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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당사자라도 대화 참여자 모두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윤상현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16905)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상대방 동의 없이 통화를 녹음하는 경우나 실태를 추적, 고발하기 위해 대화 현장에서 몰래 녹음하는 행위 등이 중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오픈넷은 본 법안, 일명 ‘대화녹음금지법’이 각종 사회 고발과 언론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고 진실 증명을 어렵게 만들어 부조리한 행위와 거짓된 항변이 만연하도록 만드는 ‘막말비호법’, ‘진실증명금지법’으로 기능할 것을 우려하며 조속한 철회를 촉구한다.

대화 녹음에 관한 머니투데이의 카드뉴스(2016) 중에서. “상대방과의 통화는 ‘녹음’하는 습관도 좋”다고 권한다. 언론이 권하는 상식과 권리가 어쩌면 ‘범죄’가 될 수도 있다. 도대체 왜?

‘대화’란 무엇인가, ‘녹음’이란 무엇인가 (ft. 김건희 vs. 서울의소리) 

대화하나의 사건이며, 녹음은 이러한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결과물진실 증명의 중요한 수단이다. 이렇듯 사건을 기록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진실’을 기록하고 알렸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하는 것과 다름 없다.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을 말해도 그것이 ‘진실’한 사실이라면 형사처벌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제인권 기준이며, 이에 따라 현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폐지 권고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형사법으로 존재하는 나라다. UN 등 국제사회는 한국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권고한다.

본 법안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사생활의 자유, 통신의 비밀과 자유, 음성권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화라는 것은 혼자만의 비밀스런 행위가 아니며 상대방에 대한 사회적, 대외적 활동으로, 상대방에 의해 공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활동이다. 원칙적으로 비밀로 지켜져야 할 영역이 아니기에 대화 상대방에게 대화 내용을 발설하지 말 것을 강제할 권한은 없는 것이며, 모든 당사자들이 비밀로 하기로 합의했을 때에야 비로소 예외적으로 비밀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현행법상 대화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감청했을 때에만 대화 당사자의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써 형사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음성권은 국가 형벌권을 발동하여 보호하여야 할만큼 실체적이거나 중대한 개인의 인격권으로는 보기 어렵다. 이렇듯 보호가치가 낮거나 불분명한 개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 진실한 사실을 기록하고 증명하기 위한 행위를 형사처벌한다는 것은 위헌적 과잉 규제다.

또한, 현재도 대화 내용상 대화 당사자의 인격권이나 사생활 침해적 요소가 더 강하다면 이러한 대화를 부당하게 ‘공개’한 행위는 민사상 불법행위 손해배상 제도를 통해 규율될 수 있다. 본 법안은 행위의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녹음’만으로도 징역 1년 이상의 과중한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어 위헌성이 매우 높다.

김건희 vs. 서울의소리 사건. 우리나라 법원이 ‘당사자간 통화 녹음’의 공개에 관해 가지는 판단 기준을 잘 드러낸 사건. 법원은 대화의 ‘공공 부분’은 공개해도 되지만, 사적 부분(사생활)은 공개하지 말라고 결정했다. (이미지 출처: YTN)

언론과 약자의 ‘무기’를 빼앗고 공익을 해하는 법 (ft. 한진그룹 이명희) 

무엇보다 본 법안은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사회 고발 활동과 이를 중점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언론 활동을 크게 위축시킨다는 면에서 공익을 현저히 해하는 악법이다. 증거가 없는 고발은 개인의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기에 대중의 신뢰와 파급력을 얻을 수 없고 오히려 허위사실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법적 리스크까지 부담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 고발 활동을 위해서는 녹음, 녹화 등의 증거 확보가 필수적이다.

또한, 부조리한 행위는 은밀히, 기습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사자가 모르게 증거 확보를 할 필요가 있으며, 이같은 이유로 언론 활동에도 잠입, 위장 취재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있다. 본 법안은 이러한 사회 고발, 언론 활동에 필수적인 행위를 불법화함으로써 사회의 고발과 감시 기능을 위축, 마비시켜 사회 발전을 크게 저해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갑질, 언어 폭력, 협박, 성희롱 등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사회적 약자에게는 통화나 현장 녹음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입증하고 대외적으로 폭로하여 강자의 부당한 행위에 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인데, 본 법안은 이러한 사회적 약자의 무기는 빼앗고, 강자들이 부조리한 행위를 할 자유를 더욱 보호하는 부정의한 결과를 낳을 위험이 높다.

갑질의 ‘신기원’을 연 한진그룹 이명희. 피해자 10명에게 상습적인 폭언 폭행을 행사했음에도 당시(2018)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질문해 보자. ‘통화녹음금지법’이 생기면 누가 좋아할까? 갑질 행패를 한 사람일까, 당한 사람일까. (이미지 출처: KBS1)

진실한 정보를 더 강하게 보호하고 지지해야 

한편, 정보 과잉으로 진실과 허위의 싸움이 날로 치열해지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가짜뉴스나 허위조작정보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진실한 정보에 관하여 더 강한 보호와 지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본 법안은 오히려 진실한 사실의 증명을 위한 행위를 불법화하여 억제하고, 거짓 주장과 진실 은폐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반진실-친허위적인 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본 법안을 대표발의한 윤상현 의원을 비롯하여, 최근 정치인들이 통화 녹음이나 메신저 내용의 공개를 통해 본인들이 무책임하게 내뱉었던 말들이 도마 위에 올라 곤혹을 치르는 사건이 많아지면서, 음성권, 프라이버시 보호 등을 내세워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규제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일명 ‘통화녹음금지법’을 대표발의한 윤상현 의원 (출처: 국회)

이 대화들 역시 해당 정치인들의 숨겨진 사상이나 인성, 자질 판단에 있어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는 진실한 사건들이다. 국민은 권력자들이 이러한 말을 내뱉었다는 사실을 알 권리와 이러한 진실한 사건을 바탕으로 정치인의 자질을 판단하고 선택에 반영할 권리가 있다. 이를 녹음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하고자 하는 본 법안은 결국 ‘권력자 막말비호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국회는 이러한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헌법상의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공익을 현저히 해하고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침해하는 본 법안을 조속히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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