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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왜 시민의 삶에 대한 정책 논의는 사라졌는가? 실종된 민생 의제 복지, 노동, 교육을 정치의 중심으로. (남재욱 /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6분)

지난 6.3 지방선거는 여러 모로 역대급이라 할 만한 선거였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일부 시민이 투표를 못하는 터무니없는 사태가 일어나 큰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투표율은 61%로 역대 지방선거 중 두 번째로 높아 선거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매우 높음이 확인됐다. 내란과 탄핵으로 정권이 교체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열린 선거였음을 고려할 때, 선거결과 역시 양대정당 모두 완전히 실망도, 만족도 할 수도 없는 절묘한 양상으로 귀결됐다.

민생 의제를 사라진 지방선거 뉴스와 공약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가장 이례적인 부분은 지방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지방민의 삶에 대한 논의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높은 투표율에서 알 수 있듯이 선거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았지만, 그 관심이 지방민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지를 둘러싸고 달아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거물급 정치인이 보궐선거에 참여하고, 여권과 야권 각각의 내부분열 양상이 격화된 데 따른 것이었다. 지역 간 격차가 점차 더 커지고, ‘지방소멸’이라는 충격적인 표현이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은 시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히 의아한 일이다.

혹시 내가 뉴스를 편향되게 보았기 때문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올해 1월 1일부터 6월 3일까지 ‘지방선거’ 키워드에 해당하는 기사 92,803개의 주제를 기사제목과 키워드를 기준으로 분류해봤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정치와 선거과정 자체에 대한 기사로 69.6%를 차지했다.

그러면 민생은? 교육·복지·돌봄·주거·일자리·보건의료·생활비와 같이 민생과 직접 관련된 주제는 7%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지역개발이나 성장·인프라 투자에 관한 내용으로 민생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지방선거에서의 개발, 인프라 논의가 흔히 그렇듯 지역민의 삶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남재욱 분석.

지방선거가 지역민의 삶과 유리된 채 치러지는 현실은 당선자들의 공약 구성에서도 확인된다. 아래 그림은 선관위 홈페이지에 게시된 시·도지사 당선자의 5대 공약 중 민생 관련 공약이 차지하는 비중의 추이를 살펴본 것이다. 좁게 정의하든 넓게 정의하든, 민생공약의 비중이 점점 더 감소해왔음을 알 수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지방선거는 점점 더 시민의 삶과 유리되고 있다.

남재욱 분석.

민생 의제가 사라진 이유

지역 간 격차가 증가하고, 지방소멸 문제가 심화되며, 돌봄·일자리 등의 정책에서 지방정부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상황인데도 민생 의제가 지방선거에서 갈수록 외면받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왜 그럴까? 상이하면서도 결합 가능한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한 가지 해석은 지방선거 유권자들이 민생 의제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지방선거에서는 흔히 ‘줄투표’ 현상이 나타난다. 유권자들은 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사람을 찾기보다는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를 그대로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후보자는 민생 의제 해결을 내세우기보다 중앙정치에서 쟁점화되는 의제를 제시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지역의 민생 의제가 소외되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또 다른 해석은 복지, 노동, 교육 등 중요한 민생 의제들이 사실상 쟁점화되지 않는 합의적 의제가 되는 것이다. 당선권 안의 주요 정당들이 민생과 관련된 정책에서 별다른 차별점 없이 비슷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민생 의제가 선거 쟁점이 되기는 어렵다. 다만 합의적 의제가 되었다고 해서 그 방향이 반드시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쪽은 아닐 수도 있다. 민생 의제의 경우 재원을 마련할 구체적 방안이 필요하고, 분배를 둘러싼 갈등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외면하는 쪽으로 합의가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마지막 해석은 의제 설정을 주도하는 정당과 언론이 민생 의제를 중심 의제로 선택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정당이 민생 의제를 쟁점화하기 원하지 않아 ‘내란세력 척결’이나 ‘집권세력 심판’과 같은 중앙정치 쟁점을 중심으로 지방선거에 나서고, 언론이 이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 경마식 선거보도로 일관할 때 정치와 언론 모두에서 민생 의제는 그 중요성에 비해 적게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지금은 과거와 달리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 등 전통적 언론에 대한 대안적 의제설정 통로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채널은 기존 언론보다 조회수에 더 민감하고, 복잡한 의제를 회피하면서 찰나적인 이미지에 주목한다.

지난 5월 13일,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철거민,노점상,홈리스,장애인,세입자의 불평등 해소 정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서울시청 앞에서 열리고 있다. 6.3 지방선거는 높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민생 의제 등 정책이 실종되었다는 비판이 크다. 빈곤사회연대.

산더미 처럼 쌓여가는 복지, 노동, 교육 민생 의제

6.3 지방선거에서 민생 의제를 찾아보기 어렵게 된 진짜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민생 의제가 빠진 정치는 지방선거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집권 여당은 ‘보완수사권 폐지’와 ‘당원주권’이라는 쟁점을 놓고 계파 간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그 싸움에서 민생에 대한 견해 차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제1야당은 선거 이전이나 이후에도 여전히 내란 책임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겨워하고 있으며, 당대표 퇴진과 징계를 둘러싸고 내분에 휩싸여 있다. 양당의 내부 다툼이 어떻게 끝나든 민생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2026 6.3 지방선거 단체장 당선자 워크숍. 2026.06.21.(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더불어민주당.

지방선거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시민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지, 그리고 다가오는 사회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지는 정치적 의제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다. 문제는 우리가 복지를, 노동을, 교육을, 민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영역의 수많은 문제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경제지표가 개선되고 있다지만 청년고용은 최악이고, 불평등은 오히려 증가하리라는 우려가 크다. 노인인구의 증가는 돌봄체계와 노후소득보장체계 모두의 개선을 필요로 하고, AI의 부상은 교육과 노동 모두에서 중요한 도전이 되고 있으며, 기후위기 대응은 물론 그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사회문제의 관리도 시급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가는데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큰 지위에 있는 사람들 다수는 애써 ‘돈 룩 업’(Don’t look up!)하고 있는 꼴이다.

지난 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이재명 정부 보건복지정책 1년 평가 토론회’ 가 열렸다. 복지 의제 등 시민들의 삶과 직결된 민생 의제는 지방선거에서 실종되었다는 비판이 높다. 참여연대.

민생을 정치의 중심으로

정치권이 지금이라도 마음을 고쳐먹고 시급한 민생 의제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지만, 정치권의 각성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이 스스로 민생 의제를 이야기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시민단체 및 시민단체와 연결된 전문가들이 정당의 역할을 대신해 시급한 노동, 복지, 민생 의제를 제기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시민단체와 전문가에게 기대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정치구조에서 민생에 무관심한 정치인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시민의 힘이다. 시민이 정치에 자신의 힘을 제대로 투영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민이 선거에만 갇히지 말고 자신의 일상적 삶의 요구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대의제 민주주의가 봉착하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 과정에 대한 시민참여를 확대하는 ‘민주적 혁신’이 하나의 대안적 가능성을 열어준다. 

민주적 혁신은 시민참여의 확대를 통해 전통적 대의제 정치를 쇄신하고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직업적 시민운동가가 아닌 일반 시민이 정치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민생이 실종된 정치와 같이 대의제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고 보완하며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는 일련의 활동을 가리킨다. 시민의회, 공론화위원회, 주민참여예산제, 시민발의제와 같이 우리가 한번쯤 들어본 제도들이 ‘민주적 혁신’의 여러 형태다. 

게티이미지.

그간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일부 활동적인 시민이 제한적인 범위로 참여했을 뿐 대의제 민주주의와 본격적으로 결합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이런 제한적인 범위를 넘어 돌봄, 복지, 일자리, 교육, 주거와 같이 삶과 직결된 광범위한 영역에서 시민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논의하며 정부나 지자체가 이를 실행한다면 민생이 빠진 정치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길을 열 수 있다. 

물론 민주적 혁신이 외면 받는 민생 의제를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며, 그 자체로 충분한 방법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쟁점을 정의하는 것이 권력의 최고 수단이다”라는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의 말처럼, 시민들이 정치인이 결정한 쟁점에 대해 투표하는 수동적 존재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둘러싼 쟁점을 제기하는 능동적 주체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민주적 혁신을 통해 시민이 스스로 의제를 정하는 것은 민생이 빠진 정치에서 벗어나는 길일 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시민권력을 실현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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