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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투표

2022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현재 상황은 여러 측면에서 예외적인 모습을 띤다.

치열하게 각축하고 있는 양대 정당의 후보들은 중앙정치 경험이 없고, 당직 경험이 없는 ‘아웃사이더’로서 정당 내부보다는 외부의 지지에 힘입어 소속 정당의 경선을 통과했다.(1) 또한, 양대 정당 이외의 제3의 후보들이 존재하지만, 과거와 달리 그 영향력은 미미하다.(2) 더불어 자신에 대한 낮은 호감도가 자신이 유권자에게 그다지 매력적인 대안으로 인식되지 않음을 의미함에도 양대 정당의 후보들은 스스로 자신의 강점을 내세워 지지세를 불리기보다는 상대방의 약점을 깎아내리면서 상대의 지지자들을 와해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3)는 점 역시 새로운 현상이다. 그 특징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아웃사이더’ 양당 후보 
  2. 제3후보의 지지부진 
  3. 네거티브 선거전(내 강점보다 상대방 약점 공략) 
문재인 제19대 대통령 취임식(2017년 5월). 어느새 4년 반이 지났다. (출처: KOREA, CC BY NC SA) https://flic.kr/p/UqCzef
문재인 제19대 대통령 취임식(2017년 5월). 어느새 4년 반이 지났다. (출처: KOREA, CC BY NC SA)

심화하는 ‘정파적 양극화’ (ft. 정당의 무능) 

상황이 이렇게 된 배경에는 정치 엘리트와 유권자 차원의 정파적 양극화의 심화와 이로부터 파생된 사회갈등을 조정, 관리해야 하는 정당의 무능이 자리하고 있다. “정파적 양극화”라는 용어로 표상되는 현 시점 정치 과정의 분열은 정당을 축으로 한 정파적 분열과 이에 영향받은 유권자층의 분열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 다원성을 토대로 한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까닭에 나타났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대통령제와 양당제라는 우리와 비슷한 권력구조를 가진 미국에서 이미 목도된 바 있다. 2016년 선거에서 아웃사이더를 표방한 트럼프와 샌더스가 경선 과정에서 돌풍을 일으킨 바 있고, 본 선거에서 트럼프가 오랜 공직 경험을 가진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강성 지지자를 등에 업은 트럼프에 의해 장악된 공화당은 2016년과 2018년 두 차례의 선거를 거치면서 더욱 정파적인 의원들로 구성되었고, 그 결과 사회 분열과 갈등을 의회 내에서의 정당 간 타협을 통해 해결하려는 목소리는 크게 약화되었다.

정파적 양극화는 트럼프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와 불신으로 결합되어 현안 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논의는 그의 임기 내내 거의 불가능했다. 지지와 불신임 간의 세력대결은 선거 이후에도 이어졌고, 급기야는 2020년 선거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트럼프 지지 시위대에 의해 미국의 국회의사당이 폭력적으로 점거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정치적 아웃사이더'라고 할 수 있는, 하지만 돌풍을 일으킨 트럼프와 샌더스 (출처: Gage Skidmore, CC BY SA)
‘정치적 아웃사이더’라고 할 수 있는, 하지만 돌풍을 일으킨 트럼프와 샌더스 (출처: Gage Skidmore, CC BY SA)

우리의 경우에도 정파적 양극화는 더이상 새롭지 않다. 국회 내 정당 간 이념 양극화의 심화는 이미 여러 경험적인 연구들을 통해 입증되었고, 유권자 차원에서의 정서적 양극화 역시 그 영향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유권자 차원의 양극화 심화는 유권자의 정책적인 현안과 정치적 대상에 대한 평가를 극단적으로 만들었다. 우리의 유권자들은 지지 정당에 따라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이해와 의견을 가지게 되었으며, 정치적 대상에 대한 평가 역시 정파성에 따라 좌우되는 경향을 보인다.

필터 버블, 팬덤 정치 

이러한 상황은 디지털 네트워크의 확산으로 인해 그 심각성이 배가되었다. 유권자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일상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할 수 있는 기술적 수단들을 갖고 있어 정치적 의사 교환을 위한 목적으로 더는 정당을 절실히 필요로 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의 일상화는 유권자들에게 의사표현과 교환의 손쉬운 수단이 되었고 정치에 대한 일상적인 소통을 이전보다 광범위하게 확산시켰다.

필터 버블, 즉 개인화된 알고리즘이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현상은 디지털 네트워크의 확산과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이윤 추구 욕구가 맞물려 더욱 구조화하고 있다.
필터 버블, 즉 개인화된 알고리즘이 확증 편향(원래 가진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을 강화하는 현상은 디지털 네트워크의 확산과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이윤 추구 욕구가 맞물려 더욱 구조화하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문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정치적인 논의의 장이 크게 늘어나고 정치 참여가 이전보다 활성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생산성 있는 결론에 이르기보다는 선택적인 정보의 취사선택과 배제로 인해 정치적인 양극화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많은 온라인 매체를 통해 목도되는 것처럼 심화된 정파적 양극화 속에서 지지층만을 대상으로 한 여론의 조정과 결집은 정치적 조정 과정을 원칙이나 정책이 아닌 맹목적인 신념의 대결로 몰아가고 있다. 더욱이 사안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해석보다는 무책임한 “편파 중계”를 통해 일방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유튜브 채널들의 부정적인 역할은 이전보다 더욱 커지고 있다. 일상적인 정치 과정이 논의와 합의의 과정이 아닌 감정적인 대결의 장으로 변모하여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유권자 차원의 양극화 심화는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팬덤 정치”로 이어지고 있다. “팬덤”은 특정인에 자신을 투영하여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경향성을 지닌다. 좋아하는 운동선수나 연예인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사적 영역에서의 “팬덤”은 그 자체로 부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경향이 공적 성격을 지닌 정치의 영역으로 전이될 때 그것이 가져오는 폐해는 실로 크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팬덤 정치'의 아이콘이었던 히틀러와 그 조력자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팬덤 정치’의 아이콘이었던 히틀러. 그리고 광고 선전의 대가 에드워드 버네이스(대표작, ‘여론 정제’, ‘프로파간다’)와 그의 광적인 팬이었던 괴벨스, 신 총통관저를 설계한 알베르트 슈페어, 그리고 나치 선전물, 특히 ‘의지의 승리’라는 다큐멘터리를 감독한 레니 리펜슈탈 (히틀러 사진 위 왼쪽부터)

팬덤 정치로 인한 맹목적인 지지와 불신에 근거한 갈등은 모든 사안을 ‘우리’‘적대적인 상대방’으로 나누어 인식토록 함으로써 견해를 달리하는 개인들 간의 소통을 어렵게 한다. 게다가 팬덤 정치적 상황은 개인에게 약속된 제도와 절차를 통해 결정된 사안이라도 그것이 자신의 입장과 다른 경우에는 이에 대한 승복을 자신의 존재감 부정으로 인식시키며, 정치적 대상에 대한 비판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도록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토론과 설득을 통한 합의와 양보가 더욱 요원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결국, 정치적 양극화와 이로부터 파생된 팬덤 정치는 공적 영역에서의 갈등을 사적인 것으로 전이시킴으로써 이의 폭발성과 파괴력을 더욱 증폭시켜 공동체의 갈등 조정 능력을 크게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트럼프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상황은 팬덤 정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이지만, 현재 우리의 상황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촛불 탄핵 이후, 여전히 남은 문제들 

대전환기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와 역할에 대한 고민, 중앙정치에 휩쓸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지방자치, 양극화로 인한 국회 내 다원성 문제, 과도한 규제로 발이 묶여 있는 시민권, 경제 불황과 불평등, 산업혁명에 준하는 변화에 따른 노동문제에 대한 대처, 세대와 성별 간 갈등문제 등 촛불과 함께 전면적으로 제기되었던 다양한 사회적 현안들은 탄핵 이후에도 여전히 진전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현안에 대한 정치권력의 대처방식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 관리하기보다는 전면적인 대결을 통한 갈등의 심화에 가깝다. 게다가 팬데믹 상황으로 인한 정부 기능의 강화 속에서 시민의 권리는 한층 더 제약되고 있음에도 이에 관한 정치권의 생산적인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헌법적 가치는 최대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강화하는 정부 기능 속에서 이에 관한 정치권의 생산적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헌법적 가치는 최대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강화하는 정부 기능 속에서 이에 관한 정치권의 생산적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사 결정자를 선출하는 선거 상황임에도 이렇듯 산적한 국가적 현안에 대한 후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당의 경선을 마치고 본격적인 선거국면에 들어갔지만, 사회 현안과 갈등을 해결 방식에 대한 제안과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명확한 정책적인 입장의 제시 없이 선거에서의 승리만을 위해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갈등만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의 장점은 유권자들이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정책결정자들을 교체할 수 있으며 그러한 교체 가능성이 정당과 정치인으로 하여금 국정 운영에 있어서 권한 남용을 자제시키고 상대방을 적이 아닌 잠재적인 파트너로써 인정케 만든다는 점에 있다. 어느 공동체든 다원적인 구성으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고 축적되기 마련이지만, 주기적인 선거는 결과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공동체 전체의 파국을 제도적으로 방지한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상황은 이러한 선거의 기능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회적 현안에 관한 논의는 사장되었으며 정당과 후보들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기보다는 권력을 향한 이전투구만을 보이며 갈등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촛불 로 박근혜는 탄핵됐다. 하지만 무엇이 달라졌는가. (2016년 11월 19일, 사진 제공: 옥토)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촛불의 물결로 박근혜는 탄핵됐다. 하지만 ‘무엇이 달라졌는가’라고 자문하면 답하기 쉽지 않다. (2016년 11월 19일, 사진 제공: 옥토)

이번 극심한 정파적 양극화 속에서 치러지는 이번 선거의 경우, 현재까지는 선거에 임박한 시기까지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갈등에 기반한 선거 전략은 누가 승자가 되건 서로에 대한 혐오 속에서 극심한 상처를 남길 뿐이다. 지금에서의 바램은 그러한 상황이 선거 이후의 국정 운영에서는 재현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갈등에 기반한 국정 운영은 공동체 전체를 위해 불행한 일이며 중장기적으로 책임 있는 정치행위자로서 정당의 브랜드 구축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유권자를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기반한 정치는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패자가 전부 잃게 만드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체 전체를 위한 해법을 찾고 그 속에서 모든 이들이 승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민주적인 정치 리더십이다. 우려스럽게도 지금의 유력 후보들의 행태에서 그러한 모습을 찾기는 대단히 어렵다. 내년 대선보다는 선거 이후가 더 걱정이 되는 이유다. 주권의 담지자인 유권자들이 선거에서의 선택과 함께 그 이후를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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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거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를 듣고 계신가요? 후보자의 말이나 의혹에 대한 기사는 쏟아지고 있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정책과 무관하거나 무분별한 의혹 제기 기사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선거, 대선을 앞두고 과연 무엇을 검증해야 하는지, 유권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게임의 룰은 문제가 없는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꼼꼼히 파헤쳐보는 대선 ‘유권자의 스케치북'(‘유스케’)을 연재합니다. 이번 유스케 필자는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입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 유스케(유권자의 스케치북) 

  1. 필터 버블과 팬덤 정치: 대선 후를 더 우려하는 이유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
  2. 2022 대선은 2030이 결정한다 (ft. 2030 공약 비교) (조원빈,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3. 미국의 ‘제한 정부’, 유럽의 ‘50%+1’ 원칙이 주는 교훈 (조영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4. 대선 3분 가이드: 꼭 확인해야 할 세 가지 공약 (무권자 J 씨)
  5. 제20대 대선과 지방 소멸의 위기 (이소영, 대구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6. 비호감 대선: 선거제 개혁이 필요한 이유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7. 청년 공약,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을 넘어서 (장선화, 대전대 글로벌문화컨텐츠학과 교수)
  8. 대통령제 개헌의 조건: 분권형 vs. 4년 연임 (이선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9. 수화(손짓말)와 오스트리아 헌법 (김정환,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
  10. 선진국 한국의 대선 (ft. 윤 후보의 ‘엉뚱한 분’ 발언)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
  11. 비인간화를 넘어서: 정치의 본질을 생각한다  (박영득 충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2. ‘교복 입은 시민’ 통제하려는 교육부 안내문의 문제점 (김형철 성공회대학교 교수)
  13. 촛불의 자리를 차지한 ‘비토크라시’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4. 윤석열 당선자에게: ‘승자의 저주’를 피하는 방법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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