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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이 글은, 독자에 따라서는 스포일러로 느낄 수 있는, 영화 [듄]에 관한 (추상적인 수준의) 줄거리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의 불안을 염려하는 독자는 이 글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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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2021, 드니 빌뇌브 ⓒ 워너브라더스)
듄 (2021, 드니 빌뇌브 ⓒ 워너브라더스)

짧게 끝나긴 했지만, 단계적 일상 회복이 진행되면서 거리에 사람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빠르게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나도 이 분위기에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요즘 뜸했던 영화관을 찾았다. 먼저 보고 온 지인들이 그토록 칭찬해 마지않던 영화 [듄]을 보기 위해서였다. 좋아하는 감독, 좋아하는 배우, 좋아하는 세계관.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이후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면 이런 영화여야 해’라며 벼르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그렇게 저녁 식사도 거르며 찾아 들어간 자리에 앉아 두 시간이 넘도록 [듄]의 세계 속에 빠져들었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야 ‘벌써 끝났어?’라며 아쉬움을 털어냈다. 특히, 익히 아는 종교 구원자처럼 온갖 믿음 속에 역경과 고난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매력적이었었기에 한참을 영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리더가 늘 옳다고 믿지 마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리고 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 [듄]에 관해 설명해주는 영상을 계속 찾아봤다. “듀니버스”(‘듄’과 세계관이라는 뜻의 ‘유니버스’가 합쳐진 말)라고 했던가. 그 황량한 세계에 빠져 원작 소설도 사볼까 하는 충동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가 1982년 NBC와 진행했던 인터뷰 내용을 보게 되었을 때, 환상은 산산이 조각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소설 [듄]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리더가 늘 옳다고 절대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듄]에서 정말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를 창조했죠. 그에겐 정당한 명분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권력을 쟁취하고요. 하지만 그가 내리는 결정은 인류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프랭크 허버트)

듄 프랭크 허버트

주인공 폴 아트레이드(티모시 샬라메 분)는 꿈에서 특수한 물질을 들이마신 후, 자신의 미래를 본다. 가문과 종교 집단이 원했던 대로 리더의 자리에 오르지만, 이를 기점으로 세상이 종교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는 내용의 미래였다. 영화를 보며 ‘설마 아니겠지’라는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장면은 그렇게 원작자의 인터뷰 내용으로 확실해졌다. 혼란한 시대를 끝내기 위해 온다던 구원자가 온 우주에 퍼질 전쟁의 단초가 된다니.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던 건 이후에도 영화를 계속 이끌어가는 이 영웅 서사 깊숙한 곳에 무시무시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영웅이 더럽혀진 세상을 구하러 언젠가 등장할 것이며, 그전까지 우리는 갖은 고초를 겪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후에도 믿음이 부족한 자들과 끊임없이 싸우겠지만, 영웅과 함께 하므로 우리는 정당하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을 최고의 자리까지 올리려는 한 종교 집단과 이 집단에 의해 세뇌된 군중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그리고 다른 생명체에 빗대어 표현되는 이 믿음. 이맘때쯤 영화관 밖에선 그리 낯설지 않은 광경이었기에 어딘가 더 섬뜩했다.

우리 정치를 ‘사구’로 만드는 것들 

선거 기간이 되면, 특히나 대통령 선거 기간이 되면 각자의 영웅 서사에 빠진 후보과 지지자를 본다. 언제부터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대한민국을 단숨에 구할 수 있을 만큼의 구원자적, 영웅적 인물이 필요하다고 여겨졌는지 모르겠다. 제왕적 대통령을 만드는 지금의 정치, 사회 시스템이 유권자의 인식을 바꾸는 것인지, 아니면 제왕적 대통령을 원하기 때문에 시스템을 비틀고 있는 것인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영화 [판도라]에서 대통령을 연기한 배우 김명민. 대통령은 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헌법기관 중 하나이지만, 대통령이 반드시 영웅이나 구원자일 필요는 없고, 현실 속에선 대부분 그렇지도 않다.
영화 [판도라] (2016)에서 강석호 대통령을 연기한 배우 김명민. 대통령은 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헌법기관 중 하나다. 하지만 대통령이 영웅이나 구원자일 필요는 없다. 그저 정해진 대통령의 역할을 수행하면 그뿐이다.
이 불만스러운 상황을 한 번에 해결할 누군가가 등장할 거라는, 그 누군가가 내가 지지하는 후보일 거라는 믿음이 대통령 선거 기간을 채울 뿐이다. 나와 같은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자들을 향한 비난과 혐오, 우리 아니면 적인 흑백논리,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조차 용납하지 않는 의식의 고착화는 이 믿음 뒤에 따라와 우리나라의 정치를 사구(dune; 모래 언덕)만큼이나 황량하게 만들고 있다.

선거도, 대통령도, 정치도 영화 [듄]처럼 두 시간 반이 지나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면 믿고 싶은 데로 따라갔으련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선거 기간의 여러 모습을 보며 뼈저리게 배우고 있다. 우리에겐 구원자도, 영웅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5년마다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건 행정부의 최고 책임자이며, 각자의 서사에 잘 부합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다. 우리에겐 ‘대통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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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필자는 김인주 경실련 수습 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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