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신의 미디어 오디세이아] 개봉 전 제작비 회수, 해외 선판매가 바꾼 한국 영화 산업 구조. (⏰11분)
시장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
숫자부터 보자. 2026년 상반기 국내 극장을 찾은 전체 관객은 약 5,650만 명. 지난해 상반기 4,250만 명에서 1,400만 명가량, 33% 안팎 늘었다. 전체 극장 매출은 4,080억 원에서 5,789억 원으로 41.9% 증가했다. 그 성장을 끌고 간 것은 한국 영화다.
상반기 한국 영화 관객은 3,736만 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136만 명에서 74.9% 급증했고, 매출은 2,037억 원에서 3,702억 원으로 81.7% 뛰었다. ‘왕과 사는 남자’가 1,690만 명을 모으며 ‘명량’에 이어 역대 흥행 2위에 올랐고, 연상호의 ‘군체’가 581만, ‘살목지’가 324만을 보탰다. 2년 만의 천만 영화다. 극장가에 오랜만에 사람 냄새가 난다.

그런데 이 숫자에 마냥 박수를 칠 수 있을까
기준선을 어디에 놓느냐의 문제다. 2019년 한 해 국내 극장 관객은 2억 2,668만 명이었다. 산술적으로 반기 1억 1,300만 명 꼴이니, 올 상반기 5,650만 명은 여전히 팬데믹 이전의 절반 수준이다. 비교 대상인 2025년은 어땠나. 팬데믹을 제외하면 2012년 이후 처음으로 천만 영화가 한 편도 나오지 않은 해였다.
한국 영화 연간 관객은 4,358만 명으로 전년 대비 39% 급감했고, 매출은 4,191억 원, 점유율은 40%까지 밀렸다. 2019년 한국 영화가 한 해 1억 1,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던 것과 견주면, 올 상반기 3,737만 명도 반기 환산치의 3분의 2 수준에 그친다. 요컨대 75%라는 증가율은 바닥이 그만큼 깊었다는 뜻이다. 회복이 아니라, 바닥에서 반쯤 올라온 것이다.
국제 비교는 더 아프다. 프랑스 CNC가 올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25년 극장 관람객 수는 팬데믹 이전(2017~2019 평균) 대비 미국이 40%, 멕시코가 42%, 브라질이 35% 줄었다. 한국은 52% 감소했다. 세계 주요 시장 가운데 가장 가파른 축이다. 같은 기간 일본은 오히려 5% 늘었고, 베트남은 48% 증가했다. 세계 박스오피스 전체가 2025년 335억 달러로 팬데믹 전 3년 평균 대비 16% 뒤처져 있으니, 극장의 위기는 전 지구적 현상이 맞다. 다만 그 위기의 한복판에서도 한국의 낙폭이 유독 깊다.

같은 처방, 다른 결과 — 미국과 한국의 티켓값 인상
미국도 가격을 올렸다. 2025년 북미 티켓 판매량은 7억 6,900만 장으로 2019년 12억 3,000만 장에서 38% 줄었다. 그런데 매출은 20% 감소로 그쳤다. 평균 티켓 가격이 2019년 9.16달러에서 11달러대로 올랐고, 아이맥스·돌비 등 프리미엄 상영관은 평균 17.69달러를 받았다. 아이맥스는 2025년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관객이 줄어든 만큼, 가격을 올려서 시장을 방어한 셈이다.
한국도 가격을 올렸다. 멀티플렉스 3사가 팬데믹 기간 세 차례 인상해 주말 정가는 1만 5,000원이 됐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다. 관객은 2019년 대비 절반으로 줄었고, 매출도 45% 빠졌다. 가격 인상이 손실을 메우기는커녕 이탈을 재촉했다.
더 뼈아픈 건 그다음이다. 정가 인상이 만든 심리적 저항선, 그러니까 ‘영화 한 편 값이면 OTT 한 달’이라는 셈법을 관객들에게 뇌리 속에 심어놓고선, 정작 2025년 평균 관람요금은 9,869원이었다. 떠난 관객을 다시 부르느라 할인권을 뿌린 탓에 정가와 실제 객단가의 간극이 5,000원 넘게 벌어진 것이다. 미국의 인상이 프리미엄 좌석에 대한 지불 의사를 수확했다면, 한국의 인상은 가격표만 올려놓고 값은 도로 깎아준 셈이다.
저항은 정가가 만들었고, 매출은 할인가가 결정했다. 그러니 누굴 탓할까 싶다.

관객이 줄면, 영화가 줄어든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이 문장은 증명이 필요하다. 한국 상업영화의 재원은 국내 시장 위주다. 그중에서도 극장 매출이 절대적이다. 극장에서 번 돈이 다음 영화의 투자금이 되는 구조. 관객이 줄면 수익률이 무너지고, 수익률이 무너지면 투자가 마르고, 투자가 마르면 제작이 준다. 그리고 개봉작이 줄면 극장에 갈 이유가 또 준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팬데믹 이전인 2016~2019년 한국 상업 영화(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평균 수익률은 +10%였다.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 비중은 40%에 달했다. 열 편 중 네 편이 돈을 벌었다. 괜찮은 비즈니스였다. 투자 결정이 이루어지고 회수하는 기간을 고려해 보면 최선은 아니더라도 괜찮은 수익 모델이었다.
그러나 2023~2025년에는 평균 수익률이 -27%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작품의 비율도 18%로 주저앉았다. 2025년 한 해만 보면 수익률은 -33.1%에 이른다. 100원을 넣으면 67원이 돌아오는 사업이다. 투자자가 없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투자를 하면 안 되는 사업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제작 편수가 줄기 시작했다.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 상업영화는 한때 연간 100편 이상 만들어졌다. 2025년에는 30편에도 못 미쳤다. 2026년 주요 배급사에서 개봉이 확정된 한국 영화는 22편 안팎이다. 팬데믹 시기 쌓아뒀던 이른바 ‘창고 영화’도 소진됐다. 관객 수와 제작 편수는 2~3년의 시차를 두고 정직하게 연동한다. 올 상반기 극장에 걸린 흥행작들은 그나마 남아 있던 투자의 결실이고, 지금 비어 있는 투자의 결과는 2027년과 2028년의 라인업이 보여줄 것이다.
여기까지가 익숙한 비관론이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 이 등식 바깥에서 낯선 숫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영화에는 없었던 새로운 수익원, 해외 시장
한국 영화는 오랫동안 내수 산업이었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수익 구조가 그랬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로 한국영화 완성작 수출액은 2014년 2,638만 달러, 2018년 4,160만 달러였다. ‘기생충’의 해였던 2019년에도 3,788만 달러에 머물렀다.
팬데믹 이후 2022년 7,144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2005년 7,599만 달러)에 근접했다가 2023년 6,215만 달러로 밀렸고, 2025년에는 5,028만 달러로 전년 대비 19.9% 늘었다. 원화로 바꿔보면 한 해 300억~900억 원 사이. 한국 영화가 국내 극장에서 벌던 연 1조 원 안팎과 견주면 초라하다. 겨우 한자리 수 퍼센트였다. 영진위 2017년 결산 무렵에는 시장 규모의 40분의 1이라는 자조 섞인 계산까지 나왔다. 그만큼 우리의 영화 시장은 철저히 내수시장이었다.
국가별로 상황은 다르다. 할리우드 메이저 블록버스터는 극장 매출의 절반 이상을 자국 밖에서 거두는 것이 기본값 (이것 역시 1970년대 이후부터 나왔던 흥행공식이다)이고, 2025년 여름 최대 흥행작들도 매출의 5분의 2 이상을 해외에서 가져왔다. 내수형의 대명사였던 일본조차 달라졌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전 세계 매출 7억 7,900만 달러 가운데 5억 달러 이상을 일본 바깥에서 벌었다. 반대 편에 중국이 있다. 최근 개봉되어 20억 달러에 이르는 역대급 성공을 거두었다는 ‘네자 2’의 경우, 매출액의 98%가 중국 시장이다. 내수가 세계 2위 규모의 힘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우리는 어느 쪽도 아니다. 세계 7~9위권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우리끼리 하는 자평일 뿐이고, 내수 시장의 규모는 작고, 수출 비중은 한 자릿수인 시장일 뿐이다. 그나마 내수가 성장하던 시절에는 괜찮았으나, 내수가 반토막 난 지금은 영화를 생산할 수 없는 구조가 된 셈이다. 달리 표현하면 구조가 리스크다.
참고로 2025년 수출액 5,028만 달러를 원화로 바꾸면 약 700억 원, 그해 한국 영화 국내 극장 매출 4,191억 원의 6분의 1에 해당한다. 1/40을 이야기하던 시절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적이고, 해외 비중을 논할 수 있는 유의미한 숫자가 처음 나왔다. 물론 그 이유의 절반은 분자의 성장이고 나머지 절반은 분모의 붕괴 때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성장에도 불구하고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다. 손익분기점 계산은 언제나 국내 관객 수였다.
그런데 그 계산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찬욱의 ‘어쩔 수가 없다’는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과 함께 205개 국가·권역에 선판매됐다. 개봉 전에 선판매 매출만으로 순제작비 170억 원을 전액 회수했다. 국내 극장에서 단 한 장의 표도 팔기 전이고, 국내 시장에서 굳이 손익 분기점을 들먹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처음 있는 일이다.
나홍진의 ‘호프’는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상영 직후 필름마켓에서 200여 개 국가·권역에 팔렸다. 사실상 완판이다. 선판매 금액은 200억 원대 중반으로, 한국 영화 해외 선판매 사상 최고가다. 500억 원대로 알려진 순제작비의 절반가량을 개봉 전에 회수했다. 업계가 1,500만 명 안팎으로 추정하던 손익분기점은 크게 내려갔다. 해외 시장에서 값어치를 하게 된다면 나홍진은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상호의 ‘군체’는 어떠한가? 개봉 전 124개국에 선판매되며 극장 기준 500만 명이 넘던 손익분기점을 300만 명으로 낮췄고, 개봉 열흘 만에 그 선을 넘었다. 같은 감독의 하반기 개봉작 ‘실낙원’은 해외 선판매만으로 순제작비 전액을 회수했다.
마동석의 ‘범죄도시 4’는 164개국에 선판매됐고, 시리즈 5편은 촬영도 하기 전에 부산 필름마켓에서 글로벌 세일즈에 들어갔다. 여기에 마동석이 제작과 주연을 맡아 한국에서 촬영한 영어 영화 ‘피그 빌리지‘까지, 방향은 하나다. 국내 극장에 주로 의존했던 한국 영화의 수익 구조에, 해외라는 카테고리가 생기고 있는 중이다.


왜 지금 이런 일이
선판매란 결과는 같지만 네 사람의 스토리는 모두 다르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우리에겐 네 가지 선행 사례 중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박찬욱의 경로는 영화제 프리미엄이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이후 글로벌 아트하우스 배급망은 한국 거장의 신작을 검증이 끝난 상품으로 취급한다. ‘어쩔 수가 없다’의 미니멈 개런티는 북미와 프랑스 등에서 ‘기생충’보다 다섯 배가량 뛴 수준에서 거래가 시작됐다. 베니스 경쟁 부문 초청장이 곧 품질 보증서였고, 감독의 이름이 곧 담보였다. 현재의 제작비 수준이라면, 박찬욱의 이름값이 선판매의 조건이라는 말이 된다. 이 경로를 논할 정도는 봉준호 정도일 거다.
나홍진의 경로는 시장 확장을 염두에 둔 제작과 희소성의 결합이다. ‘추격자’와 ‘곡성’으로 쌓은 글로벌 장르 팬덤 위에서 10년 만의 신작이라는 희소성이 작동했다. 무엇보다 나홍진 스스로 해외 시장을 겨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한 몫했다.
“내수용으로 제작해 국내 시장에서만 개봉하기엔 승산과 미래가 없다고 느꼈다.
나홍진
해외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생존하기 어려워서 SF 장르를 선택했다.“
그래서 나홍진은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등 할리우드 배우를 캐스팅하는 등 판매 가능한 시장의 크기 자체를 키웠다. 한국 배우만으로는 닿지 않던 권역의 바이어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K-SF라는 낯선 상품이 칸 경쟁이라는 무대에서 공개된 순간, 가격은 경매가 됐다.
물론 여기에도 ‘나홍진’의 이름값이 작동했다. 박찬욱과는 다른 의미로 말이다. 고작 세 편의 장편영화를 제작한 나홍진이다. 그런데 ‘추격자’는 데뷔작부터 워너브라더스가 리메이크 판권을 사 갔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애호작으로 꼽았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회자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황해’는 서구 시네필 사이에서 컬트가 되었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폭력 묘사는 그들에게 경이로웠다. ‘곡성’은 로튼토마토 신선도 99%를 찍었다. 이제 서구 호러를 논하는 이들은 나홍진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서사를 풀어나갈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레딧이나 Letterboxd와 같은 호러 커뮤니티에서 21세기 최고의 호러를 꼽는 리스트에 항상 언급이 되는 작품이 되었다.

물론 대중의 팬덤은 아니다. 시네필과 장르광의 팬덤이다. 극장 흥행보다 사후 재발견의 회로 — 스트리밍, 장르영화제, 온라인 커뮤니티 — 에서 지속적으로 소비되는 작품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아무 정보 없이 보라”는 댓글이 관습처럼 달리며, 누가 진짜 악(惡)이었는지를 둘러싼 결말 해석 논쟁이 개봉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진다. 아리 애스터(Ari Aster) 같은 해외 호러 감독들의 공개적 애정 고백은 나홍진을 ‘감독들의 감독’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요컨대 세 편 모두 해외 평단의 검증을 통과한 나홍진이다. 이런 나홍진의 신작이 나온다. 그것도 할리우드 배우가 등장하는 대형작품. 바이어에게 ‘나홍진’은 공급이 극도로 희소한 검증 상품이었기에 선판매가 가능했다. 물론 그런 감독의 작품이 200억 남짓의 선판매 가격이었다는 점이 아쉽지만, 이건 넘어서야 할 몫일뿐이고.
연상호의 경로는 트랙 레코드다. 다만 그 트랙레코드는 극장에서만 쌓인 게 아니었다. ‘부산행’과 ‘반도’를 150여 개국에 팔았던 극장의 장부 위에, 넷플릭스가 쌓아준 스트리밍의 장부가 겹쳐 있다. ‘지옥’은 공개 직후 ‘오징어 게임’을 밀어내고 넷플릭스 글로벌 1위에 올랐고, ‘정이’와 ‘기생수: 더 그레이’가 다시 글로벌 1위를 이어받았다.
좀비, 지옥의 고지, 안드로이드, 기생생물 — 자막의 장벽이 낮은 하이콘셉트 장르물을 거의 해마다 내놓는 다작이, 전 세계 시청자에게는 ‘연상호’라는 이름의 시청 습관을, 바이어에게는 갱신되는 성과 데이터를 만들어줬다. 그래서 ‘군체’가 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오른 순간 이미 해외 판매 예상치의 70%가 달성돼 있었다.
‘부산행’을 샀던 배급사들이 그대로 다시 샀고, 넷플릭스가 길들인 관객이 그 배급사들의 담보가 됐다. 나홍진이 10년에 한 편이라는 희소성으로 가격을 만든다면, 연상호는 빈도와 신뢰로 판매 속도를 만들었다. 얄궂은 건 구도다. 극장의 관객을 빼내 갔다고 지목되는 플랫폼이, 극장 개봉을 전제로 한 선판매의 수요를 길러놓은 셈이다. 연상호는 그 역류의 첫 수혜자다.
마동석의 경로는 인물 자체가 IP인 경우다. ‘범죄도시’라는 시리즈 자산에 ‘마동석표 주먹’이라는 언어 불문의 장르가 결합했다. 시리즈물은 개봉 전 선판매가 가장 자연스러운 상품이다. 4편이 팔린 나라들은 5편의 예약 구매자다. 나아가 ‘피그 빌리지’처럼 한국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직접 제작하는 역방향 실험까지, 그는 배우가 아니라 프랜차이즈다.
물론 이 토양이 하루아침에 생긴 건 아니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이 쌓은 신뢰 자산, 넷플릭스가 전 세계에 길들여 놓은 한국 장르물 시청 습관, 그리고 파업 이후 할리우드의 공급 축소가 만든 콘텐츠 공백. 세 개의 조류가 겹친 자리에서 한국 영화의 새로운 가격이 만들어졌다. 극장을 지킨 이들의 힘이다.

계산서가 바뀌면 권력이 바뀐다
이 변화의 진짜 의미는 개별 영화의 성공담이 아니라 수지 구조의 전환에 있다.
손익분기점이 달라진다. ‘군체’의 계산서를 다시 보자. 극장 매출만으로는 500만 명이 필요했지만 선판매가 그 선을 300만으로 끌어내렸다. 국내 관객이 40% 줄어도 영화가 성립한다는 뜻이다. 국내 극장의 감소분을 해외 선판매가 상쇄하는 구조, 정확히 지금 한국 영화에 필요한 방정식이다. 관객 반토막의 시대에도 제작이 멈추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1차 시장이 지켜진다는 것의 의미가 크다. 선판매의 매수자는 OTT가 아니라 각국의 극장 배급사다. 미니멈 개런티는 해외 ‘극장 개봉’을 전제로 한 계약이고, 개봉 성과에 따라 추가 수익이 배분된다. 극장을 건너뛰고 플랫폼에 통째로 넘기는 손쉬운 출구가 아니라, 극장이라는 창구의 가치를 글로벌 단위에서 다시 확인하는 거래다. 영화가 영화로 남는 방식의 생존이고, 스스로의 IP를 지킬 수 있는 구조를 스스로 만든 셈이다. 더구나 1차 시장은 수익의 상단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리고 아직은 섣부를 수 있지만 어쩌면 가장 큰 변화. 힘의 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판매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투자사의 자본력이 아니라 감독의 이름, 배우의 얼굴, 제작진의 트랙레코드다. 투자·배급사가 리스크를 지고 제작을 ‘고용’하던 기존 구조에서, 제작 역량이 자금을 끌어오고 투자·배급이 그 뒤에 서는 구조로의 이동. “누가 돈을 대느냐”의 산업에서 “누가 만드느냐”의 산업으로. 한국 영화 30년의 질서가 뒤집히는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난 이 대목에서 한국 영화 제작사들의 규모가 커질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걸어본다.
아직은 실험이다. 박찬욱, 나홍진, 연상호, 마동석에게만 열려 있다고. 트랙레코드가 없는 신인과 중급 영화에게 미니멈 개런티를 써줄 바이어는 없다. 그리고 미니멈 개런티는 결국 외상이다. ‘호프’가, ‘실낙원’이 해외 극장에서 실제로 관객을 모으지 못하면, 다음 협상 테이블의 가격표는 내려간다. 선판매는 신뢰를 담보로 한 선물거래이고, 선물은 언젠가 현물로 정산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실험에 무게를 두고 싶다. 길이 없던 곳에 길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네 명의 이름이 열어놓은 가격대는 다음 감독들의 협상 기준선이 된다. ‘부산행’의 성공이 10년 뒤 ‘군체’의 판매 속도가 됐듯, 오늘의 트랙레코드는 내일의 담보가 된다. 관건은 이 여름과 가을, 해외 극장에서 나올 성적표다.
한국 영화의 다음 10년은 국내 관객 수가 아니라 해외 선판매 가격표가 말해줄 것이다.
💡 오늘 이 기록을 10년 뒤에, 20년 뒤에 자랑스럽게 다시 들여다볼 수 있길 바란다. 덧붙여 선판매라고 하지만 그 절대 가격이 높지는 않다는 것도 분명하다. 절대 높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손익 구조가 바뀐다는 건 그만큼 우리 영화의 가성비가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격 경쟁력은 여전히 우리의 절대무기라는 점은 잊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