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해 칼럼] 한미동맹을 넘어 한국이 가야 할 제3의 길은 어디인가? ‘한반도 중립지대’ – HP(하버 프로세스)를 제안한다. (⏰42분)

한반도 외교의 좌표를 다시 설정할 때다. ‘한반도 중립지대’는 그 상상의 시작점이자, 미래를 향한 항로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주의는 자칫 “바람 따라 돛을 올리는 외교”로 흘러갈 수 있다. 방향 없이 흘러가는 항해는 결국 한미동맹으로의 회귀이거나, 끝없는 표류에 다름 아니다.
국제질서는 지금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는 균열을 보이며, 브릭스와 글로벌 사우스를 축으로 다자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군사와 경제에서 여전히 초강대국인 미국조차 ‘세계의 경찰’을 더는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의지는 있을지 몰라도, 역량은 부족하다. 늙은 부모가 어른이 된 자녀에게 기대듯, 동맹국에 대한 요구는 앞으로도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 분담금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까. 만약 철수라는 카드가 현실화된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지금의 한국은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니다. 스스로 좌표를 정하고 항로를 설계할 만한 역량을 갖춘 나라다. 중립국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중립외교를 실천하는 노르웨이와 싱가포르의 사례는, 한미동맹을 넘어서 자율적 외교를 실현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중립외교를 출발점으로 삼고, 한반도를 중립지대로 전환하며, 궁극적으로 중립국으로 나아가는 전략은 이제 공상이나 구호가 아니다.
낯설어 보여도 이 구상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멀리는 유길준의 항구중립 제안에서부터, 김용중의 중립통일론, 그리고 최근의 중립화 논의까지—중립은 늘 침묵을 깨고 울리는 절규였다. 군부독재가 강요한 침묵조차 그 꿈을 꺾지는 못했다. 다만, 그간 외면당했던 것은 여건이 따라주지 못했고, 실력이 부족했고, 사회적 공감대가 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무엇보다 절실하고, 여건도 예전만큼 나쁘지 않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말처럼, 지금이 바로 그 시작점이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길은 열린다. ‘중립외교 → 중립지대 → 중립국’이라는 전략의 축 위에, 주한미군의 접근거점 기지화,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 핵위험 공동관리체제(K-Center) 구축 같은 실천 과제들이 놓여 있다. 언제까지 ‘늑대의 위협에 시달리는 어린 양’으로 남을 것인가. 이제는 방향타를 다시 손에 쥐고 항해를 시작해야 한다. 한반도 중립지대라는 상상은, 그 항해의 북극성이 될 수 있다.

실용외교의 함정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복잡한 세상만사 너무 계산하지 말고 형편에 맞춰 살라는 충고다. 이재명 정부의‘실용외교’가 지향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25% 올려달라거나 주한미군 분담금을 올려달라고 하면 줄 것은 주되 받을 것은 받는 선에서 타협하고,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전승절에 오라면 그것도 눈치껏 처신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바람 따라 돛을 올리면,”정말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한국호라는 비유를 받아들이면 지금 우리는 바다 위 어느 지점을 지난 중이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배가 제자리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분명 어디론가 흘러가긴 할 터. 행운이 따라 준다면 당분간은 평온한 바다에 더 머물 것이고 안 그러면 자칫 전쟁이나 경제위기와 같은 폭풍우 한가운데로 내몰릴 수 있다. 다만, 정해둔 목적지에 도착하긴 어렵다는 건 분명하다. 변덕스러운 바람에 맡겨 둔 결과인데 무엇보다 애초에 좌표를 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협력을 다지고, 주변국 관계도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라고 밝혔다.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좋은 접근인 것 같은데 주변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당장 미국은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 우려하며 반대한다”라는 견해를 밝혔고, 여기에 맞서 중국은 “미국이 자기 행동에 근거해 중국을 억측하고 비춰보는 고질병을 고치고 중한 관계를 도발하는 것을 중단하기를 권한다”라고 반발했다.
자기들이 뭔데 “감 놔라, 배 놔라” 하냐고 기분 나쁠 수는 있는데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그렇다. 냉정하게 보면 논란거리를 먼저 제공한 것도 우리다. 내란범으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치적 중 하나로 내세운 게 ‘한미동맹’ 강화와 관련된 얘기다. 취임 직후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밝힌 그는 “(한미)동맹의 영역은 계속 확장될 것”이고, “미국과 함께 세계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해 나가는 ‘자유의 나침반’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괜한 소리가 아니라 실행에 옮겼다.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에 맞서 미국이 주도한 ‘민주주의 정상회의’ 주최국이 됐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했으며, 모든 유럽 국가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포탄을 지원했다.

그런데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이 달라지고 있다. 윤석열과 달리 “한미동맹도 중요하고 한미일 안보협력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나라하고 원수질 일은 없지 않나”, “국익 중심으로 중러(중국·러시아)와의 관계도 잘 유지하면서 물건도 팔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대통령 취임 후 그는 3년 연속 참가했던 나토 정상회의에 가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이란과 이스라엘 전쟁이라는 변수가 있긴 했어도 미국으로서는 뭔가 의심을 할 만한 상황이다. ‘실용’이라고 포장을 하면서 속내는 중국과 더 가까워지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
2025년 5월 21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는 수천 명의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한국은 많은 돈을 벌고 있다. 그들은 아주 훌륭하지만, 군사비를 스스로 지불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2025년 기준의 1조 4,028억 원보다 훨씬 많은 “매년 100억 달러(약 13조 7000억원)를 지불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북한을 겨냥한 주한미군의 역할을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부쩍 높아졌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북을 치면 미국 본토에서 장구를 치는 격이다. “주한미군은 북한을 격퇴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미국의 초점은 (북한과 중국에 대한) 억지력 재정립이며, 여기에는 3국(한미일)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다르게 말하면, 중국 견제라는 목표를 위해 한국은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얘기다.
중국은 어떨까?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저 한국을 바라보고만 있을까? 그럴 리가 없을 터. 중국은 지금 현재 금년 (2025년) 9월에 열리는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했으면 한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관계 개선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의도다. 대통령 선거 직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축전을 통해 “중국과 한국은 중요한 이웃이자 협력 동반자”이며 “나는 중한 관계발전을 고도로 중시한다”라고 했던 발언의 연장선이다.
“나무가 흔들리지 않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굳이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싶지 않은데 주변에서 자꾸 흔든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미국”이라는 전략으로‘실용’을 택하겠다는 게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물론 국민 다수는 어차피 선택해야 한다면 동맹 강화가 답이라고 본다. 앞으로는 브릭스(BRICs)와 글로벌 사우스(다수의 개발도상국)가 추진하는 다자주의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진영을 갈아타자는 목소리는 작다.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굳이 한쪽 편에 서는 대신 모호함을 계속 유지하는 건 불가능할까? 패권경쟁과 국제정세를 좀 더 지켜본 다음에 결정하면 너무 늦을까? 워낙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라 누구도 이 질문에 선뜻 답하기는 어렵다. 애초 정답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공 상태는 다른 무엇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스스로 답을 찾지 않으면 결국에는 누군가 만들어준 해법을 따라야 한다. 한미동맹을 넘어 제3의 길을 찾자고 제안하는 건 이런 까닭에서다. 그럼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라는 말처럼 그 첫 단추는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아닐까?
국제사회의 변화
먼저 국제사회의 지형 변화를 살펴보자. 1950년대, 경제력에서 상위 5위에 속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지금 그 자리를 중국, 인도와 일본에 넘겨줬다. 핵무기 보유국만 해도 냉전 초기에는 미국과 소련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북한과 이스라엘이 포함된다. 국제금융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렸던 미국 달러의 위상은 꾸준히 하락했고 국제기구만 하더라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의 경쟁자로 아시아투자개발은행(AIIB)와 브릭스은행(NDB), 상하이협력기구(SCO) 등이 설립된 상태다. 다음의 ‘그림 1’에 설명되어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영역에서 권력의 분산과 이동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다자주의’(multilateralism)가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자주의는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다. 일극(uni-polar)으로 불렸던 미국의 일방주의 정책과 미국은 예외라는 특권 의식에 대한 비판이 핵심이다. 원래 다자주의는 1945년 이후 지금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Liberal Interantional Order, LIO)의 본질이었다. UN, IMF, WB, WTO 등과 같은 국제기구가 이때 설립되었는데 전쟁을 막고, 무역 등의 분쟁을 줄이면서, 함께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자는 게 목표였다.
겉으로는 그랬는데 실제 운용은 달랐다는 게 문제였다. 가령,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UN의 안전보상이사회에서 거부권을 가진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지금의 대만)과 소련에 불과했다. 소련을 제외하면 모두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이용해 이들 기구를 대외정책의 수단으로 만들었다. 필요에 따라 약소국을 불법으로 침략하면서도 미국은 UN을 오히려 방패막이로 삼았고 특히 IMF와 WB 등에서는 미국만 거부권을 행사했다. 미국 달러로만 결제와 저축이 이루지는 상황(즉 기축통화)이었기 때문에 달러를 무기로 사용할 때가 많았다.
위의 ‘그림 1’에서 보듯 냉전 이후 군사력과 경제력의 변화가 생기면서 미국의 이런 일방주의에 대한 비판은 점차 높아졌다. 그중에서도 브릭스의 불만이 특히 높았는데 그들이 원한 건 국제사회에 대한 공동 관리였다. 70년 동안의 국력 변화를 반영한 보다 공정하고 민주적인 권력 질서를 만들자는 얘기였는데 미국과 서유럽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사결정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유사한 기능을 하는 아예 새로운 국제기구를 만들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래서 AIIB, NDB, G20 등이 출범한다. 뭐가 다를까? 과거 식민지로 고통을 받았던 개도국(Globla South)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 국가 간 조약 및 금융 거래 등에서 불평등을 줄이는 것, 군사와 경제, 금융 등에서 집단협의체를 구성함으로써 미국의 횡포를 줄이는 것 등이다.
다자주의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지점은 이해관계가 다층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해당사자가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1945년 전쟁 직후에는 평화만 확보하면 되는 ‘단일’ 전선이었다면 지금은 코로나19와 같은 팬더믹, 기후위기, 사이버 보안, 인권, 종교 갈등 등 ‘복합’ 또는 ‘중층’전선이 됐다. 주권국가에 이어 다국적 기업, 국제기구, 비영리기구와 네티즌에 이르기까지 설득하고 공감대를 찾아야 할 대상도 정말 많아졌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방식의 동맹은 적절한 전략이 될 수 없다. 같은 동맹 간에도 무역, 인권, 안보 등에 있어 이해관계가 다르고, 국가를 초월한 연대가 가능해졌고, 무엇보다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집단 간 협의할 문제가 많아졌다.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참가하는 파리기후협약, 유엔인권이사회와 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을 비롯해 지역 간 협의체인 아프리카연합(AU), 볼리비아동맹(ALBA), 상하이협력기구(SCO) 등이 등장한 이유다.
미국의 변화
이번에는 미국을 보자. 군사력, 경제력과 기술과 지식 등에서 미국은 여전히 세계 1위다. 그런데 겉보기와 달리 미국은 지쳤고, 기저질환도 깊고,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협조가 옛날 같지 않다. 나눠줄 당근이 점차 줄어들면서 더 자주 채찍만 휘두르는 양상이다. 밑에 나오는 ‘그림 2’에 그 변화가 정리되어 있다.

당장 안보만 보더라도 우리가 알던 미국은 없다. 앵글로색슨 연합제국의 필요성 때문이긴 했어도 그때 미국은‘세계의 경찰’로서 돈과 인력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자유무역을 옹호하면서 자신이 축적한 지식과 기술을 공짜로 나눴다. 그런데 이제는 동맹국에도 높은 관세를 매기면서 제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미국 달러를 지키기 위해 약소국을 위협하고 정보통신 등 첨단 기술을 지키기 위해 진영을 구축한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세계경제와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파수꾼”이 아니라“자의적인 군사 개입과 국제규범 무시를 일삼는 불량국가”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까?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극복하지 않으면 장차 어떤 위기를 맞게 될지 모른다. 극단으로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 황혼기에 접어든 제국의 민낯일수 있다. 지도력(leadership)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당근이 부족해지면서 점차 채찍에 의존하는 경우인데 그러다 최악의 경우엔 전쟁이라는 유혹에 빠진다. 지금은 GDP의 5%까지 국방비를 늘리는 정도에 그칠지 몰라도 앞으로 감당하게 될 부담은 점차 늘 수밖에 없다. 밑에 나오는 ‘그림 3’이 그걸 잘 보여준다.

미국이 우방국을 대상으로 분담금을 요구하기 시작한 건 대략 1969년부터다. 공산화를 막겠다는 핑계로 시작한 베트남 전쟁에 막대한 군사비를 쏟아부을 때였다. 한국전에 이어 전선을 동남아로 확대한 터라 곳간은 빠르게 비어갔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조차 군산복합체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나설 정도로 전쟁 중독에 빠진 상태여서 여론도 나빴다. 게다가 전쟁에서 승리할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수렁에 빠진 닉슨 대통령은 끝내 결단을 한다. 앞으로 핵 공격을 받는 정도의 위협이 아니면 미군이 직접 참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국방의 의무는 각국 정부의 몫이고 미국은 군사 및 경제원조만 하겠다는 얘기였다. 국방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해외 기지와 파견 군대의 규모도 줄이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주목받는 주한미군 철수가 본격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다.
미국의 국방예산은 그 이후에 줄었을까? 군산복합체는 베트남전 이후 사라졌을까?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확인됐다. 미국은 오히려 정반대로 갔다. 국방예산은 레이건 임기 첫해 1,575억 달러에서 1989년 2,950억으로 늘었다. 일명 ‘스타워즈 계획’으로 알려진 ‘전략방위구상’(SDI)이 추진되었고 그게 발전된 게 오늘날의 미사일요격 시스템이고 경북 성주에 들어온 사드(THAAD)가 최신형 중 하나다. 그레나다 침공과 리비아 폭격도 각각 1983년과 1986년에 벌어졌으니 본성이 바뀌냐고 할밖에. 돈이 나갈 곳은 많은데 경기 부양을 위해 세금은 감면했으니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의회를 압박해 GDP의 3%까지 국방비를 올리자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충분할 리가 없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국가에 분담금을 늘리라는 요구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순서. 불똥이 튄 곳 중 하나가 한국인데 마침 당시 대통령이 전두환이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터라 미국의 승인이 절실했는데 이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다. 한국은 이때부터 임대료 한 푼 못 받으면서 오히려 엄청난 분담금을 내는 호구가 됐다.
우리가 외환위기로 힘들어할 때 미국은 모처럼 황금기를 누렸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로 당선된 클린턴 대통령은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를 경제로 돌렸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에 버금가는 압박이 동맹국을 향했다. 한국이라고 예외일까? 군수산업과 함께 미국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진 금융서비스 분야를 위한 자본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박이 더해졌다. 외국계 금융기관이 한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또 외환거래를 정부가 통제하지 않는게 핵심이었다. 그게 발단이 된 게 1997년의 외환위기다. 우리 중 일부는 “내탓이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은“남 탓”을 해야 할 위기였다. 외환거래의 빗장이 풀린 상태에서 핫머니로 불리는 단기 투기성 자본이 외환시장을 교란한 게 본질이기 떄문이다.

국제사회는 냉정하다. 전쟁이든 경제위기든 누군가의 피와 눈물은 누군가의 행운이 된다. 그때는 미국의 금융자본이 최대 수혜자였는데 오죽하면‘재무부-월가 복합체’라는 말이 나왔을까.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가 1998년에는 러시아로, 다시 2001년에는 아르헨티나로 번진 덕분이다. 같은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한두 번 나면 그건 운전자의 실수일 수 있는데 툭하면 사고가 나니 다른 데서 원인을 찾아야 했다.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금융질서가 구조적으로 망가졌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때부터 달러를 넘어서기 위한 개혁이 시작된다. 금융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냉전도 끝난 상태라 국방비도 조금씩 줄었다. 클린턴이 취임했던 1993년의 국방비는 3,167억 달러로 GDP의 4%가 넘었지만 1998년에는 GDP의 3% 수준이 2,507억 달러로 줄었다.
2001년 9.11 테러가 터지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고 선언했고, 그 연장선에서 2002년에는 이라크, 이란과 북한을‘악의 축’이라고 선포했다. 그때 악마가 된 국가 중 멀쩡한 곳은 북한밖에 없다. 2003년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고 사담 후세인을 제거했다. 2025년 7월,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했고 지금은 일시적인 휴전 상태다.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국방비가 증가하는 건 불을 보듯 뻔할 터. 2001년 3,350억($)에서 2018년에는 7,260억($), 2024년에는 9,050억($)으로 증가했다. GDP 대비 10% 수준으로 정부가 쓸 수 있는 재량예산 1.8조 달러 중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8,060억 달러로 대략 47%를 차지한다.
그중에서 약 1,000억 달러가 80개국 750곳에 흩어져 있는 미군기지와 대략 24만 명에 달하는 해외 주둔 병력을 유지하는 데 쓰인다(USAfact(2024), CSIS(2025), Congressional Budget Office(2023)). 전쟁은 줄었을까? 2001년부터 지금껏 미국이 개입하는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예맨,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등으로 오히려 늘고 있다. 관세를 올리고, 주한미군 철수를 준비하고, 그러면서도 분담금을 더 요구하는 트럼프를 이해하는 열쇠다.
한국의 변화
마지막으로, 우리의 변화를 살펴보자. 해방 후 반쪽 정부를 세운 게 1948년이다. 곧바로 전쟁을 치렀고 국토는 폐허가 됐다. 그때부터 70년 정도가 지났는데 지금 상황은 정말 놀랍다. 한때 식민지였다가 우리처럼 잘살게 된 국가는 거의 없다. 국내총생산(GDP)은 20억 달러 수준에서 1.87조 달러로 늘었고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6,624달러로 일본을 앞섰다. 국방력 수준은 세계 5위, 국방비만 해도 한해 61조 2천억 원을 쓰는데 우리보다 더 많은 곳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10개국에 불과하다. 겨우 50세 전후였던 평균수명은 84세로 늘었으며 일반인의 키도 대략 10cm 이상이 커졌다. 그만큼 잘 먹고 편하게 살았다는 의미다. 밑의 ‘그림 5’는 많은 성과 중에서도 비교가 가능한 지표만 몇 개 골라 정리한 자료다. 국가경쟁력, 인간개발지수, 민주주의 수준, 문화적 매력 등 여기에 포함하지 못한 지표를 봐도 비슷하다.

달라진 우리 모습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뭘까? 본질적인 두 가지만 따져보자. 그중 하나는 내 몸 하나는 스스로 지킬 수 있고 특히 미국에 대해서도 더 평등한 관계를 요구할 자격이 생겼다는 점이다. 전시작전권? 이제는 당연히 되찾아 와야 한다. 군사력으로 보나 경제력으로 보나 오히려 늦었다. 북핵 변수로 아직은 때가 이르다고 말하면 남들이 비웃는다.
노무현 정부 때 한미 양국이 합의했던 환수 시기는 2012년이었다. 이명박 정부에 접어들어 2015년으로 한 차례 연기되었고 박근혜 대통령 때는 아예 그 시점을 뺐다. 대신에 조건부 전환(Conditions-Based OPCON Transfer, CPOD)이란 기준이 들어갔는데, 준비 상태에 대해 합의할 때 돌려주겠다는 얘기였다.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없다는 것과 그 판단을 미국이 한다는 게 문제였다. 미국은 실제로 이 문턱을 계속 높였고 2025년 지금도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불평등한 한미방위조약도 이제는 바로잡을 때다. 다음의 ‘그림 6’은 그중에서도 꼭 바꿔야 할 것들을 정리한 내용이다. 지금 우리는 미군이 범죄를 저질러도 정당한 형사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 미국이 원하면 국내 어디라도 군사 기지를 둘 수 있고 전략무기를 자의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뭐가 이렇게 심각해?”“왜 이 상태가 지금까지 계속되는 거야?”충분히 제기할 만한 의문이지만 많은 건 우리 탓, 특히 언론의 탓이 크다. 문제가 터지면 호떡 집에 불이 난 것처럼 소란을 떨다가 조금만 지나면 망각하는 게 반복되면서 이 상태가 됐다. 분노보다 무서운 게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듯 이렇게 우리는 70년을 살았다. 낯익은 풍경이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새삼스레 바꿀 엄두를 못 낸다. 그러나 병의 근원을 치유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치료가 안 되는 것처럼 더는 침묵할 수 없는 문제다.

미국을 상대하면서 우리의 정당한 몫을 챙기지 못하는 영역은 더 있다. 가령 미국산 무기를 수입할 때도 우리는 남들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기술이전은 없는 상태로, 그 무기의 종류와 인수 방법, 가격 등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 것 같지만 우리만 바보짓을 한다. 밑에 나오는 ‘그림 7’을 한번 보자.

일본, 대만과 이스라엘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다섯 가지 지표에서 어느 것 하나 못 챙기는 상태다. 자칫 우리가 미국의 눈에 벗어나면 돈을 줘도 필요한 무기를 수입할 수 없다.“우리 돈으로 무기를 사는 데 왜 최소한의 협상도 못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의 압력과 여기에 편승해서 이익을 누리는 군부 엘리트가 너무 견고하기 떄문이다. 그걸 잘 보여준 게 2002년 차세대 전투기 선정 사업 때 벌어졌다.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와 미국의 F15가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었는데 성능과 가격 등 여러 조건에서 라팔이 더 좋았다. 그런데 국방부가 이 상황을 뒤집으려고 나섰고 여기에 저항해 협상 단장이었던 조주형 대령이 양심선을 했다. 어떻게 됐을까? 국방 자주화를 위해 더 좋은 거래를 하려고 했던 당사자는 뇌물죄로 구속됐고 결국 F15가 선정됐다.
안보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주한미군도 영구주둔이 아닌 물 위에 있는 ‘수련 잎’을 뜻하는 접근거점(Lily Pad) 기지로 바꾸는 것도 이제는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개구리가 이 잎을 받침대로 활용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처럼 해외 주둔 미군이 필요에 따라 신속하게 배치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다. 미국으로서도 자국 군대가 장기 주둔하면서 해당 국가의 군사주권을 침해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고 과도한 군사비를 줄이는 장점이 있다. 현재 호주, 싱가포르, 불가리아, 필리핀, 루마니아 등이 이런 방식의 기지를 운용하는 중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국가 정체성을 바꿀 준비가 됐다는 점이다. 그간 우리는 자유주의 진영의‘반공 십자군’이 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지금은 그 전선이 중국으로 바뀌는 중이고 그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고, 미국이 후퇴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가 달라졌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어린애가 이제는 어엿한 청년이 된 상태다. 미국의 ‘호위무사’로 남는 대신에 국제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성숙한 중견국이 될 수 있다.
마침 미국도 우리가 더 많은 역할을 맡아주기를 바라는 중이고 남은 건 실천이다. 방법은? 우리가 닮고 싶은 모델을 정해서 그 방향으로 가면 된다. 예를 들어, 중립형 외교를 하는 노르웨이와 같은 국가로 변신하면 된다. 나토 회원국이면서 외국 군대의 주둔은 허락하지 않고 대외정책에서는 자율성을 추구하는 국가다. 평화유지군에 앞장서면서 미국이‘적대국’으로 낙인찍은 북한이나 이란 등과도 교류한다. 만약 우리가 아시아의‘노르웨이’가 되겠다고 하면 미국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핵 문제를 풀 틈새가 생긴다. 북한의 핵이 미국의 핵 공격에 대한 두려움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핵확산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위기관리에 나설 수 있다.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은 당연히 있겠지만 이어지는 ‘그림 8’과 같은 방법을 기획해 볼 수는 있다. 핵에너지관리기구(IAEA)가 오스트리아에 있으면서 주변국을 핵전쟁의 위협에서 지켜주는 것과 비슷한 방안이다. 가칭‘아시아의 비엔나’방식이라고 불러도 된다. 북한이 봤을 때 미국의 핵 위협이 정말로 통제가능한 수준이 되고 한반도가 안전지대가 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중국도 굳이 언제 핵전쟁이 날지도 모를 폭탄을 이고 사는 것보다 공동 관리를 통해 얻는 게 있다. 문제는 상상력이고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하자는 의지다. 과거와 달리 불가능하거나 미국의 허락을 받을 사안이 아닌데 우리의 상상력이 여기에 못 미친다.

우리 앞에 놓인 세 갈래 길
현재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현상 유지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능한 눈에 안 띄면 좋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미국과 중국이 격돌하는 패권경쟁에서 승자의 편에 서는 게 좋긴 해도 자칫 잘못해서 역적이 되면 낭패다. 명나라와 청나라가 격돌하던 17세기 줄을 잘못 서서 병자호란을 겪었던 일을 떠올리면 된다. 다자질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자칫 미국에 밉보이면서까지 이들과 손잡을 필요도 없다. 당장 먹고 살 걱정을 안 해도 될 처지라 폭풍 한가운데 나설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나무가 고요 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주변에서 우리를 그냥 놔두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밀려서라도 선택은 불가피하다면 우리가 앞서 결정하는 게 어떨까?
다행스럽게도 우리 형편은 과거 그 어느 때 보다 낫다. 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이제는 우리가‘독립적’으로 운명의‘주인’이 될 수 있다. 70년 전의 한미동맹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그때와 지금은 달라도 크게 다르다. 한반도 역사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강하다.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도 우리 눈치를 본다. 한미동맹 강화만 외치던 윤석열 정부가 갑작스레 퇴장하면서 외교에서도 잠깐 한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레이건 2.0으로 불릴 만큼 미국 트럼프 정부의 압박이 드세긴 해도 그때와 달리 지금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정답은 없다. 다들 진리를 아는 것처럼 떠벌려도 “장님이 코끼리 뒷다리 만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작년 겨울, 내란사태에서 경험한 것처럼 정보를 많이 갖고 있다고, 감투를 많이 써 봤다고, 학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더 지혜로운 건 아니다. 국제사회의 석학이라고 다를까? 그들도 각자의 경험과 자신이 서 있는 언덕에서 보이는 풍경을 말할 뿐 전지전능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다음의 ‘그림 8’에 나오는 세 갈래의 길 중에서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 가운데 첫 번째를‘보수의 길’로 불러보자.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정당과 언론, 친미 성향의 엘리트, 대형 개신교 교회 등이 좋아한다. 너무 잘 아는 길이라 자세한 설명이 필요가 없을 듯한데 그래도 몇 개만 살펴보자. 우선, 이들이 봤을 때 오늘날의 성공 배경은 이승만 대통령, 반공주의, 그리고 미국이다. 공산주의라는 악마를 일찌감치 간파해 반공 정권 수립에 앞장섰고 미국을 설득해 한미동맹을 얻어낸 게 이승만의 공로다. 미국은 피 한 방울 안 섞인 우리를 위해 같이 싸웠고 전쟁 후에도 부모처럼 우리를 돌봤다.

동맹에서 얻은 게 너무 많아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믿는다. 한 손에는 핵을 다른 손에는 러시아라는 동맹을 확보한 북한을 상대하는 지금은 더 그렇다. 과거 우리를 속국으로 부렸던 중국이 패권주의를 추구해도 미국만 있으면 괜찮다. 자칫 버림받으면 안 되니까 자존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미국의 뜻을 거스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대행까지 지냈던 한덕수가 트럼프의 관세 압박에 대해 “맞서지 않겠다”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우리의 산업 역량과 금융 발전, 우리 문화, 성장, 부유함은 미국한테 도움을 크게 받은 덕”에서 찾았던 게 이 정서를 잘 보여준다. 당분간은 미국의 시대가 더 계속될 것으로 확신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국제사회의 본질을 고려할 때 동네에서 제일 센 형과 함께 있으면 무서울 게 없다는 심리다.
친일, 반공, 친미 등을 특징으로 하는 기득권에 저항하는 일부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걸 균형외교, 자주외교, 실용외교 등 뭐라고 불러도 되지만 보수와 다르다는 뜻에서‘진보의 길’이라고 해 보자. 두 번째 길이다. 크게 ‘과거’에 대한 평가와 ‘미래’에 대한 전망에서 차이가 있다. 그중에서 평가와 관련해서 먼저 살펴볼 부분은 한미동맹에 대한 손익계산서다. 우리가 도움을 받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전부’ 미국 덕분이라는 건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미국의 지원을 우리보다 더 많이 받았던 많은 국가는 왜 여전히 못 살고 민주화되지 못 했냐고 묻는다. 냉전을 거치면서‘반공’(反共) 전선의 전초기지가 되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군부독재를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과 화해와 공존을 모색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도 비용으로 본다.
민주화 이후에도 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보는 데 그 근거는 남북화해에 대한 미국의 방해다. 실제로 미국은 1994년 체결된 제네바 합의를 먼저 깼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적대적인 정책을 계속했으며, 최소 두 차례(1994년과 2017년)에 걸쳐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준비했다. 북한이 겉으로는 대화하면서 뒤로는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계속했으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싶어도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견해다. 체제 보장을 조건으로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했던 북한을 벼랑 끝으로 내친 게 미국이라고 본다.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안보위기 조장을 통한 이익 실현이 가능하다는 동기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국가이익을 놓고 봤을 때‘앞으로’ 좋을 것보다 나쁠 게 많다는 게 다른 하나다. 적대적 두 진영이 죽기 살기로 싸웠던 냉전은 1980년대 말 끝났다. 러시아와 중국 등 공산권 국가와 외교 관계를 복원하는 걸 시작으로 지금은 이념에 개의치 않고 글로벌 전체와 무역하고 교류한다. 단, 늘 하나의 조건이 문제가 되는 데 그게 미국이다. 만약‘NO’라고 하면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러시아 전쟁 직후 현대자동차가 상트페페르부르크 공장을 단돈 14만 원에 팔고 철수한 것과 삼성과 LG 전자 등이 구축한 유통망과 공급망이 모두 붕괴한 일이다. 2018년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복원하면서 국내 대기업이 철수하고 중동 지역의 해외건설 수주가 전년 대비 44% 줄어들기도 했다.
한미동맹의 모순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데 그깟 돈 몇 푼이 문제야?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말인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되로 받고 말로 주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분쟁이나 갈등에 연루될 가능성인데 경북 성주에 사드(THAAD)를 설치한 것,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한 것, NATO 정상회의에 간 것 등을 통해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중국과 대만 간 전쟁에서도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밑에 나오는 ‘그림 9’를 통해 이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해보자.

“뉴욕에 있는 내 빌딩의 임대료 올리는 것보다 주한미군 분담금 올리는 게 더 쉬웠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로 알려진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100% 우리 돈으로 미국을 고용하는 상황까지도 생각해야 한다. 미국의 보호를 받는 다른 곳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실상은 안 그렇다. 독일, 일본, 이탈리아와 비교해도 우리의 분담금 수준은 너무 높다. GDP 대비 국방비를 이렇게 많이 지출하면서 왜 외국 군대를 주둔시켜야 할지 한번 쯤 질문할 때가 됐다. 게다가 우리만 전시작전권이 없고, 해외 파견 미군 중에서 우리 딸에 있는 미군만 자기가 원할 때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활동 영역을 옮길 수 있다. 북한을 견제하라고 안방을 내줬으면 24시간 북한을 지켜야 하는데 자기 필요할 때는 나가서 딴 일을 보다가 잠깐씩 와서 보초를 쓰는 것으로 보면 된다.
전시작전권 문제도 정말 심각하다. 보수 진영에서는 미국이 우리와 협의해서 행사하는 것이라 ‘환수’라는 용어 자체가 틀린 것이라고 하지만 안 그렇다. 명령권을 실제 행사하는 곳이 한미연합사(Combined Forces Command, CFC)인데 사령관은 미국이 맡는다. 우리는 부사령관이 주어진다. 군대의 속성을 알면 누가 몸통이고 누가 꼬리인지 알 수 있다. 2025년 CFC 사령관은 폴 라카메라(P. LaCamera)로 그는 주한미군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한다. 그를 비롯해 전직 사령관들이 입을 모아 대만 분쟁에 주한미군이 투입될 수 있다고 말한다. 중국은 이런 상황에서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를 공격함으로써 측면 공격을 막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미국 역시 북한이 중국을 돕는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 어떤 경우라도 한반도는 다시 전쟁터가 되고 더욱이 이번에는 핵전쟁이다.
물론 보수는 이런 가정 자체를 거부한다. 중국이 먼저 공격할 때 대만을 방어한다는 것이고 주한미군이 있어 오히려 억제 효과가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 부분도 더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게 진보 진영의 주장이다. 만약 미국이 대만에 각종 첨단무기를 계속 배치할 때 중국이 이를 언제까지 방관할 수 있겠냐는 얘기다. 처지를 바꿔서 중국이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이런 조치를 할 때 미국은 어떻게 나올까? 1962년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한다고 했을 때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경험을 떠올리면 답이 나온다.
그간의 변화로 우리가‘연루’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것도 문제다. 젊고 능력 있는 자식이 부모를 돌봐야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전혀 복잡한 문제가 아닌 게 미국이 봤을 때 한국은 이상적인 자녀다. 무려 70년 이상 군대 엘리트 중 다수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미국산 무기만 사용하고 있으면서, 지금껏 매년 합동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머리는 미국이 팔과 다리 역할은 우리가 맡은 덕분에 작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다. 막대한 분담금을 받으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군사 기지를 사용하고 있는 데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에만 묶여 있지도 않다. 덤으로, 우리는 정보통신, 전자제품, 자동차와 조선 등에서도 선진국이다. 전쟁을 가정했을 때 전투 병력과 장비에 이어 병참 지원 능력까지 모두 갖춘 셈이다. 미국이 NATO에 이어 AUKUS에 한국을 초대하고 한미동맹을‘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굳이 발전시키려고 하는 게 너무 당연하지 않나.
‘제3의 길’
‘제3의 길’에 대해 알아볼 차례다. ‘진보의 길’과 비교해도 닮은 점이 정말 많다. 가령, 동맹에서 얻은 것만큼이나 잃은 것도 있다, 동맹을 강화하면 앞으로 더 큰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시대정신은 미국의 패권주의가 아니라 중국 등이 옹호하는 다자주의 등이다. 다만 진단은 같아도‘처방’은 다르다. 한쪽은 명확한 ‘좌표’를 정하지 말고 실용주의로 대응하자는 것이고 다른 쪽은‘중립화’라는 목적지를 설정한 다음에 전략적으로 대응을 하자는 얘기다.
공유하는 문제점이 있는데 크게 세 가지다. 그중 하나는‘진보의 길’에 대한 불신이다. 균형과 실용이라는 게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지연책에 불과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 혹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고 할까. 예를 들어, 한미동맹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등과 관계 개선이 가능할까? 현재 상태가 계속된다는 건 미국이 원하는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한다는 뜻인데 그런 상태가 전개되었을 때 균형외교가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진다. 북핵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숙제다. 만약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이 지금보다 더 발전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지금처럼 계속 발전한다면 어떻게 될까? 핵무장을 할 수 없는 우리로서는 미국에 더 의지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미국이 무엇을 요구하든 수용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은 주한미군 철수를 포함한 한미동맹의 변화(장기적으로는 해체)인데 이 방안은 빠져 있다고 본다.
북한, 중국과 러시아 등 우리가 다가서려고 하는 국가의 신뢰를 못 얻을 거라는 게 두 번째다. 그들이 공통으로 원하는 건 미국에 대해‘NO’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이다. 북한은 진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그걸 기대했고 지금은 포기한 상태다. 그게 아니면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한 다음에‘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언할 리가 없다. 중국도 다르지 않아서 우리가 자신의 핵심 이익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한다. 미국이 사드 포대를 배치하려고 했을 때 그 점을 분명히 전했다. 우리는 이를 무시했고 끝내 중국의 경제 보복을 받았다. 대만 위기가 점차 고조되는 상황에서 앞으로는 이런 일이 더 많이 벌어지지 않을까? 한미상호방위조약 때문인데 과연 이재명 정부가 이를 수정할 용기가 있을까? 만약 미국이 원하는 때, 원하는 곳에, 일방적으로 전략무기를 배치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관계 개선을 말한다면 그걸 믿을 바보는 없다.
우리 일상을 관통하는 심리전이 있다는 게 또 다른 문제의식이다. “늑대의 위협에 시달리는 어린 양 한국과 이를 보호하는 수호천사 미국”이라는 집단적 사고방식을 비롯해‘보수의 길’은 옳고 다른 길은 모두 틀렸다고 믿는 게 모두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본다. 전쟁 때나 등장하는 심리전이라니 음모론 아닌가 싶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에는 언제나 심리전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휴전 중이라 당연히 그 가능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폭력 사태를 미리 예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는데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 미국이 이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라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찍이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국내 대중을 설득하는 동시에 적군을 대상으로 한 설득 기술을 사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꽃을 피운 후 냉전 때 더 확대했다.
대표적인 게 진실 캠페인(Truth Campaign)인데 뉴스, 영화, 사진, 노래, 미술, 스포츠 등 다양한 방법이 이 과정에 동원됐다. 전 세계를 관통할 수 있는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 역시 미국의 장점이다. 미국과 영국 등 앵글로색슨권 언론이 못 갈 곳은 없고 공짜로 전달되는 뉴스를 마다할 리가 없다. 게다가, 심리전을 통하면 굳이 자국 군인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고 비용도 줄인다. 국제법을 위반한다는 비난을 듣지 않아도 되고 국내 여론도 여기에는 별로 반대하지 않는다. 공략하고자 하는 국가 (즉 러시아, 중국과 북한 등)를 싫어하고 정권을 교체하는 데 기꺼이 도움을 주려는 협력자를 구하는 건 더 쉽다. 당장 우리만 하더라도 북한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면서 미국 편에 서려는 무리가 꽤 많다.
정부의 지원으로 이 일을 맡은 곳은 글로벌미디어국(USAGM), 국립민주화기금(NED)과 국제개발처(USAID) 등이다. ‘미국의소리'(VOA), ‘자유아시아방송'(RFA), ‘데일리NK’, ‘자유북한방송’, ‘열린북한방송’ 등을 통제한다. ‘북한인권법’(NKHRA, 2004)과‘외국 프로파간다 및 허위정보 대응법’(CFPDA, 2016) 등을 통해 재정적 도움과 기술적 지원을 받는 소규모 인터넷 언론사와 SNS 계정 등은 훨씬 더 많다. 정부와 독립적으로 알려진 ‘CNN’ ‘FOX’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글로벌 언론사도 힘을 보탠다. 다른 건 몰라도 대외정책 보도에서 이들은 국민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고 국가이익을 위한다는 데 반대할 명분도 없다.
공략 대상에 동맹국은 빠질 것 같아도 현실은 정반대다. 예컨대, 미국이 사드를 배치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북한의 위협이 없고 그게 중국을 겨냥한다고 모두가 생각하면 당연히 반대 여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을 대민 위기에 동원하는 건 어떨까? 문제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의 간섭이고 자칫 불필요한 전쟁에 끌려갈 수 있다면 누가 좋아할까? 미국과 한국의 보수 진영은 이 사실을 잘 안다.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뭘까? 그게 언론을 통한 설득 작업이다. VOA나 RFA를 이용할 수는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고 신뢰도가 낮다. 국내 언론 중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논설위원이나 기자가 직접 말하기보다는 외부의 권위자를 활용한다.
‘뉴욕타임스’나 ‘CNN’을 인용하면 호소력이 더 높아진다. 랜드재단, 헤리티지재단과 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연구위원이나 펜타곤 책임자 또는 전·현직 주한미군사령관의 입을 통하면 같은 말이라도 무게감이 달라진다. 빅터차(Victor Cha), 김수미(Sue Mi Terry), 강찬웅(David Kang), 이성윤(Sung Yoon Lee)와 같은 한국계 미국인도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대부분 군산복합체, 펜타곤, 미국 정부에서 근무했거나 인연이 있는 인물이라 결과적으로 심리전의 전사가 된다. 만약 우리가 이런 상황에 장기간 노출된 상태라면 여론이라고 순수할 리가 없다. 앞선 노무현과 문재인의 궤적을 보면 단순한 의혹이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 한미동맹과 대북정책과 관련한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었고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부는 끝내 물러섰다. 과연 이재명 정부라고 다를까?
한국의 북극성, ‘한반도 중립지대’라는 좌표
북극성을 보면서 항해를 하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한반도 중립지대’라는 좌표가 있으면 우리 외교가 표류할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그간 우리는 왜 이 길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국제사회와 주변국 상황이 받쳐주지 않았거나, 우리의 준비가 부족했거나, 아예 우리에게 안 맞는 길이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렇지만 앞서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은 다르게 본다. 무엇보다 우리가 제대로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고 본다. 다음에 나오는 ‘그림 10’에 그 내용을 정리해 놨다.

그중에서 우선 중립이 우리에겐 안 맞는 옷이라는 오해를 풀어보자. 때가 무르익지 않아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때로는 군부독재의 억압으로 그간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다음에 나오는 ‘그림 11’에 그 계보가 정리되어 있다.

한반도의 비극이 시작된 결정적인 시점은 두 개다. 그중 하나는 제국주의 전쟁이 임박했던, 그래서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일본의 먹잇감이 되어야 했던 구한말이다. 다른 하나는, 제국주의 전쟁의 승자가 달라지면서 냉전이 막 시작된 시점이다. 먼저 구한말을 살펴보자.
조선은 망하기 전에 이미 내부적으로 심각한 균열을 겪고 있었다. 1811년의 홍경래의 난, 1862년의 진주민란, 그리고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은 모두 백성들이 제도적 부패, 지배층의 무능, 불공정한 조세와 차별에 저항하며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이는 단순한 민란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이 사회적 통합을 유지하지 못한 ‘내부 붕괴의 전조’였다. 안으로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세상은 민주공화국으로 가는데 우리는 여전히 제국을 꿈꿨다. 그래서 등장한 게 1897년의 대한제국이다. 대한민국이 되는 건 그보다 한참 후였던 1919년 임시정부를 통해서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조선은 제국들 간 틈바구니에서 끊임없이 줄타기 외교를 시도했다. 청, 일본, 러시아를 오가며 순간적인 생존을 도모했지만, 이는 장기적 전략이 될 수 없었다. 내부 개혁은 미완에 그쳤고, 왕조 중심 체제는 민의의 기반을 상실했다. 특히 1896년의 ‘아관파천’은 러시아의 품으로 피신한 선택이었지만, 이는 중립이 아닌 의존이었다.
그 와중에도 ‘중립화’는 실현 가능한 전략으로 논의되었다. 유길준은 조선의 지정학적 특수성과 국제질서의 불균형을 직시하며 1885년, ‘항구 중립’을 제안했다. 그는 벨기에, 불가리아 등의 사례를 들며, 조선을 중립국으로 선언하고 국제 조약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말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었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주변국, 국제사회를 위한 보존의 계책”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정세의 냉혹함 속에서도 그는 중립을 생존전략으로 본 것이다.
놀랍게도 당시 일본과 러시아 모두 일정 수준에서 조선의 중립화에 동의하거나 협조할 의사를 보였다. 일본 외무대신 니시와 러시아 공사 로젠이 1898년에 체결한 ‘니시-로젠 의정서’는 “한국의 주권과 완전한 독립을 인정하며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즉, 강대국 간 이해관계를 조정한다면 조선의 중립화는 이론적으론 불가능한 구상이 아니었다. 문제는 지도자의 식견과 결단, 그리고 내부의 제도적 기반이었다. 고종은 중립화를 선언했지만, 그것을 실현할 외교력과 정치적 일관성이 부족했다. 러시아에 의존했고, 국내 개혁세력인 김홍집 일파를 제거함으로써 개혁의 연속성마저 잃었다. 국민은 배제되었고, 국제사회는 조선이 스스로 설 수 없는 나라라고 판단했다.
결국, 중립의 길은 존재했으나 걷지 못한 길이었다. 실현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전략이었다. 강대국의 식민지가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하지 못한 전략의 귀결’이었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는 당시보다 더 복잡하지만, 중립화의 필요성은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해방 공간의 선택도 아쉬움이 있다. 1945년 해방 직후 한국은 식민지배에서 벗어났지만, 곧바로 외세의 영향 아래 놓였다. 미소 양국의 군정 체제가 한반도에 들어서며 자주적 국가 수립을 위한 경로는 매우 협소해졌다. 이 시기는 단순히 두 진영의 경쟁이 시작된 순간이 아니라, 한국이 선택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외교적 기회가 존재했던 시점이기도 하다.
모스크바 3상회의(1945년 12월)는 한국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이 회의에서 미·영·소 3국은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면서도, 그 준비를 위한 ‘5년 이내의 신탁통치’를 제안했다. 이는 단기적인 외세 통제가 아닌, 자주 정부 수립을 위한 국제적 안정 장치로 설계된 구조였다. 더불어 임시민주정부의 수립은 조선인들의 자율적 정치 능력을 실현할 기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회의 결과는 한국 사회에서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신탁통치는 ‘다시 식민지가 되는 길’로 인식되었고, ‘반탁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우익 진영과 언론, 보수 종교계는 이를 소련의 조선 지배 음모로 규정하며 격렬히 반대했고, ‘반탁=애국, 친탁=매국’이라는 감정적 구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여론이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다. 미국에 의한 심리전의 정황이 있다는 게 문제다. 신탁통치 제안의 공동 입안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국내 우파 진영의 반소 감정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자 했고 신탁은 소련의 일방적 제안이라는 인식을 퍼뜨렸다. 국내에서 중도 세력으로 분류되는 여운형, 김규식, 안재홍 등이‘좌우 합작’과 ‘자주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극심한 진영대결로 점차 고립되었고 끝내 암살과 테러의 대상이 되었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우리가 잘 안다. 1948년 8월과 9월, 남과 북에 단독정부가 각각 섰고 곧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그런 점에서 중립화는 배제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가능한 경로였으며, 무지와 오판 속에 포기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김용중은 이런 배경에서 1952년 “강대국에 포위된 한국은 중립국으로 통일되어야 하며, 남북 자유선거를 통해 헌법을 제정하고 외국군을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은 강대국 간 균형외교 대신 일방적 진영 선택으로 기울었고, 결과적으로 분단과 전쟁, 그리고 70년간의 안보 불안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이 허락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오해도 다르게 볼 부분이 있다. 중립국이라고 하면 누구나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를 꼽는다.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 코스타리카, 아일랜드와 몰타 같은 곳도 중립국 대접을 받는다는 건 잘 모른다. 미국과 군사협력을 하면서도 중립외교를 하는 국가도 많은 데 이 역시 잘 모른다. 노르웨이, 싱가포르, 오만, 카타르 등인데 우리와 상관없거나 소국이니까 가능하다는 식으로 외면한다. 더 심각한 건 이들 국가 상황이 분단국가인 우리와 전혀 달랐다고 믿는다는 데 있다. 진실은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스트리아인데 중립국이 된 해는 냉전이 굳어지던 1955년이다. 상황도 최악이었는데 미국, 영국, 프랑스와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된 상태였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도 많지 않아서 독일처럼 분단이 되거나 한반도처럼 전쟁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중립국이 될 수 있다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그들은 제3의 길을 찾아냈고 미국과 소련도 여기에 동의했다. 싱가포르의 사례도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한 도시국가로 제대로 된 국방력이 있을 리 없었다. 영국 해군이 주둔하면서 안보 공백을 채워줬는데 1965년 갑자기 철수해 버렸다. 리콴유 총리 등이 런던으로 달려가 통사정을 했어도 되돌릴 수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서 그들은 두 가지 선택을 했다. 그중 하나는 온 국민이 무장해서 스스로 지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5개국 안보협의체(Five Power Defense Agreement, FPDA)를 통해 영국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는‘그림의 떡’에 불과해도 누군가는 그걸 현실로 만들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라고 못 할 이유는 없다. 당장은 힘들어도 몇 개의 디딤돌을 거쳐 가는 방법이 있다. 최종 목적지는 중립국으로, 중간 단계는 중립지대로, 또 거기에 도달하는 단계로 중립외교를 설정하는 전략이다. 만약 이런 좌표가 설정되면 그간 불가능해 보였던 것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가령, 한미관계도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보호를 받는 관계가 아닌 자율성을 가진 전략적 동반자가 될 수 있다. 호주와 캐나다와 같은 동맹을 1차 목표로 장기적으로는 노르웨이와 싱가포르가 되는 청사진이다.
북한이라는 악마가 너무 무서워서 안 된다는 것 역시 과장이다. 다음의 ‘그림 12’를 보면 알 수 있다.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 어느 분야에서도 북한은 이미 우리의 경쟁자가 아니다. 우리는 북한의 남침을 걱정하지만 정작 북한은 우리의 연합군사훈련을 더 무서워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쓰는 미국과 군사력 5위 국가가 힘을 합쳐서, 여기에 핵무기도 동원되는데, 그걸 겁내지 않을 국가가 어디 있을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2025년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엄중하다. 미국과 중국은 언제라도 부닥칠 기세다. 러시아 전쟁은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고 중동에서는 새로운 전쟁이 불붙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이 어떻게든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가운데 브릭스로 대표되는 대안 세력은 새로운 질서, 즉 다자주의를 원한다. 불확실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2022년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국제사회는 미국 달러의 위력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러시아를 처벌하기 위해 금융거래에서 일체 달러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도 언젠가 이런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국 달러에 의존하지 않는 결재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 중심에는 브릭스가 있다. 2001년 나토에 대항할 목적으로 설립된 상하이협력기구도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과 타지크스탄 등 다섯 개 국가로 시작한 이 기구에 인도와 파키스탄, 이란과 벨라루스도 가입한 상태다.
전쟁 직후 곧 붕괴할 것으로 예측했던 러시아가 오히려 전쟁에서 승기를 잡는 현실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어떤 식으로든 이번 전쟁을 끝내려고 한다. 만약 이 전쟁이 러시아에 유리한 쪽으로 끝난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게다가 북한과 러시아는 2024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체결했고 이 협정에 따라 북한은 이미 러시아로 전투병까지 보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러시아와 협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 조약에 대해 입장을 정해야 할 상황이다.
결론은 뭘까? 한국이라는 항공모함이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바다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한미동맹에만 의지하면 모든 게 해결되던 익숙한 바다는 이미 과거다. 나토와 같은 새로운 동맹을 통해 이 도전에 맞서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단일 전선이 아니라 복합 전선에 기존의 동맹은 적합하지 않다. 문제는 더 있다. 동맹은 ’적‘을 공유하는 관계지 ’친구‘가 아니다. 불가피하게 공동의 적이 있어야 동맹이 유지되는데 필요하면 없는 ’적‘(또는 악마)을 일부로 창조해 냈다는 게 문제다. 믿기지 않겠지만 아래 ‘그림 13’을 보면 수긍할 수밖에 없다.

냉전 때 그 악마는 소련이었고, 냉전 후에는 불량국가로, 악의 축으로, 그리고 지금은 중국이 등장했다. 우리가 봤을 때는 굳이 악마가 될 필요가 없는 중국인데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 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반드시 진영 중 한쪽을 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3의 길이 있다. 한반도 중립지대라는 좌표를 정한 다음에, 하버 프로세스(Harbor Process. 이하 HP)틀 한번 시작해 보자고 하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모든 게 그렇듯 출발은 자기 자신이고, 시점은 지금이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된다.
‘HP'(하버 프로세스) 시작해 보자
항구(Harbor)는 단순히 선박이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폭풍우를 피하는 안전지대이자, 새로운 항해를 위한 재정비의 공간이다. 우리도 이처럼 갈등의 전초기지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항구이자 중립적 협상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Process’란 명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단계적인 실천을 통해 각국과의 신뢰를 축적하고, 국내외 공론장을 형성하며, 실용적 외교의 모색과 전략적 독립성의 틀을 다져나가는 열린 과정이다. 대략 다음에 나오는 ‘그림 14’와 같은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단계별로 좀 더 살펴보자. 그간 나왔던 프로젝트와 달이 여기서는‘시민 외교’가 중심이 된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추진하기에 부담스러운 상태라 꺠어 있는 시민이 주도하자는 뜻이다. 굳이 직업 외교관에게만 이 일을 맡겨둘 이유가 없고, 지금껏 그들이 이 길을 외면해 왔으며, 여론을 통해 대외정책에 개입하자는 역발상이다. 굳이 말하면 트랙 1.5 혹은 트랙 2.0 형식의 비공식 외교 채널을 개통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전직 외교관, 학자, 시민사회, 싱크탱크 등의 참여를 통해 더 유연하고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한편으로는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중립화에 우호적인 여론 지형을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립외교를 하는 싱가포르나 노르웨이를 경유한 비공식 대화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국제적 신뢰 자산을 가진 제3국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플랫폼을 공동으로 설계하는 게 제2단계다. 노르웨이의 PRIO(평화연구소), 싱가포르의 RSIS(국제전략연구소), 스위스의 GCSP(국제안보정책센터)가 주요 협력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들은 각각 분쟁 중재, 실용 외교, 중립 안보 전략에 특화된 기관으로 HP의 신뢰성과 확장성을 보장하는 축이 된다. 이와 함께 UNDP 서울정책센터 등 국제기구가 참여할 공간을 만드는 것도 좋다. 그런데 노르웨이와 싱가포르 등이 이런 문제에 힘을 보태줄까?
그간 이들이 추구해 왔던 정책을 보면 가능성이 있다. 먼저 노르웨이는 ‘중립’과 ‘평화 중재’의 아이콘과 같은 국가다. 과거 오슬로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역사적인 대화를 이끌었고, 콜롬비아 내전의 평화 협상에서도 핵심적인 중재자 역할을 해냈다. PRIO(국제평화연구소)를 비롯한 학술·외교 인프라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도 깊은 관심과 경험을 쌓아왔다는 것도 동기가 된다.
싱가포르도 전략적 파트너가 될 이유가 있다. 지정학에서 미·중 대결의 중간에 있으면서도 양측과 고르게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는 고난도의 균형외교를 구사해 왔다. 미 해군과 협력하면서도 중국과는 깊은 경제적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사실은, 이 나라가 이미 한반도 문제에서 ‘중재 무대’로서 국제적 신뢰를 얻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제사회의 관련 기관과 연대하는 다자외교도 이 단계에서 진행된다. 예를 들어, ASEAN Regional Forum, East Asia Summit, UN Peacebuilding Commission(PBC) 등의 플랫폼은 HP를 국제적 의제로 발전시킬 수 있는 주요 채널이다. 먼저 ARF는 동북아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광범위한 국가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로, 특히 비군사적 안보 이슈와 비공식 회의 채널(Track 1.5 및 2)을 통해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데 유리하다. 가령, Track 1.5 수준에서 한반도 중립화와 완충지대 모델을 주제로 한 세미나 및 정책대화를 제안할 수 있다.
EAS는 ASEAN+6 국가(한중일, 미국, 러시아,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와 ASEAN 회원국들이 참여하는 정상급 회의체다. HP는 이곳에서 “ASEAN 중심성(Asean centrality)”에 기반한 평화구상으로 제출될 수 있다. 특히 ASEAN과 한중일 간 협력체계를 활용하여, 한반도 내 중립 평화지대를 위한 시범사업—예컨대 DMZ 내 평화센터 설립, 공동 연구 플랫폼 조성—을 EAS의 실천 과제로 제안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한국과 ASEAN 간의 협력기금을 활용한 ‘Harbor Peace Lab’ 혹은 ‘동아시아 중립성 아카이브’ 구축 프로젝트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립국과 중립외교 및 관련 국제기구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한 다음에는 미국, 중국과 북한을 설득하는 단계로 나갈 수 있다. 위의 모델에 나오는‘전략국 관여’에 해당한다. 먼저 미국을 보자. 트럼프 정부는 한미동맹을 ‘방위비 청구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주한미군 유지에 대한 부담과 불균형한 책임 배분이 불만으로 표출되며, 철수 압박이 반복되어왔다. 그러나 HP는 동맹 해체가 아니라 미국의 부담 경감을 유도하는 구조 전환이다. 중립지대 한국은 또 미국 경제에도 실익을 준다. 패권경쟁이 첨예해질수록 정치적 리스크를 줄이면서 아시아에 공급망을 유지할 수 있는 중립적 국가의 존재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쁠 게 없다.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선언하는 한편 어떻게든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게 미국의 목표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전선과 이스라엘 전선에 이어 대만 전선까지 확장할 수는 없다. 당분간은 전면 충돌을 피하면서 전략적 경쟁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정부가 충성도 높은 동맹보다, 독자적 책임을 다하는 동맹국을 더 선호한다는 점도 기회다. NATO식 충성맹세가 아니라 다자외교의 중재자로서 미국과의 조율 능력을 갖춘 한국은‘대가 없는 동맹’보다 미국에 훨씬 유리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
HP 모델, 중국엔 통할까? 가능성 크다
HP 모델을 중국에 설득하는 건 가능할까? 역사적 경험과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크다. 19세기 말 중국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청일전쟁에서 패한 후 조선은 일본과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고 조선이 병합된 후에는 중일전쟁을 겪었다. 미국을 비롯해 적대세력이 중국과 국경선을 마주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는 전략은 한국전쟁 때도 확인된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은 지금도 북한이 붕괴해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높다. HP는 그런 점에서 중국이 봤을 때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다.
중국은 주한미군의 존재, 미사일방어체계(THAAD), 나토 확장 등 자국의 전략적 공간을 제약하는 모든 움직임에 극도로 민감하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동맹 구조를 지속 강화하면, 중국은 이를 명백한 ‘봉쇄 전략’으로 받아들이고 대응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HP는 이 긴장을 조정하는 제3의 경로다. 한국이 중립화를 선언하고, 이를 제도화한 다자 협약으로 추진할 경우, 중국은 ‘경계해야 할 적국’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공간’으로 한국을 재인식할 수 있다.
중국은 또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상당한 견제를 받는 중이다. 한국은 중국의 최대 무역국이며, 기술·부품·소비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기술전쟁과 동맹의 편가르기 속에서 이 관계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 어떻게든 여기에 대한 대응책을 찾는 중이다. 한국이 동맹이 될 수 없어도 최소한 나토의 호위무사가 안 될 수 있다면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중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중립화는 ‘미국 중심 블록화’를 극복할 수 있는 첫 번째 탈출구이며, 아시아 내 경제협력 확대를 위한 안정적 허브국가의 확보를 의미한다.
중국이 봤을 때 한반도와 대만해협의 연결 가능성은 전략적 악몽이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한국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군사축으로 활용할 경우, 한국은 곧바로 대만 유사시 중국과 대립할 군사 거점이 된다. 다행히 HP는 이 두 전선을 분리시키는 정치적 장치가 된다. 중립화된 한국은 대만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며, 오히려 분쟁 방지를 위한 지역 중재자 역할을 자임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주변 질서에 기여하는 유일한 설계이기도 하다.
중국은 단지 경쟁이 아니라, 관계의 관리에 민감한 국가다. 동북아의 균형은 ‘하나의 블록’이 아닌, 조정 가능한 다자 질서를 통해 관리될 때 훨씬 안정된다. 한국이 ‘미국의 대리인’이 아니라 ‘자율적인 행위자’로 변모할 경우, 중국은 한국을 보다 진지한 협상 파트너로 대우할 수 있다. 과거의 ‘조공관계’에 힌트가 있는데 분명한 점은 이 관계가 제국과 식민지와 같은 상황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현재 상황에 맞게 재조정되어야 하지만 서로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지 않는 가운데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대외정책과 잘 어울린다.
그렇다면 북한은?
대외 변수 중에서는 이제 북한이 남았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아예 우리와 상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북한으로서는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많다. 당장 러시아와 중국에만 의존하는 모델은 북한이 원하는 상황은 아니다. 북한은 오랫동안 ‘자주’를 외교의 핵심 명분으로 삼아왔다. 그 자주성은 반미·반제의 언설 속에 가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체제 보장, 독립적 외교 공간, 내부 통제력의 유지라는 실존적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HP는 북한에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외교적 완충지대’이자, 남북관계를 재설계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단, 이는 단순한 ‘대화 프레임’이 아니라, 신뢰·위상·실익을 보장하는 다자적 제안이어야 한다.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는 이유는 언제나 ‘군사적 위협의 지속’이다. 연합훈련, 전략자산 전개, 미사일방어체계는 모두 북한 체제 입장에서 “선제공격의 전조”로 인식된다. 이 같은 위협구조가 지속되는 한, 북한은 핵을 내려놓을 이유가 없다. 만약 HP가 전시작전권의 환수, 주한미군 재배치 또는 철수를 수반하고, 동시에 남북한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비군사적 중립화 선언을 전제로 한다면, 북한은 이를 ‘공격의 가능성이 제거된 환경’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핵 군축은 종국적 목표지만, 위협의 감축은 당장 논의 가능한 카드가 될 수 있다.
북한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미국과의 양자 협상만으로는 신뢰를 형성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트럼프 시기의 싱가포르 회담과 하노이 결렬은 그 신뢰의 붕괴를 상징한다. HP가 제안하는 중립화 구상이 유엔, ASEAN, EU, 북유럽, 중립국 그룹 등과 연계된 다자 메커니즘으로 발전한다면, 북한은 그 틀 안에서 자신의 체제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단순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보다도, 중립국으로서의 구조적 합의는 군사·외교적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화 전략이다.
군사적 위협의 완화와 정치적 안정화는 북한이 갈증을 느끼는 투자·원조·경제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우회로가 된다. 북한 입장에서 중립화된 남한은 미국의 앞잡이가 아니라, 경제·인프라 협력의 비적대적 파트너가 된다. 예컨대 동해 북방철도, 러시아 극동개발 프로젝트, 중국 단둥지대 연계 개발 등이 HP에 포함될 수 있으며, 이는 북한이 자립적 경제 전략을 재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이익이 된다.
북한의 김정은이 원하는 ‘입국’(즉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복귀하는 것)에 HP가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마지막 장점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비정상국가, 고립국가, 불량국가라는 이미지를 안고 있다. 그러나 HP가 추구하는 다자 협력 플랫폼은 북한에게 ‘정상국가’로서 발언권과 협상 테이블을 제공하는 드문 기회다. ASEAN+3, ARF, 동아시아 정상회의, 유엔 평화구축위원회(PBC) 등에서 비공식 참여 또는 관찰자 지위 확보는 북한이 봤을 때 외교적 승리가 된다.
반대가 없을까? ‘비현실적인 이상주의’, ‘안보 포기론’, ‘반미 전략’, ‘외교 고립’, ‘국내 합의 부족’ 등의 비판은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얼마든지 반박의 여지가 있다. 우선, 비현실성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중립외교를 시작으로 중립지대 등의 단계를 설정한다는 점에서 시작조차 못할 정도는 아니다. 국제적 고립 우려 역시 근거가 약하다. 오히려 HP는 중재국, 허브국가, 중립 플랫폼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함으로써 갈등의 당사자가 아닌 조정자로서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 국내 합의 부족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이 프로세스가 단계적 공론화와 전문가 및 시민사회 참여, 사회적 토론과정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그럼 ‘보수의 길’에서 제기하는 안보를 포기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할까? 다음에 나오는 ‘그림 15’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한다고 하면 적절한 방어 논리가 될 수 있다. 동맹을 해체하자는 게 아니라 자율성과 조정 능력의 확보를 통해 ‘상생’ 관계로 바꾼다는 게 핵심이다. 제1단계는 우리의 안보 자율성을 확보하는 작업이다. 전시작전권 환수, 한미방위조약 개정과 미국산 무기 수입의 불공정 해소 등이다. 마침 미국도 원하는 게 있는 상황이라 얼마든지 협상의 여지가 있다. 다음 단계에 있는 접근거점 기지화는 위에서 잠깐 설명했다. 미국이 원하는 게 반드시 영구주둔이 아닐 수 있다는 것과 만약 미국이 전략적 유용성(즉 주한미국의 작전지역을 한반도 바깥으로 넓히는 것)을 원한다면 이제는 집을 비우고 필요할 때 임대하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전략적 유연성’확대가 제3의 단계로 나오는 데 이건 미국이 아닌 우리에게 해당하는 전략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미국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적에 끌려갈 수는 없다는 것과 펜더믹, 기후위기, 사이버 보안 등 대응해야 할 전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간 군사와 안보 등에 제한된 협력 분야를 이런 새로운 영역으로 넓힌다는 게 유연성의 특징이다. 최종 단계인 ‘상생 동반자’는 그간의 종속적인 관계(즉 미국의 호위무사)에서 벗어나 평화 설계자로서의 주체성을 회복하겠다는 의미다. 70년 전의 우리와 지금은 다르다는 점과 미국조차도 우리에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