단 해결해야 한다.

한국은 ‘공공 부문 일자리’가 너무 적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게 두 번째 포인트인데, 가령 함양을 포함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든다고 할 때, ‘민간’ 기업만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안 되고, 기업도 일자리를 만드는 건 맞지만, 지역 단위의 공공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영리가 됐든 비영리가 됐든, 여러 가지 서비스와 일자리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이 모델에서는 아주 필수불가결한 고려 사항으로 보인다.

지역이라는 건, 단순한 경제적 단위가 아니라 정치 단위이면서 사회 단위, 문화 단위다. 공동체의 성격을 강화할 수 있는 고민들, 그런 고민들을 해야 여성이든 청년이든, 어떻게 보면 좀 취약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계층의 선순환이 생길 수 있다. 장기적으로 한국에서 고령화 추세를 고면, 공공 부문 일자리가 너무 적다. 현재 9% 정도밖에 안 된다. OECD는 20%에 육박하고, 북유럽은 거의 30%다.

선진국일수록 사회적인 서비스와 공공 서비스의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OECD나 북유럽이나 그렇게 자연스럽게 늘었다. 지역 단위의 공공 서비스가 OECD와 북유럽에는 참 많다. 그런데 그런 일자리의 질은 한국의 ‘공공근로’와 단순 노무가 아니다. 아주 다양하고 프로페셔널한 일자리들이다. 이런 ‘공공 일자리’의 역할과 가능성을 마강래 교수의 제안에 보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업 중심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공공이라는 좀 더 큰 단위에서 생각해 보면, 옵션이 더 많아질 수 있다.

아주 다양하고 전문적인 ‘공공일자리’가 가능하다. 북유럽은 그렇게 하고 있다.

한국에선 공무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데, 많지 않다. 그리고 공공 업무를 민간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성도 생겼는데, 공공이 해야 좋은 일들도 있다. 지역 인구를 늘린다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의 문화, 지역의 민주주의를 살린다고 했을 때, 모든 시민의 역량을 높이고, 민주주의적 참여를 높이는 방식으로 좀 더 종합적인 시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즉, 사회∙정치∙문화적 고려가 경제적 고려와 ‘함께’ 필요하다.

좀 더 작은 단위에서의 실험이 필요해 보인다. 함양에는 ‘죽염’을 생산하는 튼실한 중소기업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기업이 없는 지역은 어떻게 할 건지도 미리 생각해야 한다. 토산품이 나오는 지역만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좀 뜬금없는 제조업체가 들어온 지역도 있는데(가령, 세제 혜택이나 땅값이나 금융상 이점으로 들어온 기업) 그런 지역에서도 이런 모델이 가능할 것인지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한편, 중앙에서 지원해 주는 프로세스가 그렇게 복잡할 것 같지는 않다. 윤석열 정부 시절에는 사회적 기업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잦았다. 사람들이 ‘사회적’에 방점을 찍는데, ‘기업’이라는 걸 까먹으면 안 된다. 지역에 연계된, 지역에 필요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들도 필요해 보이고, 일단은 전국 단위의 실험보다는 다양한 지역의 사례들을 통해서 실험을 축적해 볼 단계로 판단한다.

참고: ‘광주형 일자리’의 문제

마강래 교수는 인구 소멸이라는 관점에서 도시 붕괴를 막기 위한 정책의 관점에서 고민을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대도시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서는 ‘이동’이 필요하고, 그런 이동으로 인해 지역에서 필요한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모색한다.

그런데 광주형 일자리는 지역의 제조업 일자리라는 ‘산업 정책'(가령, 양승훈 교수) 쪽 문제라서 그 궤가 좀 다르다. 물론 이 문제도 크게 보면 함께 다뤄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서로 별개 영역에 가까워 보인다. 개인적으로 ‘광주형 일자리’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임금 체계만 다르지 본질에서는 다른 일자리와 차이가 없다.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은 임금을 낮춰 줄테니 투자해달라는 모델이다. 임금 낮추는 건 정부와 지자체가 할 테니 기업에는 공장을 지으라는 식이었다. 그러면 가격 경쟁력이 생길 테니 서로 윈윈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모델이었다. 즉,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 모델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자리를 만드는 게 소위 ‘광주형 일자리’다.

모델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저임금이라서 착취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이고, 다른 방식(‘사회적 임금’)으로 보완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 노동시장은 ‘통합적’이다. 즉, 노동자 이동성이 굉장히 높다. 그 점에서 광주형 일자리는 한국에서는 난점이 크다.

지역을 ‘재구성’하고 다시 정의해야 할 때

내가 보태고 싶은 건 제3의 관점이다. 지역에 필요한 공공 서비스, 사회 서비스를 지역 내에서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유입되는 베이비부머(중장년층)를 지원하는 사회∙정치 서비스가 아주 중요하다. 마강래 교수의 논의에서 인구적 고민, 경제적 고민은 있는데, 사회∙정치∙문화적 고민이 약간 부족해 보인다. 경제적 퍼즐에 더해서 사회∙정치∙문화적 퍼즐 조각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흔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지역 부활’이라는 표현도 틀린 표현이다. 왜냐하면 지역이 중심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었기 때문에 ‘지역, 지역’하는데… 지역을 새롭게 정의해야 할 시기다. 경제적 접근, 인구적 접근을 뛰어넘는 일자리, 사회∙정치∙문화적 측면까지를 포함한 종합적인 ‘재구성’이 필요하다.

울산? 포항? 이런 지역은 ‘중심’이었지 않느냐고? 경제적 단위로서 성공한 지역은 있었지만, ‘지역’을 살린다고 했을 때 경제적으로 먹고살기 좋게 하고, 인구를 좀 더 늘리려고 하는 게 목적인지, 지역이 중앙집권화할 때 정치적인 문화적인 파행과 긴장의 밀도가 높아진 것을 조정하고 새롭게 굳건하게 만들기 위한 것을 위한 경제적∙ 물적 토대가 필요한 건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지자체 관점에서도 고민이 많을 텐데, 결국 이 모든 문제는 지금까지 한국이 걸어온 경로를 보면, 모든 지역을 ‘서울’로 만들면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역이라는 것을 다시 정의하고 다시 재구성하는 일이다. 그 가치의 재정립을 위해서는 인구를 늘리고, 경제적인 측면을 고민하는 것은 필수적이긴 하지만, 그와 함께 정치의 문제, 문화의 문제, 삶 그 자체에 관한 종합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일자리 사업의 ‘축제화’: 일자리의 정치경제학

마강래 교수의 아이디어는 좋은 정책과 제도를 만들면, 사람들이 이동한다는 거고, 그런 이동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이라도’ 조금 더 힘든 과정이긴 하지만, 이미 ‘거기에 있는 사람’에게 일자리가 찾아가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사람을 옮길 게 아니라, 그 지역, 그 공간에 밀착한 사람에게 필요한 일자리, 필요한 서비스를 특히 공공의 관점에서 제공할 수 있을지를 모색해야 한다.

어떤 일자리를 어떤 지역에 마련할 테니, 그 공간(가령 A라는 지방소도시)으로 오라는 식이 아니라 ‘우선은’ 그 A시에 필요한 서비스, 부족한 인프라를 먼저 생각하고, 거기 사는 사람에게 그 일자리와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는지 그리고 A시가 이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물론 필요한 서비스 중 특히 행정력이 부족한 경우에 그런 행정력을 인근에서도 충족할 수 없는 경우에는 좀 더 멀리 있는 초광역권의 행정시스템이, 마강래 교수 아이디어처럼, 필요할 수 있다. 다만, 남동권이라고 해서 너무 ‘제조업’에 특화한 방식으로만 고민하지 말고, 사람이 살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삶의 필요’를 다각도에서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 더 강조하고 싶은 건, ‘돈’을 따라가는 지역 일자리 사업은 안 된다. 특히 지자체가 돈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이런 ‘공급 중심’ 정책은 그동안의 경험칙으로 보면 대부분 실패했다. 그 돈의 힘으로 일시적으로 수요가 생기긴 하지만, 지속성 관점에서는 약점이 있었다. 그런 돈을 쫓는 정책들은 모두 일회성 이벤트로 끝났다. 일자리 사업의 ‘축제화’, ‘이벤트화’라고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행정이든 기업이든 거기에 사는 지역 주민이든 ‘뭔가 크고 거대한’ 걸 기획하고 기대한다. 큰 공장, 거대한 공항, 큰 토목 사업을 생각한다. 작은 서비스, 중간 크기의 사업들도 필요한데, 공항 만들자, 자동차 공장을 만들자… 이런 식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모든 지역에 이런 큰 공장, 공항을 유치할 수는 없다. 이런 방식은 필연적으로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기 쉽다.

아사히글라스, 세제 혜택과 토지 무상 임대라는 ‘단물’만 빼먹고 ‘먹튀’했다. ‘돈’만 쫓은 일자리 유치의 전형적 실패 사례다.

‘대도시 vs. 지역’ 그리고 ‘지역의 서울화’

미국이나 유럽에서 정치적인 포퓰리즘과 극우화, 우리나라도 그런 측면이 있는데, 그 정치적인 방식을 보면, ‘지역의 재발견’인 측면이 있다. 대도시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사회주의화가 진행되고, 지역과 농촌은 극우화한다. 만약에 도시국가를 지향한다면, 우리는 싱가포르라고 선언하고, ‘(국가) 사회주의적’인 방법론을 채택하고, 국가 중심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질문해 보자. 한국의 모든 문제가 서울처럼 되지 못해서 문제라면, 부산이 서울처럼 되지 못해서 문제고, 광주와 울산이 서울처럼 되지 못해서 문제라면, 모두 서울이 되면 좋은가?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 보자.

  1. 당위성: 그게 바람직한가?
  2. 현실성: 그게 가능한가?

왜 서울이 서울이냐면, 서울이라는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때문에 서울이다. 부산이나 광주를 서울처럼 한다는 건, 서울의 독점적인 지위를 없앤다는 거다. 그러면 서울의 장점도 동시에 사라질 위험이 존재한다. 정치적 구상인지, 행정적인 구상인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이런 담론은 대체로 행정적인 필요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담론이다. ‘지역의 서울화’라는 정치적 프로젝트는 유럽이든 미국이든 성공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마강래 교수는 ‘행정적 필요’를 강조하고 있어서 정치적 필요와는 좀 다른 결로 본다. 그런 차원에서의 초광역 행정 체제는 앞서 살펴본 대로 보완적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래서 그 자체로는 문제로 보지 않는다.

마강래 교수의 동남권 ‘메가시티’ 이야기는 ‘제조업’에 관한 이야기다. 동남권 벨트에서 연계를 강화해서 산업적으로 강화할 수 있겠느냐는 산업적인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그런 패러다임과 방법론을 전라도에 적용할 수 있을까? 그건 어렵다.

한국에는 서울만 있는 것도 아니고, 부∙울∙경만 있는 게 아니다. 내륙도 있고, 강원도도 있다. 이런 지역은 ‘메가시티’ 개념으로 포섭하기 어렵다. 그러면 결국 내륙과 강원도와 같은 지역은, 아무리 초광역 메가시티가 주변을 커버해도, 결국 ‘공동화’한다. 그런 지역 차이까지 고려하지 않고 산업적인 패러다임으로 강제 편입할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가령, 마강래 교수가 참여하는 함양도 이런 모델에서는 결국 메가시티에 포섭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 함양이라는 작은 지역 안에서의 ‘에코 시스템'(자체적으로 선순환하는 유기적인 순환 시스템)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역이라는 걸, 단순히 집이 있다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일을 해야 하고, 삶의 공간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이게 실패한다면 한국 공동체는 무너지는 것이고, 그렇다면 싱가포르처럼 될 수밖에 없다.

잘살고 질서가 잘 갖춰진 도시국가지만, 유교적 행정 권위주의 국가이기도 한 싱가포르.

에코 시스템: 일자리(공급)가 아니라 사람(수요)을 중심으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마 교수는 ‘초광역 행정 체제’라는 표현을 썼다. 어느 작은 지역에서는 그 자체 해결할 수 없는 서비스를 광역의 행정 체제가 커버한다는 취지인데, 그에 앞서서 지역, 가령 함양이든 어디든 일자리의 ‘에코 시스템'(자체적으로 선순환하는 유기적인 순환 시스템)을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다.

즉, ‘이동'(베이비부머 귀향)과 ‘확장'(초광역 행정 체제)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긴 한데, 그 전에 그 지역 자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지역 내부 단위에서 일자리 정책, 기업 일자리와 공공 일자리의 유기적 조화와 시스템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동∙확장’은 그 다음 단계에서 ‘보충적으로'(2단계로) 고려하면 좋겠다.

이미 실패했다고? 모두가 안 된다고 이구동성이라고? 사실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게, 한국은 지역의 ‘에코 시스템’을 제대로 시도해 본 적도 없다. 즉, 지역 서비스의 수요를 어떻게 먼저 채울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부족한 서비스를 충족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유지할 것인지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다.

에코 시스템이 1차적이라고 말한 이유, 이런 시스템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런 ‘기초’가 없으면, ‘초광역 행정 체제’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에코 시스템은 각 지역의 기반 시스템으로 버텨줘야 한다. 한국에서 실패한 지역 정책의 원인을 따져보자. 대부분 중앙이 기획하고 지역에 명령을 하달하면, 그런 기획이 착착 진행할 것 같은데,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지역에 관한 면밀한 검토와 고민이 우선 필요하다. 지금으로선 그런 고민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 무엇보다 그 지역에서 그런 움직임을 추동하는 세력이랄까, 사람이나 집단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다시 강조하지만, 경제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경제(학)의 문제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역이나 공동체를 중심으로 놓고 일자리를 생각해보자는 거다. 일자리를 중심에 놓고(‘공급’ 중심으로) 이리로 와라, 저리로 가라는 방식이 아니라, 그것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우선은 사람을 중심에 놓고’, 공동체를 중심에 놓고 그 지역 단위에서 어떤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프로페셔널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공급 중심이 아니라 수요 중심으로 고민해 봐야 한다. 사람들이 지역 일자리 창출이라고 말은 많이 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에코 시스템’의 방법론으로 고민한 적은 거의 없다.

사람에게 일자리가 찾아가는 정책을 이제 한국도 시작할 때다. 에코 시스템을 관념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이미 유럽에는 많다. 내가 책에서 설명한 ‘마리엔탈 일자리 사업’도 에코 시스템을 고민한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스페인과 북유럽의 공공 일자리 사업 구상에서 에코 시스템 모델을 참고해 볼 수 있다. 지역에서 공공 일자리를 구성하고, 그 일자리의 조화로운 배치와 분배를 고민해야 할 때다.

사람이 있는 곳에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요컨대 사람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영국의 복지국가를 설계한 베버리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이 아니라 일자리가 기다려야 한다” (Jobs, rather than men, should wait. Beveridge, 1944).

이상헌,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2025, 생각의힘)

재정이 부족한 게 아니냐고? 이미 낭비되는 재원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런 재원을 효과적으로 재분배하면 상당히 커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정책을 고민하고 기획하자는 거라서, 정책을 구상하고 방법론을 숙고하는 단계에서는 그렇게 큰돈이 들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지속가능성이다. 지역의 안정성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사람(이 사는 그 자리, 그 지역, 그 공간)을 찾아가는 일자리 정책을 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항상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사람을 이동시켰다. 이제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그 삶을 중심에 놓고 정책 구상을 시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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