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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커피숍을 쭉 둘러봅니다. 대략 30명이 보입니다.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은 딱 10명입니다. 지하철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코로나19는 많은 걸 바꿨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달라진 거라면 역시 마스크가 아닐까 싶습니다. 심지어 길거리를 혼자서 걸으면서도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보는 게 익숙한 시절입니다.

바이러스와 인간, 원청과 하청 

어쩌자고 행정안전부 출입으로 복귀하면서 보건복지부에도 이름을 올렸을까요. 맞습니다. ‘이름만 올리는 거야’라고 위안을 삼으려고 했습니다만,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지부는 ‘개미지옥’입니다. 2013년 복지부 출입할 때 충분히 느꼈습니다.

그때는 기초연금 문제로 1년 내내 시달렸습니다. 2년 뒤엔 메르스로 난리법석을 떨 때는 ‘복지부 경험자 집합’ 나팔이 울려서 다시 차출됐습니다. 한동안 잠잠해서 안일했습니다. 중국에서 폐렴 얘기가 나올때만 해도 신경쓸 일 없으려니 했던 건 순전히 제 희망사항에 불과했습니다.

바이러스란 하청업체 등골 빼먹고 사는 원청업체 같은 놈입니다. 문제는 너무 많이 쥐어짜서 하청업체가 파산하면 원청업체도 같이 무너진다는 겁니다. 파산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쥐어짜면서 오래 오래 갑질하는 게 이익이겠지요. 코로나 바이러스에겐 사람이 곧 하청업체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바이러스도 죽습니다. 사람이 적당히 골골하면서 콜록콜록하며 다녀야 합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바이러스 치명률과 전염력은 반비례 관계입니다. 코로나는 치명률이 낮되 전염력이 높습니다. 중증 단계보단 경증 단계에서 더 많은 바이러스를 배출한다는 얘길 듣고 생각했습니다.

‘더 진화한 놈이로구나.’

코로나19

마스크 선진국 대한민국의 과유불급? 

한국 사회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건 세계 곳곳에서 칭찬과 찬사가 넘쳐나는 듯 하니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전반적으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은 감염병 관리 교과서에 실릴만한 모범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그 와중에 교과서에 실릴만한 문제 사례는 언급하고 싶습니다. 감염병 관리 교과서보단 메시지 관리 실패 교과서에 실려야 하는 게 차이점 정도겠죠.

대학 시절 집회장에 갈 때마다 항상 신기했던 게 마스크 파는 아저씨였습니다. 경찰도 따돌리고 몰래 몰래 집회장에 갔는데 도대체 이 아저씨는 어떻게 알고 집회장에 미리 와서 마스크를 팔고 있었던 걸까요. 더구나 뭐하는 집회인지도 다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저씨가 파는 마스크야 다를것 하나 없는 흰색 면 마스크입니다만 집회 성격에 따라 제목이 달라집니다. 노동조합 집회장에선 ‘노동해방 마스크’를 팔고 농민집회에선 ‘농민해방 마스크’를 판매합니다. 대학생 집회에서도 주제가 통일운동이면 ‘조국통일 마스크’이고 반미집회에선 ‘민족해방 마스크’였습니다.

당시 마스크란 일단 경찰 채증에 걸리지 않기 위한 용도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경찰이 틈만 나면 쏘아대는 최루탄으로 인해 호흡곤란을 겪지 않기 위한 아주 소박한 방독면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는 용도도 컸습니다. 물론 마스크란 놈은 한번도 어김없이 기대를 저버렸습니다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마스크 안쪽에 휴지를 덧대곤 했습니다.

코로나 마스크

코로나19로 이래저래 힘든 와중에 ‘마스크 대란’이 벌어지는 걸 보면서 덩달아 마스크를 주제로 취재도 하고 기사도 쓰고 했습니다. 사실 마스크란 ‘심리적인 문제’에 가깝습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도 3일 정례브리핑에서 “보건용 마스크는 사실 의료인이 써야 하고, 일반인들은 그것보다는 거리두기가 훨씬 중요하다”고 밝히기도 했지요. 미국에서 역학조사관으로 일했던 탁상우 박사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호흡보호구’인데, 이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의료진과 소방관들이다. 과도한 공포 때문에 가장 먼저 호흡보호구를 지급받아야 할 이들에게 차질이 생기는 건 우려스럽다. 인적 없는 길거리에서 마스크 쓴 모습을 자주 보는데 답답한 걸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밀폐된 공간이나 타인과 밀접하게 접촉해야 하는 공간에선 자신을 보호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대구 같은 곳에선 대중교통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게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 같은 곳에서까지 너나없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마스크를 쓰는 건 지나치다. 역설적인 게 한국만큼 마스크 보급이 잘되는 나라가 없다 보니 마스크가 모자라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황사나 미세먼지 영향이겠지만 생산능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도 이렇게 많은 마스크를 단시간에 공급할 능력이 안 된다.”

-자작나무통신, 전 미국  CDC 역학조사관, “과도한 마스크 사용 자제해야” (2020. 3. 4.) 중에서

재난기본소득 지지 이유는 ‘효율성’ 

코로나19 와중에 공론화된 게 재난기본소득인 걸 보면 가히 ‘국가의 귀환’이란 생각과 함께 한국이 참 역동적인 나라 맞구나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초중고 학생들에게 점심 먹이는 걸 두고 나라가 망할 것처럼 난리가 나고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가 서울시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총선 최대 이슈가 된게 불과 10년 전입니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소득과 상관없이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이란 대선공약이 장안의 화제가 된게 8년 전이었고, ‘생각해보니 모든 노인에게 주는건 무리’라며 공약 후퇴를 한 게 7년 전이었습니다. 이제 한국은 ‘전국민에게 소득과 상관없이 재난기본소득을 주자’는 토론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본소득이 좋은 정책인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생각해봐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아직 판단이 잘 안섭니다. 다만 이번 재난기본소득은 썩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에 제한을 두지 않는’ 훌륭한 지방자치단체장이 여럿 있어서 다음 대통령 선거를 기대하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고요. 일단 제가 ‘소득과 상관없이’ 주는 걸 지지한다는 건 굳이 또 언급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저는 복지정책은 보편적으로, 산업정책은 선별적으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공중화장실이 소득과 연령과 성별, 국적에 상관없이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한국인이 게을러지지도 않았고, 국가에 너무 의존하다보니 괄약근이 약해지지도 않습니다(참조: ‘무상’ 화장실).

제가 재난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건 효율성 때문입니다. 사실 효율성은 재난기본소득을 반대하는 분들이 내세울 법한 가치겠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재난기본소득이 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최근 11.7조 원 규모 추경을 통과시켰습니다(2020년 3월 17일). 이 돈이 실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도달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요? 일단 정부가 추경을 준비해서 국회를 통과하는데 한 달 가까이 걸렸습니다. 여야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했는데도 그 정도입니다.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지자체는 지자체별로 추경을 또 해야 합니다. 예산을 집행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획재정부는 27일 17개 광역지자체 부단체장 등이 참석한 비상 재정관리점검회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구윤철 기재부 차관은 “11조7천억 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해 2개월 이내에 75% 이상 집행한다는 목표로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면서 정부 추경에 대응한 지자체 추경을 내달 초까지 조속히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광역 지자체 다음은 기초 지자체 추경도 있습니다.

소상공인 대출같은 건 어떨까요. 대출을 받는건 신청을 해야 하고, 선별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거치는 것 자체가 ‘긴급’과 거리가 멉니다. 시사IN 최근호에 이런 증언이 있습니다. “후배 관장이 정부에서 한다는 소상공인 대출을 신청했다. 신청자가 너무 많아 두 달 후에나 받을 수 있다더라. 오늘 당장 10만 원이 없어 죽겠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겠나.” 이 말을 한 사람은 하루 서너시간씩 배달을 하는 플랫폼 노동자인데 하루 60개 배송해서 4만2,000원을 번다고 합니다. 이 분들에겐 몇 달이 걸리는 ‘긴급’ 대출보단 재난기본소득이 훨씬 중요합니다.

지금은 한달 두달을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10만 원이 없어서 죽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달 두달을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건희에게도 재난기본소득이 필요할까요? 그분이 아직 살아있다면, 그분도 재난기본소득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받기 싫다고 하면 벌금을 물려서라도 받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신,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근로소득자 원천징수하듯이 소득구간에 따라 소득세를 부과하면 자연스럽게 소득에 따라 차등이 생깁니다(재난기본소득에 관한 한 연말정산을 배제한다면 소득재분배 효과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끝으로 

인간 역사란 바이러스란 놈과 불편한 동거를 계속해온 기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footnote]참고: 전염병, 그 역사의 순간들[/footnote]. 어떨 때는 문명 하나를 통째로 무너뜨리기도 했던 반면 어떤 나라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도 했습니다.

저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공병원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문제점을 되짚어 보고[footnote]참고: 세종시 공공병상 하나도 없어..공공의료기관 비중 OECD 최하위[/footnote],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을 서두르고[footnote]참고: 문재인 공약 감염병 전문병원 여전히 지지부진[/footnote], 공공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footnote]참고: 코로나19, 공공의료 시스템 재구축 기회로 삼아야[/footnote]. 중국인 입국금지 같은 헛소리에 귀기울이지 말고[footnote]참고: 코로나19, 이게 다 ‘저들’ 때문일까[/footnote],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되돌아보는 것도 정신건강에 이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footnote]참고: 그들의 시선, 우리의 시각[/footnote].

전망대 망원경 예측 예견 예상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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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후기:

사실 저는 기본소득에 대해선 아직 ‘판단유보’입니다. 기본소득이란게 꽤나 급진적인 진보 의제로 통용되지만, 외국 사례를 보니 강력한 보수 의제로 소비된다는 것만 봐도 기본소득이 가진 양면적인 성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듯 합니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도 사실 우파정부에서 시행한 것이었죠.

재난기본소득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많이 있습니다. 가령, 정부추경을 100% 기본소득으로 하는 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재난기본소득이란게 기본소득과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지도 의문이 있는게 사실이고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겠는데, 재난기본소득을 그 선택과 집중 가운데 하나로 활용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정도가 제 의견입니다.

사실, 기재부 등 정부부처와 구청 등 기초지자체를 취재해 본 경험에 비춰보면 정부에서 발표하는 그럴듯한 정책과 현장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게 제 오랜 고민꺼리였습니다[footnote]참조: 소아 폐렴구균 무료접종 시행, 지자체가 벌벌 떠는 이유[/footnote].

정부가 강조하는 각종 ‘긴급’ 서민대책의 속도와 괴리를 감안한다면, 재난기본소득이란 방식을 보완적으로 시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재난 국면에서 공동체 소속감과 일체감을 주는 심리적인 효과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고요. 바로 그런 이유로 대통령 권한대행도 해보고 서울역 안에서 차도 몰아본 연륜 넘치는 제1야당 대표께서도 (한때) 재난기본소득에 적극 공감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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