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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콜드케이스] 미디어를 통해 반영·증폭·구성되는 문제적 현상과 사고방식을 ‘캡콜드’ 김낙호 교수가 분석합니다. 이번 케이스는 영화와 ‘정치적 전유’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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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4월 8일 인터뷰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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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정치적이다

아도르노, 서정주, 김수영, 이어령


서정시의 정치성은 그 비정치성에 있다(아도르노). 가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1947)라는 시는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없어 보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 만약에 그 시를 읽으면서 ‘정치 따위는 이런 아름다운 시에 비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잖아’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탈정치의 감흥이야말로 이 시의 정치성인 셈이다. 탈정치만큼 정치적인 게 또 있을까. 그건 서정주의 친일 부역과 신군부 하에서의 권력지향적 행위(‘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등)와 상관없이 그 시에 정치성을 부여한다. 그게 그 시의 정치적 역할이다.

왼쪽부터 아도르노(위키미디어 공용), 서정주(한국학중앙연구원), 김수영(출처 미상), 이어령(위키미디어 공유).

오래전 시인 김수영은 문학이 참여라고 말했고, 평론가 이어령은 문학은 순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 참여를 이야기한 김수영은 정치권력과 멀리 떨어진 찌질한 (그래서 더 위대한) 소시민의 삶을 살았다. 반면 예술의 자율성을 주장한 이어령의 삶은 정치적 권력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이어령이 초대 문화부 장관이 되자 황지우는 “이어령의 순수는 도금이었다”고 씹는다.

예술은, 그것이 참여를 표방하든 순수를 표방하든 이미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김수영과 이어령이 치고받은 참여 vs. 순수 논쟁에 관해 황지우는 김수영의 편에서 ‘문학은 이미 현실/세계에 던져져 있다’고 확인한다. 문학은, 예술은 태생적으로 정치적이다. 정치적으로 잉태되고, 정치적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그때 ‘정치적’이라는 표현은 ‘관계적’이라고 바꿔도 무방하다. 오늘날 대중문화, 특히 영화(드라마) 속에서 그 정치성은 어떻게 발현되는가.

파묘, 건국전쟁, 삼체, 사운드 오프 프리덤


[건국전쟁]은 그 정치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 영화를 만든 사람도 그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도 정치적 목적을 숨기지 않는다. 그건 극우 보수의 뿌리로서 이승만을 다시 세우려는 욕망이다.

[파묘]를 소비하는 일부 관객은 장르영화의 상상력을 역사적 사실로 혼동한다. 그 일부 관객에게 영화 속 ‘쇠말뚝’은 그저 ‘1%의 가능성’으로 표현된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99%의 역사적 사실이 되며, 그 쇠말뚝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할 때 오히려 그것을 ‘토착 왜구’, ‘일제 앞잡이’의 역사 왜곡이라고 공격하며 분노한다.

미국도 우리 사정과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김낙호(캡콜드) 교수의 지적에 따르면, 큐어넌(QAnon) 음모론에 힘입어 [사운드 오브 프리덤]은 [기생충] 이후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저예산 독립영화가 됐다. 미국 극우 음모론을 마케팅 연료로 사용한 엔젤 스튜디오의 영악함은 기어코 [사운드 오브 프리덤]의 대박 흥행을 이끌어냈다.

최근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삼체]는 어떤가. 중국인 작가가 당국의 검열 때문에 원작에서는 드러내지 못한 ‘문화혁명’에 관한 묘사는 작가의 확인을 거쳐 드라마 속 출발점이 됐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문제는 해석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삼체] 속 문화혁명을 자신이 공격하려는 정치적 공격 대상에 빗대어 구실 삼는다.

캡콜드는 당파성에 작품을 종속시켜 영화(드라마)를 해석하는 경향을 우려하면서, 우리나라 영화 [파묘]와 [건국전쟁], 미국 영화 [사운드 오브 프리덤] 그리고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를 서로 다른 유형의 ‘정치적 전유’ 사례로 예시한다. 이들 대중예술을 둘러싼 ‘정치적 전유(아전인수)’에 관해 좀 더 깊이 이야기해 보자.

당파성 시대의 영화:
파묘, 건국전쟁, 삼체, 사운드 오브 프리덤

정치적 전유란 무엇인가

정치적 전유


민노: 최근 화제가 된 영화(건국전쟁, 파묘, 사운드 오브 프리덤)와 드라마(삼체)를 둘러싼 정치적 전유에 관해 이야기하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전유’란 용어는 80~90년대 인문사회과학 서적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이런 단어가 낯선 분들도 많을 것 같고요.

캡콜드 님께서는 ‘전유’를 ‘점유’라고도 표현할 수 있고, 문화 비평 용어로서 ‘자기 것이 아닌데 애초에 자기 것인 양 취한다’는 용례로 쓰인다고도 말씀하셨고요. 이 점에 관해서 일단 이 인터뷰의 독자에게 먼저 설명드리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아서 짧게 이야기했습니다. 앞으로 인터뷰에서 ‘전유’는 그 맥락에 맞게 가급적 좀 더 평이하고 쉬운 용어로 달리 표현이 가능하다면 달리 표현하겠습니다.

영리한 무지: 비평 권력의 해체와 인터넷 대중의 탄생


민노: 아도르노의 지적처럼 모든 것은 이미 정치적입니다. 모든 것이 정치적이라면 이들 영화와 드라마에 관한 정치적인 해석이 굳이 문제 되는 이유는 뭘까요. 통상의 정치적 해석과 ‘정치적 전유’는 어떻게 다를까요.

캡콜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흐름이 있는데, 이전 인터뷰에서 ‘비평권력의 해체’ 현상을 짧게나마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비평적 권위를 가진 목소리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권위를 채운 건 ‘이성’이라기보다는 ‘공감’이었습니다. 평론가의 비평은 대중의 공감과 대립항이 아니지만, 그걸 대중은 대립항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동시에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정보가 대폭발했고, 모두 그만큼 똑똑해졌죠. 적어도 우리는 모두 똑똑해졌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그리고 비평적 권위의 붕괴를 상징하는 분기점 같은 사건, 심형래의 영화 ‘디 워’를 둘러싼 소동이 발생했죠.

그때 비평적 권위를 누리는 일부 비평가는 대중에게 고압적 태도를 보여줬습니다. 큰 실수였죠. 비평가와 대중의 괴리, 그 골은 더 깊어졌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누적되며 오늘날 비평 권력은 붕괴했고, 작품을 둘러싼 공감 너머 진지한 대화와 토론의 문화는 거의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대중문화, 특히 영화나 드라마를 창작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자신의 정치적 당파를 위한 수단으로 생산하거나 ‘가둬놓고’ 해석하는 경향이 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현상을 ‘정치적 전유’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제가 전유에 관해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인 양 취한다’고 말한 이유는 이런 맥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건국전쟁, 왜 이승만인가

반공으로 이룬 삼위일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민노: [건국전쟁]은 해석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영화 전체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재정립하려는 프로파간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캡콜드: 제가 오히려 먼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왜 이승만인가’ 이승만 재평가 움직임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보수의 핵심은 자기 긍정입니다. 내가 올바른 기반과 전통 위에 서 있다는 자기 확인이 필요하죠. 진보의 에너지가 불안과 갈등이라는 다이내믹한 상황에서 저항으로 도출된다면, 보수의 에너지는 전통과 안전, 그 기반 위에서 생겨납니다.

한국에서 가장 안정적인 보수 이데올로기는 반공입니다. 반공은 전두환, 박정희, 이승만을 모두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만능 키워드죠. 사실 전두환, 박정희, 이승만을 각각의 통치 철학으로 긍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민주제라는 기준에서 치명적인 약점들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 셋을 보수의 뿌리로 긍정할 수 있는 건 ‘반공’이고 반공을 국시로 삼은 건 이승만입니다.

반공으로 이룬 보수 삼위일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각각 위키미디어 공용.

반공의 아버지 이승만, 자기 긍정의 아이콘!


캡콜드: 즉, 반공이라는 한국 보수의 문화적 정체성의 근원, 반공의 시조새, 반공의 아버지는 이승만으로 수렴하는 겁니다. 이승만을 재발견하지 않으면 안정의 근원으로 올라갈 수 없는 거죠. 박정희는 친일파 경력에 독재와 쿠데타라는 결함이 있고, 전두환은 제2차 쿠데타를 통해 독재 군부정권을 연장했지만, 이들을 이승만의 직계로서 ‘반공’이라는 큰 울타리로 묶어버리면 스스로 자신을 긍정할 수 있어요.

독재자였고, 민간인을 학살했지만, 결국 이승만이 내세울 수 있는 건 항일독립운동의 경력 외에는 반공이고, 건국이라는 것도 반공국가로서의 남한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게 보수가 스스로 자기 정체성의 주춧돌로 삼고 있는 거고요. 조선일보의 ‘이승만 다시 세우기’ 프로젝트인 ‘거대한 생애 이승만’ 연재(1995)로 거슬러 올라가면 벌써 30년째죠. 이승만은 보수에게는 자기 긍정의 아이콘인 셈입니다.

민노: 이승만은 너무 낡은 이미지라는 생각도 듭니다. 영구 집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이나 민간인 학살(4.19)과 같은 역사적 과오도 너무 치명적이고요.

캡콜드: 세련된 뭔가 필요한 게 아니라 ‘반대항’이 필요한 거니까요. 보수적으로 기울어진 장년층을 상대로 K-팝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20대 젊은 보수들도 무슨 세련된 뭔가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세련됨의 반대에 있는 뭔가가 필요하죠. 지향점보다는 반대항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내가 뭔가 엿먹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 그런 ‘적들’의 모습이 있어야 한단 말이죠.

그러니까 굉장히 역설적인 이야기인데, 내가 반대하는 놈들이 뭔가 세련되고 예쁘고 폼나고 그렇게 나오면 우리편은 그 반대로 해야 하는 거예요. 투박하고, 못생기고, 그럼에도 호소력이 있고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거죠. 그렇게 진보의 대립항, 반대항이 필요한 거고, 그런 점에서는 이승만은 보수의 문화적 아이콘인 거죠.

민노: [건국전쟁]으로 보수가 얻는 건 뭘까요. 뭔가 있긴 할까요.

캡콜드: 자기 긍정이죠. 그걸 더 할 수 있게 된 거고요. 이제 우리 보수도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에 관해 영화도 만들고, 심지어 그걸 나름 큰 흥행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는 존재다! 이승만이라는 아이콘을 히트시킬 수 있는 강력한 팬덤의 힘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 그러니까 우리 팬덤을 긍정하는 거죠. 우리는 아주 강력한 팬덤이다! 이게 자기 긍정이죠.

[파묘] 공격하는 [건국전쟁]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건국전쟁을 덮어버리기 위해 파묘로 분풀이”
“진실의 영화에는 눈을 감고, 미친 듯이 사악한 악령들이 출몰하는 영화에 올인하도록 이끄는 자들”
“대한민국이 어디서 왔고, 누구 덕분에 이렇게 잘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

김덕영(‘건국전쟁’ 감독), 자신의 페이스북, 2024.02.26.

민노: 다른 감독의 영화를 대놓고 비난하고, 자기 영화를 “진실의 영화”라고 말하는 모습은 좀 황당합니다. 거기에 관객에게 봐야 할 영화와 보지 말아야 할 영화를 지정해 주는 태도는 어이가 없는데요. 이건 검열보다 더한 사전 주제 선정이죠.

가짜 대립항


캡콜드: 현상만으로 이야기하면 우선 김덕영(건국전쟁 감독)이 말한 ‘좌파’라는 게 아주 불분명하죠. [파묘]가 좌파적인가요? 항일은 좌파적인가요? 김덕영의 발언은 ‘내가 싫어하는 건 좌파’라는 식인데, 오히려 항일이나 반일은 이승만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요소임에도 자신의 대립항을 ‘좌파’라고 설정해 버리니 그런 억지를 부리게 되죠.

민노: [파묘]의 관객이 영화 속에서 ‘항일’ 코드를 읽어내려는 욕구는 ‘쇠말뚝’ 논란처럼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 간의 혼돈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적 상상력을 현실에 되살려 여전히 현존하는 친일 기득권을 비판하겠다는 좋은 취지도 있는 것 같고요. 그건 바람직한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윤석열 정부의 홍범도 장군 흉상 제거와 같은 일제강점기하에 벌어질 법한 일이 21세기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육사 충무관. 2020년 당시 모습. 왼쪽에 홍범도 흉상이 보인다. 지금은 철거됐다. 왜 2023년 대한민국 육사에서 항일 독립운동가의 흉상이 철거되어야 하는가. 위키미디어 공용.

캡콜드: 네, 긍정적으로 보지 못할 것도 없겠죠. 다만 그 과정에서 가짜 대립항을 만들고, 실제 정치와 역사를 해석하는데 ‘영화 속 상징'(허구)를 마치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거, 그게 잘못이라는 거죠. 우익 정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과거를 아름다웠던 시절로 프레이밍할 수 있는가. 일본을 중심에 놓고 보면 답이 안 나와요. 모든 게 엇갈리죠. 그래서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반공’을 중심에 놓고, 조금이라도 ‘공산당’ 혹은 ‘북한’, ‘소련’과 관련이 있으면 그냥 다 뽑아버리는 거죠. 그래서 홍범도 장군 흉상 제거 같은 황당하고 참담한 일이 벌어지는 거고요.

반공이라는 철 지난 전략


민노: 반공이라는 전략은 지속 가능하다고 보세요?

캡콜드: 북한이 떡하니 존재하니 그걸 지렛대 삼아서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무슨 대단한 전략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아무리 바보라도 북한이 ‘공산주의 사회’과는 전혀 다른 봉건적 세습 체계라는 건 알 거고요.

민노: 우익 꼰대의 ‘반공’ 이데올로기나 반공 프레이밍이 20대에겐 어필할까요? 제가 보기엔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오히려 더 클 것 같은데 말이죠.

캡콜드: 아마 그러리라고 봅니다. 결국 지금 20대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나이 드신 반공 우익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문화도 다르고, 사회적인 성장 배경도 완전히 다르니까요. 그 둘, 소위 ‘이대남’으로 불리는 보수화된 20대 남성과 60대 이상의 나이 든 보수 우익은 굉장히 다른 결의 보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생계형’ 젊은 보수의 세계


민노: 그 둘, 젊은 보수와 늙은 보수의 차이는 뭐라고 보세요.

캡콜드: 젊은 보수는 소위 분배 정책 혹은 여성이나 장애인, 이민자, 이주노동자에 대한 지원정책에 반대하는 일정한 공감대를 가진다고 봐요. 일종의 생계형 보수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자신은 초경쟁사회에서 엄청 스트레스 받으면서 그 경쟁을 버티고 있는데, 다른 누군가가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오히려 특혜나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늙은 보수의 이데올로기와는 별 상관 없는, 공정의 이름을 빌린 ‘반(反)평등’에 오히려 더 가깝죠.

민노: 사회·경제적 객관 지표상 남녀 격차는 매우 심하고, 그 격차는 이상헌 박사의 말씀처럼, 그 자체로 차별은 아니지만, 격차가 심하면 차별적 성향을 당연히 띨 수밖에 없는데요. 오히려 여성이 차별에 항의하고 피해의식을 느껴도 시원찮을 텐데… 왜 젊은 남자들이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는 걸까요. 그러니까 객관적인 지표와 정반대 인식과 사고방식을 가지는 이유는 뭘까요.

캡콜드: 거시 지표는 당장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과는 별 상관이 없어요. 사람은 당장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을 기준으로 세계를 인식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예를 들어 거시적으로 경기가 좋아지고, 고용률이 높아져봤자 내가 백수고 취준생이면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잖아요.

가령 20대 후반 30초 취준생 남자 입장을 가정해 보면요. 여성의 유리 천장이나 남녀 고용률 격차나 임금 격차가 OECD에서도 가장 높다 뭐다 하는 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인 거예요. 당장 자신은 군대에서 2년 허비하고, 취업 준비하고 있는데 주변에 자신과 경쟁하는 건 군대에도 가지 않은 여자 학우들인 거죠.

그런데 여자라는 이유로 무슨 무슨 가산점을 받는데요. 그러면 군대도 안 갔다 오고, 내가 군대에서 뺑이치는 동안에 취업 준비하고, 무슨 무슨 가산점까지 받으면, 당장 그렇게 비례의원으로 금배지 다는 20대 여자 국회의원을 보면, 내가 불이익당하는 것 같죠.

민노: 네,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단계, 그리고 취업하고 나서 몇 년 동안은 아주 일시적이지만 여성이 오히려 좀 더 유리할 수 있죠. 물론 결혼을 둘러싼 돌봄 노동이 대두되는 시기에 돌입하면 여성이 거의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경향성을 보이지만요.

캡콜드: 그렇죠. 거시적인 시점, 무슨 산에 사는 신선 같은 시점으로는 세상을 볼 수가 없어요. 그냥 자기 경험과 자기 범위 내에서 본 걸 세상에 투사하고, 확장하는 거죠. 그렇게 보면 20대 남성 일각의 보수화는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걸 해소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과정의 공정이니 뭐니 다 떠나서 우선은 좀 결과 자체가 평등해져야 한다는 거고, 그런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거 좀 이야기가 산으로 간 것 같습니다(웃음). 그 주제는 이상헌 박사께 토스하겠습니다(웃음).

팬클럽 덕질의 즐거움, 진영 속에서 강화된 프레임


민노: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파묘]와 [건국전쟁]을 둘러싼 소동에서 양쪽이 뭐라도 얻은 게 있을까요. 혹은 이 해프닝(?)을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캡콜드: 결국 진영의 자기 동원력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거죠. 여러 팬클럽 활동이 그런 것처럼. 그렇게 진영은 더 강화하고요. 우리도 이제 마음만 먹으면 우리가 애정하는 이승만 같은 캐릭터를 저렇게 띄울 수 있다! 그런 뿌듯한 마음으로 ‘보급 투쟁’에 나서는 거고요. 또 그런 마음의 연장선에서 투표장에도 가고 그러겠죠.

다만 [파묘] 쪽을 보면, 그게 실제 무슨 진영의 대립이 존재한 적도 없기 때문에, 무슨 [파묘] 봤으니까 민주당 찍어야지! 그런 건 아니잖아요. 다만 [파묘]가 재밌는 건 한국에서 보수당 = 친일당. 이런 공식을 만들었잖아요. 그런 프레이밍으로 나경원(의원)을 ‘나베’라고 부른다거나 하는 거고요. 거기에 공교롭게도(?) 새로 취임한 윤석열(대통령)이 미국 쪽에 너무 붙다 보니까 친일 이미지가 강했고요. 그 과정으로 취임 초기에 일본에 퍼주기식 외교를 하기도 했고요. [파묘]의 항일 스토리라인이 빠르게 진영적인 해석을 불러온 건 그런 측면도 있죠.

그런데 사실 윤석열이 친일이라서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의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 쪽 입김이 너무 강한 게 있고, 또 윤석열 정부의 (친일이라기보다는) 몰역사성이 문제라면 문제죠. 그러니까 ‘일본군 위안부’ 같은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중대한 문제를 그냥 대충~ 다 덮어 버림으로써 경제 협력 같은 것만 ‘좋빠가'(좋아 빠르게 가!) 하자는 식으로 접근한 건데, 그게 한국에서 될 리가 없죠.

왜냐하면 한일 관계는 그야말로 ‘특수성’이 작용하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주 민감한 관계인데, 그걸 무시하고 그냥 가려고 하니까 오히려 기존에 보수 정권에 만들어졌던, 박정희 정권 이래 민정당계 거대 보수 정당은 친일이다는 그 프레임만 오히려 강화됐죠.

삼체: 아전인수

민노: [파묘]와 [건국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좀 길어졌는데요. [삼체]와 [사운드 오브 프리덤]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봐야죠. 우선 [삼체]에서 묘사한 중국의 ‘문화혁명’에 관한 미국 내 반응에 관해 말씀해주시죠.

  • 무산계급문화대혁명, ‘문혁’은 1966년 5월부터 1976년 12월까지 중국에서 벌어진 대규모 파괴 운동, 친위 쿠데타, 내란이다. ‘십년 동란’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 마오쩌둥이 주도한 대약진 운동(1958년 2월~1962년 초까지 농공업 대증산 정책)은 참혹하게 실패했고, 그 결과는 삼년 대기근이었다. 이 대기근으로 최소한 2천만 명 이상의 인민이 굶어 죽었다.
  • 문화대혁명은 그 대외적인 명분(마오가 1966년 발동한 ‘이념의 성전’)과는 상관없이 대약진의 실패로 위축된 마오쩌둥의 권력을 ‘홍위병’으로 상징되는 마오 광신도의 친위쿠데타로 복원하려는 기득권의 권력투쟁이 빗어낸 참극이다. 마오쩌둥은 홍위병을 제지하기는커녕 부추겼다.
  • 문혁 10년 동안 최소 수십만 명에서 최대 2천만 명이 희생당했다. 문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베이징 8월 폭풍 사건이 있었던 1966년 8월 18일에서 9월까지 베이징에서만 10,275명이 죽었다.

캡콜드: 이게 참 흥미로운 사례죠. [삼체]를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삼체]는 중국의 문화혁명에서 이야기가 시작해요. 원작자 류츠신이 중국 당국의 검열 압박으로 문화혁명 이야기를 소설 뒤쪽에 몰래 넣는 식으로 썼는데요.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보면, 소설 [삼체]를 문화혁명으로 시작하려고 했다고 류츠신이 직접 말해요. 그런데 그 장면을 보면, 1966년 칭화대학교 캠퍼스에서 홍위병들이 대학교수(물리학자)를 공개적으로 그야말로 즉석 인민 재판을 통해 그 즉시 처형을 집행해 ‘때려잡는’ 장면이란 말이죠.

드라마 [삼체] (2024)는 1966년 칭화대학교, 홍위병의 광기에 의해 희생당하는 한 대학교수의 공개 인민재판과 즉결 처형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넷플릭스 제공.

그런데 미국에서 그 장면을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공화당대로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당대로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그 장면에 이입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그 해석을 유통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단 말이죠.

공화당 진영에서는 저거 봐라. 저게 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캔슬 컬처'(cancel culture; 취소문화) 같은 모습 아니냐. 우리가 진실을 담은 보수주의 정신을 이야기하려고 해도 온갖 대학과 좌파들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취소시키고 있는 거 아니냐. 그렇게 보수 쪽 해설가들이 소셜미디어와 뉴스 공간에 나와서 열심히 떠들어댔어요.

반면에 민주당 진영에서는 저거 봐라. 문화혁명이 보여주는 저 반(反)과학, 반(反)지식이야말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라는 명분으로 권력의 편에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생각과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국가 반역자로 때려잡는 미국 보수의 모습이 아니냐, 이러고 있단 말이죠.

사실 양쪽 다 해석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들인데, 그걸 재빨리 자기 진영의 이야기로 끌어와서 그걸로 설전을 벌이는데, 그게 무슨 합리적인 토론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게 전혀 아니고, ‘이거 보래요~’ 하는 식으로 상대 진영을 조롱하고, 우리 쪽 영향력을 과시하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소셜미디어 시대의 사회적 토론이라는 게 실상은 자기네들 팬덤 동원해서 세 과시하는 게 중요해진 거죠. 그런 환경에서 제대로 된 문화혁명에 관한 토론이 이뤄질 리가 없는 거고요.

사운드 오브 프리덤: 음모론 상업주의

민노: 끝으로 [사운드 오브 프리덤] 이야기를 해보죠. 한국에서도 개봉(2024.02.21.)했었네요. 흥행 성적은 미미하지만… 그런데 미국에서는 대박 흥행을 했다면서요?

  • ‘큐어넌'(QAnon)은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 집단 중 하나를 지칭하기도 하고, 그 집단의 이론을 총칭하기도 한다. 위키백과는 ‘큐어넌’을 “인터넷 커뮤니티 4chan 게시판에서 유래한 미국의 극우 음모론의 일종”이라고 소개한다. 그 소개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큐어넌에 따르면, 세계의 경제와 정치를 통제하는 국가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가진 딥스테이트(deep state)라는 비밀 조직이 국가 전복을 노리고 있다. 이들은 사탄을 숭배하고, 국제 규모의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한다. 이것이 소위 ‘피자게이트(Pizzagate)’ 음모론인데, 트럼프는 이들의 국가 전복 음모를 막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여기에 섞어 넣는다.
  •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자 그 패배가 사실은 부정선거 때문이라는 음모론의 배경을 제공하면서 극우파에게 인기를 얻어 빠르게 퍼져나갔다.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다.
  • [사운드 오브 프리덤]의 감독은 자신이 큐어넌 음모론자라는 사실을 부인했지만, 영화의 원작자와 주연 배우인 제임스 카비젤은 열렬한 큐어넌 음모론자로 알려져 있다.
  • 원래 이 영화의 배급권은 ’20세기 폭스’에서 ‘디즈니’로 넘어갔지만, 디즈니가 개봉하지 않고 묵히는 바람에 결국 중소배급사인 엔젤 스튜디오로 넘어갔고, 제작한 지 2018년에 촬영된 영화는 2023년에서야 개봉됐다.
  • 엔젤 스튜디오는 마케팅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했고, 짐 카비젤이 주연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감독이자 우익 성향의 배우인 멜 깁슨이 이 펀딩을 적극적으로 알렸고, 이 펀딩은 2주 만에 7천 명이 참여해 목표액인 500만 달러 모금에 성공한다.
  • 아동성범죄에 관련한 음모론을 꾸준히 설파하는 주연 배우 제임스 카비젤은 이 영화 홍보차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여러 음모론을 이 영화와 엮어서 이야기해 논란을 일으켰고, 엔젤스튜디오는 음모론과 이 영화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런 논란은 우파 성향 관객들을 자극해 이들은 할리우드와 좌파 성향의 언론 등 기득권이 아동 인신매매 이슈를 덮기 위해 이 영화를 덮으려고 한다는 음모를 펼치고 있다.
  • 개신교 근본주의, 과격 트럼프 지지자, 대안 우파를 비롯한 강성 우파가 적극적으로 호평하고, 멜 깁슨, 일론 머스크, 도널드 트럼프, 이방카 트럼프, 벤 샤피로, 조던 피터슨 등 미국 보수 성향 유명인도 영화 홍보에 참여했다.
  • 북미에서만 약 1.8억 달러, 해외 흥행 0.6억 달러까지 합쳐서 2.47억 달러 흥행을 기록했다. 저예산 규모 영화로는 [기생충] 이후 미국 내 최대 흥행 기록이다.

캡콜드: 아동 성학대와 인신매매는 절대적인 악입니다. 여기에는 좌파든 우파든 이견이 있을 수 없죠. 그리고 이런 악마적인 절대악은 세상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그걸 분쇄하는 것은 이견의 여지 없이 정의로운 일이죠.

그런데 그런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정교한 시스템이 배경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정치권력과 기업 권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극우 음모론자들은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대중들은 정치권력과 기업 권력의 사악한 음모를 모르지만, 현명한 나는 그 진실을 알고 있어!

그게 큐어넌 등 대체로 많은 음모론의 핵심입니다. 이런 음모론이 우익과 쉽게 결합할 수 있었던 게, 민주당 정권이 집권하는 시기의 연방 정부의 이미지는 너무 거대하고 복잡했습니다. 우익이 그걸 포착하고, 작은 정부, 시장의 자유와 같은 논리를 주장했죠. 그런 맥락에서 우익의 논리와 음모론이 결합한 것입니다.

이런 음모론은 90년대 이후 차곡차곡 쌓였고, 행정 음모론으로 발전합니다. 그 음모를 파헤치는 건 우리 자유주의자의 의무다! 이렇게 망상에 빠진 거죠. [사운드 오브 프리덤]의 원작은 넌픽션 형식이었는데, 하필 원작자와 주연 배우가 큐어넌 음모론자였고요. 그렇게 2억 달러가 넘는 흥행 대작이 됐죠.

민노: [사운드 오브 프리덤] 사례는 정말 흥미롭네요. 음모론 상업주의로 부를 만한 사례 같습니다. 끝으로 대중예술, 영화나 드라마가 현실의 정치적 해석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례는 어떤 게 있을까요.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아서요(웃음). 대중문화와 대중의 정치적 상상력이 이상적으로 결합한 사례 중에서 기억나는 사례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캡콜드: 어떤 대중문화 작품을 ‘미리’ 긍정적으로 읽어내는 것은 조심스럽고요. 그런 평가는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영화 [헝거 게임]의 인사법이 2020년 태국을 뒤흔든 반(反) 쿠데타 정치 개혁 운동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차용된 사례는 대중문화와 정치적 상상력의 이상적인 만남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런 걸 미리 예상할 수는 없지만요. 대중문화 속 상징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죠.

[헝거 게임]의 인사법을 저항 운동의 상징으로 삼은 태국 사례처럼, 더 나은 세상을 열망하는 강력한 문화적 서사를 문화적 공감대로 이끌어내는 상징은 사회를 실제로 변화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

2020 태국 민주화 시위의 상징이 된 ‘헝거게임’ (2012)의 세 손가락 경레. 위키미디어 공용.
2020년 8월 16일, 태국 방콕. 2020-2021 태국 민주화 시위.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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