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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21일 요미우리신문 1면은 “慰安婦・徴用工「覆さず」“(위안부·징용공 ‘뒤집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이재명 대통령 인터뷰를 보도했다. 요미우리 회장이 직접 방한해 진행한 이 인터뷰는 8개 면에 걸쳐 상세히 다뤄졌다.

일본 언론과 정치권은 이를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 변화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인터뷰 전문을 읽어보면 더 복잡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 번 사과했으니 왜 또 사과해야 하나, 이제 다시는 언급할 수 없다는 것은 사과의 태도가 아니라고 한국 국민은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될 때까지 언제든 진심으로 미안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는 발언도 있었다. 이는 사과를 일회적 행위로 보는 일본의 시각과는 분명히 다른 입장이다.

요미우리가 왜 이런 발언들을 헤드라인에서 제외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본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국도 과거사 문제의 현상유지를 받아들였다’는 것이었을 테니까. 이는 언론이 가진 프레이밍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사 해결을 위한 단계적 접근도 제시했다. 역사적 사실의 인정, 진심 어린 사죄, 그리고 경제적 보상의 순서다. “돈 문제나 배상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발언은 경제적 보상보다 역사적 진실과 진정성을 우선시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이런 뉘앙스도 요미우리의 보도에서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

익숙한 언어, 새롭지 않은 접근

인터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 특유의 직설적 화법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책의 일관성과 국가의 대외신뢰”, “국가로서의 약속” 같은 표현들은 역대 정권에서 반복되어온 외교 용어들이다. “허심탄회한 대화”를 여러 번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제시되지 않았다.

한일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한 교수는 “외교부는 이걸로 일단락이라는 입장이며, 일본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추가 노력에는 소극적”이라는 관측을 전했다. 이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역대 정권에서도 정치 지도자의 의지와 외교 실무진의 접근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다.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2023년 강제동원 해법은 외교 실무진에게는 이미 정해진 틀이다. 이를 변경하거나 재해석하는 것보다는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그들의 우선순위다. 인터뷰 이후 피해자 단체와의 소통이나 일본과의 새로운 협의 계획이 발표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대통령이 말한 ‘대전환’이 실제 정책으로 구현되려면 더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 의지가 필요하다. 과거의 경험은 관료적 관성이 정치적 의지를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민단체들의 비판과 그 의미

이재명 대통령의 인터뷰에 대해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촛불행동 등이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의 핵심 지적은 “이완용의 매국합방도 약속이라 지켜야 하는가”라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반문에 집약된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반발이 아니다. 국가 간 약속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합의를 절대시한다면, 역사적 정의는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다. 실제로 한미 FTA는 두 차례 재협상됐고, 한일어업협정도 재협정을 거쳤다. 국제 관계에서 합의의 수정이나 재협상은 드문 일이 아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재명 대통령 자신의 과거 발언과의 일관성 문제다.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대해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 치욕”이라고 비판했던 그가, 이제는 “국가적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변화를 피해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자명하다.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은 피해자들의 오랜 투쟁의 결과였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지적했듯이, 이는 단순한 법적 판결이 아니라 “인권과 존엄 회복을 위한 선언”이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이 판결의 이행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사법부 판결의 의미는 무엇인가.

촛불행동은 또 다른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2015년 합의를 맺은 박근혜 정부와 2023년 해법을 추진한 윤석열 정부는 모두 국민에 의해 탄핵됐다. 대일 외교 정책은 탄핵 사유의 일부였다. 그렇다면 새 정부가 이들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 적절한가.

시간이라는 변수

현재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6명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도 대부분 고령이다. 시간은 일본 편이다.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 이 문제는 ‘해결’된 것인가, 아니면 ‘소멸’된 것인가.

한 피해자의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가 다 죽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이 말은 과거사 문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실현될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현실적 제약은 분명히 존재한다. 미국의 한미일 협력 강조, 일본의 완고한 입장, 국내 정치적 압력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약이 피해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앞으로의 과제

이재명 정부가 진정한 ‘대전환’을 원한다면, 몇 가지 구체적 행동이 필요하다.

먼저, 피해자들과의 진정한 소통이다. 형식적 면담이 아닌 실질적 대화를 통해 그들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둘째, 정치적 리더십의 발휘다. 과거사 문제를 실무진에만 맡기지 말고 청와대가 직접 관여해야 한다. 특히 외교부의 관료적 관성을 극복하려면 정치적 의지가 필수적이다.

셋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문제의 해결이다. 2016년 8개국 14개 단체가 공동 신청한 위안부 기록물 2,744건은 전문가들로부터 “대체불가능하고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일본의 분담금 압박과 제도 개편 요구로 등재가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는 지원을 중단했고, 문재인 정부는 간접 지원에 그쳤다. 이재명 정부는 예산을 복원하고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 일본이 돈으로 역사를 막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넷째, 포스트 피해생존자 시대를 대비한 체계적 기록과 기억 사업이다. 이재명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존엄을 지키고 역사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고, ‘여성인권과 평화재단’ 설립을 공약했다. 연구-아카이브-전시-교육을 아우르는 종합적 추진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미우리 인터뷰에서 보인 소극적 태도와 이런 적극적 공약 사이의 간극이 우려스럽다. 말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당장 TF부터 구성해야 한다. 생존자 6명이 지켜보고 있는 지금, 시작이라도 해야 한다.

결론: 시간이 없다 – 6명의 증인 앞에서

요미우리는 ‘뒤집지 않는다’를 헤드라인으로 뽑아 일본의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역사는 신문 헤드라인으로 쓰이지 않는다. 시민들의 기억과 피해자들의 증언이 살아있는 한, 과거사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내를 언급한 이재명 대통령에게 상기시키고 싶다. 이에야스는 오랜 인내 끝에 목표를 달성했지만, 우리 피해자들은 80년을 기다려도 아직 정의를 보지 못했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이재명 정부가 요미우리 인터뷰에서 보인 신중함과 공약에서 보인 적극성 사이에서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가. 선택의 시간이다. 6명의 ‘위안부’ 피해자와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탄핵 정권의 굴욕외교를 그대로 이어간다면, 과연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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