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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도둑을 잡아라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시간 도둑’이 등장한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아껴준다고 설득하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차압해 세상을 회색빛으로 만드는 존재들이다.

오늘날의 도시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 도둑이 환상소설처럼 별도의 종족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도시 구조와 주거 환경, 일자리의 공간 배치가 시민의 시간을 서서히 잠식한다.

어느 동네,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하루 30분을 추가로 뺏기고 저녁이 사라진다. 흥미로운 점은 시간을 더 많이 빼앗기는 공간일수록 대개 부동산 가격이 낮다는 사실이다. 싼 집값은 대체로 긴 통근 시간과 맞바꾼 결과인 경우가 많다. 시간은 화폐처럼 거래되고, 거리(Distance)는 계급처럼 굳어진다.

이 글은 서울이‘시간 불평등 도시’라는 뼈아픈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도시가 시민의 시간을 빼앗는 구조를 유지한 채로는 공론장도, 숙의도, 민주주의도 유지되기 어렵다. 슬로우뉴스라는 매체이름이 겨냥하는 것처럼, 느린 호흡으로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될 때 사회는 건강해진다.

그렇기에 시간을 되찾는 일은 곧 도시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의 불평등’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세 편의 기고문에서 ‘돈’과 ‘건강’, 그리고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시간 불평등의 양상을 분석하고, 서울시장 입후보 예정자로서의 정책 대안을 설명하고자 한다.

평평한 강남, 비탈진 강북 : 공간이 만드는 체력의 격차

우리는 흔히 불평등을 말할 때 통장 잔고나 아파트 평수를 떠올린다. 그러나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는 보다 노골적인 방식으로 시민의 삶을 갈라놓는다. 바로 지형과 이동 거리의 격차다.

서울은 산과 강을 품은 아름다운 도시다. 서울은 면적의 약 30%가 산지이고 한강과 주요 하천이 약 10%를 차지하는, 지형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대도시다. 세계적으로 흥행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묘사된 ‘마천루와 구릉이 함께 보이는 풍경’은 다른 수많은 매트로폴리스들과 구별되는 서울만의 특색일 것이다. 

옆나라 일본만 해도 국토의 70%가 산지라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해 보이지만, 일본의 대도시들은 거대 평야에 위치해 있다. 도쿄를 품은 간토평야의 넓이는 호남평야의 다섯 배가 넓으며, 그래서 맑은 날 도쿄에서는 동쪽으로 무려 100km 떨어져 있는 후지산이 보인다. 오사카 역시 호남평야와 넓이가 동등한 간사이평야 안에 위치하며, 그래서 오사카 도심에 위치한 오사카성은 도시 곳곳에서 시야에 들어온다. 

베트남 역시 북부의 중심도시 하노이는 간토평야보다 약간 작은 홍강 삼각주 안에 위치하고, 남부의 중심도시 호치민은 그 홍강삼각주의 3배에 가까운 메콩강 삼각주 안에 위치한다. 중국 북방의 주요 대도시들이 위치한 화북평원은 한반도 전체의 두 배에 달하고, 남방 대도시들이 위치한 양쯔강 삼각주 역시 남한 면적에 근접한다.

이처럼 한반도의 환경은 자연지리적으로 같은 문화권의 다른 지역에 비교할 때 대단히 척박한 것이었다. 현대에 들어와서 우리는 ‘몸을 갈아 넣으며 일한’ 기성세대 덕분에 반세기의 경제성장으로 그 척박함을 벗어나게 되었지만, 아름다운 풍광 뒤편에 고단함이 놓여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여전히 서울에서 누군가는 한강변의 평탄한 도로를 따라 퇴근과 동시에 휴식에 들어가지만, 누군가는 만원 전철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가파른 비탈길을 다시 올라야 한다. 그 비탈길의 거리가 1km를 넘어가면 순전히 걸어서 올라가기는 어려운데, 그럴 때 평범한 시민들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보통 마을버스다.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1km’의 오르막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그것은 하루의 마지막 체력과 시간을 소모하는 또 하나의 노동이다.

시간은 생체 리듬이다 : 수면 격차가 건강 격차를 만든다

여기서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언덕길을 오르는 건 운동 아닌가?” 겉보기에는 그렇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의도된 운동’과, 회복할 시간마저 빼앗긴 채 매일 강제로 반복해야 하는 이동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장시간 통근이 빼앗는 것은 운동 시간이 아니라, 생체 리듬의 핵심인 수면 시간이다. 통근 시간이 길수록 평균 수면 시간은 줄어든다. 수면이 단 1시간만 감소해도 비만, 우울, 고혈압 위험이 높아지고 면역 기능은 약화된다.

퇴근이 늦어질수록 저녁은 짧아지고, 잠드는 시간은 밀린다. 수면이 줄어들면 운동은 가장 먼저 포기되는 활동이 된다. 회복할 시간이 없는 몸은 점점 더 쉽게 지치고, 병들고, 우울해진다. 가파른 언덕길은 체력을 키워주기 전에, 이미 소진된 몸에 또 하나의 부담을 얹을 뿐이다.

결국 장시간 통근과 험난한 귀갓길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건강의 구조적 격차를 만든다. 그리고 이 건강 격차는 의료비 증가와 노동 생산성 저하로 이어져 다시 경제적 격차를 강화한다. 시간의 격차가 몸의 격차가 되고, 몸의 격차가 다시 계급의 격차로 굳어진다. 불평등은 통장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잠자리에서 시작된다.

이런 사정은 어느 대도시에서나 비슷하게 나타나겠지만, 지형의 특성으로 인한 고단함이 중첩된 서울에서 그 격차는 더욱 커진다. 평탄한 도로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과, 마지막 1km의 오르막을 남겨둔 사람 사이의 격차이기 때문이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돌아온 동네에 편히 쉴 곳이라도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유한 평지의 시민들은 슬리퍼를 신고 나갈 수 있는 거리, 이른바 ‘슬세권’ 안에서 쾌적한 공원과 문화시설을 누린다. 반면 서울의 많은 서민 거주지는 주거 기능만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쉬기 위해 또다시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모순된 구조를 겪는다.

여기에 오세훈 시정의 철학 빈곤은 불평등을 가중시킨다. 시민들은 길 위에서 잠을 줄여가며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서울시는 한강에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우고 텅 빈 ‘한강버스’를 띄우는 전시 행정에만 몰두하고 있다. 정작 보통의 시민들이 매일 오가는 동네의 작은 하천과 골목길은 방치되어 있다. 화려한 외관에만 집착할 뿐, 속도전에 지친 시민들에게 회복과 치유를 제공하는 세심한 돌봄은 부재하다. 그래서 시간불평등은 ‘건강’의 격차로 나타나게 된다. 

‘마지막 1km’를 책임지는 교통 정책 혁신 

나는 화려한 한강변 평지가 아니라, 골목과 하천, 비탈길과 구릉을 걷는 보통 시민들의 대변자가 되고자 한다. 이들의 턱밑까지 차오른 숨소리를 외면하는 정치는 자격이 없다. 거창한 토건 사업이 아니라, 시민의 발끝에 닿는 세심한 공간 혁신으로 ‘시간평등특별시’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교통정책의 혁신이 필요하다. ‘마지막 1km’의 고단함을 덜어주기 위한 세밀한 대안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전기 따릉이’, 마을버스 공영제, 그리고 강북 경전철 확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추가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교통정책이 요구된다. 대표적으로 최근 내가 지방선거까지 지하철 연착시위를 보류하기로 중재하는데 성공한 전장연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장애인 콜택시’가 있다. 

먼저 ‘전기 따릉이’는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40분, 버스로 20분 소요되는 서울 곳곳의 구릉지 빌라촌을 위한 유효한 수단이다. 현재의 따릉이에 전기자전거를 추가하는 비용은, 전기자전거 구매 단가 220만원, 5년에 걸쳐 해마다 9,000대씩 교체로 가정할 때 5년간 972억원 수준이다. 안전사고 발생 우려를 위해 속도는 시속 15km 이하로 제한할 것이다.

마을버스는 군소 버스회사들이 ‘돈이 되는’ 일부 지엽적인 노선만 운행하기에 노선이 촘촘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서민들을 위해 마을버스를 무료화하고, 비인기 노선권을 공공이 우선 구입하며, 남은 노선을 장기간에 걸쳐 공영화하는 방식을 고민해볼 수 있다. 실제 서울시민 이동량의 95%가 서울 시내 이동이고, 이중 자치구 내 이동이 전체 이동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마을버스가 더 촘촘하고 공공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이유이다(마을버스 위주로 설명했지만 시내버스 노선 역시 전면적으로 재설계되어야 하고 준공영제를 벗어나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특히 내가 성북구청장 재임시절이던 2012년에 성북구에서 처음 실시한, 밤 10시 이후부터 정류장이 아닌 승객이 원하는 곳에서 하차할 수 있도록 한 ‘안심귀가 마을버스’를 서울 전역으로 확대할 것이다. 해당 정책은 늦은 밤 귀가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의 불안과 불편을 지움으로서 2012년 구민이 가장 만족하는 정책 1위로 선정된 이후 줄곧 효능감을 발휘했다. 2010년 역시 성북구에서 처음 시행한 친환경 무상급식이 이제는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처럼, 성북구의 ‘안심귀가 마을버스’도 서울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

경전철은 위의 사업들에 비해 훨씬 비용소모가 많은 사업이고,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해서 많은 사업들이 정체되어 있다. 하지만 강릉 KTX 역시 매번 예타를 통과하지 못하다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노선이 개설되었는데, 개설 이후 이용객이 크게 증가하고 시민들이 만족한 사례가 있다. 예비타당성 기준을 변경하거나 면제해서 강북횡단선, 목동선, 난곡선, 서부선 경전철 사업을 재추진해야 한다. 

‘장애인 콜택시’는 현재 서울시에서 800여 대를 운영 중인데, 택시기사의 숫자도 엇비슷하게 운영하여 사실상 낮시간에만 운영되고 대기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 문제 역시 차 한 대당 택시기사를 2.5명씩 배치하는 방안으로 개선할 수 있다. 

시간 평등 특별시, 전시성 토목 사업부터 줄여야 한다

교통정책 뿐만이 아니라 서울시민들의 건강을 돌볼 수 있는 공공보건의료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또한 시민들의 마음건강을 돌볼 수 있는 정책들, ‘슬세권’ 인프라 정책과 한강 재자연화 정책도 준비되어 있다.

구단위로 문화숲을 조성하고, 서울시가 2019년 발표했던 ‘5대 권역별 시립도서관 건립’ 약속을 이행하며, 지하철 역사 내 유휴공간을 활용한 테마형 컬쳐 스테이션을 조성할 경우 소요되는 추정 예산도 500억원 정도다.  각 구마다 설치되어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한 수면건강회복 패키지도 구상중이다.

나는 한강과 연결된 76개 지천을 시민참여형 생태문화공원으로 전환하고 싶다. 성북구청장 시절 추진해서 구민들에게 호평을 받은 성북천과 정릉화 생태공원화 사업처럼, ‘시민참여형 생태문화하천’을 만들어 서울 곳곳이 숨쉬는 ‘천변도시 서울’을 만들고 싶다. 이와 같은 사업들이 진행되면, 서울의 25개구 주민들이 각각 주거지에서 10여분이면 각종 인프라를 즐기는 ‘슬세권’이 구현될 수 있다. 

지금까지 열거한 정책들은 경전철을 제외하면 예산이 크게 소모되는 사업들이 아니다. 오세훈 시장은 한강버스에 1,750억원을 들였고, 이를 계속 유지할 경우 매년 운영비용으로 200억원씩 소요된다. 노들섬 소리풍경 공사엔 3,700억원을 들였지만 계속 추진할 경우 향후 비용이 얼마나 더 늘지도 알 수 없다. 이러한 전시성 토목사업을 전면 백지화하는 것만으로도 제법 많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독일 이자르강의 복원사업에 든 예산은 1,000억원 정도라고 한다. 우리도 비슷한 예산을 한강 재자연화 정책에 들인다면, 한강에 과거처럼 모래톱이 쌓이고 아이들이 물가에서 발 담그며 뛰어노는 풍경도 충분히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좋은 도시는 번쩍이는 100m 태극기 깃대나 텅 빈 한강버스로 증명되지 않는다. 좋은 도시는 그곳을 걷는 시민의 표정과 발걸음으로 증명된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골목과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시민들의 육체적 고단함을 덜어주고, 그들에게 온전한 수면과 휴식의 시간을 돌려주는 실질적인 행정이 필요하다. 비탈진 골목마다, 어두운 귀갓길마다 고단함 대신 여유와 치유가 흐르는 도시. 시민 모두가 각자의 리듬대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시간평등특별시’ 서울을 만들고 싶다. 

좋은 행정이 시민들의 시간을 줄여주면, 시민들은 그렇게 생긴 여가시간을 삶을 돌아보는데 쓸 수 있다. 좀더 적극적으로 본인의 요구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향해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마지막 3편에선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시간불평등 문제를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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