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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상상과 예측을 뛰어넘은 '대한민국'의 발전 속도
어느날 갑자기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

우리는 인류 역사에 전례 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다. 대다수 사람이 오늘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절대빈곤에서 벗어났고, 기대수명은 점차 증가해 100세 시대를 바라본다. 기술적 혁신에 힘입어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것들의 질은 날로 좋아진다. 30년 전의 우리는 30년 후에 우리가 이토록 좋은 것들을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으리라 상상했을까. 물질적 풍요만 놓고 본다면 우리는 매일 황금기를 매일 갱신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풀기 쉬운 문제도 아니라는 점에서 낙관만 할 수는 없다.

기후위기는 지구를 인류가 살 수 없는 행성으로 바꿔놓고 있다. 우리의 처절한 노력이 없다면 돌이킬 수 없는 기후재앙을 불러올 기후변화의 임계점이 머지 않았다. 불평등 문제도 중요한 문제다. 누구에게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 도전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와 자원이 주어지고,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결과에 따라 정당한 몫을 분배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불평등에 의해 무너진다면 역동적인 시장경제를 유지할 수 없다.

에너지 개발 굴뚝 발전소 공장

디지털 전환은 생산과 소비를 효율화하고, 사람들의 상호작용에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는 한편 기존의 산업구조를 근본에서 변화시킴으로써 제조업 강국으로서 세계 경제의 주축으로 올라선 우리 경제에 새로운 도전을 가져오고 있으며 불안정하고 취약한 노동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이외에도 성별 갈등세대 갈등은 사회 구성원들 간의 연대와 결속을 저해하고, 지방 소멸은 다수 국민을 비좁은 수도권으로 몰아넣어 수도권과 지방 모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인구소멸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생산성과 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의 지속성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우리 공동체의 안정에 치명적인 문제를 가져오는 문제들이다.

비인간화를 넘어서 

한국 정치는 이렇게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잘 다루어 낼 능력이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누가 당선이 되더라도 이러한 문제들을 잘 다루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비관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 수준이 매우 우려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 때문이다.

최근 한국 유권자의 정서적 양극화를 분석한 한 논문에 따르면 적대감은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과 정치인만을 향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경쟁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다른 동료 시민에까지 이러한 적대감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심지어 상대방을 비인간화(dehumanization)하는 모습으로까지 나아간다. 여기서 말하는 비인간화란 내집단이 아닌 외집단을 동등한 권리와 능력을 가진 인간으로 보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정치에 관한 논쟁이 발생한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의 댓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 탈출은 지능 순”, “저런 자들도 똑같이 한 표라니” 같은 상대방에 대한 경멸조 언급들이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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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주민은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잔인한 인디언 야만인”으로 묘사됐다. (참조: 위키백과, 그림: 칼 보드머, “다코다 전사”)
찰스 다윈은 위대한 학자지만, 아프리카인들을 야만인, 또는 변질된 인류일 가능성을 두었고, 코카시안 백인을 가장 완성도 높이 진화된 인류로 보았다.(캡션 출처: 위키백과, 이미지 출처: Leonard Darwin, 1884)
찰스 다윈은 위대한 학자지만, 아프리카인들을 야만인, 또는 변질된 인류일 가능성을 두었고, 코카시안 백인을 가장 완성도 높이 진화된 인류로 보았다. 즉, 다윈은 흑인을 ‘비인간화’했다. (지문 참고 및 출처: 위키백과, 이미지 출처: Leonard Darwin, 1884)

정치는 인간의 공동체가 토론과 설득, 조정을 통해 행하는 집단적인 의사결정에 관한 일이다. 민주정치의 중요한 전제 두 가지를 꼽자면 첫째는 시민들은 결코 단일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정치적으로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라 매우 다원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며, 둘째는 공동체의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모든 시민은 정치적으로 동등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공동체 안에 이견을 가진 집단이 상당수 있는데도 누군가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무작정 밀고 나갈 수도 없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한계 속에 살고 있는 흠결 있는 존재여서 민주정은 최소한 공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민 각각의 의견은 동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제도화하였기 때문이다.

정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이해관계와 신념이 다른 집단이 우리 공동체 내에 존재하고, 그들이 나와 우리 공동체의 문제를 각자의 견해에 입각해 생각하고 주장할 수 있는 동등한 시민임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견을 가진 집단을 최대한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설령 몹시 답답하고 어려운 일이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협력 협동

정치가 다루는 문제는 대부분 집단적인 갈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하게 될 대안은 어떤 집단에게는 손해가 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이견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이러한 노력은 우리가 도달하게 된 어떤 공동체적 결정이 잠시나마 반대자들에게도 존중받을 수 있게 만들고 반대자들도 다소간의 불만을 가지고서 따를 수 있도록 하며, 결과적으로 그 결정이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정당한 힘을 갖게 만든다.

반대로,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나아가 비인간화하는 것으로는 문제 해결의 근처에도 도달할 수 없다. 문제와 대안을 정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인정 없이 원색적 비난과 조롱만이 난무한다면, 어느새 논쟁은 ‘풀어야 할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유치한 감정적 다툼의 수준에 머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와 이해관계나 가치관이 충돌하는 상대방을 무찔러 공적 영역으로부터 퇴출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한 곳에 정치가 설 자리는 없다. 그러한 곳에서는 폭력과 무질서가 정치를 대신하게 될 뿐이다.

대결 갈등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저 정치권에서 발생하는 이슈들에 관심을 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에 관련된 이야깃거리에 대한 관심일 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정치는 우리가 공동체로서 함께 살아가며 겪게 되는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관한 일이다. 그러므로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나의 삶뿐만 아니라 이웃의 문제에도 그만큼의 진지한 관심을 쏟는 것을 의미한다.

이웃의 삶에 대한 관심과 사랑 없이 선거와 정치에 관련해서 생산되는 이야기들을 소비하는 것은 연예 기사에 악플을 다는 일 만큼이나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는 일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웃의 삶에 대한 관심 없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정치에 관심을 끊더라도 내 주변 사람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웃에게도, 우리 공동체 전체에도 훨씬 좋은 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

늦더라도 천천히 

대통령, 더 나아가 집권세력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는 비현실적으로 높다.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는 그 후보가 당선되어서 대통령이 되면 우리 사회의 문제가 말끔히 해소될 것이라 기대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후보가 당선되면 나라가 비참한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 권한과 책임이 막중하기는 하나 국가의 권력기관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집권세력도 국정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국정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특히 시민운동가, 언론인의 책임을 갖고 살아가는 일부 훌륭한 언론인, 정치적 반대세력, 각각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수천만의 시민들이 존재하는 한, 진보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공동체 전체를 망가뜨리는 일은 진지하게 노력하더라도 어려운 일이다.

혼신의 힘을 쏟아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고, 마치 8~90년대에 유행하던 로봇 만화나 후뢰시맨 같은 전대물에 나오던 악당들처럼 세상을 망하게 하려 해도 쉽지 않은 것이다. 민주정은 이런 면에서 느린 체제일 수밖에 없고, 시민들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체제다.

거버넌스 협력 협치

대통령 선거의 결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당선된 후보가 공약했던 개혁들이 아무런 장애물 없이 시원시원하게 추진되는 모습은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정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기보다는 오히려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껏 하지 못하게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준비해 두었고 반대세력이 활동할 공간을 넓게 마련해 두었다. 우리들 가운데 누구도 우리 공동체를 위한 최선의 미래를 만들 수 있는 확실한 정답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각자 더 나은 대안이라고 ‘믿는’ 것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민주정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보고 가능한 많은 대안을 검토하여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와 관점을 의사결정에 동원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토록 느리고 답답하게 설계된 민주정은 바로 그 부분 때문에 가장 성공적인 정치체제가 될 수 있었다.

선거가 끝난 이후를 생각해보자. 격렬했던 선거는 끝날 것이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결과를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누군가는 패자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어도 대선 다음 날의 태양은 그 전날의 바로 그 태양이다. 승자라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않은 것처럼 패자라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지 않는다.

승자는 집권세력으로서 책임을 갖고 국정을 주도할 권한을 갖지만,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반대집단을 설득해야 할 책임도 갖는다. 패자는 비록 국정을 주도할 수는 없지만 집권세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해야 할 야당의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게 되며 집권세력이 내어놓는 대안보다 더 좋은 대안으로 시민들을 설득하는 임무를 띠게 된다. 승자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동할 수 없고, 패자는 절망할 필요가 없다. 승자에게는 제약이 따르고, 패자에게는 다음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든 잘못된 행동을 한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항상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개인의 진보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잘못을 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기회를 누리는 사람들이 모인 인간의 공동체도 마찬가지로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 민주정은 그것이 온전히 작동하는 한 우리에게 끊임없이 우리의 잘못을 교정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비록 느리더라도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진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우리의 공동체가 민주정이 제공하는 진보의 가능성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느리더라도 시민의 손으로 정치를 만들어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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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거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를 듣고 계신가요? 후보자의 말이나 의혹에 대한 기사는 쏟아지고 있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정책과 무관하거나, 무분별한 의혹 제기 기사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한국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선거, 대선을 앞두고 과연 무엇을 검증해야 하는지, 유권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게임의 룰은 문제가 없는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꼼꼼히 파헤쳐보는 대선 [유권자의 스케치북] (유스케)을 연재합니다. 이번 슈스케 칼럼 필자는 박영득 충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입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 유스케(유권자의 스케치북) 

  1. 필터 버블과 팬덤 정치: 대선 후를 더 우려하는 이유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
  2. 2022 대선은 2030이 결정한다 (ft. 2030 공약 비교) (조원빈,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3. 미국의 ‘제한 정부’, 유럽의 ‘50%+1’ 원칙이 주는 교훈 (조영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4. 대선 3분 가이드: 꼭 확인해야 할 세 가지 공약 (무권자 J 씨)
  5. 제20대 대선과 지방 소멸의 위기 (이소영, 대구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6. 비호감 대선: 선거제 개혁이 필요한 이유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7. 청년 공약,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을 넘어서 (장선화, 대전대 글로벌문화컨텐츠학과 교수)
  8. 대통령제 개헌의 조건: 분권형 vs. 4년 연임 (이선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9. 수화(손짓말)와 오스트리아 헌법 (김정환,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
  10. 선진국 한국의 대선 (ft. 윤 후보의 ‘엉뚱한 분’ 발언)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
  11. 비인간화를 넘어서: 정치의 본질을 생각한다  (박영득 충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2. ‘교복 입은 시민’ 통제하려는 교육부 안내문의 문제점 (김형철 성공회대학교 교수)
  13. 촛불의 자리를 차지한 ‘비토크라시’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4. 윤석열 당선자에게: ‘승자의 저주’를 피하는 방법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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