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비명을 지르지만, 해법은 속삭인다.”
“Problems scream, Solutions whisper.”
우리에게는 지금 너무 많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문제와 싸우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팬데믹(pandemic, 감염병의 대유행) 만큼이나 인포데믹(infodemic, 정보 전염병)도 매우 위험하다는 걸 지난 두어 달의 경험으로 체감하고 있다. 정확한 정보와 분석도 필요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기사가 필요할 때다. 한국 언론이 공포와 불신, 냉소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동안 해외 언론은 한국의 사례를 연구하고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국뽕’에 빠지는 걸 경계해야겠지만, 무엇이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 과정을 알아야 한 단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솔루션 저널리즘 방법론이 어떻게 재난 보도에 활용될 수 있는지 사례와 가능성을 살펴볼 계획이다. 지구 공동체가 직면한 거대한 재난에 맞서 언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 필요할 때다.
1. 뉴욕타임스, 솔루션 저널리즘의 모범
먼저 3월23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한국은 어떻게 커브를 평탄하게(flattened the curve) 만들었는가”, 이 기사는 솔루션 저널리즘 방법론의 모범을 보여준다.
- 교훈 1: 빨리 개입하라, 위기가 닥치기 전에. Intervene Fast, Before It’s a Crisis.
- 교훈 2: 일찍 테스트하라, 자주, 그리고 안전하게. Test Early, Often and Safely.
- 교훈 3: 동선을 추적하고 격리하고 감시하라. Contact Tracing, Isolation and Surveillance.
- 교훈 4: 공적인 지원을 인식시켜라. Enlist The Public’s Help.
이 기사는 단순한 소개 기사가 아니고 적당히 칭찬하는 기사도 아니다.
한국 역시 초기 방역에 실패했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신천지 사태로 지역 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한때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감염자가 많았던 나라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잠복기가 길고 심지어 증상이 없는데도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얻은 교훈은 확진자 한 명이 있으면 드러나지 않은 수백 명의 감염자가 더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주목한 디테일은 다음과 같다.
- 드라이브 스루와 워킹 스루 검사를 통해 잠재적 확진자와 의료진의 접촉을 최소화했다.
- 계속해서 쏟아지는 재난 문자 메시지가 조금만 증상이 있어도 검사를 받도록 유인했다. (과도한 불안과 공포감을 줬던 것도 사실이겠지만.)
- CCTV와 카드 사용 내역, 차량과 휴대전화의 GPS 데이터 등을 확인해서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고 공개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외과 의사가 암 조직을 도려내듯이 감염 가능성이 있는 네트워크를 조기에 찾아내는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 사생활의 침해를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문화도 작동했다.
- 자가 격리 환자들에게 스마트폰 앱을 깔도록 하고 무단으로 이탈할 경우 300만 원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격리 장소를 벗어나면 방역 당국에게 자동으로 경고가 뜬다. (거의 전자 발찌 수준).
- 2015년 메르스 사태와 달리 한국 정부가 공공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협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마스크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휴지 사재기는 없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모델은 복제 가능한가’(Is The Korean Model Transferable?)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의 성공은 복잡하거나 비싸지 않다. 한국이 사용한 기술 가운데 일부는 고무 장갑과 면봉처럼 간단하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다른 나라들이 한국을 따라하기가 쉽지 않은 세 가지 이유를 지적했다. 첫째,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의 문제다. 정부는 위기가 닥치기 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주저한다. 둘째, 공공의 의지(public will)가 있어야 가능하다. 한국은 양극화와 포퓰리스트 백래시에 시달리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보다 사회적 신뢰가 더 높다. 셋째, 시간이 가장 큰 도전이다. 미국이 한국을 따라 하기에는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뉴욕타임스는 물리적 거리두기의 강도에 따른 확산 속도와 사망자 수를 시뮬레이션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비슷한 기사가 많았지만, 직접적으로 정치적 결단과 행동을 요구하는 설득력 있는 기사였다.
전염병 확산의 첫 번째 척도는 감염률(R0)이다. 계절성 독감은 전염 척도(R0)가 1.5인데, (확진자 1명이 1.5명에게 전파) 코로나19는 2.5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물리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을 경우). 두 번째 척도는 중증 비율이다. 입원할 정도로 중증 환자의 비율은 계절성 독감이 1%, 코로나 바이러스는 5~20%. 독감에 걸린 1명이 2개월 동안 386명을 감염시킬 수 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1명이 9만9000명을 감염시키고 이 가운데 2만 명이 입원해야 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 번째 척도는 사망률이다. 사망률은 독감이 0.1%, 코로나바이러스는 1%까지 높아질 수 있다.
미국만 놓고 보면 최악의 경우 1억8,150만 명이 감염되고 180만 명이 사망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6월7일 기준으로 최대 확진자가 6350만 명이 쏟아질 거라는 무시무시한 전망이다. 대공황 때 실업률이 25%였는데 이번에는 30%가 넘어설 거라는 분석도 있고. 결국 물리적이든 사회적이든 거리두기가 14일 정도로는 턱없이 짧다는 이야기다. (물론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뉴욕타임즈의 다른 기사는 제목부터 강렬하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오픈하고 싶어하지만, 그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여기에 있다.(Trump Wants to ‘Reopen America.’ Here’s What Happens if We Do.)” 그러니 강력한 물리적 거리두기와 봉쇄, 격리가 필요하다는 기사였다.
2. 로이터, ‘어떻게’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만 ‘어떻게’에 구체적으로 주목한 언론은 많지 않았다.
로이터는 한국 방역 당국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많은 의심 환자들을 검사할 수 있었는지를 집중 취재했다. 한국 언론이 우리가 검사자 수가 가장 많다고 자아도취에 빠져 있을 때 해외 언론은 구체적으로 한국의 진단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로이터와 인터뷰한 질병관리본부 이상원 과장은 “우리는 군대처럼 행동했다(we acted like an army)”고 설명했다.
설 연휴였던 1월27일, 질본은 제약회사 관계자들을 서울역 회의실로 불러 모았다. 그때까지 확진자는 4명 뿐이었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판데믹에 맞서 진단 키트의 확보가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자리에서 긴급 승인을 할 테니 서둘러 개발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1주일 뒤 코젠의 진단 키트가 질본의 승인을 받았고 2월 말에는 이미 하루 수천 명을 검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로이터는 공중 보건 시스템의 차이도 있지만 간소화된 행정과 대담한 리더십이 이런 변화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정부의 규정과 관습, 절차에 의존하는 문화가 발 빠른 대응을 가로막았다. 한국은 일단 진단 키트를 내놓고 테스트를 시작하면서 유효성을 검증했는데 이는 일정 부분 위험을 감수한 것이었다. 반면 미국 식품의약국은 진단 키트가 정확한지 확인하기 전에는 검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골든 타임을 놓쳤다.
로이터 기사는 단순히 성공 사례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디테일을 파고 들었다. 이렇게 1주일 만에 서둘러 만든 진단 키트가 1년 동안 개발한 진단 키트만큼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질병관리본부는 최초 확진자들의 검사 결과를 실험실에서 교차 검증했다. 가장 먼저 승인을 받은 코젠이 검사 방식을 공개했고 다른 제약회사들도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2월12일에는 씨젠이 두 번째 진단 키트를 내놓았다.
반면 미국은 2월4일 질병통제예방센터가 독점으로 진단 키트를 내놓았는데 검사 결과에 오류가 많았다. 질병통제예방센터는 2월 말에서야 새로운 진단 키트를 내놓았는데 그 사이에 수많은 확진자가 쏟아졌고 의료진의 감염도 속출했다.
한국의 방역 당국이 다소 불완전하더라도 일단 검사를 시작하고 보자는 태도였던 것과 달리 미국은 초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진단 키트에 대한 기준을 더욱 강화했다. 진단 키트를 개발할 능력이 있는 연구소와 제약회사들이 수두룩했지만 정부의 승인 없이는 개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잘못된 진단 결과는 공중 보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식품의약국의 공문이 이런 상황을 더욱 고착시켰을 것이다. 미국은 뒤늦게 한국 정부에 진단 키트 제공을 요청했고 씨젠의 진단 키트가 미국 수출이 결정됐다.
로이터의 기사는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단순히 한국이 잘했고 미국이 못했다는 기사가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기사다.
3. CNN, 디테일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방식의 선별 진료소가 등장했을 때도 수많은 기사가 쏟아졌지만, 디테일에 먼저 관심을 기울인 곳은 해외 언론이었다.
CNN의 이반 왓슨(Ivan Watson) 기자는 직접 경기도 고양시의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를 방문해서 르포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적당히 구경하고 와서 체험을 기록한 기사가 아니다. 단순히 그런 것이 있다더라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how it works)에 집중했다. 단순히 승용차를 타고 들어가서 검사를 받는다는 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이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기자가 방문하기 전날, 이 진료소는 하루 동안 384명을 테스트했다. 진료소의 동선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입구에서 손 세정제로 손을 씻게 하고, 귀를 통해 체온을 재고, 증상과 해외 여행 여부 등을 문진한 다음 자동차를 탄 채로 검진을 받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차에 탄 채로 진행된다. 3일 안에 결과가 나오고 문자 메시지로 받아볼 수 있다.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한 독자들은 이 기사에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의료진은 5시간씩 교대로 일한다. 보호복을 갈아입지 않고 화장실 가는 걸 참으면서 버틸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일 것이다.
- 드라이브 스루는 진료소 대기실에서 감염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의료진을 통한 2차 감염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 보호복을 입은 채로 소독을 하고 사용한 보호복은 버린다. 휴대용 부스를 이용한다는 것도 매우 좋은 아이디어다.
한 간호사는 “보호복을 입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도 갈 수 없고 물도 마실 수 없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5시간 교대로 근무하는데 근무가 끝나면 옷을 입은 채로 클린 존(clean zone)이라고 부르는 휴대용 부스에 들어가 저염소산(hypochlorous acid) 소독제로 샤워를 하게 된다.
해법을 찾는 사람들이 궁금한 것은 구체적인 숫자와 근거다.
일반 진료소는 한 시간에 2건, 하루 20건만 검사할 수 있지만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는 한 시간에 6건, 하루 60건까지 가능하다. 검사 속도가 3배 이상 빠르다는 이야기다.
보호복을 얼마나 자주 갈아 입느냐도 중요한 변수다. 일반 진료소에서는 의심 환자 한 사람을 검사할 때마다 실내를 소독하고 의료진도 보호복을 갈아입거나 교대를 해야 한다. 그러나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에서는 노출 정도가 크지 않기 때문에 가운과 장갑만 교체해도 된다.
환자를 직접 접촉하는 의료진이 입는 D-레벨 보호복은 한 번 갈아입는 데만 20분 이상 걸린다고 한다. 한 명씩 검사할 때마다 옷을 갈아 입고 버리는 게 감염 방지에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갈아입는 과정에서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차라리 입고 있는 게 의료진에게는 더 안전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보호복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에서는 보통 장갑만 바꿔 끼거나 가운만 갈아 입는 방식으로 효율을 높이고 있다.
4. 머니투데이, 메디칼타임즈, 경향신문 등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에서는 검사를 받고 나가는 방문자들에게 핸들을 닦으라고 조언한다고 한다. 확진자가 아닌데 진료소에 왔다가 감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타이어와 창문까지 강력한 소독제를 분사한다는 것도 중요한 노하우다.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가 진료 속도를 높일 수 있었던 건 사전 예약을 받고 검사 대상을 미리 걸러 내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차를 몰고 온다고 해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19에 실려 왔더라도 전화로 예약을 하고 1시간 이상 대기해야 한다는 기사도 있었다. 동승자가 없어야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무료 검사의 5가지 원칙도 정했다.
- 대구 거주자 또는 대구 방문자로 37.5도 이상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기침·호흡곤란 등)
- 개인병원 방문 후 코로나19 검사의뢰서를 받은 경우
- 자가격리 대상자 중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 중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 선별진료소 의사 판단에 따라 검사가 인정된 경우 등
한국이 이처럼 병원의 원내 감염에 엄격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경험으로 얻은 교훈 때문이다. 2015년에는 186명의 환자 가운데 92.5%인 172명이 의료기관에서 감염됐다. 특히 삼성서울병원의 14번 환자가 85명의 3차 감염을 유발했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 사태 때는 철저하게 선별 진료소와 응급실의 동선을 분리했고 호흡기 환자를 별도로 진료하는 안심병원을 지정해 운영했다.
일부 의료 전문 신문 기사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메디칼타임즈 등에 따르면 선별 진료소가 있는 병원에서는 코로나 의심환자와 호흡기 진환자, 일반 환자가 별도의 동선을 갖게 된다. 선별 진료소가 없는 안심병원에서도 단순 감기 환자를 호흡기 환자로 분리하고 의심 증상이 있으면 선별 진료소로 유도했다. 메르스 사태 때와 달리 외래 환자를 완전히 분리했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다.
경향신문은 응급실을 통째로 선별 진료소로 바꾼 서울의료원의 사례를 소개했다.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일반 응급 환자를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물리적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25개였던 침상을 9개로 줄였고 모든 의료진이 방호복을 입고 근무했다. 일반 응급 환자를 인근 병원으로 보내는 대신 공공 의료기관이 역할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5. 병상 문제: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 사례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에 본격 상륙하면서 커브 평탄화(flattening the curve)에 대한 논쟁도 본격화됐다.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감염될 거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데 문제는 응급 환자가 쏟아질 때 이들을 제때 치료할 수 있느냐다.
미국에는 92만4,100명의 병상이 있는데 인구 1,000명당 2.8개꼴이다. 독일은 8개, 한국은 12개다. 미국의 경우 산소 호흡기와 에크모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상이 최대 17만 개 밖에 안 된다.
미국 인구 3.3억 명 중에 올해 안에 1.8억 명이 감염된다고 가정하고 이 가운데 20%가 중증 환자라고 치면 3,600만 명이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한꺼번에 얼마나 많은 환자가 쏟아지느냐다. 1년 동안 3,600만 명의 중증 환자가 쏟아진다면 하루 최대 300만 명의 환자를 커버해야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산소 호흡기를 쓸 수 있는 환자는 최대 17만 명 밖에 안 되고 나머지 283만 명은 일반 병동에 방치되거나 아예 병원 문턱도 밟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이 어떻게 병상 부족 문제를 해결했는지 주목했다. 한국 국민도 잘 몰랐던 사실이다.
일단 한국 질병관리본부는 3월1일부터 확진자를 네 단계로 분류했다. 무증상(asymptomatic)과 경증(mild), 중증(severe), 위독(critical)으로 나눠서 중증과 위독 환자에게만 병상을 제공했다. 그 전까지는 모든 확진자들을 음압 병상에 수용하고 2주 동안 격리했는데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전략을 바꾼 것이다. 37.8도가 넘고 호흡 곤란 또는 50세 이상인 경우만 중증으로 분류하고 나머지 경증 환자들은 삼성과 LG 등이 제공한 연수원 등에 수용했다. 이들에게는 식사와 함께 침대와 TV, 와이파이가 제공됐을 뿐 특별한 케어가 필요하지 않은 상태다. 200명 규모의 수용 시설에 의료진 10명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1인당 병상 숫자(1000명 당 12개)가 미국(1000명 당 3개)보다 많은 편이지만, 선제적으로 병상을 확보하지 않았다면 병상을 기다리다가 골든 타임을 놓치는 환자가 훨씬 많았을 거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3월26일 기준으로 9,241명의 확진자 가운데 사망자는 131명 밖에 안 되고 이 가운데 병상을 확보하지 못해 사망한 환자는 5명 밖에 안 된다.
서울은 확진자의 80%가 무증상 또는 경증 환자로 분류됐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실제로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는 10명 가운데 1명 꼴이다. 질병관리본부의 발 빠른 판단 덕분에 3,000명의 경증 환자들이 연수원 등으로 옮겼고 새로운 병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3월8일까지만 해도 대구에서는 전체 확진자의 40%인 2,200명의 환자가 침대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2주 뒤에는 124명으로 줄었고 이들 대부분이 경증 환자였다.
한국이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인구 대비 병상 수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방역에 집중하고 적절한 시점에 치료 우선으로 전환하면서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나서서 전국의 대형 병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해 서울과 수도권까지 격리 병상을 확보한 것도 한국이 만약 성공한다면 조기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진압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거론될 것이다.
6. 해법은 무엇인가
한국 언론 보도에서도 해법으로 접근한 사례가 많다.
서울 동부병원은 D 레벨 방호복이 부족하자 세이프티 가드(safety guard)라는 새로운 방식의 선별 진료소를 운영했다. 의료진과 검체자의 동선을 분리해서 의료진은 양압 공간에서 유리벽 너머로 연결된 비닐 장갑에 손을 집어넣어 검사를 진행한다. 검체자는 음압 공간에서 검사를 받고 직접 검체를 냉장고에 넣고 뒷정리까지 한 다음에 검사실을 나오게 된다. 검체자가 나가면 공기 순환을 통해 방을 정화하고 다음 검체자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15~20분 정도. 다른 선별 진료소의 검사 시간이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마스크와 고글만 착용하면 되기 때문에 방호복 교체 비용도 줄일 수 있고 의료진의 감염 위험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체력 소모가 덜하다고 한다. 데일리메디의 보도였다.
여러 언론에 소개된 인천의 1129번 확진자 A씨의 사례는 그야말로 모범이라고 할만하다.
A씨는 1월31일 발열과 기침 등 의심 증상이 시작되자 스스로 자가 격리를 시작했다. 집에서도 마스크와 위생 장갑을 꼈고 병원에 갈 때도 마스크를 쓰고 인적이 없는 길을 따라 도보로 이동했다. 그리고 모든 동선과 잠재적 접촉자를 기록으로 남겼다. 확진 판정을 받고 구급차를 타러 나올 때는 23층 아파트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오기도 했다.
한국일보가 “코로나 확진자 여러분, 이 분처럼만 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이 사례를 소개했다. 기록을 남긴 덕분에 동선 추적이 확실했고 접촉자들을 빨리 가려낼 수 있었다. 다행히 확진자의 가족들과 접촉자들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A씨가 남긴 38페이지의 일지는 “다른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에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다음 기록을 남깁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돼 날짜와 체온, 신체 증상 등이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
연합뉴스는 좀 더 구체적으로 A씨의 일지를 소개했다. 많은 다른 확진자들처럼 A씨도 처음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으나 중국 방문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검사를 받지 못했다. 이틀 뒤 다시 상담을 받았으나 일반 병원을 방문하라는 조언을 듣고 병원에서 감기약을 처방받았다. A씨는 결국 14일 뒤에야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음성 판정이 나왔고 다시 열흘 뒤인 23일 2차 검사를 받고 확진 판정을 받았다.
A씨는 중국을 다녀오지 않았지만 중국인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목이 아프고 가래가 생길 때부터 스스로 격리에 들어간 것이다. 체온이 정상이었기 때문에 검사를 받지 못했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추가 감염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연합뉴스는 “중국 발표를 보면 코로나19 초기 열이 없던 환자가 40%나 된다고 한다”면서 “이제 증상만으로는 코로나19 확진자를 찾기가 힘든 상황이 됐다“는 한 의사의 말을 소개했다.
연합뉴스가 소개한 발레학원 강사 A씨의 사례도 매뉴얼 같은 기사다.
학생들 넷을 데리고 유럽에 다녀온 A씨는 국내 접촉자가 0명인 상태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A씨의 아버지가 인천공항에 자가용 승용차를 가져다 놓았고 학생 중의 한 명의 아버지가 전원주택을 제공했다. 가족들이 식사와 간식을 문간에 두고 갔고 부모들도 아이들 얼굴을 보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뉴스1은 KF94 마스크를 찜통에 넣어 소독할 경우 2~3회 정도 다시 사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찌라시로 떠돌던 루머를 직접 검증한 것이다. 이 신문은 박일영 충북대학교 약학과 교수와 함께 직접 실험에 나섰다. 찜통에 넣고 20분 동안 수증기 처리를 3차례 진행한 뒤에도 분진포집효율이 99.9%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여기에 소개하지 못한 수많은 디테일이 있고, 현장의 의료진의 각고의 노력과 희생이 있다. 앞서 사례로 든 기사들은 단순히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재난에 맞서는 현장 리포트일 뿐만 아니라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한 사회가 어떻게 시스템 차원에서 역할을 분담하고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공공의 이해를 지켜낼 것인가, 복잡한 질문에 대한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독일 미디어 기업 마드작(Madsack) 소속 언론사들의 네트워크인 RND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냈다.
“커뮤니케이션은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무지함 사이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가짜뉴스를 가려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달하며, 끊임없이 보도하고, 분류하고, 설명하며, 찾아낸다. 기자는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없고, 일상의 영웅도 아니다. 하지만 기자는 지금 이 두려움과 맞서기 위해 큰 책임감을 느낀다. 기자들이 할 수 있는 것. 바로 정보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과학 전문 기자 애널리 뉴이츠(Annalee Newitz)가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살아남기 위한 대비를 ‘새로운 정상(new normal)’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암울한 시나리오로 스스로를 겁먹게 하는 대신에 날마다 어려운 미래를 계획해야 한다. (중략) 생존을 정상화하는 것은 재앙을 정상화하는 것과 반대다. 우리가 겁을 먹을 때, 우리는 나쁜 일이 일어날 준비를 하는 게 정상이라는 걸 잊는다. 나쁜 일에 대비하는 것은 과민 반응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어떻게 헤쳐나가는가에 대한 문제다. 재난이 끝나면 우리는 잊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건 괜찮다.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다음에 올 재난을 어떻게 대비하느냐는 것이다.”[footnote]NYT, How to Be a Smart Coronavirus Prepper, Annalee Newitz, 2020. 2. 29.[/footnote]
솔루션 저널리즘은 언론에 답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감시와 비판, 고발 보다 대안 제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과정과 변화를 추적하는 저널리즘이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바꿀 수 있지만 누군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들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간과돼 왔던 문제 해결의 과정과 시행 착오의 경험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과정에 대한 기록이 중요할 때다. 아울러 공포와 불신을 넘어 변화와 대안, 공공의 선에 대한 확신이 필요할 때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과 맥락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다. 언론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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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계속 추가 보완하겠습니다.
※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소개는 여기를 참고하세요.
→ solutionjournalis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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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주: NYT와 로이터스의 기사 링크 오류를 일부 수정. (3/3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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