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해 칼럼] 언론진흥기금은 공동체의 자산, 종이신문 넘어 언론 전반으로 저널리즘 생태계 지원 확장해야. (⏰16분)
언론진흥재단, 네 가지 개혁 방향
한국의 언론 상황은 엄중하다. 급변하는 국제사회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량을 키워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국익과 공익, 민주주의를 먼저 생각해야 할 언론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저널리즘의 품질을 높이는 것도, 기자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도, 뉴스리터러시를 통해 성숙한 시민을 육성하는 것 역시 단순한 일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토대로 전문성과 높은 윤리의식을 갖춘 집단이 안정적으로,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이 작업을 맡아야 한다.
그런데 누가 할까?
우리 사회가 그 정도를 감당할 여건이 될까? 다들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또 국민 혈세를 투자해야 할까? 정말 다행스럽게도 한국언론진흥재단이라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언론 생태게의 ‘오아시스’역할을 맡길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그 가치를 제대로 몰랐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지금껏 진가를 발휘할 수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낙하산 인사, 중앙 일간지 중심의 수혜구조, 특정 성향 언론 편애 논란이 재단을 ‘계륵’과 같은 존재로 내몰았다.
이 글은 이러한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네 가지 개혁 방향을 제시한다.
- 첫째,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언론인 중심의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를 독립성을 보장받는 전문가 중심의 개방형 인사로 전환해야 하며,
- 둘째, 언론진흥기금은 언론사의 몫이 아닌 공동체의 자산이라는 점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누구도 오아시스를 독점할 수 없고, 모두가 공동 관리의 책임이 있으며,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공정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어야 한다.
- 셋째, 서울 본사에 집중되어 있어 효율성과 공정성에서 제약을 받는 재단의 사업 중 일부를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 그래야 현장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 끝으로, 기금사업(직접지원, 언론인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등)과 재단사업(조사·연구, 언론외교, 국제교류 등)을 분리하고 특히 기금 운용은 독립적인 관리 주체를 통해 전문성, 투명성, 공정성과 공익성을 높여야 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공공 언론지원 모델이다. 현재처럼 방치하면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될 수 있지만, 제대로 운용된다면 언론 생태계의 ‘오아시스’가 되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재단을 둘러싼 불신과 오해를 넘어서, 실천 가능한 개혁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재단을 통한 민주주의 발전방안을 찾고자 했다.
재단, 뭐하는 곳인가: 언론에 비친 ‘나의 친정집’ 모습
“팔은 안으로 굽는다.” 제아무리 똑똑한 체해도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이해관계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하 재단)을 둘러싼 논란에 한 발을 담가야 할지 망설이면서 목구멍의 가시 같은 게 이 한계였다. 해결 방안은 없을까? 그래서 이 약점을 먼저 고백함으로써, 혹시 모를 불필요한 오해를 줄인 다음에, 할 말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나에게 언론재단은 ‘친정집’이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왔을 때 가장 먼저 반겨준 곳이다. 연구위원으로 저널리즘 생태계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편하게 만나고 배우는 장점이 돋보였다. 현업에 있는 기자, 정책 담당자, 국회에서 일하는 보좌관, 대학과 연구소에 있는 전문가, 심지어 시민단체 분들도 두루 만났다. 세상이 흑백 논리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과 머리를 맞대면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이때 배웠다. 친정 편을 든다는 오해야 불가피하더라도 안팎의 사정을 전혀 모르진 않는다고나 할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한 사람의 능력과 품성 등을 알기 위해서는 어떤 지위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보면 된다. 언론재단이라고 다를까. 우선 재단은 광화문 입구에 있는 20층짜리 건물, 프레스센터의 관리자다. 근처에 덕수궁에 있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와 같은 언론사, 정부 세종청사와 미국 대사관 등이 가까이 있다. 청계천을 끼고 있으면서 교통의 중심지고 또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라 각종 행사와 시위가 이 건물을 중심으로 열린다.
건물의 위치만 인상적인 게 아니라 언론에 아주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몇 가지 사례만 보자. 그중 하나는 [尹 김치찌개 만찬 25일 만에… 언론재단 “내년 해외연수 160여명”](미디어오늘, 24/6/17)이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언론재단이 언론인의 해외연수 규모를 큰 폭으로 늘렸다는 얘기다.
대통령과 언론재단의 관계를 보여주는 건 [언론재단 새 이사장에 김효재 전 방통위 부위원장](한겨레, 23/10/19) 기사에서도 드러난다. 대통령이 문체부 장관을 통해 재단 이사장을 임명할 수 있다는 것과 방통위 직무대행을 한 다음에 ‘포상’으로 옮겨갈 만한 자격이 있는 곳임을 보여준다.
재단이 뭘 하는 곳인지 보여주는 사례는 다음과 같다.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리터러시에도 재단이 참여한다.
- [언론진흥재단, 저널리즘 종합교육센터 4월 개관](미디어오늘, 20/1/9)
- [언론진흥재단, 언론인 대상 생성형 AI 활용 교육](연합뉴스, 23/8/16)
- [한국언론진흥재단, ‘2025년 미디어 리터러시 행사’ 개최](뉴스1, 25/4/14) 등
지역신문 역시 재단의 도움을 받는다.
- [지역신문발전기금은 지역언론 생명줄, 축소·폐지 절대 안돼](미디어오늘, 22/10/13)
- [지역언론 강화 어떻게? 언론재단‘지역신문 발전 포럼’발족](경남도민일보, 25/3/20) 등
- [한국언론진흥재단 초청 세미나 참석하는 조셉 윤 주한 미국대사대리](뉴스1, 25/6/24)
- [한·중 언론인 교류 5년만에 재개… 언론진흥재단 대표단 중국 방문](아주경제, 24/7/1) 등
언론과 관련된 분야에서 재단은 약방의 감초와 같은 존재다. 그렇지만 심의와 규제와 같은 ‘채찍’을 휘두르는 방송통신위원회와 달리 재단의 힘은 ‘당근’에서 나온다. 국민 혈세가 직접 투입되는 건 아닌데 본질은 비슷하다. 정부, 지자체와 공공단체가 언론사를 통해 광고를 집행하려면 반드시 재단을 거쳐야 하는데 그때 10%의 중계수수료를 낸다. 그 액수가 1년에 대략 1,000억 정도가 되는데 그중 70%는 언론진흥기금으로 나머지 30% 정도는 재단의 운영과 사업비로 쓰인다. 법적 근거는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제29조, 이하 신문법)과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6조 1항)이다.
정부 광고는 왜 ‘반드시’ 재단을 통해야 하고 또 준조세처럼 수수료를 내야 할까? 언론사와 광고대행사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었고 법적 논쟁이 벌어졌다. 헌법재판소가 최종 판단을 했는데 ‘합헌’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정부 광고의 대국민 정책 소통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획부터 집행에 이르는 과정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라는 점이다.
“전담 기관을 두지 않으면 광고 유치 경쟁이 벌어져 정부 광고 거래 질서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게 다른 하나고, “재단은 민간 광고대행사에 비해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하고 있으며 수수료는 언론진흥과 방송·광고 진흥 지원 등 공익 목적에 전액 사용된다”는 게 또 다른 근거다. 끝으로, 언론사가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무기로 정부나 공공기관에 광고를 강요하거나 부당한 청탁을 못 하도록 하려는 목적도 있다. 언론계 종사자라면 다들 아는 사실인데 일반 국민은 잘 모른다는 게 문제다.
세 가지 비판: ⑴ 서비스 질 ⑵ 편애 ⑶ 권력 하수인
재단이 하는 일은 어찌 되었든 좋은 일이다. 언론사, 저널리스트, 미디어 교사와 일반 국민 등 혜택을 보는 집단도 다양하고 교육, 지원 또 국제 교류 등은 개별 언론사가 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민간과 시장이 못 하는 일을 정부가 보완하는 것이고 나름의 전문성도 있다. 그런데 재단을 칭찬하고 고마워하기보다는 원망의 목소리가 더 높다. 왜 그럴까? 괜한 시비가 아니라면 뭔가 근거가 있을 터. 그중에서 가벼운 것부터 세 개 정도만 살펴보자.
첫째는, 지원을 받는 진영에서 쏟아지는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다. 기획취재나 언론인 대상 교육 전반에 걸쳐 제기된다.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듣는 얘기로는“웬 놈의 영수증 처리가 그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해외취재 등)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괜한 헛물만 켤 때가 많다,”“해외로 기획취재를 나가려고 해도 재단이 섭외 등에서 제대로 된 도움을 안 준다,” 그리고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는 구독료와 수송료 지원 사업 등의 규모가 너무 작다.” 등이다. 공적 자금이라서 어차피 감사를 받아야 하고 투명성을 높이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볼멘소리를 한다. 속내는 따로 있다고 봐야 하는데 무엇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라는 불편함 때문이다. 즉 언론사들이 내는 수수료를 왜 엉뚱한 재단 사업에 쓰면서 자기 몫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느냐는 얘기다. 얼핏 맞는 말 같은 데 정말 그럴까?
특혜 시비, 즉 먹고 살 만한 언론사만 편애한다는, 라는 두 번째 비판으로 연결되는데 불만의 주체는 주로 인터넷 매체 혹은 지역신문이다. 실제,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재단이 언론사에 직접 지원한 언론진흥기금 중 조·중·동 등 3개 신문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32%나 된다. 총 375억 중에서 조선일보는 41억, 동아일보는 40억, 중앙일보는 37억을 받았다. 정부광고료를 제외한 금액인데 신문우송비와 소외계층 구독료 지원 등으로 직접 지급된 금액이다.
“기자들의 공짜 밥, 공짜 술, 그리고 공짜 해외연수”(민들레, 24/6/28)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재단이 언론의 독립을 훼손한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원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수혜자가 대부분 “KBS·MBC·SBS 등 지상파 3사, 조중동· 한국· 경향· 한겨레· 서울신문· 연합뉴스 등 이른바 ‘전국 단위 주요 언론사’ 소속”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2010년 이후 임명된 이사장도 모두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와 같은 신문사 및 KBS와 YTN 출신이다.
아니, 가뜩이나 ‘기레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언론사가 많은데 제대로 된 언론사에 지원을 집중하는 게 맞지 않나? 양질의 뉴스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야 그나마 다른 언론사도 보고 배울 거 아냐? 절반의 진실이라는 게 문제다. 법적 근거인 신문법에 잘 나와 있다. 원래 이 법의 뿌리는 전두환 정권이 언론 통제를 목적으로 제정했던 언론기본법(1980년)이다. 민주화 운동으로 1987년에 폐지되고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로 대체됐다.
그러다가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신문, 방송과 뉴스통신 등 매체별 구분이 필요했고 그 연장선에서 2005년 신문법이 제정된다. 그러나 방송법과 뉴스통신법과 달리 이 법에서는 ‘언론’이라는 단어를 ‘신문’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한다. 언론의 중심에 신문이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인 신문을 국민의 혈세로 지원하는 건 이런 까닭에서다. 그렇다고 무조건 지원하는 건 아니다. 신문은 ‘수단’이고 ‘목표’는 민주주의다. 이 법의 제1조에 잘 나와 있는데 한번 보자. “이 법은 신문 등의 발행의 자유와 독립 및 그 기능을 보장하고 사회적 책임을 높이며 신문산업을 지원ㆍ육성함으로써 언론의 자유 신장과 민주적인 여론형성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내용이다. 풀어보면, ‘발행의 자유와 독립 및 그 기능을 보장’ ‘신문산업을 지원ㆍ육성’ ‘언론의 자유 신장’은 모두 ‘사회적 책임’과 ‘민주적 여론형성’을 위한 것이고, 이를 통해 성숙한 민주주의를 달성하자는 약속이다. 만약 이 계약이 지켜지지 않으면 언론, 특히 신문에 대한 특혜는 소멸한다.

목적보다 수단이 더 중요할 수는 없다.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독립’된 언론은 자칫 독이 될 수 있으며 헌법 제21조에 그 내용이 나와 있다. 즉, “언론ㆍ출판의 자유”를 갖는 주체는 ‘모든 국민’으로 언론사나 언론인이 아니다. 그들이 공론장을 독점하고 사유화할 권리가 없다는 뜻이고 그나마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제37조에 있는“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는 대상은‘모든 국민’으로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재단의 직무에는 이 합의가 잘 반영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신문의 진흥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게 많다. 꼭 기억해야 할 몇 개만 짚어보자. 제31조 3항에 있는“한국 언론매체의 해외진출 및 국제교류 지원”이 그중의 하나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닌 사람”은 신문 등의 “발행인 또는 편집인이 되거나 인터넷뉴스서비스의 기사배열책임자가 될 수 없다”(신문법 제13조)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내용이 해외언론을 인수하거나 합병하라는 뜻은 아니다.
‘국제교류’라는 항목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간접적인 활동에 속한다. 달리 말하면,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과 같은 역할에 언론이 나서라는 뜻으로, 구체적으로는 ‘국제뉴스’와 ‘언론외교’ 등이다. 재단이 미국과 중국 언론인을 초청하고, 해외에 연수를 보내면서, 전쟁과 경제위기 등에서 외신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건 이 직무의 연장선이다.
제35조에 있는“독자 권익 및 언론공익사업 지원”이 또 다른 영역이다. 민주주의에서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역할을 하는 뉴스생태계를 제대로 가꾸는 건 생산자인 언론만이 아니라 소비자인 국민의 공동 책임이다. 그런 맥락에서 재단은‘미디어 리터러시’‘독자권익센터 운영’ ‘뉴스포럼 및 토론회’ 및 ‘공익 캠페인’과 같은 사업을 한다. 그밖에, ‘자율심의 지원’과 ‘청소년 및 소외계층 구독료 지원’사업 등도 생태계 차원의 접근이다. 재단의 주요 고객에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대상인 일반 국민(학생 포함)과 언론외교의 대상인 국제사회도 포함된다는 뜻이다.
덧붙여서, 재단이 위탁받아 관리하는 이 ‘당근’이 특정 언론사(특히 종이신문)가 아닌 ‘언론산업’의 몫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법의 제2조에서 밝히고 있는 대상은 “신문, 인터넷신문, 인터넷뉴스서버스와 잡지”다. 당장 이 법의 명칭도 ‘신문 등’으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재단의 직무를 밝힌 제31조에도 관련 내용이 나온다. 제1항은“언론산업 진흥에 필요한 사업”이다. “한국 언론매체의 해외진출 및 국제교류 지원”(3항)과 “언론산업 진흥 등을 위한 조사·연구·교육·연수”(5항)에도 특정 매체가 아닌 ‘언론’이라는 단어를 쓴다.
끝으로, 가장 심각한 비판은 재단이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언론의 독립을 훼손한다는 불평이다. ‘당근’을 사용해서 정권에 우호적인 언론은 편애하고 비판적인 언론은 지원에서 소외시킨다고 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가 있는데 무엇보다 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이 낙하산으로 임명된다. “소금 먹은 사람이 물을 찾는다”라는 말처럼 자신을 뽑아준 대통령과 정치권에 코드를 맞출 수밖에 없다. 진보나 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데 당연히 부작용이 생긴다.
“언론진흥재단인가 ‘극우진흥’재단인가?”(민들레, 24/12/3)란 기사를 한번 보자. “윤석열 정권 임명 인사들이 임원진에 오른 뒤 국민 세금으로 극우 단체들의 행사비를 지원해 주는가 하면 극우‧수구 언론에 정부 광고도 몰아준 것으로 드러났다.”라는 내용이다. 한겨레신문이 2024년 11월 28일 보도한“‘바이든-날리면’ ‘후쿠시마’ 가짜뉴스 몰이…지원금 몰아준 언론재단”이라는 기사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신생 단체 등 보수 성향 언론 단체들에 대한 …… 지원이 급격하게 늘었고,”이는“공적 자원을 특정 정파를 지원하고 특정 언론을 공격하는 데 쓰는 것”이란 지적이다.

‘등잔 밑 어두운’ 속사정… 어쩌면 지금이 개혁 기회?
평소 언론에 관심을 주지 않으면 재단의 이런 속사정은 잘 모른다. 오죽하면 ‘등잔 밑이 어둡다’라고 했겠는가. 대선이나 총선 때마다 방송법 개정을 두고 한바탕 난리가 나는 것과 비교해도 재단은 늘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다. 정식으로 출범한 2010년 이후 대통령 공약에서 이 문제가 거론된 적은 없다. 간혹 국정감사를 통해 언론의 주목을 받을 때가 있지만 그것도 앞에 나온 얘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정치권이 봤을 때는 정말 ‘계륵’과 같은 존재라 해법은 없이 소음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잘 모르는 ‘당근’이라 언론, 특히 주요 신문사에서 의도적으로 침묵하는 것도 한몫한다. 만약 국민 다수가 이 사실을 안다면 지금처럼 언론에 과도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그것도 국회의 통제도 받지 않으면서, 사용하도록 버려두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당근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이런 분위기와 관련이 깊다. 즉, 외부에서는 알지 못하도록 소란을 만들지 않는 대신에 이해당사자 간 갈등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조정하는 방식이다. 그게 뭘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헌법재판소를 통해서 또 관련 법을 통해서 ‘당근’은 당분간 없어지지 않는다. 정부의 광고 규모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앞으로 파이가 더 커질 것은 당연할 터. 그래서 각자 이해관계가 다른 진영이 서로 다른 해법을 제안한다. 단, 언론인이 재단의 임원을 독식하는 것이나 언론에 할당된 혜택은 줄이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다.
그중에서 가장 절박한 건 지역의 신문사다. 지역별로 재단을 만들 테니 그 수익을 독립적으로 처리하도록 해달라고 한다. 재단이 관리하면 지방이 소외될 수밖에 없으므로 지방세 개념으로 자신들이 필요한 곳에 쓰겠다는 발상이다. 만약 그렇게 못하겠다면 제 몫을 늘려달라는 게 타협책이다. 다시 말해, 언론진흥기금의 사업 중에서 신문사에 도움이 안 되는 사업을 줄여서라도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늘려야 한다고 본다. 2024년 기준으로 약 30%에 불과한 비중을 최소 50%까지 늘리고 생존에 도움이 되는 구독료 지원 사업 등을 늘려야 한다는 관점이다.
당근의 크기를 줄이거나 아예 나누자는 의견도 있다. 중앙지를 비롯해 광고대행사의 생각인데 재단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당근을 제때 나눠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역시 자신들과 무관한 사업에 돈을 쓰는 게 달갑지 않아서다. 먼저 줄이자는 건 중계수수료를 10%에서 5%만 낮추자는 얘기다. 그렇게 하면 개별 언론사의 영업력(즉 영향력)으로 더 많은 광고를 수주해 이윤율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재단의 독점권을 아예 없애자는 의견도 있다. 헌법재판소를 통해 이미 확정판결이 난 상태지만 계속 커지는 당근을 언제까지 재단이 독차지하게 놔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재단 사업 중 상당수는 지난 20년째 계속되는“그 나물에 그 밥”이고 지금 상태로는“죽 쒀서 개 주는 꼴”(즉 특정 이익집단의 떡고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물론 제 몫을 지켜야 할 재단과 감독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런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부 광고는 원래 공공재라 언론이 제 몫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겨우 공적 기금을 조성하는 토대를 만들었는데 그걸 허물 이유가 없다고 본다. 잘못 쓰거나 못 쓰는 문제를 잘 인지하고 있어 조만간 개선책이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문체부 수석전문위원실은 이와 관련해 “지역신문발전기금 전출 규모 확대, 신규사업 발굴 등을 통해 언론진흥기금 여유자금 운용구모가 과다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재단이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조사·연구, 독자 권익 및 언론공익사업 지원 등 언론진흥기금 사업과 유사한” 분야는 “언론진흥기금으로 이관해 기금재원 활용성을 높이고 공적 사업이 국회 심의를 거쳐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답변했다

한 발 더 나가서 이번 기회에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자는 관점도 있다. 숙명대 강형철 교수가 제시한 방안이다. 그는 먼저 이 당근이 뉴스 사막화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 근거로 “공적으로는 필요하나 시장에서 공급되기 어려운 언론인 교육, 품질 기준 제공, 저널리즘 연구 등의 순기능을 강화”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재단 직원이 전문성을 축적하지 못하는 원인도 “정권이 바뀌면 그간의 중요 업무가 흐지부지되고 새 정부가 언론에 영향을 미치려는 새로운 일이 부상하는 것”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거 특보단, 정치인, 고위 공무원 출신은 이사진에서 배제”함으로써“ 정부는 ‘지원만 하고 간섭은 못하는’ 효율적이고 독립적인 구조”를 만들 때라고 주장한다.
언론재단을 위한 제언: 네 가지 미래 전략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지난 20년 이상의 궤적을 돌아보면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정치권이 나서기에는 탈만 많고 성과는 안 나올 ‘계륵’이고 자칫하면 권력이 부당하게 개입한다는 오해만 낳는다. 재단을 친정으로 생각하는 나조차도 그간 뭐가 달라질까 하는 냉소에 빠져 있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라는 심정이랄까. 서울 본사에서 일괄적으로 수수료를 걷어서 집행함으로써 지역 소외를 부추기는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역언론재단을 만들어 파이를 나누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줄다리기 경기에서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할 바를 다해야 하는 그런 상황인 것 같다. 2025년 우리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중요한 선택을 앞둔 상태고 국제사회에서 재단은 아주 드문 모델이다. 미국과 유럽 어디에도 재단과 같은 규모, 인력과 재원을 모두 확보한 곳은 없다. 군부독재가 언론 통제를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태생적 한계’는 민주화 운동을 통해 극복한 상태고 법률로 안착한 상태다. 현재 상태에서 재단은 ‘언론 생태계의 오아시스’로 자리를 잡았고 한편으로는 언론산업을 살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복원할 수 있는 중추 기관이 됐다. 겉으로 보면 ‘계륵’이지만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천리마’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만약 재단이 천리마가 된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정부가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개별 언론사는 엄두를 못 내는, 단기적 이해관계가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맡을 수 있다. 우선 ‘누구나’ 저널리스트가 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프랑스식 ‘저널리즘 자격증’과 같은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대학에서도, 개별 언론사에서도 제대로 된 언론인 교육을 못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재단만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권력이 언론을 길들일 수 있다는 우려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면 된다.
특파원을 포함해 갈수록 품격이 떨어지는 국제뉴스를 강화하는 것도 재단이라면 가능하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한미동맹과 패권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한반도 중립지대와 같은 제3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언론 네트워크를 만들 수도 있겠다. 한때 공을 들이다가 지금은 시들해진 언론외교를 확장하는 것으로 한국의 지향점을 노르웨이나 싱가포르 정도로 잡고 그들과 협력해 외교 역량을 키우는 작업이다. 국제사회의 급변기를 맞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면 너무 절박한 문제인데 깃대를 잡고 앞서 나갈 주체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할까? 몇 가지 가능한 전략을 생각해보자.

첫째, 재단의 리더십을 바꾸자. “전쟁은 너무 중요해 장군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라는 말처럼 재단을 꼭 언론인 출신이 경영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그분들이 대부분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당근’을 사유화하는 상황을 더는 내버려 둘 수 없다. 마침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방부 장관도 군인이 아닌 민간인으로 바뀌었다. 정통 관료가 늘 차지했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소벤처기업부장관에는 LG와 네이버에서 실력을 증명한 전문가로 채워질 것이라고 한다. 재단은 그렇게 하면 안 될까? 마침 신문법에는 임원의 자격을 따로 정한 규정도 없는 상태다. 주류 언론 출신이 아니어도, 꼭 언론 경험이 없어도, 언론이 민주주의와 맺은 사회적 계약만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전문가라면 추천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마침 방송법 개정도 진행되는 상황이니 이번 기회에 재단의 의사결정 구조도 바꾸자.
둘째, 재단과 언론진흥기금이 ‘언론사’의 몫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산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법안을 정비해서 이 내용을 명확하게 만들면 제일 좋지만 지금 상태로도 무리가 없다. 예를 들면, 언론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언론산업 진흥, 언론인 교육, 미디어 리터러시’등은 기금 사업으로 분류하고 간접 사업에 해당하는‘국제교류, 언론외교, 저널리즘 연구와 조사’등은 재단 자체 사업으로 나누는 방법이다. 한편으로는 전문성을 축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언론과 직접 관련되는 사업은 ‘독립적 기금관리위원회’ 등을 통해 투명성, 효율성, 공정성이라는 세 마리의 토끼를 잡으면 된다. 운영 방식도 언론사를 대상으로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저널리즘 복원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한국연구재단처럼 공모하면 된다.
셋째, 재단의 역할 중 일부를 (특히 기금 사업과 관련한 영역) 지역으로 분산하는 것도 필요하다. 재단에 대한 비판 중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는 방안인데 지역사무소의 예산과 인력을 획기적으로 늘리면 될 일이다. 지금은 부산, 대구, 대전과 광주에만 있는데 이를 제주, 강원권과 경기권 등으로 더 늘리는 게 시작이다. 만약 기금위원회의 위상과 역할 등이 새롭게 정비되고 운용 방식도 달라지면 지역사무소로서도 자체 역량을 쌓을 수 있고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지역뉴스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각 지역마다 양질의 오아시스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끝으로, 종이신문과 지역신문사 등에 편향된 법 적용을 언론매체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 법안에 ‘신문 등’이 이미 규정되어 있는데 지원과 교육, 혜택의 우선순위를 종이신문에 두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으면 된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언론생태계를 울창하게 만든다면 굳이 지원 대상에 차별을 둘 필요가 없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각자 제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되는 데 그 출발점은 문호를 개방하는 일이다. 전통 언론사(특히 종이신문)의 몫을 인정하더라도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함께 하는 환경을 만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