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슬로우뉴스는 NCSOFT와 함께 2016년 연중기획으로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사회에 초래한 변화를 점검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는 ‘미래 읽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프랑스의 혁신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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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6일 공식적으로 출범한 메디아파르트(Médiapart)는 르몽드의 전 편집국장 에드위 플레넬(Edwy Plenel), 리베라시옹과 르몽드의 기자 출신인 프랑소와 보네(François Bonnet), 로랑 모뒤(Laurent Mauduit) 등에 의해 창간되었다. 이 시니어 저널리스트들은 탐사저널리즘에 집중하는 온라인 신문을 만들고자 했고, 이를 위해 광고를 배제하고 독자의 구독료를 재원으로 하는 새로운 독립 언론의 모델을 제시했다.
창간 당시만 해도 ‘온라인의 DNA는 무료다’라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던 만큼 아무도 메디아파르트의 모델이 성공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지만 릴리안 베탕꾸르의 불법선거자금 지원, 카다피의 사르코지 대선자금 지원, 전 재정경제부 장관 제롬 카위작의 스위스 불법계좌 등 수많은 비리를 폭로하면서 유료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모델이 되었다.
창간 8년, 이제 12만명의 유료 독자를 보유한 메디아파르트는 거대한 자본과 정치 권력에 맞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대항 권력으로 자리하고 있다. 주류 언론매체가 권력과 자본에 밀착하거나 이들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가운데 작은 인터넷 독립 매체가 탐사저널리즘의 상징성을 획득한 것이다.
그렇다면 메디아파르트 모델이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저널리즘 실천에 있어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기에 수많은 독자를 끌어들이고 재정적 안정을 구축하게 된 것일까? 아울러 이 매체는 프랑스 저널리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2016년 7월 28일과 8월 5일, 파리 12구에 자리한 메디아파르트 사무실을 방문해 메디아파르트의 저널리스트들을 만났다. 인터뷰 대상자는 다음과 같다.
- 에드위 플레넬(Edwy Plenel): 메디아파르트 대표
- 마리-엘렌 스미에장(Marie- Hélène Smiejan): 운영 책임자
- 토마 깡탈루브(Thomas Cantaloube): 국제보도 전문 기자
- 카린 푸토(Carine Fouteau): 이민 전문 기자
- 파브리스 아르피(Fabrice Arfi): 정치 탐사보도 전문 기자
슬로우 뉴스는 2013년 이미 두 개의 기사를 통해 메디아파르트를 소개한 바 있다.
- 메디아파르트, 유료 인터넷 신문의 가능성을 보여주다 (2013. 5. 2)
- 메디아파르트, 프랑스 미디어의 전통을 바꾸다 (2013. 5. 9)
이번에는 메디아파르트 저널리스트들과의 인터뷰 주요 내용을 발췌해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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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아파르트는 프랑스어로 ‘média participatif’, 즉 ‘참여적 매체’라는 의미라고 알고 있다. 이러한 매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마리-엘렌 스미에장(이하 ‘스미에장’): 메디아파르트를 참여적인 매체로 만들고자 했던 아이디어는 한국의 오마이뉴스에서 나왔다. 만약 오마이뉴스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독자들의 참여 공간인 ‘클럽(Club)’이나 다른 참여적인 부분들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오마이뉴스의 성공으로 우리에게 막연하기만 했던 ‘독자 참여’ 부분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유료모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스미에장: 사실, 유료모델이 유일한 해법이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독립 저널리즘이었기에 이를 위해서는 광고에 기대는 수익 모델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모델은 저널리즘의 콘텐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7년 2~3월부터 비즈니스 모델에 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다. 신생기업의 창업을 위해 필요한 방식들 가령, 은행대출이나 재단의 투자 등이 모두 거부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독립언론에 돈을 낼 의향이 있는 5만 명의 독자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언론학자, 지식인, 정치인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구성된 88명이 ‘메디아파르트 친구들의 모임’(“Société des amis de Médiapart”)를 결성했고, 이들이 메디아파르트 프로젝트에 투자할 것을 약속했다. 2007년 9월, 외부 투자자 두 명과 ‘메디아파르트 친구들의 모임’이 각각 50만 유로를 투자했고, 우리가 마련한 자금을 포함해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3백만 유로를 마련한 이후 창간을 결정했다.
-창간자들의 유명세가 메디아파르트의 성공에 한몫했다는 평가가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스미에장: 당연히 매체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창간자들의 유명세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르몽드의 창간을 생각하면 누구나 위베르 뵈브-메리(Hubert Beuve-Mery; 1902~1989, 르몽드 창업자)를 떠올린다. 그다음으로 누가 가장 유명한 편집장이었나를 물으면 사람들은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리베라시옹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가 리베라시옹을 창간했는지 기억한다. 당연히 처음에는 중요하다.
그러나 저널의 이미지가 구축된 이후에는 이들의 명망이 지속해서 역할하지는 않는다. 물론 에드위 플레넬의 유명세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플레넬 이외에도 로랑 모뒤, 마르틴 오랑쥬, 이들 모두 모두 종이신문에서 유명한 저널리스트들이었다. 반면 파브리스 아르피는 처음 메디아파르트에 왔을 때 이름 없는 저널리스트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스타 저널리스트가 되어 있다.
매체 창간 당시에는 창간자의 명망이 그 매체 이미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즉, 저널리즘적으로 전문적이고 엄격한 매체일 것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후에는 편집팀이 결정한다. 메디아파르트 편집팀에는 처음부터 20~25명의 저널리스트가 참여했다. 20대 초반의 저널리즘 스쿨을 갓 졸업한 젊은 기자부터 경험이 많은 60대의 기자들까지 다양한 매체(종이신문, 통신사, TV, 라디오) 출신의 다양한 경험을 한 저널리스트로 구성되었다.
-메디아파르트의 저널리스트 선발 기준은 무엇인가?
에드위 플레넬(이하 ‘플레넬’): 메디아파르트에는 언제나 수많은 저널리스트가 지원한다. 가장 중요한 선발 기준은 순응주의자를 뽑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인 프로필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거대한 벽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사람을 선발해왔고, 처음부터 이런 사람들로 구성하고자 했다. 파브리스 아르피는 리옹의 젊은 저널리스트였다. 저널리즘 스쿨 출신도 아니고, 스스로 저널리즘을 공부한 신출내기 기자에 불과했던 그는 지금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밝혀내면서 프랑스의 대표적인 탐사저널리스트가 되었다.
우리는 일반적인 관행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당연히 직업적 저널리스트의 능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메디아파르트의 도전에 합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르게 그리고 새롭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새로운 리베라시옹이나 르몽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한다. 메디아파르트 저널리스트들은 이러한 사고를 공유한다.
3년 전, 아랍 세계가 큰 변화를 맞이하던 시기에 나는 [무슬림을 위하여] (‘Pour les musulmans’)라는 기사를 썼고 한 출판사가 책으로 만들자고 해서 같은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그것은 이슬람이나 무슬림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문명의 전쟁, 두려움의 정치, 우리를 옭아매는 함정, 테러리스트에 관한 책이었다. 이러한 책은 당연히 많은 독자를 당황하게 한다. 우리는 12만 정기구독자들이 있고, 3백만 명의 방문독자들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 안주해선 안 된다. 대담성이 필요하다. 아주 많은 경우 메디아파르트가 단지 특종만을 다루거나 사건을 파헤치는 보도만 한다고 안다. 그러나 메디아파르트는 시대를 앞서가는 도전적인 기사를 내보내기는 매체이기도 하다. 프랑소와 보네, 로랑 모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매체를 만들고자 했고 새로운 세대의 저널리스트들 역시 우리들의 뜻에 동조하기를 바란다.
-메디아파르트 저널리스트들과 편집방향의 차이로 인한 갈등은 없나?
플레넬: 메디아파르트는 ‘편집 방향’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우리는 대신 ‘파르티 프리’(parti pris 큰 생각, 성향 등을 의미)라고 한다. 이는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하나의 편집 방향이 아니라 합리적인 소신과 저널리즘 윤리에 기반해 저널리스트는 개인적 관점을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공통의 직업문화를 갖고 있다. 우리의 작업은 사안의 진실, 즉 진위가 확인되고 출처가 확실한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누군가 메디아파르트의 방향성을 정의 내리라고 요구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급진적 민주주의자’들이라고. 프랑스어에서 급진적(radical)이라는 단어는 뿌리(racine)에서 파생했다. 뿌리에서부터 질문을 가져오는 것,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그러므로 메디아파르트는 정치적 개념의 편집방향이 없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이 전환의 시대에 우리가 유일하게 보호해야 할 대상은 ‘민주주의’라고 여긴다. 이 민주주의를 더욱 심화시키고 전진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할 수 있기에 토론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적 차원에서 우리가 가진 자원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충분히 숙고할 시간을 갖고, 사회를 위해 좀 더 성숙한 토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프랑스의 다른 매체에 비교해 메디아파르트의 특별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토마 깡탈루브(이하 ‘깡탈루브’): 메디아파르트는 전통적인 언론 조직과는 달리 편집팀에 위계질서가 없다. 편집국장인 프랑소와 보네를 제외하고 모든 저널리스트의 지위는 동등하다. 저널리스트들은 탐사, 국제, 경제, 문화 등 각각의 섹션을 담당할 뿐 이러한 섹션을 책임지는 팀장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편집회의도 돌아가면서 주재한다. 처음에는 22~23명가량의 저널리스트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훨씬 늘어났다. 40명가량의 저널리스트들뿐 아니라 수많은 해외통신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이 함께하고 있다. 우리는 각 분야의 전문적인 저널리스트들이 모인 집단이기에 평등한 관계이며 급여 수준도 동등하다.
까린 푸토: 메디아파르트는 그저 독립 언론임을 말로만 표방하는 매체가 아니라 진짜 독립언론이다. 소유주도 없다. 창간자들이 주주로 참여하지만, 저널리스트의 독립성을 충분히 보장한다. 또한, 일하는 환경에서도 다른 매체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메디아파르트에서는 저널리스트의 작업에 대한 질문을 상당히 많이 한다. 저널리스트로서 일하는 과정에서 왜 하는가 어떤 방식, 어떤 주제 등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 등.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나눈다. 누구를 인용할 것인가, 어떤 취재원을, 혹은 어떤 저자를, 어떤 책을 등등.
레제코[footnote]레제코: 프랑스의 대표적인 경제전문 종합일간지.[/footnote]에 있었을 때는 전혀 이렇지 않았다. 전통적인 저널리즘 조직 구조인 레제코에도 물론 좋은 저널리스트들이 많았고, 전문 직업저널리스트로서의 자부심도 강했지만, 우리의 작업 자체에 대한 질문이나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았다. 반면, 여기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한다.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나 등. 이것이 메디아파르트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레제코에서는 각 팀의 팀장이 뭘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르피가로나 혹은 당시에는 상당히 중요한 저널이었던 르 트리뷴에서 다루는 뉴스를 우리가 싣지 않았다거나 하면 우리도 같이 실어야만 했다. 반면, 여기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일을 조직한다. 이민 관련 사건이 큰 이슈로 떠오를 때는 신속하게 관련 기사를 쓸 때도 있고, 때로는 탐사취재를 나가기 전에 충분히 숙고할 시간을 갖기도 한다. 내 리듬에 맞춰 내 일을 조직한다.
다른 저널리스트들과 늘 대화하지만, 실질적으로 팀장이나 책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도 나에게 ‘이것 말고 다른 것을 해야 한다’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통 뉴스조직에서 일하는 내 동료들과 달리 나는 독립언론에서 일할 뿐 아니라 내 작업에서도 독립적이다
-많은 매체가 뉴스 유료화를 원하지만 수많은 무료 정보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선뜻 유료화를 시도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좀 더 구체적으로 메디아파르트가 제공하는 기사의 특성을 설명해줄 수 있나?
깡탈루브: 메디아파르트는 하루에 7~10개가량의 심층 기사를 싣는다. 우리는 저널리스트들이 자신의 리듬에 따라 일하도록 내버려 둔다. 왜냐하면, 탐사보도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것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들에게 하루에 한 개씩의 기사를 쓰게 한다거나 정보 제공의 경쟁, 속보경쟁에 내몰리게 하기보다는 부가가치 지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을 선택했다.
오늘날 독자들은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소비한다. 1990년대 2000년 무렵 프랑스에서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24시간 뉴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후 24시간 뉴스 채널이 등장했고, 인터넷 뉴스 사이트가 등장했다. 이로 인해 가공하지 않은 단순 정보는 엄청나게 넘쳐나고 있다. 모바일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로 인해 저널리스트의 역할도 변했다.
이제 저널리스트는 어떤 사안이 발생한 원인이나 설명과 같은 맥락이나 분석, 사고가 담긴 자신들 만의 고유한 정보를 전달하는 이들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 이런 기사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탐사보도를 위한 취재의 시간, 이를 분석하고 사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매체들과 유사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탐사보도와 심층 분석에 기초한 부가가치를 가진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선택했다.
메디아파르트가 창간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인터넷에서의 기사는 짧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단번에 모든 금기를 없애버렸다. 메디아파르트는 기사의 길이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사람들은 우리의 기사를 읽어주었다. 독자들이 이런 기사를 끝까지 읽는지, 아니면 중간에 그만두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어떤 독자가 어떤 기사를 읽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읽은 기사들의 리스트들을 보면 대체로 상당히 긴 기사들이 읽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조건 긴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늘어놓기보다는 차라리 짧은 기사가 나을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기사 길이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유료는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우리는 유료를 선택했고, 긴 기사는 안 된다고 했지만 우리는 긴 기사 양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성공했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또 다른 실험을 시도했을 것이다. Rue 89는 짧은 기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실패했다. 반면 메디아파르트 모델은 성공했다.
-메디아파르트가 프랑스 저널리즘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스미에장: 우리는 온라인뉴스의 유료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후 많은 매체가 유료화를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독립언론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성공하기 전까지는 웹에서 유료 매체는 불가능하다고들 말했다. 이제 이런 이야기들은 사라졌다. 더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쟁점은 독자들의 주머니를 열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느냐이다. 부가 가치가 투여된 정보, 독창적인 정보의 전달, 정기구독자의 개발과 같은 문제들은 여전히 신생 독립매체들에 중요한 도전으로 남아있다.
파브리스 아르피: 우리가 처음 창간했을 때 아무도 이 모델이 성공할 것이라 믿지 않았다. 온라인에서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창간한 많은 매체가 문을 닫거나 혹은 우리와 유사한 모델로 변화했다. 에드위 플레넬을 비롯한 창간자들은 모두가 말도 안 된다고 했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들이 옳았다.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우리는 처음으로 유료모델을 선택했고,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처럼 메디아파르트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많은 매체에 영향을 미쳤다.
내 생각에 메디아파르트의 가장 중요한 점은 광고 수익이 아닌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거의 15년 동안 많은 매체가 광고 수익에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믿음을 불식했다. 이들은 수익뿐 아니라 독자까지도 잃었다. 언론의 생존과 제 역할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퀄리티 정보다. 충분한 가치가 있는 퀄리티 정보는 독자의 주머니를 열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에도 제대로 된 진짜 저널리즘을 구현하고 싶어 하는 저널리스트들이 있다. 다만 프랑스처럼 양도조항이나 기자 양심조항과 같은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자신이 속한 매체를 떠나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독립언론을 만들고자 하는 저널리스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플레넬: 만약 독립언론으로서 메디아파르트의 실험이 주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싸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싸울 때 우리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했다. 만약 확실한 보장이 존재했더라면, 우리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메디아파르트를 처음 만들 때 나를 찾아온 많은 저널리스트에게 3년까지는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당신의 급여를 적절하게 지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 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3년 동안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일단 시도해보자고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성공할 것이라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는 싸웠고, 지금의 메디아파르트를 만들었다.
힘들더라도 지치더라도 계속 문을 열기 위해 싸워야 한다. 만약 우리의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갔다 하더라도 우리는 뭔가를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시도가 의미 있는 것은 우리가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저널리즘의 위기에 맞서 끊임없이 싸웠다는 것, 이러한 위기를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는 것에 있다. 새로운 매체를 만든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많은 이들이 저널리즘의 미래는 어둡다고 예측한다. 당신은 저널리즘의 미래가 어떨 것이라고 예상하나?
플레넬: 나는 저널리즘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대는 저널리즘을 회복하고 ‘저널리즘의 이상’ 실현을 가능케 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저널리즘은 어느 날 갑자기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투쟁과 저항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저널리스트들은 안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저널리스트다, 우리는 거대 미디어에 종사한다’라고 자위하면서.
오늘날 디지털 혁명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투쟁을 부추기고 있다. 그건 아주 좋은 도전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저널리즘의 미래는 있다. 그리고 이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저널리스트들이 자신들의 직업이 신뢰를 회복하도록 투쟁해야만 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정치권력에, 거대자본에 저항해야만 한다.
스테판 에셀에 의하면 창조하는 것, 그것이 곧 저항이고, 저항하는 것, 그것이 곧 창조다. 우리는 끊임없이 저항해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그 길 위해서 무언가를 창조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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