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듣는 미디어에서 ‘보는 미디어’로 옮겨간 지금, 대중은 ‘시각’에 매우 민감합니다. 잘생기고 예쁘고의 기준을 떠나 제스처, 억양, 사용 단어 등의 선택으로 정치인의 이미지는 단번에 바뀝니다. 이러한 후보들의 면면을 통째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TV 대선 토론’입니다.
이때는 각 후보가 보좌진 없이 카메라 앞에 혼자 나와 모든 걸 검증받게 되지요. 답변 하나하나, 태도, 억양, 제스처 등이 전부 유권자의 평가 대상이 됩니다. 대선 토론에 임하는 정치인들의 전략은 무엇일까요?
우선은 대선 토론을 잘 이용해 성공한 사례와 실패한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레이건 vs. 카터: “당신 또 시작이군요”
이 사진은 1980년 두 후보의 대선 토론에서 두 후보가 궁극적으로 구축하게 된 이미지를 드러냅니다. 사진 왼편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토론회에 임한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입니다. 오른쪽은 이런 지미 카터 대통령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띤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입니다.
동영상에서 지미 카터는 사회보장 정책에 대해서 웃음기 하나 없이 설명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봅니다. 중요한 주제이기는 하나 이런 식으로 인상을 쓰고 지루하게 말하니 청중 입장에서는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레이건은 이를 재치있게 받아칩니다.
“당신, 또 시작이군요.”
“There you go again.”
상대 후보의 주장이 지루하고 터무니없다는 뜻을 익살스러운 표정 연기와 제스처와 함께 확실하게 전달합니다. 이 발언을 할 때 청중도 함께 웃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레이건은 역시나 배우 출신답게 자연스럽게 자기 생각을 풍부한 표정과 제스처로 전달해 대중에게 여유롭고 믿을 수 있는 후보라는 이미지를 굳힙니다.
이 TV 토론 이후 레이건의 “There you go again.” 발언은 선거의 핵심문구로 부상합니다.
부시 vs. 듀카키스: 몰락 초래한 영혼 없는 답변
여기서 부시는 조시 WH 부시 대통령입니다. 이라크 전쟁으로 대표되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 아닌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이죠. 1988년 미국 대선에서 조시 WH 부시의 상대 후보였던 마이클 듀카키스는 TV 토론에서 다음과 같은 패널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딸이 강간을 당하고 살해당했습니다. 사형에 찬성하십니까?”
그는 이 질문에 반대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영혼 없이, 성의없게 대답합니다. 동영상을 보면 듀카키스 후보는 뭐가 그렇게 귀찮은지 대충 대답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보고 대중은 듀카키스가 안보에 약하고, 국민의 안전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국민이 가장 중요시하는 문제에 대해 성의 없게 대답하는 모습은 그를 대중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이후 듀카키스는 이러한 이미지를 만회하고자 마가릿 대처의 강인함을 연구해 탱크에 올라타 포즈를 취한 사진을 미디어에 배포했습니다(‘Dukakis in the Tank’ 사진). 유약한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죠. 하지만 과도하게 공격적인 포즈와 바보스러움으로 인해 오히려 이 사진은 상대 후보의 네거티브에 사용됩니다. 어설픈 만회 작전이 지지율 하락에 쐐기를 박게 된 것이지요.
이렇듯 미디어의 위력을 알고 어떻게 잘 활용하는지에 따라 유권자의 반응이 좌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니 정치인은 미디어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죠. 더군다나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미디어 정치가 발달했기에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정치인의 이미지 메이킹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미디어를 똑똑하게 이용하는 정치인이 선거에서 승리합니다.
우리나라 2012년 대선 토론회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많은 분이 2012년 대선 토론회를 포함해 지금까지의 대선 토론회를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미국 대선 토론회만큼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 적은 없지요. 한마디로 재미없는 토론회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2년 대선 토론회가 그나마 기억에 남으실 겁니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후보가 상대 후보에 대해 거침없는 독설을 퍼부으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요.
문제는 이정희 전 후보의 발언이 아니라 대선 토론회 형식 자체에 있습니다. 위의 미국 대선 토론회와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세 후보자가 사회자 한 명을 앞에 두고 카메라만 보고 토론을 한다는 점입니다. 패널이나 청중이 직접 질문하고 답변하거나 후보가 일어서서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은 볼 수가 없습니다. 이름은 분명히 ‘토론’인데 각 후보자 간 대담회에 가깝고 대화가 오갈 때라고는 상대방 후보를 비방할 때뿐입니다.
2007년 대선 토론회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대선 토론은 토론회가 아닌 정견 발표회에 가깝고, 카메라만 앞에 두고 카메라와 토론하고, 사회자는 봉투를 뜯고 질문을 읽고 시간만 재며, 질문 자체는 너무 포괄적이며, 후보는 규칙을 무시하고 상대방을 헐뜯는 데만 집중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렇게 대선 토론이 매번 천편일률적인 이유는 대선 후보 캠프와 선거 방송을 주관하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대선 토론을 행사 치르듯 큰 탈 없이 무사히 치러내야 한다는 중립성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고, 대선 후보 캠프는 토론에서의 예상치 못한 리스크의 발생을 피해야 한다는 이해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후보의 면면을 TV에서 낱낱이 보고 싶어하는 유권자들의 이해관계는 우리나라 대선 토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각자 몸을 사리고 상대 후보를 비방할 때만 공격적이 된다는 점이 한국 정치에서 대선 토론 후보자들이 사용하는 공통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역동적이고 건설적이며 극적인 대선 토론을 우리는 언제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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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씨는 골빈당이시군요
글쎄요. 딱히 논쟁을 즐기지도 않고 댓글을 다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좋은 기사에 이러한 댓글만 있는 것은 별로 좋아보이지 않아 글을 써봅니다.
기사에서 주요 말하고자 하는 것은 토론에 임하는 방식과 그 방식에 의해 유권자들이 느꼈을 감정인 것 같은데요. 제가 보기에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질문을 회피하고 있다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습니다 반면 이정희 전 의원은 공격적이지만 대통령검증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조목조목 잘 이야기하는 것 같아보이고요
물론 이 토론 이후에 진보진영에서도 표깎아먹는 행동이라 욕도 많이 먹었는데요 이정희씨를 변론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 같아도 충분히 물어볼 수있고 유권자들이 알아야 하는 정보임은 틀림없다라고 생각합니다 골빈당이라고 쓰신 생각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