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이 글은 현재 진행 중인 ‘정운호 게이트’ 재판(정운호 외 피고인 13명)을 꾸준히 방청하면서 기록한 피고인과 주요 증인의 인상적인 발언과 증언을 정운호 게이트의 주요 인물을 기준으로 재정리한 것이다.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편집자)
정운호 게이트 재판, 그 ‘웃픈’ 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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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호 전 네이처 리퍼블릭 대표가 최유정 변호사를 구치소에서 접견 중 폭행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정운호 게이트’는 블록버스터 급 법조 로비 의혹 사건이다.
나비효과, 구속기소된 피고인은 정운호 외 13명
정 전 대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구속기소된 사람은 정 전 대표 외 13명이나 된다. 그 외 간접적으로 정운호 게이트와 연결된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사태로 인해 전직 사장 남상태·고재호 씨도 각각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홍만표 변호사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인해 ‘진경준 게이트’와 ‘박수환 게이트’도 정운호 게이트에 간접적으로 연결이 된다. 복잡하게 꼬리가 꼬리를 물고 있는 게이트로 인해 구속기소된 사람은 총 17명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각 재판부는 ‘정운호 게이트’ 관계자들의 제1심 재판을 각각 진행하며, 강행군을 진행하고 있다. 왜 강행군이냐면, 각각의 혐의가 매우 복잡한 데다가 서로 촘촘히 연결돼 있어 불러야 할 증인도 많고 심리해야 할 내용도 많기 때문이다. 공판기일이 밤 11시까지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강행군 속에서 정 전 대표와 관련돼 구속기소된 13명은 저마다의 인간적인 모습과 독특한 개성을 보였다. 그들의 재판 중 인상적인 장면들을 추려 본 계기이기도 하다. 이들의 인간적인 모습과 독특한 개성은 3회에 걸쳐 다룰 예정이다. 이 기사에서는 정 전 대표의 인상적인 장면을 주로 짚어본다.
“손님 뛰고 간다”? 재판부 혼란에 빠지다
정 전 대표는 자회사의 자금을 빼돌리거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손해를 끼치는 등의 혐의가 적용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배임, 그리고 브로커 심모 씨의 재판에서 거짓 증언을 한 혐의가 적용된 위증, 그리고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제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정 전 대표는 자신의 재판 말고도 다른 사람의 재판에 주요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문제는 그가 증인으로 출석한 재판은 반드시 길어져 밤늦게까지 진행되는 것이 예사라는 점이다.
정 전 대표는 9월 12일 최유정 변호사(사진)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대표는 최 변호사에게 “집행유예나 보석을 받아내 구치소에서 석방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50억 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 변호사는 20억 원을 받았다고 맞서고 있다.
정 전 대표의 증언은 6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정 전 대표는 “50억 원을 줬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최유정이 ‘배당할 재판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도 했다”고 덧붙였다. 말이 다소 다른 방향으로 새는 감은 있었어도, 주요 논지에서는 벗어나지 않았다. 기자는 이때만 해도 정 전 대표를 달변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9월 30일과 10월 7일 이틀에 걸쳐 12시간 30분 진행됐던 홍만표 변호사의 재판에서였다. 홍 변호사는 정 전 대표의 원정도박 혐의와 관련해 2회에 걸쳐 6억 원을 받고 무혐의를 받게 해주거나 ‘몰래 변론’을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었다.
재판부가 정 전 대표에게 들어야 할 내용은 간단했다. “각각 3천만 원과 2억 원을 준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 간단한 질문의 답을 듣기 위해 재판부와 재판 구성원들은 12시간 30분을 법정에 앉아 있어야 했다. 특히 오후 2시에 시작한 10월 7일 재판에서 정 전 대표의 증언이 마무리된 시간은 오후 9시 40분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쉽게 파악하기 힘든 정 전 대표의 횡설수설과 장광설이 그만큼 길었다는 의미이다. 정 전 대표는 이 과정에서 예사롭지 않은 표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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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 변호사에게 3천만 원을 준 이유는 ‘책상값’이다.
* 홍 변호사에게 2억 원을 준 이유는 “변호사 개업을 하셨기 때문에 축하 인사도 드리고 손님도 뛰고 갈 겸 해서 드렸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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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값’과 ‘손님 뛰고 간다’는 표현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처음 듣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재판부도 마찬가지였다. 재판부는 정 전 대표의 증언을 끊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정 전 대표가 제시한 해답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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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값: 개업을 하셨으니 책상도 필요하고, 의자나 컴퓨터도 필요할 것 아닌가. 그래서 그런 데에 쓰시라고 드린 돈이다. 청탁과 관계없다.
* 손님 뛰고 간다: 개업을 하셨는데, 마침 동업자 김 모 씨가 구속기소될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도움을 얻으려 했던 것이다. (변호사에게 의뢰인을 소개시켜 준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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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전 대표는 분명히 범상치 않았다. 검사의 신문 중에도 그는 “검사님 공부 많이 하셨네요”라는 말을 하거나, 검사가 자신의 답변을 알아듣지 못하자 “좋아요, 그럼 다시 얘기하고…”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 외에도 9월 6일 자신의 재판 첫 공판기일에서는 모두 절차에서 진행하는 ‘피고인의 주소 파악’을 위해 재판장이 주소를 묻자, “구치소에 산다”고 답변해 방청객들을 잠시 웃게 하기도 했다.
정 전 대표의 증언이 이어진 근본적 이유는 ▲증언 도중 삼천포로 빠지며 증언과 무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고 ▲시점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증언임에도 구분 없이 뒤섞어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말이 바뀌는 사례도 빈번하다.
예를 들면, 검사가 2011년 있었던 사건에 대한 증언을 요구할 때, 정 전 대표는 아무런 사전 설명 없이 2013년 있었던 사건을 설명하는 일이 있었다. 이런 식의 증언이 끊임없이 이어진 것이다. 최 변호사의 공판에서는 이렇게까지 요점 파악이 어렵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말로 횡설수설을 한 것인지, 일부러 그런 것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런 예가 하도 많아서인지, 홍 변호사의 재판 중에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김도형 부장판사는 정 전 대표를 향해 “증인이 다른 재판에서 이 재판에서 한 증언과 다른 취지의 증언을 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본 재판장이 직접 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겠다”는 말을 남겨 한밤중에도 재판을 방청하던 몇몇 방청객들을 웃게 하기도 했다.
“정운호의 별명은 일기예보”
10월 14일 진행된 홍 변호사의 공판에는 성형외과 의사 이 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씨는 정 전 대표와 김수천 부장판사 사이에서 돈을 전달하며 “유리한 판결을 해 달라”는 청탁을 한 혐의로 변호사법 위반죄가 적용돼 그 자신도 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홍 변호사와도 친분을 유지하며, 정 전 대표와 홍 변호사 사이의 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증인으로 선정된 것이었다.
이 씨는 정 전 대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에는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기소된 것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씨의 증언을 들을수록 구체적인 경험담이 나옴에 따라 그것만이 이유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 씨의 증언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정운호는 홍 변호사를 통해 ‘빽’을 써서 구속을 피하려고 했고, 김수천 부장판사에게도 구명을 부탁했다. 그러다가 원하는 대로 안 되자 홍 변호사에게 ‘끈이 떨어진 것이 아니냐’고 짜증을 냈다. 내가 볼 때 홍 변호사는 변호인으로서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운호는 이를 알면서도 뒤에서 홍 변호사를 욕했다. 평소 정운호의 성품대로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면서 나왔던 말이 “정운호의 별명은 일기예보”이다. 왜 ‘일기예보’일까? 이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운호는 조증과 울증이 심해서 아침저녁으로 바뀐다. 7시에 약속했다면, 6시 58분까지 확인을 해야 한다.”
‘정운호는 변덕이 심하다’는 취지의 증언인 것으로 이해됐다. 이 씨가 왜 이런 증언을 했는지에 대해, 10월 20일 진행된 자신의 재판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것은 이 씨의 개인적 상황과도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다시 자세히 이야기할 예정이다.

대표님의 ‘돈 자랑’은 사실일까
10월 13일 정 전 대표의 공판에는 “정 전 대표로부터 총액 2억 5,500만 원을 받고 사업상 청탁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된 검찰 수사관 김 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대표는 “김 씨에게 돈을 뜯겼다”고 주장했고, 김 씨는 “빌렸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었다. 김 씨는 일관적으로 “빌린 돈”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증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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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정운호가 ‘기분 좋은 일이 있다’며, 지갑 속에 있는 1억 원짜리 수표 90장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지하철에서 받았다’고 말했다.
때마침 나는 금전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고, 정운호는 1억 원을 줬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빌려 달라’고 요구했고, 정운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1억 원을 더 주며 ‘더 이상은 안 된다’고 말했다.”
※ 기자 주 – “지하철에서 받았다”: 정 전 대표는 동업자 김 모 씨와 서울도시철도공사와 해피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입찰에 응했고, 입찰에 실패하자 입찰에 성공한 업체를 사들여 사업을 진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후 감사원의 감사 등을 받아 계약이 해지됐고, 정 전 대표는 이를 청탁 로비로 해결하려고 하다가 결국 지금에 이르렀다. 90억 원은 그와 관련된 돈이며, 정 전 대표의 횡령 의심 액수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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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김 씨의 이 증언을 듣고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정 전 대표의 나이는 50대 초반이고, 김 씨의 나이는 40대 중반이었다. 김 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다 큰 어른들이 어린아이 같은 장면을 연출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좋은 장난감을 놓고 자랑하거나 ‘잠깐만 가지고 놀다 주면 안 되냐’고 아웅다웅 하는 장면과 비슷하다.
정 전 대표 측도 위의 상황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였다. 맥락의 해석을 놓고 ‘뜯긴 것이냐, 아니면 빌린 것이냐’의 논쟁을 한 것이다.
故 성완종 前 회장과도 겹치는 ‘정운호의 삶’
“정 전 대표로부터 레인지로버 차량·돈 1억 7천만 원·딸의 미인대회 1위 수상 혜택 등을 받으며, 정 전 대표에게 유리한 판결을 해줬다”는 의심을 받는 김수천 부장판사의 공판기일은 11월 9일 시작된다. 정 전 대표가 김 부장판사의 재판에 과연 증인으로 출석할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이다.
정 전 대표는 최 변호사의 공판에서 많은 법조인의 이름을 댔다. 주변에 많은 법조인을 두고 산 이유는 무엇일까? 정 전 대표를 둘러싼 갖가지 재판 정황을 살펴보면, 정 전 대표가 ‘무슨 일이 있으면 로비로 해결을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참고로 정 전 대표의 9월 22일 재판에는 네이처 리퍼블릭의 전직 CFO(Chief Financial Officer:재무 담당 최고 책임자)가 증인으로 출석해 “회장님은 재무·회계 용어를 알아듣지 못하신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정 전 대표는 중졸의 낮은 학력을 극복하고, 시장 좌판 장사로 시작해 대형 화장품 회사의 오너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음에도 사업가로 성공해 국회의원까지 됐던 故 성완종 前 경남기업 회장과도 일정 부분 겹치는 삶이다.

로비는 이익을 얻거나 불안이나 어려움을 해소하려고 할 때 시도된다. 두 사람은 모두 “전방위적 로비로 어려움을 해결하다가 끝내 스스로 수습하지 못하는 사태를 맞이했다”고 알려져, 각각 자살했거나 구치소에 다시 수감됐다.
어려운 환경에서 금전적 성공을 일군 두 사람이 엘리트들의 섬에서 고립된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는 그 불안감만은 일견 이해가 가기도 한다. 성 전 회장은 정치인들 사이에서, 정 전 대표는 법조인들이나 경영자들 사이에서 큰 불안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로비야말로 가장 확실하다”라는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방법만을 답습하다가 파멸할 수도 있다”는 속설이 과연 옳은 것으로 입증될 수 있을지, 정 전 대표와 십여 명의 재판은 그렇듯 거대한 인간 드라마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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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 바로잡음
이 글 중 “정운호 전 네이처 리퍼블릭이 김 모 수사관에게 자랑했던 지갑 속 수표 90억 원의 출처”에 대해 “서울메트로 역사 내에서 명품브랜드 사업”이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확인 결과, 90억 원의 출처는 서울메트로가 아닌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진행했던 해피존 사업이 실패한 뒤, 정 전 대표가 서울도시철도공사로부터 돌려받았던 보증금이었습니다.
이 돈 역시 정 전 대표의 횡령 혐의와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출처에 대한 오류가 확인됐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습니다. 좀 더 꼼꼼히 확인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실수를 줄이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필자, 편집자, 업데이트: 2016년 10월 30일 오후 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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