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농민들이 한국전력공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낸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8월12일, 기후위기로 실질적 피해를 입은 농민 여섯 명이 한국전력공사와 발전 5사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이들은 한국전력 등 다배출 기업들이 기후 재난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을 피고로 하는 피해 보상 소송은 한국에서 처음이다.
  • “기후 위기의 비용을 시민들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려는 시도다.
  • 탄소 배출에 책임이 있는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직접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사회 계약이 될 수 있을까.

정신적 피해 청구 금액은 2035원.

  • 농민들은 재산상 손해로 각각 500만 원, 이와 별개로 정신적 손해로 각각 2035원을 청구했다.
  •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후 위기의 피해와 책임 소재를 입증하기 위한 소송이기 때문이다.
  • 당연히 승소가 목표지만 이 재판 결과에 따라 비슷한 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
  • 2035년은 파리 기후협약 20년이 되는 해다. 5년마다 국가 감축 목표(NDC)를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올해는 2035년까지 목표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2035라는 숫자의 의미가 크다.
  • 2040년까지 석탄 발전을 폐쇄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공약을 5년 앞당겨야 한다는 의미도 담았다.

농민 마용운의 이야기.

  • 마용운(농민)은 경남 함양군에서 15년째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데 기후 변화가 몸으로 체감될 만큼 빨라졌다고 한다.
  • 4월 말에 피던 사과꽃이 4월 초에 피기 시작하고, 그 사이 꽃샘추위가 닥치면 냉해 피해가 속출한다. 2023년에는 전국적으로 냉해가 돌아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 여름마다 반복되는 폭염과 폭우, 계절의 순서가 뒤바뀌는 이상기후로 작황이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 마용운은 “더 큰 재앙을 피하려면 탄소중립이 시급하다”면서 “한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32%를 차지하는 한국전력과 자회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민 황성열의 이야기.

  • 황성열(농민)은 충남 당진에서 30년 넘게 벼농사를 짓고 있는데 2010년 태풍 곤파스 이후 한 해도 쉽게 지나간 적이 없다. 올해도 침수 피해를 크게 입었다.
  • 황성열은 “피해는 힘없는 농민들이 보고, 원인을 제공한 기업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황성열은 기상이변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화력 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핵심 원인이라는 걸 알고 나서 소송에 나서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 황성열은 “누군가가 이 싸움을 해야 한다면 내가 먼저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법정에 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농민 이종혁과 송기봉, 윤순자의 이야기.

  • 경남 산청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이종혁(농민)은 폭우로 딸기 하우스가 물에 잠기는 큰 피해를 입었다.
  • 경기도 이천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송기봉(농민)은 복숭아순나방이 창궐해서 금쪽 같은 나무를 베어내야 했다.
  • 제주 서귀포에서 감귤 농사를 짓는 윤순자는 감귤의 품질이 떨어져서 고민이다.
  • 이들이 감당하고 있는 피해는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해가 갈수록 열매는 덜 열리고 덜 자란다. 그나마도 이런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될 날이 곧 올 거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만약 아니었다면’ 계산 방식.

  • 손해배상 소송은 ‘만약 아니었다면(But for)’ 요건을 입증하는 걸로 시작한다. 피고의 행위가 아니었다면 원고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손해배상 소송의 기본이다.
  • 그런데 기후변화 관련 소송에서는 이 요건을 입증하기가 특히 어려웠다. 지구는 넓고 배출 주체도 다양하고 무엇보다도 배출과 피해 사이에 시간과 공간의 격차가 너무 컸다.
  • 최근 네이처에 실린 크리스토퍼 캘러한(다트머스대 교수) 등의 연구에서는 3단계 종단간 귀인 분석(end-to-end attribution)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
  • 1단계: 특정 기업이 탄소 배출이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 2단계: 특정 기업이 원인이 된 온난화가 기상 이변에 미치는 영향을 추산했다.
  • 3단계: 특정 기업이 원인이 된 기상 이변이 실제 피해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더 깊게 읽기: 쉐브론의 경우.

  • 쉐브론은 미국의 석유회사다.
  • 1단계: 쉐브론은 1991~2020년까지 누적 14.2GtC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이것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데이터다.
  • 2단계: 쉐브론이 없는 지구와 쉐브론이 있는 지구를 각각 1000번씩 시뮬레이션해서 결과를 비교했더니 쉐브론이 없었던 지구는 2020년 기준으로 평균 기온이 0.025도 낮았을 거라는 분석이 나왔다.
  • 3단계: 평균 기온 0.025도는 가장 더운 날 5일의 평균 기온(Tx5d)을 0.036도 끌어올린다. 쉐브론은 2012년 미국 폭염으로 발생한 손실 가운데 288억 달러에 책임이 있다.
  • 쉐브론이 지구 전체에 끼친 손실은 1.98조 달러로 추산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와 러시아 가즈프롬에 이은 3위다. 111개 탄소 메이저 기업들이 끼친 손실은 1991~2020년 누적 28조 달러에 이른다.
  • 기후솔루션은 이 방법론으로 한국전력 발전 자회사들의 손실 금액을 계산했다.

한국전력 5개 자회사가 원인이 된 폭염 피해 93조+최대 196조 원.

  • 앞으로 발생할 피해를 더하면 금액이 더 커진다. 2025~2050년 178억 톤CO₂eq이 추가로 배출되고 최대 700조 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국전력 자회사만 놓고 보면 51억 톤CO₂eq, 196조 원에 이른다.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따르지 않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피해 규모다.
  • 탄소 중립 시나리오가 작동한다면 탄소 배출을 70억 톤CO₂eq까지 줄이고 손실 규모를 700조 원에서 276조 원까지 줄일 수 있다. 당연히 포스코와 한국전력 자회사들의 전향적인 변화가 뒤따라야 가능한 변화다.
  • 임소연(기후솔루션 연구원)은 “배출량뿐 아니라 배출로 인해 발생한 피해도 기업 책임에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정호(기후솔루션 연구원)은 “폭염 피해 뿐만 아니라 폭우와 홍수, 산불 등 다른 기후 피해까지 포함하면 손실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며 “한국 기업과 정부도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실질적 감축 이행 체계를 구축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임을 따박따박 묻는 게 세계적 추세.

  • 2019년 네덜란드에서는 1만 7000여명이 로열더치쉘에 권리 침해 보호 청구권을 요구했다. 온실 가스 감축 노력을 하지 않아 실질적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했고 법원이 배출 당사자 책임을 인정했다. 1심 법원에서는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45%의 순배출량을 감축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지만 2심 법원에서 뒤집힌 상태다. 2심 법원은 “기업은 위험한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책임을 진다”는 사회적 주의 의무를 강조하는 선에 그쳤다.
  • 독일에서는 페루의 농부가 홍수 피해의 책임을 물어 RWE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RWE가 세계 탄소 배출량의 0.47%를 차지하고 있으니 홍수 위험 방지 비용 가운데 0.47%에 해당하는 1만7000달러를 부담하라는 소송이었다.
  • 미국 호놀룰루에서는 석유 기업들을 상대로 홍수와 해수면 상승에 따른 피해 비용을 청구하는 소송이 있었다.
  • 런던정치경제대(LSE) 그랜섬기후변화환경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세계 기후소송의 20%가 기업 또는 기업 임원을 직접 대상으로 하고 있다.

소송의 의미: 명백한 피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 농민들은 소장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를 입었거나 미래에 피해를 입을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유일한 구제 수단이 손해배상 청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막대한 피해를 준 기후 변화에 책임이 있는 온실가스 배출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 는다면, 기후변화로 인한 개개인의 피해는 어디서도 보호받을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 이번 소송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다.
  • 첫째, 농민과 어민 등 기후 위기 취약 계층의 피해를 보상하는 사회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의 소송이다.
  • 둘째,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 셋째, 한국전력 등 공공 부문 뿐만 아니라 포스코와 삼성전자 등 탄소 배출이 많은 민간 기업들로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 권오성(기후솔루션 팀장)은 “기후 위기의 비용을 시민들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한국 법정에서 처음으로 세우는 시도”라고 강조했다. “책임 있는 배출자는 그 몫을 분담해야 하며, 이는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사회계약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전망.

  • 기후솔루션은 “이제 누가 얼마나 책임져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답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 “탄소 책임(Carbon Liability)의 원칙을 정립하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 한국전력을 상대로 한 농민들의 소송은 시작일 뿐이다.
  • 기후 재난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예방적 조치나 공정한 부담 분담의 차원을 넘어, 기업과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실질적 감축 이행 체계를 구축하는 사회적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편집자 주.

기후솔루션의 기고를 슬로우뉴스 스타일에 맞춰 다시 편집했습니다.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