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리포트] 830명이 5000만 원씩 내서 인수하고 3년 만에 흑자 전환한 KECC의 실험… 종업원 지주회사 세 가지 걸림돌은 동료들 설득과 금융 차입, 노조를 보는 사회적 불신. (⌚6분)
종합 엔지니어링 기업 한국종합기술(KECC)📌은 상장사 최초의 종업원 지주회사다. 2017년 직원들이 회사를 샀다. 노동자들이 상장 기업 경영권을 통째로 인수한 것으로 한국 기업 역사에 유례 없는 사건이다.
2017년 3월 KECC가 매각 대상으로 나왔을 때 노조위원장 김영수(현 KECC홀딩스 대표)는 고민에 빠졌다.
그룹 본사인 한진중공업홀딩스의 잘못을 비판하며 매각을 반대할 것이냐. 아니면 어떻게든 대안을 제시해 회사와 협의하여 위기를 마무리 짓느냐. 김영수는 후자를 선택했다. 대안은 종업원의 직접 인수였다.
📌 한국종합기술(KECC):
1963년 공기업으로 설립된 코스피 상장사. 경부고속도로, 지하철 1호선, 한강종합개발, 청계천 복원, 인천국제공항 등 핵심 건설 사업에 토목 엔지니어링 업체로 참여했다. ‘엔지니어 사관학교’라는 별칭으로 국토 개발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종업원 지주회사는 ‘오너 리스크(Owner Risk)’를 막고 기업을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킬 대안 가운데 하나다.
- 대주주 이익과 법인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데도, 기업 이사회에서는 대주주 이익에 부합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 KECC 지배구조는 민주적이다. 직원(출자자)의 직접 투표로 대표이사를 뽑는다. 대표는 경영권을 위임 받지만 상법에 명시된대로 주요 의사결정은 이사회가 숙의로 의결한다. 이사도 직원이 직접 뽑는다.
-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서 민생연대가 주최한 김영수 강연이 열렸다. 강연 내용을 정리했다.

오너, 직원, 법인 모두 위너.
- 종업원 지주제는 오너, 직원, 법인 모두 윈-윈(Win-WIn)일 수 있다. 오너 입장에서 회사를 전혀 모르는 제3자에게 매각하면 회사가 공중분해되거나 분식회계·횡령 등 시비로 송사에 휘말릴 수 있다. 어떻게든 오너의 약점을 공격해 매각 대금을 낮추려 할 공산이 크다. 남에게 팔면 과거 잘못으로 골치 아플 수 있지만, 사정을 아는 직원에게 넘기면 안전하게 회사를 팔고 나갈 수 있다.
- 직원은 고용 불안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새 주인이 조직을 어떻게 구조조정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종업원이 회사를 인수하면 월급 말고도 소정의 배당 소득을 얻을 수 있다. 퇴직금으로 치킨집 창업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 법인 입장에서 정말 좋은 대안이다. 보통 M&A 과정을 거치면 회사는 부실해진다. 원래 공짜는 없다. 500~1000억 원의 외부 자본이 인수해 기존 회사를 살린다 해도,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회수(Exit)해야 한다. 구조대인 줄 알고 FI(Financial Investor, 재무적 투자자)를 불렀는데, 그들이 알고 보니 이자까지 쳐서 살점을 떼어가는 고리대금업자일 수 있다.
직원들은 어떻게 샀는가.
- 한진그룹은 2017년 주력사인 한진중공업의 경영난으로 계열사 매각을 추진했다. 계열사인 KECC 임직원 830여 명은 KECC홀딩스 법인을 설립하고 1인당 5000만 원을 출자해 385억 원을 모았다. 추가로 145억 원을 대출받아 KECC 경영권을 포함하는 주식 52%를 사들였다.
- 김영수는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봤다.
- 첫째, 직원을 모아야 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돈을 내도록 하는 일이었다.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부동산 담보 대출이 있을 노동자들이 현금 5000만 원을 내놓는 일 자체가 그야말로 난관이었다.
- 둘째, 종업원들이 확보한 주식을 담보로 대출해줄 금융기관의 존재였다. 김영수는 “145억 원의 금융 차입이 정말 힘들었다. 상장사 대주주 지분 52%를 (담보로) 제공하는데, 3대 시중은행 심사에서 모두 부결됐다”고 술회했다. 당시 은행 심사역 판단은 이랬다고 한다. “돈을 회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보자. 직원 900명이 은행 앞으로 몰려와 자리를 깔고 담보권 행사를 막으면 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것이다.” 극단적 상황을 가정하고 대출을 불허한 것이다. 김영수가 시중은행이 아닌 증권사를 찾았던 이유다.
- 셋째, 사회적 인식 전환이다. 직원들이 회사를 산다고 하니 업계에서는 “주인 없는 회사는 망한다”, “배가 산으로 간다” 등 먹구름 낀 전망을 내놨다. 인수자로 당초 ‘M&A 강자’ 호반건설이 아닌 직원들이 나서자 KECC 주가가 폭락했다. 인수 후에도 KECC 영업 임원들은 발주처가 만나주지 않아 고생했다. “KECC는 노조가 회사를 먹어서, 너랑 밥 먹으면 모든 게 다 까발려진다”는 이유로 KECC 직원들을 피했던 것이다. 노조에 대한 한국의 불온한 시선도 극복할 과제였다.
획기적인 지배구조… 이사회가 정상적이라고?
- KECC 우리사주조합은 대주주 인정 불가, 대출 규제 등 법적 제약으로 회사 인수에 나서기 어려웠다. ‘KECC 홀딩스’라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한 이유다.
- 출자자들이 조합원인 KECC엔지니어협동조합이 KECC홀딩스 지분을 100% 갖고 있고, KECC홀딩스가 상장사인 한국종합기술 지분의 53%를 갖고 있다.
- KECC 사례에서 특기할 부분은 지배구조다. 민주적으로 이사회를 구성한다. 5000만 원을 낸 정규 출자자는 1인 1표를 갖는다. 5000만 원 이상 출자할 수도 없다. ‘1주 1표’가 아닌 ‘1인 1표’를 위해서다. 동등한 출자를 통해 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했다.
- KECC에는 21개 사업 부서가 있다. 부서별로 출자자 수에 비례해 이사를 선발한다. 그렇게 KECC 출자임직원협의회 이사회 40인이 주요 결정을 의결한다. 오너 회사와 달리 이사회가 각 부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만큼 대표이사의 경영·투자 계획은 검증 대상이다.
- “경영적 판단이 소액 주주를 위한 것인지, 법인을 위한 것인지, 대주주를 위한 것인지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이사회 구조다.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이사회는 리스크 헤지에 큰 역할을 한다.”
- 대표이사 후보들 공약 설명회, 후보 간 토론회는 물론이거니와 대표가 선임한 보직자는 해당 부서 출자자들 투표를 거쳐야 한다. 사실상 임명동의제다. 상명하복이 조직 문화로 강고한 건설 회사이지만, 남다른 지배구조가 직원과 보직자 ‘관계’를 온화하게 만든다.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 매출·영업 성과가 나아지고 있다. 인수 당시인 2017년 매출액은 1996억 원에 그쳤지만 2025년에는 4129억 원을 기록하며 2배 넘는 성장을 보였다. 수주 잔고도 2017년 3262억 원에서 매년 670여억 원 증가해 2025년 8716억 원으로 늘었다.
- 인수 초기 적자 늪에서 허덕였다. 2019년 3년 연속 적자 위기 당시엔 임직원 스스로 임금 반납을 결정하며 자구책을 내놨다. 실제 2017년 78.2억 원 적자였는데 지난해에는 85.4억 원 흑자를 봤다. 2020년 64.7억 이익을 보며 흑자 기조로 전환했다.
- 고용이 늘고 있는 것도 사회적으로 고무적이다. 2017년에는 임직원이 1187명이었다. 해마다 100명씩 늘어 2025년 1933명에 달한다. 상당수 영업 이익이 주주 배당으로 빠져나가는 주식회사와 또 다르다. 고용은 기업이 사회에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여다.
- ‘3·3·3’ 원칙을 지키고자 한다. 영업 이익의 30%는 직원 급여 인상분으로 쓰고, 30%는 출자자에게 우선적으로 성과 보상한다. 나머지 30%는 투자 재원을 위한 회사 유보금으로 쟁여 둔다.

“우리 같은 기업이 많아지길 바란다.”
- 종업원 지주회사를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2세들의 가업 승계 거부 등으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문을 닫거나 매각하려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 2세들은 회사를 팔아서 돈으로 달라고 하지만 세금 문제로 매각도 쉽지 않다.
- 김영수는 “영국과 일본 등 선진국처럼 신탁 회사를 만들어 놓고, 대주주가 직원들이 참여한 신탁에 회사를 팔면 양도세를 100% 감면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KECC는 건강한 노조가 경영의 공공성을 뒷받침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노조가 건강한 것은 아니다. 자기 밥그릇 싸움이나 조합 이기주의에 갇힌 노조도 다수다. 김영수는 국민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만약 공공성을 가진 국민연금이 KECC 주식을 10% 샀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와 같은 지배구조에서는 국민연금이 가진 공공성과 가치를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
- 김영수는 꿈이 있다. “우리 같은 기업을 20~30개 이상 꼭 만들어내야 한다.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현 한국경제인협회)이 정부를 상대하듯, 종업원 소유 기업들이 협회 같은 걸 만들어 ‘세제 혜택 달라’고 요구하고 싶다.(웃음)”
- “종업원지주제가 KECC 한 곳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만든 새로운 기업 문화와 경영 방식도 사라질 수 있다. 기업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나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와 같은 기업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공동체적 정신으로 오너 리스크를 막아내고, 기업 성장과 주주 이익을 도모하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종업원들이 하나 된 힘을 모아 종업원지주제 회사를 설립하려 할 때, 우리는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전해주고, 필요하면 국민연금처럼 2대, 3대 주주로 참여해 인수 초기 자금 조달의 어려움 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김영수가 지난해 8월 쓴 책 ‘직원들이 회사를 샀다.’ P.276)
종업원소유제도, 법이 필요하다.
- 송태경(민생연대 사무처장)은 “대주주들이 지분을 매각하고 싶을 때 시장보다 직원들에게 매각하는 게 이익이 되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며 “직원들에게 지분을 매각할 때 양도소득세를 감면해주고 편의를 제공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 실제 미국의 차입형 ESOP(Leveraged ESOP) 제도는 법인이 돈을 빌려 대주주 주식을 매입한 뒤 직원들에게 나눠주는데, 대주주는 세제 혜택을 받는다. 영국 정부도 2014년부터 EOT(Employee Ownership Trust), 즉 ‘종업원소유신탁’을 법제화했다. 기업의 지분 과반을 직원 신탁에 매각하면, 매각 대금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전액 면제해주는 파격적 제도다.
- 지난해 한정애(민주당 의원)는 대주주가 보유 지분을 우리사주조합에 매각할 때 소득세와 법인세를 감면하는 내용의 소득세법·법인세법 개정안을 내놨다.
- 한정애는 “종업원소유제도는 종업원들이 자사 주식을 장기 보유하도록 지원하는 제도로서 이윤 공유와 참여 경영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핵심적 정책 수단”이라며 “주주의 보유 지분 종업원 매각에 대한 세금 감면 제도 도입은 우리사주제도 활성화와 바람직한 기업 승계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