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의 제안: 03] 시간불평등 도시 서울, 무엇이 문제일까? 민주주의는 시간 위에 서 있다! (⌚10분)

🎈 시간 도둑을 잡아라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시간 도둑’이 등장한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아껴준다고 설득하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차압해 세상을 회색빛으로 만드는 존재들이다.
오늘날의 도시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 도둑이 환상소설처럼 별도의 종족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도시 구조와 주거 환경, 일자리의 공간 배치가 시민의 시간을 서서히 잠식한다.
어느 동네,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하루 30분을 추가로 뺏기고 저녁이 사라진다. 흥미로운 점은 시간을 더 많이 빼앗기는 공간일수록 대개 부동산 가격이 낮다는 사실이다. 싼 집값은 대체로 긴 통근 시간과 맞바꾼 결과인 경우가 많다. 시간은 화폐처럼 거래되고, 거리(Distance)는 계급처럼 굳어진다.
이 글은 서울이 ‘시간 불평등 도시’라는 뼈아픈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도시가 시민의 시간을 빼앗는 구조를 유지한 채로는 공론장도, 숙의도, 민주주의도 유지되기 어렵다. 슬로우뉴스라는 매체이름이 겨냥하는 것처럼, 느린 호흡으로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될 때 사회는 건강해진다.
그렇기에 시간을 되찾는 일은 곧 도시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의 불평등’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세 편의 기고문에서 ‘돈’과 ‘건강’, 그리고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시간 불평등의 양상을 분석하고, 서울시장 입후보 예정자로서의 정책 대안을 설명하고자 한다.
📢 1편: 길바닥에 버리는 월 200만 원, 거리가 계급이고 시간이 자산이다
📢 2편: 삶의 질 높이는 마지막 1km, 마을버스를 무료화해야 하는 이유
📢 3편: 출퇴근 시간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빼앗는 방식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는 시간 평등 도시
이재명 대통령은 작년 7월에 열린 ‘정치학자들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 정치학회 서울 총회 기조연설에서 “민주주의는 밥을 먹여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시민의 기본적 역량을 키워주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공허하며, 결국 극우 정치나 민주주의의 퇴행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뼈아픈 통찰이다.
당시 세계 정치학회 서울 총회에는 전 세계 곳곳에서 무려 3,500여명의 정치학자들이 참여했다. 그중 상당수는 각국 정치학회 회장급의 교수들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기조연설은 20여분 분량이었다. 세계 정치학회 서울총회 수석 조직위원장이었던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세계 정치학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전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이 정도의 내용으로, 이 정도의 길이로 스피치를 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했다. 김의영 교수의 평가로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의 ‘역량 접근법’, 즉 시민의 역량이 계발되어야 자유가 가능하다는 논의를 이재명 대통령이 매우 쉽게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최근 김의영 교수는 세계 정치학회에 참여했던 많은 각국 정치학과 교수들과 함께 12.3 내란을 막아낸 ‘대한민국 시민’들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공식 추천하여 화제가 됐다. 세계 정치학회 서울 총회는 12.3 내란 이전부터 예정된 행사였는데,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이 내란을 극복하는 민주주의의 복원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치러졌다. 그렇기에 수많은 세계 정치학자들에게 ‘K-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덧붙여 앞서 말한 이재명 대통령의 기조연설도 좋았기에 세계 정치학자들이 김의영 교수와 함께 ‘대한민국 시민’들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공식 추천할 수 있게 됐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밥을 먹여줘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민주주의에는 효능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하면 할수록 시민의 역량이 계발되어야 한다. 1편에서 다룬 ‘직주근접과 대중교통 혁신(돈)’으로 출퇴근 시간을 돌려주는 것, 2편에서 다룬 ‘돌봄과 공간 복지(건강)’로 생체 리듬과 수면권을 보장하는 것은 ‘효능감’의 문제다.
그리고 시민들이 삶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느린 호흡’을 되찾을 때 비로소 타인의 삶을 돌아보고 공동체의 미래를 논의할 ‘민주주의의 시간’이 열린다. 시민들에게 시간을 돌려주면 ‘효능감’이 생기고, 그렇게 돌려받은 시간을 ‘민주주의’를 향해 쓰기 시작하면 시민들의 역량이 계발되며 우리 민주주의가 더 단단해진다.
지난 겨울, 우리는 위대한 촛불과 빛의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이제 그 광장의 에너지가 동네와 골목의 ‘생활 민주주의’로 뿌리내려야 할 때다.

‘나 홀로 볼링’, 출퇴근 거리가 빼앗은 민주주의
로버트 데이비드 퍼트넘 교수는 저명한 미국의 정치학자이며, 케네디 행정스쿨 학장 등을 역임한 바 있는 하버드대학교 교수이다. 그는 1995년에 발표한 [혼자 볼링치기: 미국 사회적 자본의 쇠퇴]라는 논문에서 ‘사회적 자본’의 쇠퇴가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이 논문으로 퍼트넘 교수는 큰 명성을 떨쳤고,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의 초대를 받기도 했다.
이 논문은 여러 반박들에 대한 재반박의 내용을 더해 [나 홀로 볼링; Bowling Alone] (미국에선 2000년에 출간, 한국에선 2009년에 번역됨)이란 명저로 재탄생했다. ‘볼링 리그’에서 함께 유니폼을 입고 볼링을 치면서 동네 문제를 논의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혼자 볼링을 치거나 아예 공동체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회적 자본이 고갈되고 민주주의의 기반이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사회적 자본의 쇠퇴와 민주주의의 위기에 처한 원인 중 하나로 ‘시간’과 ‘거리’의 문제가 지적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 퍼트넘 교수는 이렇게 진단한다:
“우수리를 떼고 말하자면 매일 출퇴근 시간이 10분 늘어나면 공동체 업무의 참여는 10% 낮아진다. 공공 회의 참석, 공동체 위원회의 위원직 역임, 청원서 서명, 교회 예배 참석, 자원봉사 활동 등 모든 면에서 줄어든다. 출퇴근 시간은 교육만큼 시민적 참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아니지만 실제로는 이것이 그 어떤 대부분의 인구학적 요소보다 더 중요하다.”
“자동차 안에서 소비되는 시간 그 자체뿐 아니라 집과 직장의 공간적 분열도 공동체 생활에 악영향을 끼친다. (…) 직장에 기반을 둔 유대 관계는 이제 거주지에 기반을 둔 유대 관계와 상호 보완이 아니라 경쟁을 벌이고 있다 (…) 도시의 외곽 팽창은 장거리 출퇴근자와 거주지를 떠나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집단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
로버트 데이비드 퍼트넘, ‘나 홀로 볼링’ 중에서.
집과 직장의 ‘거리’가 시민의 ‘시간’을 빼앗고, 그렇게 뺏긴 시간이 ‘사회적 자본’을 파괴하며,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는 점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내가 성북구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자치분권과 참여민주주의를 배우겠다며 독일 베를린의 한 구청장(녹색당)이 찾아온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정치선진국인 독일에서 무슨 한국의 모델을 배우겠다고 하는지 몹시 의아했다. 그런데 민주주의 선진국이라 불리는 독일의 정치인이 털어놓은 고민은 놀랍게도 나의 고민과 정확히 일치했다. “참여하는 사람만 참여한다”, “참여자의 연령대가 대부분 고령층에 고정되어 있다”, “학력과 재산이 있는 사람들만 주로 참여한다”는 세 가지 딜레마였다.
왜 그럴까?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바보여서가 아니다.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야 하는 노동자, 야근에 시달리는 직장인, 퇴근 후 곧바로 아이나 부모의 돌봄에 매여야 하는 사람들에게 ‘참여’는 허락되지 않은 사치다. 참여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였다.
시간 불평등은 곧 민주주의의 불평등이다.

‘동행 계약서’와 ‘추첨제 민주주의’
독일 베를린의 녹색당 구청장이 성북구를 모범사례로 보고 찾아온 이유는 당시 성북구에서 내가 시행한 정책들 덕분이었다. 이 정책들은 앞서 말한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자문을 받아 시행한 것이다. 당시 아파트 경비원들이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문제에 대해, 나는 김의영 교수의 자문을 받아 시민들의 숙의를 거쳐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성북구청장으로서 ‘아파트 경비원 고용 안정 방안 성북구 모의 시민의회’를 만들었고, 김의영 교수가 ‘모의 시민의회 의장’을 맡아서 준비부터 결말까지 함께 했다. 아파트 입주자와 경비원들의 상생을 꿈꾼 이 마을 자치 프로젝트는 ‘동행(同行)’ 계약서라는 사회적 상생 프로젝트로 자라났으며 ‘동행’ 계약서가 성북구 전반에 확산되면서 전국적 모범 사례가 됐다. 숙의 민주주의가 시민들의 역량을 계발시키면서, 경비원들의 ‘밥’의 문제를 해결하는 효능감을 주는 사례가 됐다.

다른 정책으로는 배움을 자치의 문법으로 만드는 ‘아카데미 천국, 성북’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도시아카데미, 주민자치 아카데미, 찾아가는 마을학교 등 현장형 커리큘럼을 무수히 열어 주민들이 스스로 동네 의제를 공부하고 토론하게 했다. 수료생들은 학습동아리와 각종 위원회로 진입해 실제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그 과정을 통해, “배움이 공동체의 체력을 만들고, 그 체력이 민주주의의 일상을 지탱한다“는 나의 믿음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는 진실임을 느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시간과 정보가 부족해 배제된 시민들을 광장으로 모시는 ‘추첨제 민주주의’ 도입이었다. 성북구가 자랑하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실시하면서, 위원의 절반을 무작위 안심번호 추출을 통한 ‘추첨제’로 선발했다. 생업에 쫓겨 자발적 신청을 못 하는 시민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우연히 추첨되어 위촉된 분들의 회의 참석률이 무려 90%를 넘었다. 어느 날, 회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던 70대 어르신 한 분께 소감을 여쭈었다. 어르신은 “나 같이 덤으로 사는 것 같은 사람을 구청에서 처음으로 참여시켜 줬다. 내 목소리를 들어주어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며 감격해하셨다.

그 순간 나는 온몸에 벅찬 감동과 함께 무거운 사명감을 느꼈다. 시간 빈곤에 시달리며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났다고 생각하던 시민들도, 제도적으로 시간과 자리를 마련해 주면 누구보다 훌륭한 민주주의의 주역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참여는 선언이 아니라 절차를 통해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시민의 시간이 허비되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와 행정의 역할이라고 새삼 느꼈다.
내가 독일 베를린의 녹색당 구청장의 물음에 대해 제시한 답변도 바로 이 ‘추첨제 민주주의’ 도입이란 대안이었다. “참여하는 사람만 참여한다”, “참여자의 연령대가 대부분 고령층에 고정되어 있다”, “학력과 재산이 있는 사람들만 주로 참여한다”는 세 가지 딜레마는 ‘추첨제 민주주의’의 도입을 통해 의외로 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다. 성북구에서 나와 함께 이러한 제도가 잘 작동하는 것을 경험한 김의영 교수는 최근 주도하는 ‘관악 기후시민회의’라는 실험에서도 ‘추첨제 민주주의’의 요소를 포함시켰다고 한다.
‘정치적 동물’과 ‘사회적 자본’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폴리스, 곧 공동체 속에서만 자신의 본성을 완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가 사유의 배경으로 삼았던 아테네 정치체는 상당 부분 추첨을 통해 공직을 맡기는 직접 민주정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통치에는 경험과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젊은이보다는 좀더 성숙한 연령에 이른 시민이 통치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시대 아테네에서는 다수의 공직이 추첨으로 운영되었으므로, 일정 연령에 이른 시민은 다양한 공적 역할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수천만 인구를 가진 현대 한국에서 고대 폴리스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민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과정에서 ‘주권에 대한 감각’이 자라나고 그 주권을 행사한 시민이 민주주의의 강력한 방파제가 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2010년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 성남시에서, 그리고 내가 서울구 성북구에서, 또한 여러 민주당 출신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사회적 자본’을 재형성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들이 2025년에 12.3 내란 시도를 저지하고 ‘빛의 혁명’을 수행하는데 일정 부분 지반이 되었음이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는 민주당이 정당 차원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서 해당 성공 사례들을 더 넓은 영역에서 확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과정을 선도하는 플랫폼이 서울이 된다면, 우리 민주주의는 진실로 단단해질 것이다.
시민 시간을 벌어주는 서울
그렇다면 ‘시간평등’을 ‘민주주의’의 차원에서 구현하는 정책을 서울시에선 어떻게 시행해야 좋을까? 최근 또 한 번 김의영 교수와 대담을 하면서 알게 된 개념과 제안들로 오늘날의 서울시에 필요한 것들을 서술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제 서울시는 시민에게 일방적으로 참여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을 키워주는 ‘시빅 이네이블러(Civic Enabler, 시민능력 강화자)’로 거듭나야 한다. 행정은 시민을 대신하는 기관이 아니라, 시민이 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첫째, 배움을 자치의 문법으로 만들고 10분 생활권 내에서 일상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앞서 말한 내가 성북구에서 시행한 ‘아카데미 천국, 성북’을 ‘시민교육 천국, 서울’로 전격적으로 확장하여 시행할 것이다. 또한 오세훈 시장 부임 이후 단절된 ‘서울 민주주의 위원회’와 ‘주민자치회’를 명실상부하게 부활시키고, 동네 단위의 거점 플랫폼을 촘촘히 구축할 것이다. 시민들이 퇴근 후 먼 구청이나 시청까지 가지 않아도, 내 집 앞 동네에서 삶의 문제를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숙의형 마이크로 예산제’를 굳건히 해야만 한다.

둘째, AI(인공지능) 행정 혁신을 통해 시민이 길바닥과 관공서에서 버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서류 발급, 단순 민원, 대기 시간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AI 자동화와 24시간 원스톱 비대면 서비스로 대체하여 시민들에게 ‘시간’을 환급해 줄 것이다.
나아가 공론장과 시민의회에 ‘AI 퍼실리테이터(사회자)’를 도입해, 시민들이 방대한 통계와 자료를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학습하고 합리적인 토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AI는 시민을 지배하는 기술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비용과 시간을 줄여주는 훌륭한 보좌관이 될 수 있다. AI가 인간을 지배할 거라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이 먼저 올바른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에 맞춰 AI를 도구로써 쓸모있게 활용하는 세태를 만들어내야 한다.
셋째, 생활 정치의 기반인 ‘지역 정당 조직(지구당) 부활’ 등 참여정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물론 지구당 제도는 공직선거법과 정당법의 문제이므로 서울시장 권한을 넘어서지만 국회의원으로서 나는 이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20년 전 폐지된 지구당 제도는 결과적으로 돈 없는 정치 신인과 평범한 직장인들의 정치 참여 통로를 막아버렸다. 동네 한가운데 투명하게 열린 지역당 사무소가 있다면, 바쁜 시민들도 오가며 동네 의제를 발굴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진정한 생활 민주주의가 가능해진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지만, 철학적으로 보면 시간은 가장 난해한 개념 가운데 하나다. 서구 철학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에서 하이데거, 그리고 베르그송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존재론의 핵심 문제로 다뤄왔다. 반면 동아시아 사상은 시간을 독립된 형이상학의 주제로 전개하기보다는, 변화와 무상, 역사와 윤리의 맥락 속에서 다루어왔다고 볼 수 있다.
서구 전통이 개인의 실존적 시간성에 주목했다면, 우리 문화권은 공동체의 기억과 역사적 연속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 차이는 단순한 철학사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문화적 전통 때문에 우리가 ‘시간’의 문제의 중요함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바, ‘시간’의 문제는 민주주의에 있어서 결코 관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문제다.
민주주의는 ‘시간’ 위에 서 있다
시민에게 생각할 시간, 토론할 시간, 참여할 시간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는다. 그래서 나는 ‘시간평등’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민주주의의 토대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이야말로 시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12.3 내란은 우리가 공기처럼 여겨왔던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공포는 순식간에 번지지만, 민주주의는 느린 시간 위에서만 유지된다. 숙고와 토론, 참여의 시간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도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그 느림을 지탱하는 것이 바로 시민 각자의 하루 시간이다.
시간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민주주의도 지켜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시간 평등을 서울 시정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자 한다. 서울의 민주주의가 시민의 하루 시간 속에서 지켜질 때, 더 이상 우리가 광장에 백만 명씩 모여야 하는 이유도 사라질 것이다.
서울의 25개 구, 모든 비탈길과 골목마다 시간의 격차가 사라지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주어지는 도시. 그래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삶과 내 도시의 당당한 주권자로 나설 수 있는 도시.
이것이 내가 지향하는 ‘시간 평등 특별시’ 서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